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정병장님은 저희에게 별로 관심을 주시진 않으셨지만,” 을 서두로 하는 롤링페이퍼를 받았다. 전역날이었다. 나는 나를 둘러싼 분대원들과 악수를 하고 차기 분대장에게 롤링페이퍼를 받았다. 롤링페이퍼에는 전체적으로 좋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름의 추억을 되새기거나, 떠나보내는 이에 대한 치례의 말들이었다. 단지 첫 문장이 마음을 찔렀다. 나쁜 의도로 쓰인 문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후임병들과 사이가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후임병들이 나를 어려워했으므로 마지막이나마 글에서 쉬이 운을 떼기 위해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둔 적 없는 말이 농담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농담이라는 건 내심 담아두고 있던 생각들이 기회를 노려 삐져나오는 말이었다. 그런 말들은 술을 취하거나 화가 났을 때, 아니면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에게 하는 법이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 나는 후임병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 좋은 선임병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군대는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합을 맞춰 일을 하는 곳이다. 예의를 갖추고 자신의 직무에 충실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늘 문제가 발생했다. 괴롭히는 것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고, 잘 해준다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도 후임병들에겐 부담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이란 으레 받은 만큼 돌려줘야한다 믿으므로.
“그냥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나는 한참 뒤에 대답했다. “글쎄요.” 그때 나는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만나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 어쩌다 연이 닿아 신촌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우리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낯간지러운 존댓말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연히 다른 지인 중 하나가 나를 뒤에서 욕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 역시 얼굴은 마주한 적 없지만 아는 사람이었다. 그와 나 사이에는 감정적인 문제가 없었고, 그 또한 그런 사적인 부분보다는 소설에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이었다. 그런 것이라면야. 나는 “괜찮아요.” 하고 말했다.
나는 화를 내고 울분을 토하는 게 소비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내 앞에서 직접 거칠게 나를 비방한다면 감정적으로 참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 하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괜히 나쁜 감정을 내어서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저 혼자 우울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설혹 그런 감정이 일더라도 되도록 감추고 죽이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하고 말했다. 간만에 만나는 중학교 친구들의 술자리였다. 추억삼아 꺼내는 이야기에선 낯선 이름들이 많았다. “너 걔 알지?” 하고 물을 때 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두 번에 그치면 좋으련만. 나는 친구는 이야기를 떠들 때 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들을 괜찮은 조미료라도 되는 양 섞어 말했다. 결국 같은 반에 내 옆 자리에 앉았었다는 친구의 이름도 모른다고 하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하긴 넌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어쩌면,
하고 나는 작은 의심이 들었다. 기억이란 건 노력을 기해야하는 일이고, 노력이란 건 집중을 해야 하고, 집중은 관심을 가졌을 때나 할 수 있다. 산만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한다면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뒤에서 욕을 해도 무시하거나,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면, 나는 왜 불만을 느낄까.
언제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버거웠다. 누군가는 달리기를 못하고 누군가는 그림을 못 그리는 것처럼, 나도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힘들었다. 훈련을 하고 학습을 하면 사람은 더 나아진다. 하지만 그 일에 유능한 이들만큼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숨을 쉬는 것에 비유한다면 나는 폐를 부풀리고 기도를 여는 것을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에 가까웠다.
어쩌면 집중을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하면 나부터 다른 사람들을 뿌연 안개처럼 대해왔는지도 몰랐다. 나는 내게 필요한 일의 수단으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용해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나 또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뿌연 안개처럼 대해져왔다면, 이것은 공평한 일이었다. 나는 선임병에게서 받은 부조리를 후임병에게 돌리지 않았고, 나를 욕하는 이를 찾아가 욕하지 않았고, 몇 번이나 내 이름을 되물었던 반 아이들처럼 나도 그때 그 이름들을 잊었다. 이것이 공평한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 나만이 남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고 그 편리를 이용해온 양, ‘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고 핀잔을 듣는 것은 부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