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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유예

설정은 그냥 짜맞추면 그만이라서 다소 황당한 설정이라도 그 설정이 존재하는 기반이 언급이 안 되었어도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보통 하드SF라고 불리는 장르에서도 하나하나 캐묻는 부분은 작가가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전부고 과학적 정합성도 그 부분에서만 작동한다. 하드SF에서도 초광속 항행이며 워프며 앤시블도 나올 수 있지만 그럴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따져들지 않으면 독자들은 적당하게 넘어가게 된다. 보통 이런걸 ‘불신을 유예 시킨다’고 하는데, 문제가 되는건 작품이 이런 불신을 자꾸 상기 시킬 때이다. 역설적이게도 소설 속 설정을 계속해서 구체적으로 만들게 될 때 이런 불신이 표면으로 떠오르게 된다. 언급을 계속하는 거니까. 때문에 이런 불신에 대한 부차적 설정을 계속 이야기 하게 되고, 소설이 설정 놀음으로 빠지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소설이 해야 할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장르소설에서 많은 장르소와 클리셰들은 이런 불신을 유예시키는 작가와 독자 사이의 약속이기도 하다. 엘프는 많은 소설에서 귀가 길쭉하고 아름답고 자연을 사랑하며 오래 사는 경향이 있지만, 인간보다 절대적 우위에 있는 종족으로 등장하진 않는다. 이유는 그때그때마다 다른데 고집이 세다거나 개체수가 적거나 인간이 가진 물질적 가치를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다거나 하기 때문. 마법사가 사람을 몰살할 수 있어도 학문적 가치를 중시해서 권력에 관심이 없거나 드래곤이 경제를 박살낼 자본을 가지고 있어도 자기가 물질적으로 소유하는 걸 더 즐기기 때문에 같은 핑계는 쉽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이야긴데, 이러한 클리셰적 가치를 잘 조립해서 새로운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독자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론이다. 다만 두 작법의 방향이 다른 부분이 있고 경우에 따라 상호보완을 해줄 수 있지만, 작품의 지향점에 따라 항상 문제가 되진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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