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상극에 대하여
군상극은 문예사만 짚어서는 설명하기 어렵죠. 군상극은 무대 예술과 영향을 주고 받았던 과거 작품과 달리 영화나 TV 드라마, 또는 게임에 더 가까우니까. 서사문학은 최초에는 단일한 시간선을 보여주는 ‘내러티브’에만 치중되어 있었지만 플롯이 등장했고 그 플롯은 점점 더 복잡해졌습니다. 소설은 여러 문예사조나 근접한 다른 서사장르로부터 영향을 받죠. 복잡한 플롯을 가진 서사 작품은 단일한 시간선이 아니라 둘 이상의 시간선을 보여준다는 말이고, 이 말은 하나의 장소 또는 인물의 과거와 미래, 또는 같은 시간 선에서의 다른 장소와 인물, 또는 ‘서로 다른 인물들의 같은 시간대’ 등 다양한 시각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 렌즈를 통해서 창작되는 작품은 이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카메라는 어디에나 놓일 수 있고, 제한적인 시각만을 보여주어야만 했던 무대 예술과는 차별화 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소설 또한 이러한 방법론을 채용했고, 복잡한 구성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구성이 문예사적으로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그래도 제 말의 방향 자체가 틀렸을 것 같진 않긴한데), 이런 복잡한 구성은 소설에서 계속해서 발전해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군상극은 아주 복잡한 수준의 구성이 요구 되는 작품군으로 보입니다.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적어도 3명 이상의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인물들을 동일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드러내는 작품 구성이라고 할텐데, 사실 소설에서만 드물 뿐이지 많은 드라마(특히 아침 드라마라고 부르는 부류)는 이미 군상극이라고 부를만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카메라를 옮기는 건 쉬우니까. 소설에서는 드문데 왜냐하면, 이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한 줄 한 의 문장으로 읽어내려가야만 하고 이것은 독자에게 단일한 하나의 시간의 흐름으로 이해 됩니다. 따라서 시각이 둘 이상이면 일관성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초점이 등장하죠. 초점은 마치 카메라 렌즈처럼 인물과 인물, 장소와 장소를 옮겨갈 수 있도록 만듭니다. 군상극이라 부를만한 작품들은 서로 다른 인물과 장소,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일관성을 가진 초점을 유지하는 것으로 하나의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시각을 조망하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이건 멀티테스킹을 요구하는 게임적 시각에 가깝기도 하죠(물론 “얼음과 불의 노래"처럼 오래된 작품의 경우 게임에 영향을 받았는진 모르겠습니다. 조지 R. R. 마틴이 RTS를 즐겨봤을까요? 그럴 것 같은 인물이긴 합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미니어쳐 게임은 즐겨 봤을지도 모르고). 군상극이 가지는 의의라면 개인의 내면만이 아니라 군중이라고 부를만한 다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세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그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라 할 수 있겠죠. (생각해보니 이와 같은 서술이 더 오래 쓰였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거대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라면 역사서도 있겠죠. “얼음과 불의 노래"는 이차세계의 미시사를 다룬 역사책을 픽션으로 다듬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요.) (거대서사가 주목받지 못하고 미시사가 도래한 것도 이런 이야기에 영향을 주었을까요? 그런 기준이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럴 것 같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