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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어디까지 구상 했을 때 집필을 시작해야할까?

소설에 대한 구상이 클수록 소설을 쓰기 쉬울 것 같지만, 이와 달리 소설에 대한 구상이 완벽할수록 소설은 쓰기 어렵다. 이런 역설은 소설이 단순히 머릿속에 구상된 것을 손으로 옮겨적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쓰기는 소설에 대한 구상을 떠올리기 전에 시작될 수 있고, 어쩔 때는 소설에 대한 구상을 끝내기 전에 소설쓰기가 먼저 종료되기도 한다(애써 소설의 결말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지만 자신이 이미 완벽한 결말을 써냈음을 깨달았던 경험을 돌아보라). 소설쓰기는 그 자체로 일종의 내적 동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뮤즈나 영감 같은 신비 작용처럼 설명될 때가 있지만 의식과 손 사이로 미끄러지는 선명한 감각이자 물리적인 힘이다. 동력은 소설에 대한 구상이 커질수록 힘을 잃어버리며, 반대로 소설에 대해 아무것도 구상하지 않았을 때 가장 큰 활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소설을 쓰기 힘들수록 동력이 활개칠 여지를 많이 두기 위해 구상을 줄여야하고, 동력이 없어도 쉽게 쓸 수 있는 글이라면 구상을 많이 해야 한다(소설의 완성도는 이를 이야기할 때 중요하지 않다). 그럼 오랜 시간 구상해온 소설들은 동력을 잃어버려서 쓰기 힘든 것일까? 내 생각엔 그렇다. 나는 그런 소설들, 대충 n년 단위로 집필에 옮기진 못했으나 이리저리 구상이 뻗어져가 언제든지 백지에 옮겨질 수 있는 소설을 화석이라고 부른다. 나도 글이 되지 못한 화석을 여댓 편 정도 가지고 있다. 화석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것은 전혀 좋은 일이 아니다. 화석은 뇌 리소스를 차지하고 다른 소설에 대한 구상을 할 때 별안간 튀어나와 방해한다. 소설을 쓸 때 생각을 너무 않는 것도 좋지 않지만, 소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도 안된다. 준비가 되었다면 쓰기 시작해야한다. (머리통에 소설을 넣어만 두는 건 소설쓰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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