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빨리 쓰는 법
‘뭐뭐하는 법’에 항상 따라가는 ‘그런 건 없고 왕도 뿐’이라고 하면 조금 화가 나는데 그냥 그건 사실일런지도 모른다. 빨리 쓰는 법 하면 보통 이런저런 스킬 이야기를 하는데 다 들어보면 그냥 앉아서 쓰는 거랑 크게 차이랄 것도 없다. 그 스킬 쓰는 시간이 결국 시간 잡아먹는 일이다.
흔히 하는 이야기는 해당 편수의 시놉시스/간략한 플롯/글씨앗 따위를 먼저 만들라고 하는데 결국 이거 쓰느라 일 두 번 하는 셈이다. 일에 체계를 만드는 것이니 더 수월하다고는 하지만, 일 두 번 하는 거 맞다. 사실 그냥 한 번만 해도 됨.
‘쓰고 싶은 부분부터 써라!’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일의 순서를 바꿨을 뿐이다. 다른 파트 쓰고 있는다고 써야할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진 않는다. 떠오를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다. 이 두 작업 사이에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평소에 뭘 쓸지 계속 생각을 해야 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소리고 사실 뇌 리소스 계속 소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을 계속 쓰고 있는 거고 그런 점에서 이게 쓰는 속도를 빠르게 한다고 할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다(안 하고 쓰는 사람도 있나? 있을 수는 있고 나도 가끔 그러는 거 같긴 하다).
초고를 부담 없이, 생각 없이 쓰라지만 애초에 다들 그렇게 쓴다. 이 부분에서 막히고 있다면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도 아니다(그렇게하면 하루 5천자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이런 스킬은 확실히 유효하다. 그 파트를 쓰기 전에 미리 고유명사를 정해두는 것. 아니면 고유명사를 정해두지 않고 바로 변환할 수 있는 특정 기호(@나 $나 ^나)로 두고서 소설을 전개하는 것. 고유명사 같은 부질없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엔 우리에게 갈길이 너무 멀다.
플롯 생성기라는 게 있다. 쉽게 설명하면 TRPG 랜덤표인데, 전개가 막혔을 때 사용한다고 들었다(그러니 이것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 해당 장르에 어울리는 랜덤한 사건과 인물이 적힌 표를 들고 있다가 거기에 주사위를 던져서 적당한 것을 고르는 것이다. 좋다. 좋은데 표는 누가 만들어주나?
해당 장르의 장르소, 클리셰, 자주 사용되는 플롯, 내러티브 훅과 같은 각종 플롯 장치에 빠싹해야 한다는 건 소설을 빨리 쓰기 위한 팁이 아니다. 알면 알수록, 더 느려질 수도 있다. 그러니 소설을 빨리 쓸 때 중요한 것은 소설을 쓸 때 이러한 장치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을수록 소설을 빨리 쓸 수 있다면(그러니까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한번도 고민해본적 없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더 빨리 쓸 지도 모른다고 가정한다면), 소설을 빨리 쓰기 위해 무언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착오일 수도 있다. 생각하는 순간 이미 함정에 빠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