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standalone="yes"?><rss version="2.0"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channel><title>위래 on wirae.me</title><link>https://wirae.me/</link><description>Recent content in 위래 on wirae.me</description><generator>Hugo</generator><language>ko-KR</language><lastBuildDate>Mon, 04 Nov 2024 00:00:00 +0000</lastBuildDate><atom:link href="https://wirae.me/index.xml"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item><title>웹소설과 비웹소설, 서로 다른 문체로 글쓰기</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B%B9%EC%86%8C%EC%84%A4%EA%B3%BC-%EB%B9%84%EC%9B%B9%EC%86%8C%EC%84%A4-%EC%84%9C%EB%A1%9C-%EB%8B%A4%EB%A5%B8-%EB%AC%B8%EC%B2%B4%EB%A1%9C-%EA%B8%80%EC%93%B0%EA%B8%B0/</link><pubDate>Mon, 04 Nov 2024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B%B9%EC%86%8C%EC%84%A4%EA%B3%BC-%EB%B9%84%EC%9B%B9%EC%86%8C%EC%84%A4-%EC%84%9C%EB%A1%9C-%EB%8B%A4%EB%A5%B8-%EB%AC%B8%EC%B2%B4%EB%A1%9C-%EA%B8%80%EC%93%B0%EA%B8%B0/</guid><description>&lt;p&gt;오늘 다른 작가분에게 받은 질문인데, 평소에도 몇 번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것이라 트위터에 써본다. 질문은 이렇다. &amp;lsquo;웹소설과 비웹소설을 둘 다 쓰는데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amp;rsquo;&lt;br&gt;&#10;일단 두괄식으로 답하자면, 지금은 웹소설과 비웹소설에 글쓰기 차이를 두지 않는다. 예전에는 뒀다. 내 생각에 이것은 스타일─문체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lt;br&gt;&#10;소설쓰기 자체는 고등학생 무렵부터 단편소설로 시작했기 때문에 기본 문체는 어디까지나 단편소설에 맞춰져 있다. 정확히는 환상문학웹진거울의 환상소설, SF, 그리고 판타스틱에 실렸던 영미SF, 호러, 일본 라이트노벨과 파우스트계 추리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장르 전형성을 가진 단편을 쓴다. 또한 각각의 장르가 단순히 서로 다른 장르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국가와 시기가 나뉘기 때문에 글을 쓸 때 문체의 세부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에 대해 가늠하고 있다.&lt;br&gt;&#10;이런 상황에서 웹소설을 쓰게 되었을 때는 지금까지와의 글쓰기와는 다른 문체를 불러와야 했다. 중학생 시절 읽은 대여점 판타지/무협 소설을 반영하려고 했지만 대학생이 되어 웹소설이 시작되던 시기에는 이미 올드한 문체였다. 웹소설을 쓰기 위해선 웹소설을 읽고 당시에 유행하고 있는 문체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당시 웹소설의 문체는 지금만큼 정리되진 않았지만 방향성은 같았다. 문장 구조를 꼬지 않고 짧게 쓰며 압축해서 설명하기 보다는 상황을 풀어서 쓰고 행갈이를 자주한다.&lt;br&gt;&#10;웹소설의 문체는 일반적인 문체와 다르게 읽는 사람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도 고려한 문체다. 작가가 자기만족적인 글쓰기를 시도하면 독자에게 더 깊고 다채로운 만족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하루에 한 편을 못 쓸 수도 있고 200화 이상 못 쓸 수도 있고 완결을 못 낼 수도 있다. 웹소설에선 전자보다 후자가 몇 배는 더 중요하다. 웹소설에선 그 어떤 한 줄의 문장도 보다 더 긴 이야기만큼의 만족을 주지 못한다.&lt;br&gt;&#10;다행인 것은 내가 원래 장르소설을 썼기 때문에 웹소설에서 크게 다른 문체를 쓰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판타지와 SF, 호러 모두 잡지 게재를 거친적이 있고 웹소설과 유사한 환경에서 비슷한 경향의 독자층을 겪었다. 여전히 웹소설은 기존의 소설 장르들과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또 어느 부분에선 유사했다. 유사할 뿐만 아니라 장르소설이 가지는 관습과 규칙, 형상을 고스란히 이어받기도 했다. 문체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이를테면 손지상 씨가 환상문학웹진거울을 통해 소개했던 반보트 문장법은 여전히 웹소설에 적용이 된다. 나는 스티븐 킹의 조언도 잘 따르고 레이먼드 챈들러 흉내도 종종 내며 로저 젤라즈니(김상훈 번역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체들은 여전히 웹소설에서도 잘 먹힌다.&lt;br&gt;&#10;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작가 생활의 전반부를 넘어가자 문체가 안정적으로 변해갔다. 과거의 나는 좀더 다양한 문체를 쓸 수 있었다. 영미SF도 쓸 수 있고, 라이트노벨도 쓸 수 있고, 한국환상소설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문체를 다양하게 쓴다는 것은 문체가 불안정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엇이 더 좋은지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고유한 문체가 아니라 어떠한 작가 또는 어떠한 장르의 문체를 묶어서 비슷하게 흉내내게 된다. 문체라는 것은 작가가 글을 쓸 때 감안하는 세부 규칙들의 합이다. 예를 들어 &amp;lsquo;인물의 대사는 꼭 따옴표 안에 넣는다&amp;rsquo;같은 것이다. 모두가 따르는 규칙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스티븐 킹의 &amp;lsquo;형용사 좀 쓰지 마라&amp;rsquo; 같은 것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엔 그리 어색하지 않다면 의성어나 의태어를 끼워넣는다. 