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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합평하는 법

“나는 학교를 다니던 시절 합평을 좋아했다. 합평이 무어냐 하면, 한 사람의 글을 모두 읽어와 그 글에 대한 감상을 서로 나누어 그 사람이 더 좋은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나는 후에 있어 다른 학교 문창과 합평은 악몽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더러 있으며, 합평 자체가 일종의 나쁜 문화로 취급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고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합평을 다같이 둘러 앉아 돌려까는 시간으로 기억을 한단 말인가? 내 생각에 합평에 대한 나쁜 기억을 구축하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였다. 우선 전자의 사람들은, 자신과 글을 분리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글의 나쁜 점을 지적받는데도 마치 자신이 공격받는 것처럼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럴 수 있나? 모르겠다.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글을 쓰는데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믿음이다. 그리고 후자의 사람들이 있다(본론은 이쪽이다). 소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드러내는 것이 글쓰기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말이다. 합평 시간은 거의 언제나 틀린그림찾기처럼 그 글이 될 수 있었던 좋은 글의 모양새에서 모자란 부분들을 찾아내는 시간이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그리고 틀린그림찾기도 게임이다. 나는 소설의 장점을 찾는 것 보다 단점을 찾아주는 것이 그 사람의 글쓰기에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완벽한 글은 없고, 완벽한 글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더 좋은 글과 그렇지 못한 글을 가르는 기준은 단점에 있다. 내 생각에 글에 대해 칭찬하는 것은 창작 방법을 바꾸지 않는다. 만족된 상태는 글의 변화를 막는다. 글에 대한 불만족만이 그 글을 더 좋은 글로 이끈다. 물론, 그 누군가가 이미 완벽한 글쓰기를 이루고 있다면 그가 굳이 창작 방법을 바꿀 필요는 없겠지만, 완벽한 글이 없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겠다. 좋은 글은 독자의 감각을 둔감하게 만들고 글의 나쁜점을 묻어두게 만든다. 좋은 글에선 좋은 점만이 부각되고 도드라져 보인다. 하지만 결점을 무시한다고해서 결점을 없는 것처럼 치부할 수는 없다. 그 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글을 비난한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그 글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역량을 높게 평가하는 일이다. 오히려 글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듣기에 기분은 좋을 수 있으나(이것도 작가 자신과 글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런 말을 하는 이가 어떤 종류의 성장을 기대하는지는 불분명하고 흐릿해진다. 소설의 부분에 대해 칭찬한다면 그런 부분들을 중심으로 글을 쓰라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부분들은 이미 고칠 것이 없으니 다른 부분에 집중을 하라는 것인가? 그 글이 이미 훌륭하다면 어떤 발전 가능성을 논해야 하는가? 아니면 칭찬을 통해서 그 글은 더이상 나아질 부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당연히 이런 일은 악의로부터 비롯되지는 않겠지만 글쓰기에 있어 큰 도움이 되는지는 자주 의문이었다.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칭찬 그 자체가 일종의 글쓰기 동력의 일환이 될 수는 있다. 그런 조력자가 옆에 있다면 그 자체로 큰 도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작가들이 그런 조력자를 맞이하지는 못한다. 그런 일은 작가 개인의 능력 밖의 일이다. 나를 알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에게만 글을 보여주고 그것으로 끝난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일반의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칭찬만을 동력으로 글을 쓴다면 언제든 탈이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내 생각에, 글쓰기의 동력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하고, 글쓰기에 있어선 글의 문제에 대해 들을 수 있는 마음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합평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문창과 학회실에서 했던 합평 밖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그저 더 큰 규모의 합평이 있을 뿐이다.”

아니, 여기서 이야기를 끝낼 생각은 없다. 나는 사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작가에게 ‘장점’ 또는 ‘단점’ 둘 중 무엇에 대해 더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지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짜 제대로 된 합평은 장점과 단점의 구분 조차도 희미하다. 작가가 쓰고자 했던 소설과, 소설이 스스로 되고자 했던 이야기, 문단의 흐름 또는 장르독자의 수요, 대중과 유행에 이 글이 얼마나 발을 걸치고 있고 그렇지 않은지, 이 소재가 가지는 한계가 무엇이고 이 글은 얼마나 도달했는지, 또는 그 한계를 뚫고 지나갔는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얼마나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는지, 그리고 그 사실이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그 문장이 얼마나 내 마음에 와닿았는지, 또는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당신과 나 사이의 소설쓰기가 이렇게나 멀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우리는 끝내 우리가 쓰고 싶어하는 글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계속 쓸 것이며, 다음주에 또 보자고,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작가의 글쓰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장점 또는 단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보다도 많았다. 나는 요즘도 자주 합평에 대한 욕구를 느끼고, 오로지 틀린그림찾기에 매진했던 시간들에 대해 후회하고, 진짜 빛나던 순간들이 내가 게임에 몰두하지 않았던 때라는 것에 대해 놀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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