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의 윤리
소설의 윤리에서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도 좋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가 소설이 가져야하는 중립성을 초과할 수는 없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엄밀히 말해 소설가가 윤리적일 필요는 없다. 윤리적이지 않은 소설가는 그냥 윤리적이지 않은 개인이라는 의미 이상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건 윤리적이지 않은 소설인데, 윤리적이지 않은 소설은 소설가의 윤리와 그렇게 엄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리적인 사람도 윤리적이지 않은 소설을 쓸 수 있고, 윤리적이지 못한 사람도 윤리적인 소설을 쓸 수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소설을 집필할 때 개연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중립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문예 비평은 이러한 작가들의 작의와 실제 작품에서 나타난 양상에 대해 다루게 되는데, 이것은 개별 작품을 보지 않고 아우르는 규칙들을 내세우기는 힘들다. 이를테면 ‘소설에서 사람을 고문하는 장면을 보여서는 안된다’ 따위의 규칙 말이다. 누군가는 그래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런 규칙은 없다. 그런 규칙은 없음에도 나는 소설에서 그런 장면을 잘 넣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런 장면을 넣는 것이 비윤리적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지금까지 소설을 구성할 때 그런 장면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필요하고 적절하다면 나는 작중 인물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그 세부를 묘사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위의 규칙들 따위의)에 동의하는가 마는가가 윤리적 우위를 가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또한 이러한 고민에 정도 이상으로 몰입하는 것이 작품 창작에 도움이 될 거라고 보지도 않고, 설사 윤리적으로 더 나은 작품이 있더라도 작품이 가진 윤리성이 뛰어나다고해서 다른 작품에 비해 더 좋은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의 근간에는 소설에서 정도 이상(결국 이 기준이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으로 윤리성을 지향하는 것이 윤리적이고자 하는 개인의 윤리 실천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소설에서 무언가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다짐만으론 작가와 작품 어느 쪽의 윤리성을 담보할 수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