절대 넣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세부 규칙들이 나 스스로도 얼마나 많이 있는지는 모른다. 이런 세부 규칙 중 일부는 의식되지만 거의 대부분은 손가락에 붙은 습관에 가깝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체 안의 세부 규칙이 조금씩 더해지거나 빠지는데, 더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온다. 정말로 바뀌는 것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변화가 느려지면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체가 된다. 다만 불안정하거나 안정적인 것 양쪽 중에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 생각엔 사람이 나이들면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경향이 생기고, 이러한 경향이 문체에도 영향을 주는 게 아닌가 싶다.&lt;br&gt;&#10;나는 아마 지금도 영미SF 흉내를 내고 라이트노벨 흉내를 내고 한국환상소설 흉내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각 문체의 세부 규칙도 좀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글쓰기로 지금 쓰는 문체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는지는 의아하다. 실익이 있다고해도 일단 문체를 그때그때 바꾸는 것은 습관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할 수 있다고해서 그게 쉽지는 않다는 뜻이다. 문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lt;br&gt;&#10;안정적인 문체가 되면서 웹소설과 비웹소설 사이의 문체간 차이도 많이 줄어들었다. 근래에 와서는 웹소설을 웹소설로 의식하지도 않고, 장르소설을 장르소설로 의식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둘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체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자신의 문체에 세부 규칙을 몇 가지 추가하는 것까지는 유별난 일은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작품에 따라서 다소의 문체 차이를 둔다. 독자에게 보다 생경한 단어 위주로 쓰기로 선택한다거나, 관습적 표현을 최대한 지양한다던가, 각 문단의 마지막 문장은 가능하면 다음 문장에 대한 훅이 되도록 쓴다던가 하는 것이다. 이상의 세부 규칙은 비웹소설을 쓸 때 내가 감안하는 부분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좋은 문장 쓰는 법</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A2%8B%EC%9D%80-%EB%AC%B8%EC%9E%A5-%EC%93%B0%EB%8A%94-%EB%B2%95/</link><pubDate>Mon, 04 Nov 2024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A2%8B%EC%9D%80-%EB%AC%B8%EC%9E%A5-%EC%93%B0%EB%8A%94-%EB%B2%95/</guid><description>&lt;p&gt;문장은 정량화할 수 있고, 따라서 좋은 문체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면 그것이 문장법이 된다. 한국에서의 글쓰기에서 수동태나 피동 표현을 피하라는 것 등이 문장법이라 할 수 있다. 다행히 이런 문장법은 따로 찾을 것 없이 문창과와 국문과에서, 한겨례 출판편집스쿨과 같은 강의 그리고 문장강화 같은 도서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문장법을 익히면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챗GPT나 클로드와 같은 LLM만 하더라도 반듯한 문장을 쓴다. 하지만 글이 좋지는 않다.&lt;br&gt;&#10;많은 작가들이 작법서에서 좋은 문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그 작가들 자신의 문체에 대한 세부 규칙을 나열하는 것으로 서로가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널리 알려진 &amp;lsquo;단문을 쓰라&amp;rsquo;는 조언만 하더라도 당장 트위터에서도 짧은 문장만이 좋다고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볼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작법서는 글쓰기를 막 시작한 사람을 위한 조언이므로 복잡한 문장 구조를 실수 없이 쓸 수 있다면 꼭 단문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lt;br&gt;&#10;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문체를 갖춰야 한다. 다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문체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자신은 어떤 세부 규칙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문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세부 규칙이 어떤 기능을 가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세부 규칙에 대한 인식이 사람은 글쓰기를 힘들어하거나 다른 작가의 문체를 흉내내게 된다. 후자는 아주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작가들도 자신이 읽은 글에 영향을 곧잘 받는다. 의식적으로 보고 베낀 것이 아닌 이상 표절이 아니고, 문체를 따라해도 진짜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물론 진짜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다들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한다. 문제는 글을 쓸 생각이면서도 글 자체를 쓰지 못하는 쪽이다. 이런 경우에는 &amp;lsquo;베껴도 되는 다른 교보재&amp;rsquo;를 베끼는 것도 방법이 된다. 자신이 평소에 하는 입말을 그대로 글에 반영하는 것이다. 