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는 윤리에 대한 장르다
‘호러는 왜 윤리에 대한 장르인가’하면 1. 많은 공포는 혐오와 구분되지 않으며, 무엇이 혐오스러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도덕에 달려있기 때문에, 호러 픽션은 그 자체로 윤리적인 잣대이다. 샴쌈둥이를 공포의 대상으로 보여준다면 그 작품은 샴쌍둥이를 혐오해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닥을 기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괴물 그래픽을 보고 왜 화를 내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호러가 가진 이러한 ‘잣대로서의 성질’은 단순히 물리적이거나 시각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낙태된 태아가 공포의 대상으로 나오는 작품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작품은 분명 낙태 그 자체가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 셈으로. 죽은 태아의 존재는 누군가를 위협할만큼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성질을 부여하고 그것이 대상 독자에게 받아들여지길 기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심판으로서의 성질’이라 할 수 있다. 2. 많은 호러 픽션의 주인공은 트라우마가 있고, 그 트라우마의 기원은 죄책감에서 온다( <미드소마>와 같이). 이는 호러 픽션이 기본적으로 속죄 모티프로서 공포 체험을 당해도 괜찮다는 당위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당위는 일종의 개연성이지만 그보다는 ‘심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개별적인 속성에 가깝다. 예를 들어, 일일연속극에서 여자 주인공이 서브 여자 주인공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서브 여자 주인공이 자신을 챙겨주던 남자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결말에 대해 누군가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심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심판의 기준은 바로 윤리이다. 호러가 다루는 죄란 법으로 명쾌하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미드소마>의 주인공은 동생의 자살을 막지 못한다), 자연히 윤리의 문제가 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개인의 도덕 안에서 끝날 수 있는 고민은 공포 체험을 통한 사건이 되어 독자와 주인공 사이에서 공유된다.
법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 하지만 윤리적인 잘못은 아무도 벌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것을 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호러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성질을 파고든다.
두 번째의 연장이자 구분하여 세 번째로. 위의 심판으로서의 성질은 주인공이 죄책감을 가지거나 또는 응당 그러한 벌을 받아야 하는 이들에게만 작용되진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휘말리기도 한다. 명문화되고 실효된 법만이 아니라, 작은 마을 안에서의 명문화 되지 않은 문화(포크 호러), 오래된 고문헌과 알 수 없는 금기(오컬트), 이해할 수 없는 규칙(규칙 괴담)처럼 ‘임의의 규칙이 있고 그것을 지켜야하는 작품’ 전반에 동일하게 통용된다. 문화인류학적으로 보자면 각각의 문화에 각각의 윤리가 있듯이, 호러 픽션마다 각각의 규칙이 있는 셈이다.
‘호러는 윤리에 대한 장르’라는건 ‘호러가 윤리적이어야 한다’ 또는 ‘호러는 윤리적이다/이지 못하다’라는 뜻이 아니다. 호러는 어떤 잣대를 제시하고 심판을 내리고 규칙을 지키는 장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