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판타지의 위치
게임과 소설의 공통점에 대해서 생각한다. 시뮬레이션과 사변은 거의 같다. 논리와 개연성은 거의 같다. 따라서 사변소설을 읽게 만드는 것은 일종의 해킹이다. 독자는 독서를 끝낼 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세계가 이제는 가능하며 어딘가에 실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소설 읽기와 소설 쓰기가 애씀과 분투인 것은 사실은 이 읽기와 쓰기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애씀과 분투이기 때문이다. 이때 읽기와 쓰기는 현실을 견뎌내기 위한 일종의 백신으로 작용한다. 현실 그 자체가 존재에 대한 병증인 까닭에. 이때 장르 게임 판타지가 위치하는 지점은 흥미롭다. 게임 판타지는 현실을 반영하지도 않고 게임을 반영하지도 않는다. 게임 판타지는 현실과 게임 사이의 느슨하고 불명확한 위치에서 부유하고 있다. 사변적으로만 존재하는 이 세계는 그저 가상 내부의 가상, 메타적으로만 존재한다. 이를 단순히 욕망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언가 불충분해보인다. 물론,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장르 게임 판타지는 다른 장르 보다 순수하게 정제된 욕망의 결정이다(난 이 설명도 마음에 든다).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보다 명확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게임이 현실이라면? 또는 현실이 게임이라면? 실제로 게임과 현실의 간극은 계속해서 좁아지고 있다. 그럼 장르 게임 판타지는 그 접점을 명확히 가리키고 있는 거의 유일한 예술 장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