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rae.me

취향의 도구

어떤 소설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했을 때 그 아이디어가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경우는 없다. 또한 두 번째, 세 번째 아이디어를 떠올리더라도 이런 아이디어들 사이는 빈 공간이 남게 되는데 이런 경우 작가가 평소에 자주 사용하게 되는 도구(캐릭터/사건/설정/플롯장치 등)를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도구들은 작가의 취향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것을 ‘취향의 도구’라고 부를 것이다. 취향의 도구는 일반적으로 작가의 작품군을 통일 시키는 하나의 주제 의식을 강화하여 작가에 대한 독자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쓰이기도 하고 작가 개인에게는 창작에서의 편의를 제공하므로 작가라면 이런 취향의 도구를 잘 가꾸는 것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취향의 도구를 제대로 가꾸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취향의 도구의 숫자가 너무 적을 경우, 작가의 작품은 서로 너무 비슷해질테고 이런 경우 작가는 ‘작가는 반복을 통해 개인의 주제의식을 강화했다’는 평가 보다 ‘자기 복제가 심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또한 취향의 도구와 무관하게 서로 다른 상이한 아이디어를 통해 완연히 다른 작품처럼 보이더라도, 이런 취향의 도구가 그런 아이디어와 잘 규합되지 않을 때에는 마치 목재 가구에 나사못을 쇠망치로 때려박는 것처럼 여의치 않아 작품을 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취향이 좁다는 건, 다른 도구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말이기 때문에. 취향의 도구가 야기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가진 취향 그 자체의 범주를 늘려나가는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는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들 중 자신이 다룰 수 없다는 이유로 포기해야 하며,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 더 끔찍한 일을 맞이 해야만 한다.

← 클리셰 그냥 써  전개는 되도록 느리고 촘촘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