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형상
사람이 걷는 모습을 보자. 사람은 각자 저마다의 모습으로 걷는데, 그 보행 자세의 근거는 키와 체형, 습관과 나이, 질병과 의식 상태 및 지식 등 다채로운 요소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정작 무엇이 정확히 어떻게 걷는 모습에 영향을 주는지는 관찰자는 물론 보행자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이것은 판타지 창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알려진 몇 가지 규칙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환상과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 그리고 환상에 대한 태도와 정의는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환상이 과학적 정합성이나 논리적인 태도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가의 환상을 들여다볼 때, 마치 보행자의 보행을 관찰하듯 그 근거를 유추할 수 있고(다리를 전다면 그에게 부상 이력이 있을 거라고 추측하듯), 보행자 스스로도 그러한 근거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할테지만(자신이 오다리라고 생각해 의식해서 두 발을 평행으로 두고 걷는다거나), 여전히 환상을 통해 만들어내는 미지수가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해낼 수 없다. 이러한 요소들은 일대일로, 더불어 일방향으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기에 개인이 만들어내는 어떤 환상은 이미 개인의 손에서 떠나 알 수 없는 가치를 생산해낸다. 이 가치는 예술이 가지는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대중에 영합하느냐 아니냐가 갈라지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개인에게서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그것이 설사 오독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