찾아보진 않았지만 글쓰기보다 말을 늦게 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lt;br&gt;&#10;문체 각각의 직접적인 세부 규칙은 많은 작가의 작법서의 문장에 대한 파트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제일 좋은 것은 그냥 글을 읽는 것이다. 문체에 대해 인식하지 않고 글을 읽는 것과 인식하고 읽는 것은 다른 읽기가 된다. 글을 읽으며 문장과 문단을 얼마나 길고 짧게 쓰고 어휘는 감정적인지 이성적인지 아니면 감각적인지 논리적인지 따위를 따져보라. 묘사나 은유가 많은지 일화나 예시를 얼마나 자주 쓰는지 글이 얼마나 빠르고 느린지를 느끼고 글이 독자를 웃기게 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진지하게끔 만드는지 파악하라. 이 작가는 나열을 할 때 얼마나 많이 나열을 할까? 이 작가는 글의 주제에서 얼마나 자주 그리고 오래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가? 이 작가는 시점을 얼마나 자주 바꾸나? 이 작가의 수사법은 얼마나 인상적인가? 그리고 그러한 요소가 정확히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인식하게 되면 문체에 대한 세부 규칙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근대소설 그리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7%BC%EB%8C%80%EC%86%8C%EC%84%A4-%EA%B7%B8%EB%A6%AC%EA%B3%A0-%EB%A6%AC%EC%96%BC%EB%A6%AC%EC%A6%98%EA%B3%BC-%EB%AA%A8%EB%8D%94%EB%8B%88%EC%A6%98/</link><pubDate>Mon, 14 Oct 2024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7%BC%EB%8C%80%EC%86%8C%EC%84%A4-%EA%B7%B8%EB%A6%AC%EA%B3%A0-%EB%A6%AC%EC%96%BC%EB%A6%AC%EC%A6%98%EA%B3%BC-%EB%AA%A8%EB%8D%94%EB%8B%88%EC%A6%98/</guid><description>&lt;p&gt;근대소설은 이제 소설이라는 개념이 워낙 넓은 걸 감안해서(예를들면 서유기/삼국지 같은 것도 소설이라고 하니까) 쓰는 말인데 보통 돈키호테를 기원으로 하거나 아니면 학자에 따라 여러 소설들을 근대소설이라고 불러서 딱 정의하기 어렵지만 그 이전의 소설과 구분되는 세련됨을 이야기하는 편임 앞에서 말한것처럼 일종의 내면세계가 있다거나 근대적인 가치(인권이나 평등이나 과학이나)가 작품애 내재되어 있다거나 그래서 각 나라의 근대소설도 이런 기준으로 따지는 편(한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은 혈의 누였던가)&lt;/p&gt;&#10;&lt;p&gt;여기서 근대소설은 리얼리즘이라는 형식으로 나아갔는데 이제 다른 예술이 그러하듯이 현실을 모방하는 방향이었던 거임 그래서 근대에서 현대까지의 소설이라는 건 &amp;lsquo;얼마나 더 진실에 가까운가&amp;rsquo;에 대한 일종의 게임이 됨 그래서 리얼리즘은 더 정밀하고 세밀한 묘사, 합리적이고 모순적이지 않은 개연적인 사건들(이전 소설들은 개연성 없이 얼렁뚱땅이니까), 비과학적인 환상적인 것을 배제하기(이전 소설들은 이것저것 나옴), 인물의 내면세계를 보여주기, 구어체 대화(과거에는 글과 말은 다른 것이었는데 소설에서는 이 격차가 좁혀짐) 등등의 작업이 이루어짐. 근대소설이 그 이전의 소설과 구분지어지는 세대적 격차를 둔다면 리얼리즘은 그 글이 가지는 스타일들을 두루 이르는 거에 가까울듯.&lt;/p&gt;</description></item><item><title>SF라는 감각</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sf%EB%9D%BC%EB%8A%94-%EA%B0%90%EA%B0%81/</link><pubDate>Sat, 14 Sep 2024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sf%EB%9D%BC%EB%8A%94-%EA%B0%90%EA%B0%81/</guid><description>&lt;p&gt;장르를 감지하는 건 일종의 다른 감각기관을 가지는 거라고 생각. 이산화 작가가 쓴 정지돈의 &amp;lt;브레이브 뉴 휴먼&amp;gt; 감상을 보듯 SF적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은 SF의 좋은 부분이 정확히 무엇인지, 지금까지의 SF에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이해를 잘 못함. 이건 개인의 취향이 아님. 비평문에서 비평가가 호오를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같음. 그냥 &amp;lsquo;실제로 그렇게 느낄 수 있기 때문&amp;rsquo;이고, SF비평이라는 건 어떻게 느꼈는지, 그리고 그 느낌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과정이 뒤따름. 즉 무언가를 SF로 읽는다는 건 의식적 구분이 아니라 감각적 체험임. 리얼리즘과 똑같이.&lt;br&gt;&#10;단지 SF적 감각, 더불어 다른 장르와 장르를 구분하는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군의 장르소설들을 장르적 일체감으로 묶지 못하고 공통되는 규칙과 관습, 형상을 놓치고 있고 같은 연장선상에서 볼 수 없는 것.&lt;br&gt;&#10;이를테면 한국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한국소설의 현시대 소설은 그 이전 세대 소설의 장르성을 경유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도달하는 지점이 있고 그 부분이 바로 비평적으로 의미 있는 가치를 지님. SF 또한 마찬가지임.&lt;br&gt;&#10;따라서 하나의 소설이 좋은 &amp;lsquo;리얼리즘 또는 한국&amp;rsquo; 소설이면서 좋은 SF가 아닐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좋은 &amp;lsquo;리얼리즘 또는 한국&amp;rsquo; 소설이면서 좋은 SF일 수도 있는 것임.&lt;br&gt;&#10;한국에서 &amp;lsquo;문학성&amp;rsquo;이 오용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짚을 수 있음. 한국에서 문학성이란 기존 한국/제도권/리얼리즘/모더니즘 소설이라는 각각의 분화된 장르성이 결합된 성질을 이야기함에도 소설이 가진 어떤 좋음을 대변하는데 가치를 두고 있음.