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없는 것 쓰기
난 글에서 묘사랑 비유 단 하나도 안 쓰다가 의식해서 쓰기로 해서 요즘은 쓰고 있다. 아마 시 배운 게 큰 거 같다. 시는 크게 봤을 때 운율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이미지와 비유니까. 당연히 문창과 가기 전까지는 제대로 시를 읽은 적은 없었고. 덕분에 더 잘쓰냐하면 잘 모르겠지만.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닌가? 재미있는 일은 특별한 요인이 없어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언제나 글쓰기의 바리에이션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느리더라도 내가 쓸 수 있는 것만 쓰는 것 보다 언젠가는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쓸 수 있는 것만 써서 주목을 받았다가 유행이 지나자 다음작품에서 잊혀지는 경우는 너무 흔하게 봤다. 하지 않았던 것을 하는 것이야말로 일종의 동력이다. 당연히 하던 걸 할 때보다 안 하던 것을 하면 못하겠지.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그놈의 ‘노력’을 해서 그 하나라도 잘할 수 있게 되냐는 것이다. 못하게 되던 것을 어떻게든 하게 되는 것은 난이도가 낮다. 낮은 준위의 숙련도 쌓기는 쉽다. 반면에 달인이 되는 건 어렵다. 되고 싶다고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포기하란 말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생각하자는 거다. 하면 된다는 말은 낙관주의에 근거한다. 그것도 좋지만 글을 쓰는 이들이 글의 완성에 대해서 늘 포기하는 것처럼(어느 작가 말처럼 책을 내놓는 일이 그저 내려놓는 일인 것처럼), 그쯤하면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다음 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