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와 윤리
나는 윤리를 고려하지 않는 호러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윤리와 도덕이 결여된 호러를 발견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것이 작품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 작가는 자신보다 큰 작품을 쓰기도 한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한계만큼의 작품을 썼고 이제 그렇게 읽힌다. 하지만 그가 의도했거나 말거나 다른 종류의 파장을 만들어냈다. 반대로, 작가가 그것을 고려했다고 믿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 다른 종류의 왜곡된 신념(윤리에 대한 고려가 없는)일 가능성이 있다.
보다 주요한 문제는 윤리가 누구에게나 완전히 정의 되는 특정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윤리는 관점과 이해로부터 흔들리며, 계속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로 남아있다. 당장 무언가를 명확히 잘라내는 것이 윤리적인 역할을 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나는 타인으로부터 또는 자신으로부터 검열 되지 않는 창작이 가지는 생태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창작 이전에 선행해 판별하는 일은 창작이 가지는 가벼움에 기대어, 창작 이후에 판가름 할 수 있도록 유예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것을 비평이라고 부른다.
비평을 통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이야기들은 다른 이야기에 기대고 있고(시간 순서만이 아니라 예상 표절적으로도),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이야기들 또한 다시금 되살려낼 수 있다. (물론 다시 서랍 속으로 돌려놓고, 우리는 다시 그것을 끄집어내지 않으리라 다짐한 이야기들도 있다.)
(난 어떤 이야기들이 이미 종결이 났으며, 그것에 대해선 더 이야기 할 것이 없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