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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과 하수구

칫솔을 보고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시간, 그렇게 오래는 아니고, 1년 정도, 나는 내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에세이나 일기나 아무튼 그런 종류의 글 말이다. 소설이 아닌 글. 글을 통해 내 생각을 펼쳐 놓는 것에 회의를 느꼈던 ‘것’ 같다. 아마도, 회의감을 가진 이유라면 여러가지가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의 말, 조언이나 격려 아니면 비난 같은 것: “너 그런 글 쓰지마” 이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들은 적 없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그 문제의 시작점은 이런 글쓰기 때문 아닌가?’ 나 혼자 생각하다 내린 결론도 있고, “다른 글쓰기를 할 시간에 소설을 좀더 쓰는 것이 좋지 않겠니” 누가 이런 말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나 혼자 바짝 약이 올라 ‘이런 쓰잘데기 없는 글을 쓸 시간에 내가 써야 할 글을 쓰자’ 이런 생각을 가졌기도 했고, 그냥,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은 ‘별안간’ 아무 이유도 없이 ‘불현듯’ 그냥… 한다. 알지 않은가? 그냥 지금 길을 나섰다고 치자 그럼 자갈밭도 잔디도 진흙도 아스팔트도 아닌 그냥 아무것도 아닌 아무색도 없는 회색 시멘트를 밟기도 하는 것처럼, 여러가지 이유에서,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 일기도. 거의. 전혀는 아니고 거의. 썼다면 내가 공들여 기억할만큼은 아닌 정도로, 거의.

아무튼 나는 칫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칫솔. 이 글자가 생경하다면, 설명해주겠다. 이건 일반적인 문명을 이룬 사회에서 구강내 이물질이나 세균을 치아에서 쓸어내기 위한 소도구다. 보통은 그 위에 치약이라는 화학물질을 얹어 이와 잇몸, 혀와 입안을 구석구석 거품내어 쓸고 닦아낸 뒤 몇 차례 물로 입을 헹구어 뱉어내는 일련의 동작 양치질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다. 혹시 왜 이런 무가치한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생각했나? 별 이유는 없고 단지 내가 칫솔을 봤을 때, 그리고 칫솔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칫솔’이라는 글자를 떠올릴 때 다소 생경하게 느겨졌기 때문이다. 이유? 이유는 잘 모르겠다. 칫솔이라는 단어는 잘 사용하는 일이 없으니까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칫솔을 가지고 이야기를 잘 안하니까. 많은 소설가들이 양치질은 매일 하지만 칫솔과 치약에 대한 글을 쓰지는 않는다. 보통은 글감으로 삼기엔 너무 일상적이라서 글로 다룰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나 같이 칫솔이라는 글자를 보고 생경하게 느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설명해봤다. (불필요한 친절인가?)

어쨌든 나는 칫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칫솔을 보고, 칫솔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기 직전의 내 생각은 ‘저놈은 오늘도 내 입안으로 들어가는군’이었다. 그 말을 내뱉는 내 감정에 대해서 말하자면 연민이었다. 아마 칫솔이 살아있는 생물이었다면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연민에 공감할 것이다. 도대체 어떤 생물이어야 칫솔같은 모양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르지. 인간의 성기에선 청결을 위한 점액이 나온다고 하는데, 아마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칫솔의 솔 부위는 성기 비슷한 것일지도. 사람들은 매일 이종족과의 펠라치오로 아침을 시작하는거지. …이건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칫솔과, 칫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맞나? 나도 잘 모르겠다. 글이 완성되기 전까지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확신이 잘 안 선다. 그래도 그 비슷한 이야기가 될 거 같다. 칫솔이 오늘도 하수구 같은 내 입구멍으로 들어가야하는 것처럼 ‘진짜’ 하수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이야기 하려고 한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논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내가 며칠전 뉴스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정화조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정화조 내부의 유기물들이 뿜어낸 가스로 인해 질식했다는 뉴스였다. 그 중 한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네 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직업과 귀천, 노동자와 노동 내가 이런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져 언젠가 다음에 또 더 발전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그 이야기는 지금 이 지면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정화조에서 죽은 인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칫솔 이야기를 할테니까. 단지 칫솔을 보고서 그 뉴스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나는 정화조에 대해서 모르니까 그 이야기를 쓸 수는 없다.

