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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문장(또는 첫 장면)

첫 문장하니 문창과에서 배웠던 첫 문장에 대해 생각이 난다. 당시 선생님이 했던 말은 ‘첫 문장에 집착하지 마라’로 많은 대중소설/장르소설 작법서와 역행하는 말. 여러 예시를 보여주면서 많은 명작들이 그리 첫 문장이 대단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도 그에 동의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듭 고민을 해보다보니 마냥 선생님 말이 맞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일단 선생님의 기준은 제도권 소설이거나 이미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었다. 선생님은 사람이 책을 샀으면/문예지를 집어들었으면/페이지를 넘겼으면 책을 읽기 시작한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제도권에서야 어떤 소설이라도 계속 읽어나갈 의지가 충만한 독자들이 가득하다. 도입부가 좀 지루하다고해서, 당장 의미없는 사색을 좀 넣는다고 해서 그만 읽지 않는다. 누군가의 추천과 작가의 이름을 믿기도 한다. 제도권을 벗어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제도권에선 소설을 읽다 말고서는 ‘이 소설은 재미가 없어서 읽다 말았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문창과 합평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히 무례한 사람으로 취급 될 것이다. 하지만 난 무례한 독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읽다가 재미없으면 관둔다. 그럴 수도 있지. 장르소설 시장에는 그런 독자가 가득 있다. 기대감으로 읽는 것 보다 재미없으면 언제든지 읽기를 그만둘 사람들이다. 독서는 돈은 차치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읽는 시간을 만족시켜 줄 거라는 기대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것인데, 기회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장르소설은 소설의 도입부에서 ‘이 소설은 이런 소설이니까, 탈 사람은 얼른 타고 내릴 사람은 얼른 내리세요’ 하고 알려준다. 덕분에 클리셰 도입부가 흔하다. 낡은 클리셰 도입부들은 클리셰가 문제가 아니라 그 클리셰가 암시하는 소설 자체가 낡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잘못된 장르소설 도입부는 클리셰에 기댈 때 보다는 클리셰를 완전히 무시해서 소설의 전체 모양을 독자에게 제대로 알려주는 지표 역할을 하지 못 할 때 생긴다. 클리셰를 깨는 장르소설 도입부는 참신해서 재미있지만, 그 소설이 도대체 어떤 모양일 것인지 전혀 알려주지 못 한다. 시시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좋은 장르소설 도입부는 클리셰의 연장선상에 있거나 클리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변형된 모습들인 경우가 많다. 그것이 ‘익숙하면서 새로운 것’이라는 모순된 독자의 바람을 부응하는 도입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말처럼 모든 소설에서 도입부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장르소설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조건(장르 알려주기, 장르 속이지 않기)만 맞춘다면 도입부에 목숨을 걸 것도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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