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 개연성 클리셰
고증, 개연성, 클리셰가 서로 다른 영역이라는 걸 인지해야 된다고 생각. 각자 서로 영향을 주기는 하는데 다른 분야다. 이를테면 19세기 영국을 무대로 했는데 쌀이 주식이라면 고증이 틀렸다. 하지만 그 영국이 회귀한 쌀에 미친 한국인이 지배하고 있다면 개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환상과 SF의 영역에 들어온 순간 고증은 이미 두 번째 문제가 되는 것. 회귀한 주인공이 상태창도 가지고 있고 히로인들이 엮이고 기연을 마구잡이로 퍼먹으면 개연적이진 않지만, 클리셰이므로 해당 장르 독자들이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클리셰는 개연성을 무시한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클리셰는 해당 작품 안에서만 보이지 않을뿐 수 많은 작품의 적층을 이루면서 내적 개연성을 독자와 이미 약속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떤 클리셰는 고증과 구분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밀리터리 SF에서 함선의 제원을 열 다섯 페이지 정도 할애하더라도 별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그 장르 독자들이 그걸 바라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라도 재밌을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흥미로운 우주선이라 열 다섯 페이지나 쓰는 건지. 클리셰와 장르소가 장르를 규정한다. 무협에서 문어체 대화가 나오고, 한자를 병기 하는 것은 고증이 아니다. 이걸 무시하면 고증이 틀린 게 아니라 장르를 무시한 것이다. 잘 생각해보라. 어떤 장르소들은 그 자체로 과학적 사실을 무시한다. 발등을 차고 솟아오르거나 독을 맞고 피웅덩이가 되거나. 물론 무협은 세심한 장르다. 어떤 경우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소설이 완결 날 때 현실의 역사에 편입 되려는 시도가 있다(마치 옛날 옛적엔 이런 일이 있었다는 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이 쌓아온 장르적 성격은 상당히 자유로운데다 틀을 깨고 나가려는 경향도 있다(좌백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