&lt;br&gt;&#10;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소설의 역사성과 유리되거나, 제도권에 소속되지 않거나, 리얼리즘 또는 모더니즘 소설이 아닌 &amp;lsquo;대중적이지 않은 작품&amp;rsquo;의 가치들이 평가 절하되고 있으며, 이런 방식으로 읽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소설 읽기가 아니라고 빈번히 주장됨. 여기에는 계급성이 있음. SF 또는 웹소설 같은 장르소설이 소수의, 마니아의, 배우지 못한 사람의, 고전과 같이 깊이 있는 독서를 하지 못한 사람의 소설이라는 것.&lt;br&gt;&#10;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소설과 장르성은 소설은 물론 여러 이야기 매체를 포괄하는 양식이며 독자 및 소비자에게 의미 있는 경험, 가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컨텐츠로 존재하고 있음.&lt;br&gt;&#10;결과적으로 SF를 비롯한 장르비평도 이 &amp;lsquo;인식되지 않는&amp;rsquo; 장르 독자가 무엇을 느끼는지, 어떤 이들이 무슨 이유로 읽는 것인지, 그렇게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었는지로 향하게 된다고 생각함.&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글을 고치는 세 가지 방법</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8%80%EC%9D%84-%EA%B3%A0%EC%B9%98%EB%8A%94-%EC%84%B8-%EA%B0%80%EC%A7%80-%EB%B0%A9%EB%B2%95/</link><pubDate>Tue, 20 Aug 2024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8%80%EC%9D%84-%EA%B3%A0%EC%B9%98%EB%8A%94-%EC%84%B8-%EA%B0%80%EC%A7%80-%EB%B0%A9%EB%B2%95/</guid><description>&lt;p&gt;글 고치기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가 된다. 첫 번째는 &amp;lsquo;퇴고&amp;rsquo;인데 이 퇴고의 어원은 당나라 시인 가도가 시를 짓고 나서 시어 중 하나를 밀 퇴(推)로 할 것인지 두드릴 고(敲)로 할 것인지 고민한데서 따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임의적으로 글을 고치는 모든 방법을 퇴고라고 부르기도 하나, 실제 사용례를 볼 때 이 고사 속의 시인의 고민과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퇴고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로는 김훈이 &amp;ldquo;칼의 노래&amp;quot;를 쓸 때 &amp;lsquo;꽃은 피었다&amp;rsquo;는 문장을 며칠을 고민하다 &amp;lsquo;꽃이 피었다&amp;rsquo;로 고쳤다는 인터뷰가 있다. 이렇듯 퇴고는 작품 전체에 영향을 주기 보다는 작품을 깊게 읽었을 때 알아차릴 수 있는 작품의 섬세한 뉘앙스를 다듬는 것에 가깝다. 두 번째 고치기 유형으로는 &amp;lsquo;편집&amp;rsquo;이다. 편집은 흔히 편집자의 일로 받아들여지고, 실제로도 그래왔지만 현대 한국에선 그런 경향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에 대해 작가가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는듯. 하지만 편집이 편집자의 일이었을 때도, 작가 또한 작품을 편집했다. 편집은 쉽게 말해 시간 순서로 배열된 사건을 어떻게 의미있는 읽기 순서로 배열하느냐는 문제다. 유명한 편집 일례로는 &amp;ldquo;롤리타&amp;quot;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있다. 나보코프는 작품을 쓸 때 작품을 인덱스 카드(고리로 한데 묶을 수 있는 일정한 크기로 자른 종이)에 써서 들고다니며 읽고 시시때때로 순서를 재배열하고 내용을 추가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amp;lsquo;다시쓰기(rewrite)&amp;lsquo;다. 다시쓰기는 문자 그대로 초고를 그대로 두고, 초고의 내용을 작가의 내면에서 재정립하여 첫 문장부터 다시 쓰는 일을 말한다(물론 이건 원론적인 이야기고, 고칠 부분이 없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그대로 두면 된다). 작품의 모든 요소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만 고치게 될 경우 글의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에 등장인물이나 사건, 배경 등을 자연스럽게 추가하거나, 작품의 스토리를 완전히 변경하는 경우에도 다시쓰기는 언제나 유효하게 작동한다. 이러한 고치기 과정을 위해서는 초고가 존재해야하는데, &amp;lsquo;초고 집필 이후 고치기&amp;rsquo;라는 과정은 영미권 작법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범적인 글쓰기다. 스티븐 킹은 &amp;ldquo;유혹하는 글쓰기&amp;quot;에서 이러한 작법(&amp;lsquo;우선 빠르게 초고를 집필하고, 휴식을 가진 뒤 이후에 고쳐라&amp;rsquo;)을 설파하고 있으며, 반대로 존 스칼지는 &amp;ldquo;슬기로운 작가 생활&amp;quot;에서 이런 글쓰기 방법론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글 고치기 방법 중 무엇이 가장 좋을까? 글을 고치는데 몇 십년 시간이 남아있다면 계속 다시쓰기를 하다가 편집도 퇴고도 몇 년하면 이상적이지만, 세상은 작가가 이상적인 글을 쓰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써야할 글은 많고 마감도 눈 앞에 닥쳤다. 작가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글을 쓰는 방법도 다르다. 작가마다, 그리고 글마다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충분히 만족스런 글이 쓰여졌다면 퇴고로 마무리를 하고, 아주 바쁘다면 편집만으로 글의 가치를 올려볼 법하며, 오래전의 초고를 꺼내볼 생각이라면 다시쓰기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우수한 초고라고 자신한다면 글을 거의 고치지 않고 내놓을 수도 있다(존 스칼지나 이영도 같은 작가들은 쓰기 전 머릿속에서 이미 완성된 원고가 있다고 자신한다). 