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에서의 치트 (1)빙의
회귀, 빙의, 환생이 없는 웹소설은 생각보다 있는 편인데, 현대 판타지(흔히 직업물이라고 하는) 쪽에 몰려있는듯 합니다.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정통판타지라고해도 회빙환 정도는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보기도 하죠(<방랑기사로 살아가는 법>까진 정통 판타지로 본다던가). 기원적으로는 이상할 게 없기도 하고. <나니아 연대기>만 하더라도 한국 웹소설에선 게이트라는 치트를 이용하는 장르지요.
회빙환 같이 주인공에게만 주어지고 잃어버리거나 변형되지 않는 소설의 도입부에서 주어지는 절대적인 힘을 작가들은 치트 또는 특전이라고 하는데, 이런 치트는 상당히 많은 변주가 있습니다. 예지나, 천재나, 초능력(즉사기 등)이나, 트립이나, 초월적 존재, 또는 그런 존재의 사도 등등. 그런데도 그런 힘’만’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생각보다 많이 보이지 않고 대부분 회귀, 빙의, 환생이 섞여 있는 이유는 이 세 가지가 작가가 작품을 전개하고 독자들이 작품에 이입하는데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치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회빙환이 재밌는건 팬픽이 재밌는 이유와 같죠. 둘 다 어떤 선행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걸 기반으로해서 주인공이 이익을 취하거나 우위를 점하는 겁니다.
다만 웹소설 주인공이 치트를 많이 가져가는 건 그 작품의 예상되는 규모가 크기 때문이므로(판타지라면 세계를 구하면서 끝날 가능성이 높고, 그럼 그만한 빌드업이 가능한 잠재력을 갖고 시작해야 됩니다), 규모가 작으면 치트를 덜 가지고 시작해도 됩니다. 전문가물이나 예술가물, 연예인물이 그렇죠. 문피아는 연령대가 높고 장르적으로 코어한 작품이 많지만 지금까지처럼 작품의 유행을 선도해온 면이 없지 않기 때문에 문피아에서 유행하는 현대 판타지의 규모가 점진적으로 더 확대되고 자동적으로 약한 치트를 가진 주인공도 늘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 회빙환도 상대적으론 숫자가 줄겠죠.
그런데 설정이 특이하고 독창적인 세계의 소설을 쓰는 경우라면 그런 기대를 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소설은 그 무엇보다 회빙환(정확히는 빙의인데)이 필요하기때문입니다. 아마 독특한 작품일수록 빙의가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웹소설은 3화, 늦어도 5화 안에 승부를 봐야하고 이 분량 안에 비현대인을 독자가 이입, 공감, 응원하게 만들기 어렵거든요. 또 웹소설은 메가텍스트라고 하는 일종의 세계를 공유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판타지라고 하면 드래곤, 엘프, 마법 등을 떠올리듯 공유하고 있는 코드가 있죠. 웹소설 판타지는 메가텍스트가 세계 단위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을 벗어난 세계를 설정하면 꽤 많은 독자가 받아들이질 못합니다. 이와 관련한 트로프라는 개념도 있는데, 예컨데 고블린을 트로프로 보면 초반부 주인공을 방해하는 약한 장애물 정도인데, 비거종(鼻巨種) 따위로 새롭게 설정할 수 있단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용하면 메가텍스트의 범주에서 벗어나고 독자는 내가 생각하던 웹소설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면 제일 쉬운 방법은 빙의입니다. 빙의는 주인공을 현대인으로 설정해서 독자가 이입할 수 있도록 하고, 주인공이 세계의 낯선 정보를 받아들일 때 여과해서(즉 이런저런 설명을 더하면서)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하기 때문입니다. 빙의를 사용하지 않으면 주인공은 알고 독자는 모르는 상태, 즉 정보 격차가 생기기 때문에 독자는 이해를 위해서 작품을 깊게 읽거나 그만 읽어야하는 선택에 놓입니다. 잘 읽으려는 독자가 분명 있죠. 하지만 이런 선택지가 생기는 거 자체가 작품의 연독을 떨어트립니다. 반면 빙의를 사용하면 주인공과 독자의 눈높이가 같아지고, 정보를 여과해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낯선 세계를 더는 낯설지 않게 느끼고 작품을 읽는 게 무척 쉬워집니다. 웹소설의 1순위 경쟁 컨텐츠는 다른 웹소설이므로, 모든 웹소설이 같은 속도로 진행되므로 빙의는 제외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