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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의 아름다움

단편집, 단편소설집, 소설집 등으로 불리는 책이 있다. 이제 이런 책은 소설 독자들에게 당황스러움을 줄 때가 있다. 흔한 상황은 이런 것으로, “장편소설인줄 알았는데 소설집이었네요"라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살아남은 고전소설들이 대개 장편이기 때문에 이에 익숙한 독자는 ‘소설’이라고 하면 ‘장편소설’을 떠올린다는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제도권, 소위 문단이라고 문인 사회에서 90년도까지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것이 대중에 영합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독자는 일반적으로 ‘긴 이야기’를 선호한다. 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이점이 있다. 독자는 한 번 익히고 정을 준 캐릭터들의 뒷 이야기를 알 수 있는데다, 새로운 배경을 다시 배워야할 필요가 없다. 이런 이유에서 독서에는 관성이 있다. 한 번 읽기 시작한 이야기는 절로 계속 읽게 되는 것이다. 반면 단속적인 이야기, 즉 ‘짧은 이야기’는 독자가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아니야’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은 독자의 전반적인 경향성이며, 많은 문학 출판사에서는 작가를 어떻게든 장편을 집필할 수 있도록 계약하고자 한다. 어찌되었든 출판사의 수익은 장편소설에서 난다.

그럼에도 단편소설은 집필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앞서 이야기했다. 단편소설은 끝내기를 통해 만들어내는 독자적인 미적 형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편소설 문예지라고 불리는 문학 잡지나 여러 작가들이 특정한 주제를 모아서 집필하는 앤솔로지로 출간된다. 근래에는 단편소설 한 편을 한 권으로 출간하는 시리즈 기획이 생기긴 했지만, 대부분의 단편소설은 문예지와 앤솔로지로 출간된다. 문제는 이런 지면은 독자들에게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익히 알려진 작가들의 단편소설도 출간할 때마다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이름을 다 기억하기 힘든 서로 다른 문예지에 소설을 싣는데다 앤솔로지는 출판사마다 SNS며 플랫폼이며 홍보 창구가 달라서 출간 이후까지 출간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에 대해서는 작가도 잘 알고 있다. 이런 경향은 독자가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세계를 온전하게 이해하는데 있어서 차질을 준다. 이해하겠지만, 달리 비평가가 되거나 총체적인 작가론을 쓰려고 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작가를 완독하고자 하는 욕구는 일반적인 독자라면 가지는 욕망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욕망은 작가에게도 있다. 단편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자신이 집필한 소설들이 정리된 형태로 있길 바란다. 그렇게 해야지만 작가 자신이 바로 누구인지, 어떠한 소설을 써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작가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독자에게도 받아들여주길 바라기 때문에 독자와 작가의 암묵적인 합의 하에 소설집이 출간되는 것이다.

소설집은 주로 작가의 소설 공개 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모아서 책에 싣는데, 소설집 안에서의 목록은 또 다르다. 공개 시기에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각 작품이 그 작가의 작품들 안에서 특정한 테마나 장르, 연작소설로 묶일 수 있을 때는 따로 묶을 수 있는 단위로 책이 묶인다. 10년도까지만 하더라도 한 권의 작품집 안에는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리는 것이 관례적이었고, 따라서 최소 70매 소설이 약 1만 4천자이므로 14만자 이상으로 소설책이 묶였다. 그런데 시장의 도서에 대한 출판 경향이 작은 책으로 가게 되면서 8편, 6편 단위의 소설집이 나오다가 이제는 3편 단위 소설집도 흔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출판 경향과 반대로 단편소설 집필의 분량은 늘어나게 되어서 통상 200매 내외, 글자수로는 4만자 단위의 중편에 가까운 단편소설이 많아졌다. 이런 지점은 제도권 소설과 장르소설의 차이기도 하다. 아직 제도권 소설은 문예지 중심이라 70매 기준에서 근소하게 많아졌을 뿐인반면 장르소설은 앤솔로지 중심이라 한 권을 묶는데 필요 매수가 늘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집 안에서의 작품 순서는 집필 순서 또는 공개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앤솔로지가 작가명을 가나다 또는 알파벳 순으로 나열하고 그대로 작품을 싣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자가 책을 읽어나갈 때 처음에 실려야할 작품이 있고 중간에 실려야할 작품이 있고, 마지막에 실려야할 작품이 또 있기 때문이다. 기준은 작가와 출판사마다 다르지만 처음에 실리는 작품은 가장 읽기 쉽고 이해하기 좋으면서, 동시에 이 소설집 전반에 대한 어떤 테마와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좋다. 그 다음 작품은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 위치하는 것이 좋은데, 첫 작품에 실망한 독자라도 두 번째 기회 정도는 주기 때문이다. 가운데에서 후반까지의 작품은 되도록 어렵고 복잡하고 길고, 대중적으로 재미없는 작품을 배치해야된다. 이쯤되면 독자는 매몰비용 때문에 한 권을 다 읽어야겠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작품은 이 소설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놓아야 한다. 이 소설집에 앞서 나온 작품들의 주제가 던졌던 질문이나 문제들에 대해서 해답이 되거나 더 진전시킬 수 있는 작품이 배치되어야 한다. 마지막 작품은 무엇보다 여운이 남는 작품이어야 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끔 만드는 작품이어야 하는데, 당연히 이런 작품이 소설집 안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일 수도 있다. 이런 기준 외에도 부분적으로 연작 소설이라면 독자가 헷갈리지 않도록 작품을 붙여두어야 하고, 소설집이 일관된 느낌이 들지 않고 지루하지 않도록 테마와 장르가 다른 작품들은 서로 떨어트려 두는 것이 좋다. 소설집의 작품 순서는 퍼즐과 비슷한 셈이다.

온전한 하나의 소설집은 한 작가의 한 시기의 작품 경향을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방편이다. 가장 유명한 소설집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일 것이다. 하나하나가 고전의 반열에 이른 명작들로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크게 만족스런 느낌을 준다. 장르 소설집이라면 단연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숨>이 있다. 테드 창의 두 소설집은 고전 SF작가들의 위명 앞에서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 신세기의 고전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집은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로, 꼭 ‘프로스트와 베타’가 수록된 구판을 구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고 래너건의 <블랙 주스>도 압도적인 소설집이다. 특히 첫 작품은 내가 읽은 단편소설 중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다. 듀나의 <태평양횡단특급>은 내게 있어 한국SF의 기준이었고 김보영의 <멀리가는 이야기>는 내가 계속 SF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

한 편의 소설이 점에 불과하여 한 권의 소설집은 벡터로 점만으로는 읽어낼 수 없었던 힘과 방향을 담고 있다. 그럼 독자는 소설집을 통해 작가의 소설이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는지 알 수 있고, 그것은 한 편의 소설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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