글을 고칠 때는 일관된 원칙보다 글마다 대응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웹소설에서의 문장</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B%B9%EC%86%8C%EC%84%A4%EC%97%90%EC%84%9C%EC%9D%98-%EB%AC%B8%EC%9E%A5/</link><pubDate>Wed, 03 Jul 2024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B%B9%EC%86%8C%EC%84%A4%EC%97%90%EC%84%9C%EC%9D%98-%EB%AC%B8%EC%9E%A5/</guid><description>&lt;p&gt;웹소설에서의 문장은 다른 소설과어떻게 달라야할까? 웹소설의 문장은 1. 두괄식 또는 미괄식으로 &amp;lsquo;한 문장만 읽어도 전체 문단이 이해가 되도록&amp;rsquo; 쓰는 것이 좋다. 2. 그것이 싫다면 &amp;lsquo;한 문단을 한 문장으로 구성&amp;rsquo;하면 된다. 이런 경우 소설은 좀더 빠른 템포를 가져간다. 3. 웹소설에서 중요한 건 독자에게 선택권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옵션은 빨리 읽기고, 이것은 1에서 제시한 것처럼 한 문장만 읽어도, 또는 2에서 대사만 읽어도 작품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작품을 더 깊고 자세하게 읽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다른 문장을 통해서 부수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선택권은 웹소설을 읽는 독자층이 다양하고 그만큼 읽는 방법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어떤 독자는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서서 웹소설을 읽고, 어떤 독자는 주말 밤 자기 전에 한 주 동안 모아둔 웹소설을 읽는다. 웹소설은 두 독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4. 앞에서 한 이야기와 연관되게 웹소설에선 &amp;lsquo;중언부언&amp;rsquo;해야 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소설 문장에서 이런 중언부언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피해야할 사안이지만, 웹소설의 경우 작품이 초장편으로 무척이나 길고(최소 8권에서 길게는 수 십권), 인물들이 못해도 수 십명 씩 등장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작품 안에서 기억해야할 인물과 사건, 묘사는 다시 등장할 때는 가능한한 같은 서술로 다시 제공되어야 한다. 특히 인물의 경우 몇 개의 묘사를 묶어서 해당 인물이 어떤 인물이며 주인공 또는 주변 인물들과 어떤 상호작용을하는지에 대해서 즉시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 어떤 웹소설 독자도 그 인물이 언제 어디에서 나왔는지 다시 찾기 위해 작품을 뒤적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5. 웹소설에서 모든 묘사와 설명은 &amp;lsquo;우선은 직관적&amp;rsquo;이어야 한다. 대상이 새로운 면모를 갖추고 있을지언정 지나치게 은유적이거나 쉽게 이해할 수 없다면 독자는 해당 서술에서 너무 오래, 그러니까 다른 웹소설과는 다른 일반적이지 않은 속도로 작품을 읽게 된다. 이것은 그 자체로 작품에 대해 불신을 유예시키지 못하는 계기가 된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1세대 판타지 소설이 없는 이유</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1%EC%84%B8%EB%8C%80-%ED%8C%90%ED%83%80%EC%A7%80-%EC%86%8C%EC%84%A4%EC%9D%B4-%EC%97%86%EB%8A%94-%EC%9D%B4%EC%9C%A0/</link><pubDate>Sat, 08 Jun 2024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1%EC%84%B8%EB%8C%80-%ED%8C%90%ED%83%80%EC%A7%80-%EC%86%8C%EC%84%A4%EC%9D%B4-%EC%97%86%EB%8A%94-%EC%9D%B4%EC%9C%A0/</guid><description>&lt;p&gt;소위 1세대 판소의 자유분방함에 대한 노스텔지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현재 웹소설과 비교할 정도의 경쟁력 자체는 없음 당시 소설들이 출간까지 이어진 건 시장 개척자라 다른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임. 소위 정판은 지금도 팔리는데 1세대는 플롯 층위가 그냥 안 팔리게 생김. 정판이 나와도 1세대 판소가 호출되곤 하는 걸 보면, 정판과 1세대 판소는 접점이 많지만 아무래도 구분점이 있고 그게 플롯이 아닌가 싶다. 웹소설을 정의하는 게 또 플롯이기 때문에. 웹소설은 간단하게 우상향 플롯 정도로 부를 법한데, 1세대 판소는 훨씬 자유분방하다. 드래곤 라자는 야트막하게 상승하고 내려가길 반복하다 시작된 그 지점에 다시 도달하고, 더로그는 중간에 추락을 좀 하다가 조금 높은 지점에 도달하고, 데로드엔 데블랑은 오르는가 싶더니 그냥 바닥에 내리꽂는다. 웹소설엔 이런 종류의 플롯이 그냥 없다. 그때는 좋았다는 사람들은 플롯이 색다른 맛을 줬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건 연재소설에선 안 좋은 플롯이다. 그때는 더 좋은 플롯에 대한 합의가 없었기에 서로 경쟁하지 않았지만, 웹소설에서는 더 좋은 플롯이 뭔지가 알기 때문에 플롯은 고정되고 다른 부분에서 차이점을 두게 된다. 자유분방한 플롯이 주는 차이는 다른 소설과 구분되는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 때문에 노스텔지어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사실 지금도 그런 작품들이 꽤 나오고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 진실을 말하자면, 사람들은 1세대 소설의 모든 요소를 별로 안 좋아한다. 장르 판타지에서 스킨만 바꿔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건 일종의 낭비다. 작가도 독자도 힘들기 때문에 같은 역할(잡몹)을 가졌으면 같은 이름(오크)으로 부르는 것이다. 선험적 지식(회빙환천재 등등)이 없으면 긴장감이 생기고 기대감도 없으니 안 본다. 비극적인 건 안 본다. 등등. 잘 쓰면 된다고 하는데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잘 쓰는 사람들이 다 똑같은 판타지에 남자 주인공으로 회빙환천재 넣으면 더 많이 본다. 