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rae.me

기획과 직감

기나긴 기획 끝에 나오는 작품을 망치고 난 뒤, 직감적으로 쓴 작품이 잘 되는 이유는, 작가는 기나긴 기획을 통해서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어떤 정론을 구축했고, 직감적인 작품이 그 정론을 딛고서 더 멀리 나아가는데 성공했기 때문 아닌가 싶다. 실패가 필연적이었던만큼 성공 또한 그런 것.

기획의 문제는 챗봇 AI가 이야기를 만드는 가지는 문제와 유사하다. 이미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한다는 거. 하지만 데이터베이스는 불충분하다. 사람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괜찮은 작품들은 이 범주 안에 존재한다. 정론은 이미 있는 규칙을 정리한 것.

좋은 작품은 오래된 것과 결합한 ‘새로운 것’이다. 기획은 오래된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범주로 정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을 통해 만들어지는 성공 법칙은 어느 정도의 성공을 보장할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직감적인 작품은 필연적으로 정론을 벗어난다.한 사람의 직감은 그 사람이 가진 데이터베이스 보다 크고 자유롭다. 데이터베이스가 잘 정리되어 있다면 직감은 그 정론을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더 좋은 길로 향하게 되어 있다.

다른 면모로 기획과 직감이라는 문제를 짚어볼 수도 있다. 기획을 잘 하지 못하는 작가라면 애초에 이론을 성립하는 데 실패하므로, 직감적으로 글을 쓰는, 자신이 본래 잘하는 방식에서 성공하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


← 소설의 분량  1세대 판타지 소설이 없는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