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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배울 수 없을까?

글쓰기는 배울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배우지 않고도 잘 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암묵적 학습(알아서 잘한다는 뜻)에 능한 것은 아니고, 장르소설처럼 형식이 중요한 글쓰기에선 오히려 형식지가 암묵지보다 중요해지기도 한다.

송나라의 구양수가 삼다법이라해서 다독, 다작, 다상량을 이야기했지만 이건 아주 추상적인 작법 기술이다. 다독을 하더라도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할 줄 모르면 의미가 없고, 다작을 해도 더 나은 것을 지향하지 않으면 졸고만 쌓일 뿐이며, 다상량을 해도 소설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알아서 잘 할 수 있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거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글을 써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흔히 네가 쓰고 싶은 것을 쓰라거나 자신은 글쓰기를 배운적이 없다거나 하는 식의 인터뷰를 자주 볼 수 있지만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글쓰기를 배우지 않고 글을 쓰기 때문에 생기는 편향일 뿐이다. 등단만 따지면 문창과나 국문과 출신이 절반 이상이고, 고전소설 작가들은 이미 작가의 인터뷰는 대체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기도 했다. 작가 자신의 아우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타고나거나 독학한 것이어야 하니까.

글쓰기는 배울 수 있는 것일뿐만 아니라 배워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장르소설을 이야기했지만 여기에는 제도권 소설도 포함이 된다(제도권도 장르이므로). 나는 문예창작학과에서 어떻게하면 동시기에 올 유행을 예측하고 그에 들어맞는 글, 즉 등단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지 배웠다. 당시에는 흥미가 없었고 시기도 지났으니 이젠 요원한 일이 되었지만, ‘등단하는 법’이라는 걸 알기 위해서는 이미 등단한 소설들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고전과 현대소설을 따라가기도 벅찬 학부생 수준에서 누군가 그것을 따로 알려주지 않으면 등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저 좋은 글도 당연히 등단할 수 있지만, 잘 들어맞는 글과는 기준이 다르다. 실제로 그 교수님은 이전 학교에서도, 그리고 우리학교에서도 실적을 냈다. 하물며 보다 형식적인 소설들에 대해서라면 말할 것도 없다.

글은 그 자체로 스승이 될 수 있으므로, 많을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며 스스로 익힌 이라면 언젠가 목표로하는 좋은 글을 쓰는 게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이미 여러 실패를 겪어온 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면 당연히 더 빨리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이것이 글쓰기 교육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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