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라
하던 이야기 좀더 하자면, 나는 자기 글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기 꺼리는 것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 ‘초고 감상’이 필요하면 거의 애걸복걸을 하면서 읽어달라고 하는 편인데, 내 소설에 대한 감상 데이터가 쌓이지 않으면 내 소설이 가지는 가치에 대한 내 분석 또한 어그러진다. 내 소설이 내게 재미있느냐 없느냐 같은 건 더 좋은 글을 쓰는데 있어서 하등 쓸모도 없다. 쓰는데 즐겁기는 하겠지. 하지만 쓰는 게 즐겁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내가 가지는 내 소설에 대한 감상도 주관적이니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의 감상은 객관적인가? 아니. 역시나 주관적이지만 주관적인 시선이 여럿 겹치면 내 감상 보다야 객관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고쳐야할 지표와 감상자의 감상이 어느 정도 일치하면 이제 그 글의 완성된 본이 더 또렷해지는 것이다. 결코 그 본에 도달하지는 못할지언정, 그 본을 또렷하게 떠올려가는 과정은 필요하고, 그것이 감상자에게 감상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여기서 말하는 감상자(정확히는 소설 초고 감상자/작법서에서 흔히 말하는 ‘첫 번째 독자’를 말한다)는 독자와는 다른 사람이다. 감상자는 작가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글을 보는 사람이고, 독자는 작가가 완성된 글을 내놓았다고 판단하고 글을 읽는 사람이다.
이하는 내가 생각하는 소설 감상 얻는 방법: 글을 보낼 때 읽어주면 고맙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정도의 미덕은 보여야한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줘라. 열 명 정도한테는 보여줘야지 감상을 둘 셋은 건질 수 있다. 봐줄만한 사람한테 다 보내라. 봐줄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 글은 혼자 쓰지만 글쓰기의 장 안에는 다 함께 써야한다. 없으면 만들어라. 그리고 읽을 거라면 지금 당장 읽으라고 말하라. 어차피 나중에 가봤자 안 읽는다. 그리고 글을 전혀 안 읽는 사람에게 보내지 마라. 어지간한 애정이 있어도 안 읽는다. 감상자는 되도록 같이 글을 쓰거나, 아니면 평소 독서량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많은 감상자를 확보하는 것은 좋지만 여러 바구니에 담겨 있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같은 장에 몸을 담고 있으면 감상 또한 유사할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유일한 객관적 감상자 코스프레"를 주의하라. 이것이 무엇이냐면, 이 사람은 자신이 이 글을 읽는 유일한 객관적 감상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말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객관적 감상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객관적인 체 하는 주관적 감상자는 글쓴이에게 해롭다. (나? 나도 기억해보자면 그런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종류의 글을 쓸 때 마다 항상 반성한다.) 유일한 객관적 감상자 코스프레는 자신만이 이 글을 도와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작가에게 단순한 감상을 넘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쓰라 글쓴이를 조종하려고 들기도 한다. 그 말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땅한 근거 없이 주장한다면 의심해야한다. 사실 많은 글쓰기 선생들, 또는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이 이렇게 행동한다. 하지만 내가 겪은 좋은 선생들은 절대로 A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엔…’ 하고 운을 떼면서 자신의 주관성을 끊임없이 재확인 시키고 주저하며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계속 하며, 자신의 감상은 참고만 하라고 일러둔다. 만약 글쓰기의 정답을 안다며 이것은 틀렸고 저것은 이렇게 해야하며 이러하게 고쳐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글쓰기 선생이 아닐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