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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존재 증명

연필이 닳는다. 정확히는 연필심이 닳는다. 흑연이 닳는다. 닳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라지는만큼 그 흔적을 남긴다. 흑연이 그리는 선은, 문자가 되고, 문장이 되어, 의미로써 읽힌다. 글이 된다. 연필이 닳는다는 것은 글이 된다는 것이다. 몽당연필은 그만큼 많은 글을 남겨왔다. 몽당연필은 그 자체로 글의 흔적이다. 그만큼 많은 글의 존재는 어떤 몽당연필의 존재 또한 증명한다.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를 증명함은, 다른 존재가 어떤 존재를 증명한다는 말과 같다. 한 조각의 글은 몽당 연필을, 그것을 쥔 손을, 손의 주인을, 그 주인의 의식을, 그 의식의 사유를, 그 사유의 과거와 현재를, 그로부터 외삽되는 미래를 존재 증명한다. 이 글이 증명하는 몽당연필의 존재는 흰 종이 위의 흑연으로 고착된 과거의 증명이 아니라 오지 않은 미래의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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