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웹소설에서 고유한 세계를 만들 것인가?
2차세계 웹소설 판타지(로맨스 판타지를 포함하여)에서 나오는 ‘가짜 중세’ 자체는 ‘관습적이고 공유되는 2차세계’, 즉 관습공유세계로 아무 문제가 없다. 관습적이라는 것은 ‘우리는 이것을 판타지 장르의 장르 요소 중 하나로 잠재적으로 동의했다’는 뜻이고 공유된다는 것은 ‘같은 장르장 안에서 작품을 집필할 때 특정한 장르 요소를 공유재(마치 팬픽처럼)로 두겠다’는 잠정적 용인이다. 이것을 부정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미 같은 장르장 안에서 그 장르를 향유하는 계층이 아니기 때문에, 장르장 안에 있는 작가가 대상 독자로 삼지 않은 독자다.
애초에 괴물이 나오고 마법이 있는데, 그리고 지구가 아닌데, 똑같은 역사 절차를 밟았으리라고 보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다. 세계 단위에서의 고증은 역사적 고증이라기보다 과학적 고증에 근거한다(몰입형 판타지가 SF이자 동시에 판타지인 것처럼). 여기에 더해 이 세계는 부서져있기도 한데(룬의 아이들로 대표되는 지역색이 있는 이름들이 섞여서 나온다던가, 속담과 사자성어처럼 2차세계에선 어원이 없는 용어가 쓰이는 등) 일차세계가 투영된 세계, 번역된 세계 등으로 이 역시 작가와 독자 사이에 잠재적 동의를 거친 것이다. 반론을 던질 수 있지만 정작 대부분의 웹소설 판타지는 세계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므로 설명 부재를 고증 실패로 보는 건 애초에 불필요한 잣대다. 향유층에겐 설명이 필요없다.
가짜 중세가 문제가 있다면 단순히 그 세계가 열화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어떤 세계가 만들어 질 때, 그 세계가 처음부터 작가가 구성한 것이 아니라, 다른 소설 속 세계를 복사하여-붙여넣기 할 때(‘공유’할 때) 기존 세계의 구성 요소를 탈락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대여점 판타지의 PC통신의 수혜를 입은 1세대 판타지의 세계 설정의 풍부함은 2세대 판타지에서 자연스럽게 탈락되었다. 대부분의 이유는 그것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었지만(독자적 도량형을 누가 원하겠는가?) 동시에 그렇게 효율좋게 ‘압축’되는 과정에서 열화가 발생한다. 장르 관습에만 기대어 작품을 최적화 시키는 경우 이러한 게으름은 결과적으로 세계를 납작하게 만든다. 관습적이거나 공유되거나 고증이 맞지 않는 건 별 문제가 아니다. 납작해지는 게 문제다.
납작한 세계는 판타지 소설에서 소설의 플롯 한계를 결정짓고 작품들을 서로 유사하게 만든다. 세계 단위에서 스타일이 부재한다는 뜻이다. 모든 웹소설이 최적화되어 서로 구분이 어려운 소설을 쓴다면 도대체 무엇을 골라서 읽을 것인가? 이런 의견은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독자는 세계가 관습적이길 원하지만 동시에 독창적이길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순적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웹소설 창작 안에서도 독창성과 관습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 혼란이 생기곤 한다. 답은 간단하다. 세계 설정 단계에서 장르장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입체적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하나의 장르장, 여기서는 웹소설 판타지의 좁고 마니악한 자장 안에서 엘프의 역할을 임의의 어휘로 트로프하는 것(스킨을 바꿔끼운다는 뜻이다)은 추천할만한 것이 아니다. 그건 세계를 그다지 풍부하게 만드는 게 아니고, 그저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독자적 도량형을 만들듯이). 그럼 ‘진짜 중세’를 만드는 건 어떤가? 이것은 일종의 하드SF의 기술 정합성에 대한 추구와 다르지 않다. 단지 그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쪽 팔을 묶은 뒤 전쟁터에 뛰어들 수 있다. 정말로 그러길 원한다면, 뒷간에서 똥막대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고증에 적합한 서술을 쓸 수도 있고, 틀린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방향성만큼은 조지 R. R. 마틴이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나아간 것과 같다. 1차세계를 반영함으로서 세계의 열화를 막는 것이다. 디테일을 더하는 것도 비슷한 방법론이다. 열화 되었다면 다시 화질을 끌어올리면 된다. 진짜 중세를 추구하는 것과 다른 점은 1차 세계의 산물이 아니라 2차 세계의 산물을 추구하는 쪽이다. 엘프의 고유한 문화나 드래곤의 생활 양식에 대해 디테일을 추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남다르게 된다. 다만 내가 더 추천하는 쪽은 ‘고유 설정’다. 단일변수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는 원래 SF 등에서 쓰이는 용어로 환상적 요소, 사변적 전제라고도 하고 노붐이라고도 한다. 구체적으로는 다르지만 비슷한 뜻으로 대강 그 소설을 SF로 성립시키는 아이디어를 말한다. 예를 들면 ‘초광속 항행 기술은 아주 쉽지만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면?‘같은 것이다(그래 나는 해리 터틀도브의 소설을 예시로 든 것이다). SF에서 단일변수는 SF의 세계를 촉발하고 정립하는 단 하나의 근거로 사용되는데, 판타지 소설의 세계 설정은 장르장 안에서 낯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다. 이러한 세계 설정 안에서 단 하나의 낯선 요소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이 세계는 특별해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평범한 판타지 세계지만, 모든 사람의 운명이 서책에 기록되어 있다거나, 아니면 세계가 게임화 되었다는 식으로 내적인 설정을 추가하는 것이다. 단연 이러한 요소는 세계 설정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플롯의 진행에 맞춰 독자들에게 그 내용이 충분히 설명되어야 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이 고유 설정은 고유한 세계로 변성된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