잘 쓰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라서 돈을 덜 버는 실수 같은 걸 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론이 없는 건 아니고 그걸로는 절대로 밥도 못 먹고 산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다른 소설에 비하면 시장이 괜찮다는 웹소설도 소설이란 한계는 못 벗어나서 딱히 험한길 가는 사람 대우 해주지는 않는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기획과 직감</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8%B0%ED%9A%8D%EA%B3%BC-%EC%A7%81%EA%B0%90/</link><pubDate>Sun, 19 May 2024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8%B0%ED%9A%8D%EA%B3%BC-%EC%A7%81%EA%B0%90/</guid><description>&lt;p&gt;기나긴 기획 끝에 나오는 작품을 망치고 난 뒤, 직감적으로 쓴 작품이 잘 되는 이유는, 작가는 기나긴 기획을 통해서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어떤 정론을 구축했고, 직감적인 작품이 그 정론을 딛고서 더 멀리 나아가는데 성공했기 때문 아닌가 싶다. 실패가 필연적이었던만큼 성공 또한 그런 것.&lt;br&gt;&#10;기획의 문제는 챗봇 AI가 이야기를 만드는 가지는 문제와 유사하다. 이미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한다는 거. 하지만 데이터베이스는 불충분하다. 사람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괜찮은 작품들은 이 범주 안에 존재한다. 정론은 이미 있는 규칙을 정리한 것.&lt;br&gt;&#10;좋은 작품은 오래된 것과 결합한 &amp;lsquo;새로운 것&amp;rsquo;이다. 기획은 오래된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범주로 정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을 통해 만들어지는 성공 법칙은 어느 정도의 성공을 보장할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다.&lt;br&gt;&#10;하지만 직감적인 작품은 필연적으로 정론을 벗어난다.한 사람의 직감은 그 사람이 가진 데이터베이스 보다 크고 자유롭다. 데이터베이스가 잘 정리되어 있다면 직감은 그 정론을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더 좋은 길로 향하게 되어 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가장 많은 빛을 받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0%80%EC%9E%A5-%EB%A7%8E%EC%9D%80-%EB%B9%9B%EC%9D%84-%EB%B0%9B%EB%8A%94-%EC%82%AC%EB%9E%8C%EC%9D%B4-%EC%9D%B4%EA%B8%B0%EB%8A%94-%EA%B2%8C%EC%9E%84/</link><pubDate>Sat, 16 Apr 2022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0%80%EC%9E%A5-%EB%A7%8E%EC%9D%80-%EB%B9%9B%EC%9D%84-%EB%B0%9B%EB%8A%94-%EC%82%AC%EB%9E%8C%EC%9D%B4-%EC%9D%B4%EA%B8%B0%EB%8A%94-%EA%B2%8C%EC%9E%84/</guid><description>&lt;p&gt;너는 알 수 없는 캄캄한 공간 안에 있다. 어두운 공간에 삼각뿔 모양의 색색들이 조명들이 마구잡이로 섰다. 너는 무심코 가장 크고 이쁜 빛을 발하는 조명 앞에 서서 빛을 받는다. 어둠이 가시자 덜 불안해진다. 만족하고 있으려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 &amp;lsquo;가장 많은 빛을 받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amp;rsquo;이라고 한다. 당신은 주변을 돌아보며 첫 번째 조명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다른 조명의 불빛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찾는다. 너는 위치를 이동해 이제 세 개의 조명을 받는 곳에 선다. 하지만 세 개의 빛이 교차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숙덕거린다. &amp;lsquo;어딘가에 다섯 개의 빛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고 들었다.&amp;rsquo; 너는 곧장 자리를 옮기지는 않고 다섯 개의 조명 불빛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존재할지 계산해본다. 그건 충분히 가능해보인다. 너는 이제 그 위치가 어디일지도 가늠해본다. 다른 사람의 말도 경청한다. 놀랍게도 그 위치는 첫 번째 조명에서 벗어나야만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빛 속에서 누군가 말한다. &amp;lsquo;그런 것을 찾으러 다니지 마라. 너는 어둠 속의 사람들처럼 헤맬 것이다.&amp;rsquo; 만류에도 불구하고 너는 다섯 개의 조명 불빛을 받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너는 초조하게 조명과 불빛, 어둠 속에서 읊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사이를 거닐다가 기이한 장소를 발견한다. 다섯 개가 아니라 더 많은 조명 불빛이 교차하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그곳엔 아무도 없다. 너는 그곳에 가서 선다. 너는 얼마간은 만족감에 빠져들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소 덥지 않은가 생각을 한다.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불안해진다. 