정화조는 모르니까 정화조 비슷한 것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정화조 비슷한 것. 내 입 이야기다. 가끔은, 그런 거 같다. 정말로 목구멍 뒤에서 올라오는 정화조 냄새가… 그래, 사실 거기까지는 아니다. 그치만 음식 같지도 않은걸 먹어서 트림을 하면… 알지 않나? 음식물이 소화되면서 올라오는, 내놓으면 더럽다고 기겁을 하면서 속에는 잘만 넣어두고 다니는 인간의 기묘한 청결 기준, 한두 시간 전쯤에 뭘 먹었느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곤 하는 구토물 냄새. 내 입냄새가 유별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역류성 식도염이 있다거나 위장에 병이 있어서… 가 아니다. 맥주를 과하게 마시면 올라오는 트림은 누구나 하지 않나? 방귀를 끼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래 방귀. 나는 가끔씩 놀란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잘 숨기고 사는지. 그렇지 않은가? 드라마나 영화, 온갖 예술 작품에서는 좀처럼 그런 묘사를 하지 않는다. 아마 대기권 밖에서 외계인들이 직접 인간 앞에 나타난다면 인간의 그 작은 생리현상들에 대해 재미있게 생각할지도. 가끔 배설과 배설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들은 있지만, 그런건 잘 없다. 구토물 냄새가 나는 트림과 갈라진 엉덩짝에서 비져나오는 역한 가스말이다. 그보다 작고 보잘것 없는, 더럽긴한데 다들 그러고 사니까 구태여 이걸 언급해야 되나 싶은 것들, 일주일 정도 안 깎은 손톱, 몰래 뀌는 방귀, 혼자서 하는 트림, 정리되지 않은 털, 한나절 갈아입지 않은 팬티, 그와 같은 시간동안 양치하지 않은 입 안(점심시간에 양치한다고? 그래 알겠어)… 그러니까 정화조까진 아닌데, 정화조에 빗대긴 좀 그렇지만… 좀 그런가? 아무튼 사람들은 정화조만큼은 아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볼수록 더러운 구석이 있다. 누구나 그 정도는 더러우니까 용인되는, 남한테 보여주자면 부끄럽지만 다들 알아서 체면을 잘 챙기니까 말하지 않고 가리고만 있어도 괜찮은 구석. 가끔은 용인 해주기도 하는.

더러운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 좀 덜 더러운 이야기를 해볼까 싶기도 하다. 입안과 하수구가 빗대어질 수 있다면 또 무엇과 빗대어질 수 있을까? 질문은 아니다. 나는 그냥 내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까 싶다. 몸의 더러운 부분처럼 마음에도 더러운 부분이 있다고 하면, 아주 못받아들일 비유는 아니지 않은가? 마음의 하수구. 감이 잘 안잡힌다면 구체적으로 나열해볼 수 있겠다. 뒷담, 들통날 일 없는 거짓말, 욕설,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 영원히 무시하겠다고 다짐하는 것, 이정도는 누구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컨닝, 떨어진 물건을 줍는 것, 줍고 자신이 가지는 것,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 충치가 생겨나는 원인이 세균이라면 마음이 더러워지는 원인은 만족스럽지 않은 관계 아닐까? 아닌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글은 계속 쓰여져야하니까, 저런 것들을 ‘마음의 세균’이라고 해보자. 왜? 너무 동화적이고 아기자기한 조어인가? 하지만 균이 번식하며 치아를 갉아먹는 것처럼 작은 말과 행동들이 마음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이 달리 새삼스럽게 다가오지는 않지 않은가? 사람들은 동화적이라는 단어를 비사실적이라는 단어로 읽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오래된 이야기들과 옛 격언, 속담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이다.

아무튼… 우리는 이제 양치질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양치질과 빗대어지는 마음의 양치질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글쓰기에 대해서. 정확히는 에세이나, 일기, 그 비슷한 글 장르에 대해서. 보이지 않던 균과 이물질들을 긁어내서 밝은 세면대 아래로 뱉어내는 일과 내 마음의 더러운 부분들을 누구나 볼 수 있게 써내려가는 일의 닮음에 대해서. 그렇지 않은가. 양치질이라는 건 하면 상쾌하고 기분도 좋지만,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와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데 도저히 씻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나른함도 비슷한 무게를 가지고 있지 않나. 양치의 개운함에 비해 눈꺼풀이 더 무거워지면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깜빡 졸았다가 일어나 세수도 안했어 양치도 안했어 화장실로 어기적 걸어가 씻고 양치를 하고 옷 갈아입고 불을 끄고 개운하게 침대에 누울 때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잘 모르겠다.

글을 쓰면 세면대 앞에 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집안 어디도 세면대 앞보다 밝지는 않은 것 같다. 큰 거울이 달렸고 내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다. 양치를 하기 위해 칫솔로 손을 뻗고 치약을 짜서 묻힌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 양치를 시작한다. 양치를 하는 동안은 달리 눈을 둘 곳이 없다. 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칫솔과 치약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내 입 안의 모양도. 치아의 배열도. 그리고 내가 이를 닦는 방향과 힘에 대해서도. 양치를 하는 동안 나는 거울을 바라보며 서 있지만 거기에는 껍데기만 둘 있을 뿐이다. 진짜 나는 입 안에서 더 제대로 된 양치를 하기 위해 입안을 맴돌고 있다. 나는 입 안을 청소하는 사람이된다.

언젠가, 정말 이상한 일이 한 번 있었다. 칫솔을 입에 물자 역한 하수구 냄새가 올라왔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보다 생리적인 반응이 더 빨랐다. 헛구역질을 몇 번이나 하고 치약을 짜내 입에 물었지만 찝찝한 기운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칫솔을 버리고 가족에게 혹시나 실수로 칫솔을 건들였다 바닥에 떨어트린적이 있는지 물었지만 모두 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냐는듯 그런적 없다고 했다. 아니, 세면대나 그 아래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하수구 냄새가 날리는 없다. 칫솔은, 지금 내가 기억하기에도 하수구 청소를 한것처럼 역했다. 상황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나는 새 칫솔을 꺼내들어야했다. 다시 양치질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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