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110418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고등학교 때 였다. 그 전에도 소설은 써왔었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소설을 쓴 건 아니었다. 창작과 관련된 일은 언제나 좋아했었고, 소설도 그 연장선 중에 있었다. 일기 쓰는 것도 좋아했다.
내 첫 책은 DC인사이드 판타지 갤러리에서 낸 ‘첫번째 비상’이었다. 첫번째 비상은 단편집으로, 나는 단편 ‘아래에서’로 참가했다. 아래에서는 제 8회 판타지 갤러리 단편 대회 우승작이었다. 문장 월간상을 탔고 연간상 후보에 올랐다.
150부 가량이었는데 대다수가 증정본이었다고 들었다. ‘첫번째 비상’은 다음 해 2월 쯤(2009년)에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팔리지는 않았지만, 작은 인터넷 신문에 기사가 나기도 했었다.
내 첫 출판물의 첫 단락은 휴대폰의 바탕화면으로 저장되었고 아직까지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다. 의미 있고 잊지 못 할 가슴 뛰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동인 출판이 줄 수 있는 만족은 한계가 있었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시리우스 문학상은 2009년 가을, 판갈오알지와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주최로 열렸다. 예선 심사는 김주영, 김창규, 노기욱(콰이곤), 손지상(도스까라아스), 정해복, 홍성화(레디오스) 이었고, 본심 심사는 귀우혁, 박상준, 박애진, 이주엽, 진산이었다.
내 작품 ‘미궁에는 괴물이’는 시리우스 문학상 1년 6개월 전에 쓰여지기 시작했고, 프롤로그만 1년 6개월 정도 걸렸다. 프롤로그 이후 부분은 대회 마감 3일 전에 쓰였다. 8월 16일 예심을 통과했고, 9월 8일 본선에서 떨어졌다.
1년 뒤(2010년), 8월 20일 11시 경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문학 장르문학 파트에 내 작품이 올라갔다. 제목은 ‘미궁에는 괴물이’. 시리우스 문학상에 떨어졌던 그 작품이었다.
그 덕분에 처음으로 고료를 받았다. 생각보다 많았는데, 아마 생각보다 적었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인터넷 소규모 대회 등에서 받는 책과 문화상품권이 아닌 정식으로 받는 고료라는 건 중요했다.
네이버는 오늘의 문학에 올라간 작가의 이름을 네이버 인물 검색 DB에 올려주었다. 이름을 검색하면 검색 페이지 상단에 이름이 뜨고, 직업란에 ‘소설가’로 뜨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필명을 사용한 것 때문인지, 네이버에 검색해도 인물 정보에 없다.
단비스튜디오, 「위래의 더블 임팩트(http://bit.ly/eEhEB5)」, 두 작품 「미궁에는 괴물이」와 「멋진 생태계」가 실렸다. 가격은 0.99달러.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동인지(2008) → 동인전자책(2009) → 포탈사이트 지면(2010) → 앱북(2011). 계속 조금씩 나아갔으나, 이 시점에서 나는 아직도 내가 소설가라 할 수 있는지 망설이고 있다. 물론 직업이 뭐냐고 물었을 때 오락가락하는 사람은 없다. 당장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아직 소설가가 아니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나는 주저하고 망설이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더 길어질 거라 생각하며, 역설적으로 얼마 안 가 사라질 거라 믿는다.
나는 이와 같은 모습이 새로운 모습의 등단(그러니까 소설가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의)이라 믿고 있고, 앞으로는 이전의 것들과는 달리 이처럼 길고 오랜시간 두근거릴 수도 있을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