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4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열두 시쯤 해서 일어났다. 잠시 빈둥거렸다. 두 시가 되었다. 씻고 동네 미용실에 머리를 깎으러 갔다. 원형탈모가 있는데, 뒷머리 좀 짧게 쳐주세요. 우물쭈물거렸다. 이제 모자를 써도 깔끔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머리카락 깎이는 나를 보았다. 못났다. 머리카락이 빠지는데도 머리카락을 깎아야한다는 것은 모순처럼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병원에 갔다. 2주만에 와야하지만 3주만에 왔기 때문에, 뭐라고 할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저번 주는 어쩐지 가기가 싫어서 가지 않았는데, ‘어쩐지’에 대해서 변명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두피에 주사를 맞았다. 주사 한 번은 아프지 않다. 열 번 정도는 버틸만하다. 서른 번 정도 되면 마음을 가다듬고 통증에 대해서 생각해야한다. 별 생각이 없으면 제자리에서 펄쩍 뛸테니까. 주사를 맞는 동안 주사기와 스테로이드 약성의 주사액과 내 혈관 아래에서 내 모근을 공격하는 백혈구에 대해서 생각했다. 약성이 혈관을 따라 두피에 잠재되면 백혈구가 순해진다. 그럼 모근은 다시 힘을 얻고 머리카락을 만든다. 간단한 원리다. 병원을 나와 두 번의 환승을 하고 학교로 갔다. 다섯 시였다. 조별 과제 조사를 위해 도서관에 갈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빠듯했다. 도서관은 다음에. 피씨실에서 디비피아에 들어가 최승자와 관련된 논문을 찾아서 대강 갈무리했다. 선생님은 왜 나를 최승자 발표조에 넣었을까. 학회 자료를 프린트하고 문예창작학과 세미나실에 갔다. 빈둥거렸다. 여섯 시가 되어 학회가 시작되었다. 지각생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박성원 선생님과 회식이 있어서 그냥 시작하기로 했다. 오늘은 월요일이니까 기성 작품을 읽었다. 시는 오은의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로 발표자가 나였다. 말장난이 재미있는 시였다. 소설은 김종옥의 ‘거리의 마술사’였는데, 왕따 문제를 다룬 서사로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안정적이었다. 학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일곱 시, 평소보다 한 시간 빨리 끝내고 동문의 고깃집으로 가서 고기를 먹었다. 고기를 먹다보니 선생님과 선배들이 왔다. 고기를 먹었다. 뒤늦게 참석한 사람들이 있었다. 고기를 먹었다. 주사를 맞았으니 술은 먹지 않으려고 했지만, 소주를 두 잔만 찔끔찔끔 마셨다. 이정도면 마시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기를 먹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홉 시 반쯤 되어 일차를 끝내고 지하철을 타는 학회 사람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로 한 번 환승을 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현관에 불을 켜기 전에 현관문이 닫혀 완전히 어두워졌다. 뭔가 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관에 불을 밝히자 아무것도 없었다. 거실에 불을 켜고 컴퓨터를 켜고 앉았다. 아침에 일어나 하스스톤을 하다가 연패한 것이 생각나서 하스스톤을 했다. 친구 전화가 와서 맥주 한 캔 할래 물었다. 고민이 되었지만 뒤늦게 소주 두 잔도 많이 마셨다 싶었다. 되었다고 했다. 하스스톤을 하는데 글 쓰는 친구가 히오스를 하자고 졸랐다. 되었다고 했다. 소설을 써야하는데 뭐하는 거야. 뭐하는 거야 생각하면서 트위터를 들여다보다가 블로그 글쓰기를 눌렀다. 좀더 복잡한 심경에 대해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글만이 쓰여진다.
글은 쓴다기 보다는 쓰여지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