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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일기1

원래 일기 같은 글은 많이 썼지만 트위터를 하게 되면서 잘 안 쓰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채팅도. 요즘은 채팅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즐겁다. 옛날에도 즐거웠지만.

글 쓸 시간 없다고 투털대면서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쓰는 글이 오히려 많아졌기 때문이다. 트위터나 채팅을 많이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 내가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도 타임라인과 채팅방을 멍하니 바라보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누가 글을 쓴다. 그 사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뭔가 하는 쪽이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제목은 보들레르의 내면일기 패러디인데 사실 읽어보지 않았다. 사실 보들레르의 글이라곤 시편 조금을 제외하면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고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눅눅한 냄새가 나는 표지가 닳은 책… 이 아니라도 고전이란 것들은 읽고 있으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 킁킁. 이건 이 시대의 것이 아니로군.

꼭 그런 건 아니란 것 정도는 나도 안다. 단순한 편견이다. 내가 읽어본 고전이란 것들은 읽기 전까지만 인상이 나빴다. 아마 읽고 나면 좋아하게 될 것이다. 싫어하더라도 왜 고전인지 정도는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많은 사람들에게서 권유받는 책은 읽고 싶지 않다. 이건 원래 내가 이런 성질이기 때문이다. 아마 내면일기도 악의 꽃도 읽을 것이다. 발자크도. 롤랑 바르트도. …좀 다른가?

어제 소소한 일상들을 읽었는데 예의 푼크툼을 글쓰기로 써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인상적이었지만 많이 흥미롭지는 않았다. 유작이라는데 아마 그런 글을 구태여 출판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소소한 일상들. 아마 제목도 자기가 짓지는 않았겠지. 그 책이 엮일 땐 이미 바르트는 죽고 난 다음이니까.

일기에 대해서 가끔 생각한다. 아니면 안네에 대해서. 안네 프랑크. 안네 프랑크는 그 일기가 남에게 보여질 거라고 생각했을까? 글쎄. 키토 아야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키토 아야는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일기 조차도 결국은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쓰여지는 걸까? 그럴 줄 몰랐다고 해도 롤랑 바르트, 안네 프랑크 그리고 이순신도 결국 죽고나서 그 일기가 남아 지금까지 전해진다. 결국 모든 일기란 유언장이 되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오츠이치의 소생이야기가 생각난다. 많이 팔린 책은 아니니까,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이야기하자면 소생이야기는 오츠이치의 가짜 일기였다. 약간의 허구를 섞어서 쓰는 일기로 오츠이치는 자신을 ‘소생’으로 자칭하면서 썼던 웹에 올려졌던 글을 묶어 출간했다. 한국에도 출간되어서 소생이야기가 되었다. 소생이야기에서 오츠이치는 소생이야기를 쓰면서 겪었던 당혹스러운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가짜 일기 속의 허구적인 인격인 ‘소생’을 작가 자신 오츠이치와 동일하게 생각하면서 일상생활에서 괴리감을 겪었다고. 그래서 일기를 마친다는 것이 일기의 마지막이다.

아무튼 글이 길어졌는데, 위와 같은 이유로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냥 해본 소리다. 글이란 건 그냥 나오니까. 일기를 쓰는 이유는 두 번째 단락에서 이미 말했다. 어제는 별 일이 없었다. 이따금 트위터와 채팅을 했다. 일요일이었고 정현종 시 한 편에 대한 감상을 썼고 시를 한 편 썼다. 과제였다. 그리고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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