무엇보다도 네가 견딜 수 없는 사실은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너는 그림자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제자리를 맴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모래 여권 추격</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AA%A8%EB%9E%98-%EC%97%AC%EA%B6%8C-%EC%B6%94%EA%B2%A9/</link><pubDate>Thu, 27 Jan 2022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AA%A8%EB%9E%98-%EC%97%AC%EA%B6%8C-%EC%B6%94%EA%B2%A9/</guid><description>&lt;p&gt;진흙이라면 모를까, 모래에 남은 발자국은 얼마가지 않아서 사라진다. 미카는 발자국이 모래 둔덕을 모두 오르자 더는 발자국을 추격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미카는 몸을 숙여 발치의 모래를 한웅큼 집어들었다. 주먹에 힘을 주자 모래알갱이들이 부스스 손가락 사이로 떨어져내리고, 모래 둔덕을 이동시키는 사막의 바람이 모래알갱이들을 멀리 흩뿌렸다. 대개의 모래알들은 다시 미카의 앞으로 떨어지지만 일부는 더 멀리 떨어졌고, 또 먼지나 다름 없는 크기의 것들은 멀리 날려갔다. 저 모래알들은 며칠 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모래 둔덕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lt;br&gt;&#10;미카의 뒤에 서 있던 뷔에른이 말했다.&lt;br&gt;&#10;더는 쫓을 수 없을 겁니다. 포기하죠.&lt;br&gt;&#10;미카가 말했다.&lt;br&gt;&#10;이 사막 너머에 무엇이 있지?&lt;br&gt;&#10;자미른 공국이 있습니다.&lt;br&gt;&#10;공국과 협조를 해야겠군.&lt;br&gt;&#10;뷔에른이 질문했다.&lt;br&gt;&#10;그 여자가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lt;br&gt;&#10;그건 모르지. 하지만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잖나. 이 사막을 지나면 여권 없이도 공국에 들어설 수 있을테니까.&lt;br&gt;&#10;국경을 지키는 부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lt;br&gt;&#10;그네들이 사막을 건너는 모든 것들로부터 지킬 수는 없겠지.&lt;br&gt;&#10;미카의 머릿속으로 자미른 공국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lt;br&gt;&#10;자미른은 서편으로 이동하고 있다지. 수도도 옮겼다고.&lt;br&gt;&#10;예.&lt;br&gt;&#10;뷔에른이 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lt;br&gt;&#10;사막의 모래가 국경을 침범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lt;br&gt;&#10;그것 봐. 공국은 아무것도 막지 못하고 있지.&lt;br&gt;&#10;뷔에른이 질문했다.&lt;br&gt;&#10;그 여자가 사막에 비견 된다고 생각하십니까?&lt;br&gt;&#10;미카가 가로저었다.&lt;br&gt;&#10;아니.&lt;br&gt;&#10;미카가 말했다.&lt;br&gt;&#10;그 여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사막의 모래알갱이 아니겠나. 우선은 돌아가지.&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하얀색 내과 좀비</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D%95%98%EC%96%80%EC%83%89-%EB%82%B4%EA%B3%BC-%EC%A2%80%EB%B9%84/</link><pubDate>Tue, 18 Jan 2022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D%95%98%EC%96%80%EC%83%89-%EB%82%B4%EA%B3%BC-%EC%A2%80%EB%B9%84/</guid><description>&lt;p&gt;좀비가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좀비에 대항하기 위한 제대로 된 도구들이 발명되면서 좀비는 일반인들도 손쉽게 제압할 수 있게 되었다. 커다란 이지창은 좀비에게 물리지 않으면서 좀비를 넘어트리거나 묶어둘 수 있는 도구였다.&lt;br&gt;&#10;다만 그렇게 잡은 좀비를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라 할 수 있었다. 불로 태우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지만 이내 그것이 좀비로 인해 붕괴된 인프라에서 너무 소비적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좀비에게서도 쓸모를 찾아야만 했다.&lt;br&gt;&#10;좀비에게 운동 기능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가치가 있지 않았다. 좀비는 사람의 말을 듣지도 않고,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지도 않았다. 좀비는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다리가 아니라 기어서라도, 길 수 없다면 몸을 꿈틀대면서도 나아가지만 그런 방편으로는 일관된 기술적 방법론을 적용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내구도도 너무 약했다.&lt;br&gt;&#10;하지만 한 내과의사가 좀비의 쓸모를 찾아냈다.&lt;br&gt;&#10;좀비는 죽은 상태이지만 음식을 먹고 소화한다. 그말인 즉 내장기관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내장기관의 주인은 죽은 상태다. 그 말인 즉, 내장기관을 주인에게서 떼어낸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그 기능을 제대로 해낸다는 말이었다.&lt;br&gt;&#10;물론 좀비의 내장이라는 것은 백색의 뿌옇고 멀건한, 창백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모습으로 속부터 썩어가고 있으므로 그 모양과 실제 정도가 과히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적당량의 알코올이 포함되면 위험한 수준의 세균과 박테리아를 처리할 수 있었고, 그 내장의 쓸모에서 그런 부분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lt;br&gt;&#10;이를테면 산을 분비해내는 좀비의 위장은 그대로 잘려진 뒤 펼쳐져 쓰레기처리장 바닥에 넓게 깔렸다. 이 강력한 산성 물질 제작 공장은 자산가 거주구의 쓰레기들을 남김없이 녹이고, 덩달아 자산가들이 공동체에 쓸모 없다고 여겨지는 기타 부산물들; 이를테면 쓸모를 다 한 애완동물이나 정부, 자산가 거주구를 호시탐탐 노리는 기자들의 흔적도 손 쉽게 녹여냈다.