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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 서점

지하철이 중앙로역에 멈춰서고 문이 열린다. 나와 다른 승객들이 내린다. 급류처럼 흘러 오르던 이들은 가열된 공기처럼 뿔뿔이 흩어졌지만, 모두 산소 분자처럼 짝을 이루고 있었다. 지하 1층에는 달갑게도 나 말고도 혼자인 이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발을 까딱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 또한 잠시 쉴 요량으로 앉을라치면 그들은 나를 남겨두고 제 짝과 함께 떠나갔다. 뒤에서 바라보면 절름발이끼리 서로를 부축하는 모양이었다. 사람 人이 서로에게 기댄 모습에서 따왔을 거란 이들에겐 반대로 내게 장애가 있나 싶겠지. 그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존중할 줄 모른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면 유동하는 무수한 장애물들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문제는 그 장애물들이 살아 숨 쉬며, 눈이 달렸고, 피차간 몸을 부딪치는 일을 기꺼워하지 않으면서도 그 정작 그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애물들은 가차 없이 직진 운동해 내 어깨에 들이박는다. 불유쾌하게,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내 작은 세계에 간섭해와 축을 흔들고 도망간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돌아보지 않는다. 이건 거의 뺑소니다. 과장이 좀 있긴 하다. 그들이 항상 들이 박는 건 아니니까. 사실 부딪치는 횟수는 많지 않고, 대개 내가 몸을 살짝 트는 것으로 충분히 피하게 된다. 하지만 통계청 추산 유동 인구가 50만에 이르는 지역에서 가는 길의 장애물들을 일일이 피해야한다는 건 체력과 심력을 소비하는 일이다.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장애물들에게도 뇌가 있는데 왜 피하지 않는가. 나는 평소 습관대로 이런 행동에는 악의적인 계산이 깔려있으리라 가정했다. 고래로부터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유희의 하나로 작동해왔다. 집단은 일개 개인보다 강하며, 힘을 과시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치고 지나가는 이들은 마찬가지로 짜증을 내는 듯 했다. 털어내면 그만일 먼지 같은 나에게 과분한 감정 아닌가.

그런 고로 나는 이들 장애물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중립적인 존재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충돌 사고도 의도치 않은 실수와 오해가 겹쳐 만들어낸 人災가 아닐까. 그런 그들을 이해한다면 이 불만도 사그라져 마음에 하해와 같은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런가. 그들과 나의 결정적 차이는 머릿수였다. 서로 다른 것은 그냥 붙지 않으니 두 원자를 묶어두는 결합력과 같은 힘이 그들 사이에 작용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원자에 전자의 수가 제한된 것처럼 그 힘도 서로 붙이는데 쓰고 나면 바닥이 나고, 눈앞의 장애인을 보더라도 서로 간에 붙어있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충돌 이후에도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다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나름의 답을 규명했다. 다만 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 어깨가 닳아가는 까닭은 그것이 오로지 당겨내는 힘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나의 힘은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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