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110416
1.
말은 시간에 구애되어 짧게 할 수 밖에 없고, 우선은 청자에게 우선 가장 큰 것 부터 꺼내든다. 그래서 생기는 게 오해다.
글은 시간과 무관하다. 단지 읽는 이로 하여금 제한된다. 말은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지만, 글은 읽고 싶지 않으면 읽지 않아도 된다.
2.
친구가 PX에서 양주를 사가지고 왔다. 양주는 아저씨 냄새가 난다. 도수가 높은 술은 마시고 나면 코로 증발된 알콜이 흐르는 기분이다. 실제로 그럴 것이다.
3.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냥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쓸 것을 상정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나면 ‘~라는 글을 써야지.’ 하고 끝맺게 된 것인데, 정도가 많이 심해져서 내가 제대로 생각하고 사는 것인지 헷갈리게 되었다.
라는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4.
나를 키운 것은 허세의 공이 크다. 중학교 때 나는 유식한 척 하고 싶었고, 책을 읽는 이유 중 20% 가량은 실제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재미있는 것은, 책이란 건 겉핥기로 읽어도 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80%는 현실도피의 이유였다. 그 당시 판타지 소설은 내가 보기에 가장 소설다운 소설이었다. 나는 판타지를 사랑했고, 현실도피라는 건 장르 판타지에게 있어 잘못된 딱지라고 생각했다. 다른 작가들의 말을 빌려 그걸 부정하는데 몇 년을 보냈다. 허세였다.
20%와 80%는 반올림한 값이다. 측정하기 어려운 소숫점 이하는 생략되었다. 이 값은 아직도 가늠할 수 없다. 나는 얼마나 소설을 사랑하고 있었을까. 나는 지금 얼마나 소설을 사랑하고 있을까.
5.
의외로 자기가 왕따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며, 생각보다 먼저 행동하기에 실례스러운 일을 자주 저지르고, 주변에 무척이나 둔감한 사람. 왕따 당할만하지 않은가. 그게 나였다.
따돌림 당하는 이유는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따돌리는 것에 당위성이 생기지는 않는다.
자신이 왕따를 당하는지도 모르는 한 둔감한 인간이, 겨우 사춘기를 지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자신이 왕따를 당했다는 과거를 자각하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어떤 감정이라도 너무 늦은 시점이다.
나는 다른 아이들 보다 빨리 사춘기가 찾아왔다. 어째서인지 내 앞에선 친구들이 모두 바빠져서, 나는 책이랑 놀아야했다. 책은 나보고 ‘넌 지금 사춘기야’ 라고 했다. 나는 입으로는 ‘그게 뭔데?’ 하고 물었지만, 머리로는 책을 자빠트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커다란 흉터를 발견하는 느낌이었다. 언제 이런 상처가 났었지? 상처는 크고 흉측했다. 하지만 아프지 못했다. 이미 아물어서 치료하기에도 너무 늦었다. 이따금 다리를 절었던 게 이 상처 때문이었나,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뿐.
6.
사랑이란 게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적어도 체감되지는 않는다. 그건 공기나 하느님과 비슷한 것이다. 느낄 수 없는 것을 있다고 믿기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