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단편소설이란 무엇인가?
장르 단편소설이란 무엇인가? 그 전에 질문을 단순화 해보자. 단편소설이란 무엇인가? 단편소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단편소설이란 대표적인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소설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트위터에서 단편이라고 하면 웹소설 단편, 일반적으로 BL이나 로맨스단편을 이야기하고 이런 단편은 10만자 쯤 되는데 이걸로 이해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종이책 시작에서 350쪽 장편소설 한 권이 16만자이므로 10만자는 중편 또는 경장편의 영역에 속한다. 단편소설은 200자 원고지 기준 70매에서 통상 120매, 길게는 200매 가량 정도의 작품을 말하는데 글자수로 1만 4천자에서 4만자 정도이므로 웹소설에선 주로 19금 작품이 포진된 초단편 정도로 취급한다. 웹소설 독자라면 이 짧은 분량에서 섹스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의문일 수 있다.
웹소설이 아닌 한국소설은 단편 위주의 창작 시장을 이루고 있다. 현대 한국에선 장편소설 판매량 자체가 시원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제도권 소설(우리가 흔히 문단이라고 부르는 교과서에 실리는 소설을 쓴 작가들)의 미학적인 기준이 단편소설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시작해서 전쟁과 북한과의 대립,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 산업화로 인해 근현대사 변곡점이 너무 많았다. 소설은 단순한 오락으로서의 가치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지식인이 현대의 치부를 들추고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도구로서 쓰여왔다. 이런 주제 전달의 가치에 있어서는 단편소설이 단연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뀌는 세태를 반영하기 좋고 작품이 무엇을 말하는지 밝히기도 간결하다. 당연히 한국문학에는 박경리의 <토지>나 조정래의 <태백산맥>같은 대하소설도 존재하지만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것과 같이 단편소설이 일반적인 소설 창작의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때문에 현대의 제도권은 여전히 작가가 되는 등용문으로서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공모전 같이 단편소설을 창작하여 작가로서 인정받는다. 장강명 작가는 이런 단편소설 쓰기 중심의 창작 환경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었고 나도 그에 동의하지만, 그래도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제도권 소설 작가 지망생이라면 아직까진 단편소설 쓰기를 연습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고 싶다. 장편소설 위주의 작가라도 단편소설 쓰기 정도는 할 줄 알아야한다.
이제 장르소설 이야기를 해보자. 통상적으로 웹소설이 장르소설이 웹소설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웹소설과 장르소설은 구분되는 것이다. 웹소설은 장르소설 중 웹에 연재가 되는 초장편소설을 말하는 것이고, 장르소설은 특정한 집단이 좋아하는 관습적 기호(예를 들어 우주선이나 광선총이나 로봇인데 이를 통틀어 장르라고 할 수 있다)를 이용해 쓴 소설이다. 판타지와 SF, 로맨스, 미스터리, 호러 등이 장르소설이다. 웹소설과 장르소설은 서로 겹치지만 장르소설은 장르의 유무로 나뉘고 웹소설은 길이와 플랫폼 같은 양식적 측면이 포함된다. 따라서 장르소설이라고하면 웹소설과 웹소설이 아닌 작품군이 있다. 그리고 웹소설이 아닌 작품군에는 역시 장르 단편소설이 존재한다.
장르 단편소설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단편소설이라는 장르 그 자체와 궤를 같이한다. 이를테면 에드가 엘런 포의 <검은 고양이>나 <어셔 가의 몰락> 같은 작품은 고전 호러 명작이면서 호러 단편소설의 시조 작품으로 꼽힌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익히 알고 있는 크툴루 신화의 주인인 러브크래프트의 저작 대부분도 단편소설로 쓰였으며, SF에 조금 관심이 있으면 들어본 적 있는 황금기SF의 대표적인 저자(아시모프, 클라크, 하인라인)들도 대표작 중에 단편소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미스터리라면 셜록 홈즈가 시리즈로 되어 있지만 단편소설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장르 단편소설의 역사란 곧 장르소설의 역사라는 뜻이다.
