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140918
남자는 세수를 하려다 손바닥 가운데 뭔가 묻은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흐리고 희미한 세 음절의 단어였다. 남자는 비누로 손을 비비고 물로 헹구어낼수도 있었지만, 화장실로 나와 수건의 끝으로 물기를 눌러 닦았다. 남자는 안경을 쓰고 그 단어를 읽었다.
잊지마.
그것은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급하게 휘갈긴 글자였다. 살짝 번지긴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필체임을 남자는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는 뒤늦게 새벽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남자는 잠을 자던 중 어떤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꿈 속에서 무언가를 확인한 남자는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급하게 필기구를 찾아 손바닥에 휘갈겼다. 남자는 벅찬 마음 때문에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남자는 불도 켜지 않고 베란다 너머로 들어오는 가로등의 희미한 빛에 의지해 그 세 글자를 썼다. 남자는 그 덕분에 ‘잊지마’라는 세 글자를 분명히 기억할 수 있었으나, 잊지 말아야할 그것이 무엇인지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남자는 일상에서 일어난 기묘한 역설때문에 손에 쥔 잊지말라는 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