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과 비웹소설, 서로 다른 문체로 글쓰기
오늘 다른 작가분에게 받은 질문인데, 평소에도 몇 번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것이라 트위터에 써본다. 질문은 이렇다. ‘웹소설과 비웹소설을 둘 다 쓰는데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
일단 두괄식으로 답하자면, 지금은 웹소설과 비웹소설에 글쓰기 차이를 두지 않는다. 예전에는 뒀다. 내 생각에 이것은 스타일─문체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소설쓰기 자체는 고등학생 무렵부터 단편소설로 시작했기 때문에 기본 문체는 어디까지나 단편소설에 맞춰져 있다. 정확히는 환상문학웹진거울의 환상소설, SF, 그리고 판타스틱에 실렸던 영미SF, 호러, 일본 라이트노벨과 파우스트계 추리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장르 전형성을 가진 단편을 쓴다. 또한 각각의 장르가 단순히 서로 다른 장르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국가와 시기가 나뉘기 때문에 글을 쓸 때 문체의 세부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에 대해 가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웹소설을 쓰게 되었을 때는 지금까지와의 글쓰기와는 다른 문체를 불러와야 했다. 중학생 시절 읽은 대여점 판타지/무협 소설을 반영하려고 했지만 대학생이 되어 웹소설이 시작되던 시기에는 이미 올드한 문체였다. 웹소설을 쓰기 위해선 웹소설을 읽고 당시에 유행하고 있는 문체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당시 웹소설의 문체는 지금만큼 정리되진 않았지만 방향성은 같았다. 문장 구조를 꼬지 않고 짧게 쓰며 압축해서 설명하기 보다는 상황을 풀어서 쓰고 행갈이를 자주한다.
웹소설의 문체는 일반적인 문체와 다르게 읽는 사람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도 고려한 문체다. 작가가 자기만족적인 글쓰기를 시도하면 독자에게 더 깊고 다채로운 만족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하루에 한 편을 못 쓸 수도 있고 200화 이상 못 쓸 수도 있고 완결을 못 낼 수도 있다. 웹소설에선 전자보다 후자가 몇 배는 더 중요하다. 웹소설에선 그 어떤 한 줄의 문장도 보다 더 긴 이야기만큼의 만족을 주지 못한다.
다행인 것은 내가 원래 장르소설을 썼기 때문에 웹소설에서 크게 다른 문체를 쓰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판타지와 SF, 호러 모두 잡지 게재를 거친적이 있고 웹소설과 유사한 환경에서 비슷한 경향의 독자층을 겪었다. 여전히 웹소설은 기존의 소설 장르들과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또 어느 부분에선 유사했다. 유사할 뿐만 아니라 장르소설이 가지는 관습과 규칙, 형상을 고스란히 이어받기도 했다. 문체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이를테면 손지상 씨가 환상문학웹진거울을 통해 소개했던 반보트 문장법은 여전히 웹소설에 적용이 된다. 나는 스티븐 킹의 조언도 잘 따르고 레이먼드 챈들러 흉내도 종종 내며 로저 젤라즈니(김상훈 번역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체들은 여전히 웹소설에서도 잘 먹힌다.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작가 생활의 전반부를 넘어가자 문체가 안정적으로 변해갔다. 과거의 나는 좀더 다양한 문체를 쓸 수 있었다. 영미SF도 쓸 수 있고, 라이트노벨도 쓸 수 있고, 한국환상소설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문체를 다양하게 쓴다는 것은 문체가 불안정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엇이 더 좋은지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고유한 문체가 아니라 어떠한 작가 또는 어떠한 장르의 문체를 묶어서 비슷하게 흉내내게 된다. 문체라는 것은 작가가 글을 쓸 때 감안하는 세부 규칙들의 합이다. 예를 들어 ‘인물의 대사는 꼭 따옴표 안에 넣는다’같은 것이다. 모두가 따르는 규칙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스티븐 킹의 ‘형용사 좀 쓰지 마라’ 같은 것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엔 그리 어색하지 않다면 의성어나 의태어를 끼워넣는다. 절대 넣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세부 규칙들이 나 스스로도 얼마나 많이 있는지는 모른다. 이런 세부 규칙 중 일부는 의식되지만 거의 대부분은 손가락에 붙은 습관에 가깝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체 안의 세부 규칙이 조금씩 더해지거나 빠지는데, 더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온다. 정말로 바뀌는 것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변화가 느려지면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체가 된다. 다만 불안정하거나 안정적인 것 양쪽 중에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 생각엔 사람이 나이들면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경향이 생기고, 이러한 경향이 문체에도 영향을 주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아마 지금도 영미SF 흉내를 내고 라이트노벨 흉내를 내고 한국환상소설 흉내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각 문체의 세부 규칙도 좀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글쓰기로 지금 쓰는 문체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는지는 의아하다. 실익이 있다고해도 일단 문체를 그때그때 바꾸는 것은 습관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할 수 있다고해서 그게 쉽지는 않다는 뜻이다. 문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
안정적인 문체가 되면서 웹소설과 비웹소설 사이의 문체간 차이도 많이 줄어들었다. 근래에 와서는 웹소설을 웹소설로 의식하지도 않고, 장르소설을 장르소설로 의식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둘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체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자신의 문체에 세부 규칙을 몇 가지 추가하는 것까지는 유별난 일은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작품에 따라서 다소의 문체 차이를 둔다. 독자에게 보다 생경한 단어 위주로 쓰기로 선택한다거나, 관습적 표현을 최대한 지양한다던가, 각 문단의 마지막 문장은 가능하면 다음 문장에 대한 훅이 되도록 쓴다던가 하는 것이다. 이상의 세부 규칙은 비웹소설을 쓸 때 내가 감안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