이런 장르 단편소설의 역사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현재에도 유효하다. SF는 대표적으로 단편 장르소설이 세계적인 단위에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피터 와츠는 단편을 출판사에 넘길 때면 신에게 기도하며 올해는 테드 창이 소설을 쓰지 않게 해달라고 빈다고 한다. 테드 창은 과작 작가이므로 한 해에 한 편도 안 쓸 때도 있지만, 쓰게 되면 여지 없이 휴고와 네뷸러 후보에 오르니까. 호러로 가자면 호러의 제왕(과장 아님) 스티븐 킹은 장편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여전히 단편 호러소설을 집필하고, 한국에선 황금가지에서 출간이 된다(나는 <N.>이 실린 해질 무렵 이후를 가장 좋아한다). 미스터리의 경우 단편소설 연작이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요네자와 호노부의 대표작인 <흑뢰성>은 네 개의 작품이 순차적으로 문예지에 실렸었다. 합쳐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지만 작품의 집필 단위는 어디까지나 단편이란 뜻이다.
그럼 앞서 했던 비장르 소설에 대한 이야기와 견주어볼 때 짚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장르소설은 그 목적이 특정한 작가의 주제의식을 전달할 목적으로 집필되지 않는데, 왜 단편 장르소설이 하나의 예술 장르로 안착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일단 형식적 측면에서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애초에 단편이란 것은 문예지에 작품을 싣기에 가장 적절한 형식이라는 것이다. 문예지는 시와 소설 등 문학이 실리는 잡지를 고아하게 이르는 말인데, 한 권에 통상 세 편 정도의 단편소설을 실을 지면이 있다. 이 지면에 맞춰서 소설을 실어야하기 때문에 단편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형성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당연히 장르소설도 문예지가 있기 때문에 단편 장르소설이 맥을 이어오는 것이다. 또한 비장르 단편소설이 하나의 주제의식을 전달하기에 효율적인 분량이라면, 장르 단편소설은 하나의 장르 장치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적절한 분량이기 때문이다. 당장 생각나는 톰 고드윈의 <차가운 방정식>같은 작품을 생각해보자. 이 작품은 우주선에 밀항한 아이가 등장하였다가 퇴장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우주선은 연료와 물자가 아주 정교하게 계산되어 출발되었고, 아이가 탑승한 때부터 이 오차가 점점 커져간다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작품은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를 퇴장시킬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작품은 끝난다. 퇴장 이후의 이야기를 작품이 더는 다루지 않기 때문에 이 작품은 더 긴 여운을 남기며 SF가 가진 어떤 장르적 속성(물질과 자연의 엄혹함)을 드러낸다. 이 작품의 여러 논란이나 작품 자체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적어도 이야기란 것은 어느 시점에서 끝내야만 한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간혹 단편소설을 읽은 이들이 단편소설의 끝이 갑작스럽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완전히 다른 세계를 다루는 판타지 단편소설이 있다고 가정하자. 판타지 단편소설 안에는 당연히 그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수 많은 설정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서 소설이 시작할 때 등장한 인물이 어떤 갈등을 해결한 뒤에 소설이 끝나버린다. 그럼 독자들은 뭔가 끝나지 말아야할 때 끝이 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장르 단편소설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단편소설의 형식적 측면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의 장례식이 시작되는 동안 상주인 주인공이 여러 인물들을 만난다. 그러다가 주인공이 겪고 있던 갈등이 드러나고 다른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갈등이 발화된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고 소설이 끝난다. 갑작스러울 수 있지만 단편소설은 작품이 전달하고자하는 무언가가 전달 되었을 때 끝날 수 있다. 그리고 단편소설이라는 형식 안에서는 그것이 더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단편소설은 짧은 분량 안에서 소설 속 세계에 대한 여러 층위를 독자에게 인지시키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를 만나고, 복잡한 상념에 잠기고, 환각을 보는 일 따위의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더 현실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작품이 전달하고자하는 무엇, 우리가 주제나 메시지나 느낌이나 장르적 속성이나 에피파니나… 아무튼 무언가를 일치시키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소설을 끝낸다. 소설가는 단편소설을 통해 찰나지만 무언가를 해냈다. 단편소설을 읽는 독자는 그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 것이다. 연재소설이 끝을 내지 않기 위해 쓰는 이야기라면 단편소설은 끝을 내기 위한 이야기다.
숨겨 무엇하리. 이것은 주로 트위터를 통해 나를 이해하는 내 예비 독자들에 대한 단편소설 읽기에 대한 안내이다. 난 주로 내 소설만 읽고 단편소설이 가진 일반적인 속성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독자들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에, 이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 이번에 단편 중심의 소설집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내 장르 단편소설을 이렇게 썼다. 따라서 이렇게 읽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