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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4시의 산책

산책을 갔다. 시간은 4시 10분 가량. 어머니가 닭 염통을 튀겨오셔서 술 안주로 먹었다. 몸이 더웠고 졸렸다. 서른 여섯 시간 가량 뒤에는 훈련소에 입영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산책을 갔다. 띄워놓은 메모장은 텅 비어있고 커서나 껌뻑거릴 뿐이었다.

형이 어디 나가냐 물을 때 캔커피를 사러 나간다고 말했다. 형은 자기껀 안 사와도 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등교길을 걸었다. 종종 걸었던 산책로였으므로 별 감흥은 없었다. 너무 익숙한 길이었다. 하지만 사차선 도로를 건너려는 찰나, 막대기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보니 맹인이 바닥을 두드리며 걸으며 횡단보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쯤 나는 도로를 모두 건넌참이었다. 맹인은 발소리를 듣고 허공에 말했다. “건너가도 됩니까?” “네.” 도로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자리에 서서 맹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걸어왔던 길 너머로 사라지는 것 까지 보려고 했다. 하지만 맹인은 도로를 건너가서는 내가 가려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걸어갔다. 맹인과 나란히 평행으로 걸었다. 차는 그다지 지나가지 않았다. 조용했다.

본래 학교 가는 길로 들어서려 했지만 맹인 때문에 길을 좀더 걸었다. 곧 노인은 평행을 깨트렸고 어디론가 갔다. 나는 돌아가서 학교로 갔다.

내 모교인 중학교, 고등학교는 이웃한 학교였다. 한 울타리 안에 있었다. 교지의 이름도 한울타리였다. 그 외에 여고와 다른 중학교도 함께했다. 운동장이 네 개나 있는 학교였다. 그 옆의 주택가엔 내가 어렸을적 살던 집이 있었다. 모두 둘러보았다.

가까운 거리에 모교인 초등학교도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5분 거리였다. 우리집에서도 5분 거리였다. 가는 길에 전동휠체어가 내 길을 가로 막았다.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기에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까운 상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텅 비어 있었다. 돌아오니 전동휠체어가 노인을 얹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옆 단지는 노인과 장애인들이 많이 살았다. 정부에서 지원을 해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이들이 왜 새벽에 거리로 나와 걸어가거나 굴러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군대는 내가 가는데.

초등학교는 공사중이었다.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건물을 지을 정도일줄은 몰랐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조경수나 우레탄 등교길 같은 것은 없었는데. CCTV가 빽빽하게 차 있어 담을 넘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담을 넘으면 학교를 가로질러 더 빨리 갈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돌아오는데 초등학교 정문에서 오토바이 몇 대가 빠져나왔다. 고등학생들 처럼 보였다. 곧 오토바이를 타지 않은 학생들이 걸어나와서 무어라 중얼거렸다. 몰래 숨어서 훔쳐들었다. 둘은 어디 가지않고 제 자리를 뱅뱅 돌면서 어떻게 할 거냐는 말만 반복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쪼그려 앉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에 빠져나와서 캔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은 내가 사는 아파트의 뒷편 상가 건물에 있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아파트 앞편이었다. 나는 5분 정도 걸어올라갔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면 더 빠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누군가 아파트 복도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경비들은 모두 졸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우리 동에 다 와갈 무렵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아빠였다. 어쩐 일이냐 물으니 내가 오지 않아 찾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스물 한 살 남자였다. 불만을 가지려는데, 아빠는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군대에 대해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사실이었다. 내가 보기에 내가 할 걱정은 우리 가족이 모두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모두 흘려들었다. 단지 아빠의 주름진 손이 신경쓰였다. 아빠는 내 걱정이나 해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캔커피 두 캔을 샀다. 아빠는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부터 나 혼자 두 캔 마실 생각이었다. 집에 돌아가니 형이 안 자고 있었다. 한 캔은 마시고 한 캔은 냉장고에 놔두었다. 형은 안 사와도 되는데, 말하면서 캔커피를 집어들었다. 나는 형이 캔커피를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 살펴보았다. 형은 캔커피를 다시 냉장고에 넣으며, 나중에 마시고 싶을 때 마셔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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