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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무섭다는 말

습관이 무섭다는 말이 재미있다. 습관은 귀신도 강도도 호랑이도 아니고 바퀴벌레도 고지서도 아니다. 습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무섭다고 생각하는 범주에 들지 않는다. ‘습관’이라는 어휘는 보통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는 습관이라거나, 밥을 먹을 때 TV를 보지 않는 습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또는 그렇지 않은 습관)과 같이 아주 일상적인 일들을 가리키기 마련이다. ‘습관이 무섭다’는 말은 그런 일상적인 것들에게서 어떤 감정을 잡아냈을때 쓰이곤 한다(다만 그 감정을 ‘무섭다’고 표현한다고해서 공포심이라 한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 공포라는 것은 내 생각에 격한 감정인데 반해 우리가 언급하는 관용구의 무섭다는 뉘앙스는 그렇게까지 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늘 하던 것을 다른 환경에서도 똑같이 반복할 때,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습관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 관용어구를 사용한다. 나 같은 경우는 이랬다. 왼쪽 쇄골이 부러져서 팔걸이를 하고 다니다가 치료가 모두 되어서 팔걸이를 풀게 되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누가 내 왼팔을 보고 지적을 했다. “너 아직 왼팔 불편해?” 아니었다. 괜찮았다. 하지만 나는 왼팔을 팔걸이에 걸린것처럼 가슴에 딱 붙이고 한손으로만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왼손으로 밥그릇을 당기며 말했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네.” 정말로 무섭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말이 떠올랐고, 적절히 사용했다고 생각했다. ‘이젠 왼팔을 사용해도 괜찮은데도 나는 계속 팔을 오므린채 몸을 숙여서 조금 힘들게 밥을 먹고 있었구나. 이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정도로 습관이 내게 배였구나.’ 이런 사실의 발견을 발화한 것이었다. 어쩌면 바뀌지 않는 자신에 대해 살짝 놀랐는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무섭다’고 표현하는 것은 작은 과장이긴해도, 자신의 의지와 논리적인 사고에 반하는 몸에 익은 습관의 발견은 놀랄만한 것이다. 말하자면, 습관이 무섭다는 말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몸이 서로 어긋나는 지점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환경이 변함에 따라 자연히 몸도 따라와줄 거라고 믿었는데, 우리의 의지와 달리 몸은 그렇게 쉽게 따라와주지 않는다.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몸의 존재는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몸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끔 한다. 많은 경우에 몸은 자연히 우리를 따라와주지만, 이따금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몸이 절대적인 지배 아래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우리는 조금은 놀라게 되는 것이다. 변해야 하는 것임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부조리하게 생각되고, 과연 우리는 변할 수 있을까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가질 수 있을까 회의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변하지 못할지도 몰라. 그런 불신으로부터 시작되는 희미한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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