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메타픽션인 경우 액자 밖 이야기만이 아니라 액자 속 이야기도 정교하게 짜야한다. 한쪽이 허술하면 메타픽션일 이유가 없다. 게다가 액자 밖과 액자 속이 서로 상호작용해 세 번째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이 세 번째 이야기가 없으면 역시나 메타픽션일 이유가 없다.
회귀, 빙의, 환생과 같은 플롯 장치는 웹소설 창작에서 기능적인 이유로 선택되었다. 주인공은 많은 정보를 이미 알고 있기에 1)독자는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장기 연재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불안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저감하고, 2)작가는 주인공의 특징을 일종의 플롯 자판기로 사용해 소설 전개에 있어 위기 봉착에 따른 해결 방안을 ‘주인공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로 대처가 가능하도록 만든다. 3)또한 독자는 낯선 세계를 주인공의 눈을 빌려 낯설지 않게 받아들일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회빙환이 기능적인 이유로 작가들에게 선택 되었음에도 이러한 플롯 장치가 근본적으로 메타픽션이란 성질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의 축(액자 밖)은 분명 웹소설로서 주인공 일신의 성취를 이야기하지만, 또 다른 축(액자 속)에서는 주인공이 왜 이 세계에 떨어졌는가를 다룰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웹소설은 이러한 이야기에 결말을 내기 위해 필연적인 세 번째 이야기로 나아간다. 전례 없는 수 많은 작가들의 무수한 분량 끝에 지어지는 나름의 답들은 결과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웹소설이란 이런 것’이란 주장이다. 당신은 그저 시간을 죽인 것이 아니다. 당신은 현실로부터 도망친 것이 아니다. 무언가 더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이 기나긴 이야기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을 것인지는 작가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