&lt;br&gt;&#10;좀비 대장은 훌륭한 수분 흡수 장치로, 같은 부피의 스펀지보다도 세 배는 많은 양의 물을 저장했다. 물론 이 물은 차후에 식용수로 쓸 수 있지만 그 물은 충분히 소독되는데다, 좀비 내장을 이용하는 자산가들은 딱히 마실 일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사건 사고 갤러리</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82%AC%EA%B1%B4-%EC%82%AC%EA%B3%A0-%EA%B0%A4%EB%9F%AC%EB%A6%AC/</link><pubDate>Fri, 14 Jan 2022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82%AC%EA%B1%B4-%EC%82%AC%EA%B3%A0-%EA%B0%A4%EB%9F%AC%EB%A6%AC/</guid><description>&lt;p&gt;웃긴 미술관 이름이었다. &amp;lsquo;사건 사고 갤러리&amp;rsquo;&lt;br&gt;&#10;&amp;ldquo;이거 사사갤 말하는 거 맞지?&amp;rdquo;&lt;br&gt;&#10;&amp;ldquo;사사갤?&amp;rdquo;&lt;br&gt;&#10;내 말에 주안이 되물었다.&lt;br&gt;&#10;내가 설명했다.&lt;br&gt;&#10;&amp;ldquo;와우라는 게임이 있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어.&amp;rdquo;&lt;br&gt;&#10;&amp;ldquo;그 게임은 많은 사람이 같이 하는 게임이야. 그런데 게임이라고해도 법이라는 게 꼭 지켜지진 않거든. 그래서 개인이 다른 사람을 고발하는 커뮤니티가 있었던 거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게 사사갤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럼 그걸 고발해봤자 무슨 쓸모가 있어?&amp;rdquo;&lt;br&gt;&#10;&amp;ldquo;그 글을 본 다른 사람들이.&amp;rdquo;&lt;br&gt;&#10;&amp;ldquo;원시 부족사회 비슷한 거네.&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지.&amp;rdquo;&lt;br&gt;&#10;나와 주안은 미술관 명패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으로 걸어들어갔다.&lt;br&gt;&#10;하지만 우스운 미술관 이름과 달리 미술관 내부는 평범했다. 전시품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흰 가벽을 두고 그때그때 조명을 달리할 수 있도록 위쪽은 마감이 허술했다.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이름의 인테리어 양식이었다.&lt;br&gt;&#10;무엇보다도 미술관에는 제대로 된 미술품이 없는 것 같았다.&lt;br&gt;&#10;&amp;ldquo;들어올 수 있는 것 보면 개장은 한 것 같은데.&amp;rdquo;&lt;br&gt;&#10;&amp;ldquo;하지만 직원이 없잖아. 다시 나갈까?&amp;rdquo;&lt;br&gt;&#10;&amp;ldquo;글쎄.&amp;rdquo;&lt;br&gt;&#10;주안은 뭔가 아쉬운듯 미로같은 미술관 가벽 사이를 지났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lt;br&gt;&#10;코너를 돌자 의외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lt;br&gt;&#10;바닥에 붉게 흩뿌려진 피였다.&lt;br&gt;&#10;바닥 또한 옅은 회색의 마블링이 들어간 백색 대리석이었기에 그 피는 선명하기만 했다.&lt;br&gt;&#10;나와 주안은 그 앞으로 걸어갔다.&lt;br&gt;&#10;&amp;ldquo;전시품이겠지?&amp;rdquo;&lt;br&gt;&#10;&amp;ldquo;아마도?&amp;rdquo;&lt;br&gt;&#10;나는 답하면서 전시품을 설명하는 명패가 놓여있는지 찾아보았다.&lt;br&gt;&#10;그런 건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바닥에 고인 피 웅덩이 너머로 작은 핏물들이 튀어있었다. 우리는 이미 그 작은 핏물 몇 개를 밟은 상태였다. 전시품이라면 전시품을 훼손한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그 피를 밟지 않고는 복도를 지날 수 없었다.&lt;br&gt;&#10;주안이 핏자국 사이를 조심조심 걸으며 말했다.&lt;br&gt;&#10;&amp;ldquo;행위 예술 같은 거였나봐.&amp;rdquo;&lt;br&gt;&#10;&amp;ldquo;앞에서 아직 진행중일지도 모르지.&amp;rdquo;&lt;br&gt;&#10;나와 주안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211213</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211213/</link><pubDate>Mon, 13 Dec 2021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211213/</guid><description>&lt;p&gt;형은 꿈 속에서 귀신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그대로 잠들었다.&lt;/p&gt;&#10;&lt;p&gt;나는 가시가 없는 고슴도치를 길렀다.&lt;/p&gt;&#10;&lt;p&gt;(여기까지는 다시 잠들기 전까지의 꿈이다.)&lt;/p&gt;&#10;&lt;p&gt;중학생 때 날 괴롭혔던 아이가 꿈에 나왔다.&lt;/p&gt;&#10;&lt;p&gt;나는 학교에 새로 입학했다.&lt;/p&gt;&#10;&lt;p&gt;(나는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새로 입학하는 꿈을 많이 꾼다. 나는 이 사실을 늘 잊고 지내다가, 잠에서 깨어난 직후에 떠올리고 수 많은 꿈들이 병렬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잠자리에 일어나 뇌가 새로운 방향으로 중력을 받게 되어 압력이 변하면 나는 그 사실을 잊는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감상</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B%8B%B9%EC%8B%A0%EB%93%A4%EC%9D%80-%EC%9D%B4%EB%A0%87%EA%B2%8C-%EC%8B%9C%EA%B0%84-%EC%A0%84%EC%9F%81%EC%97%90%EC%84%9C-%ED%8C%A8%EB%B0%B0%ED%95%9C%EB%8B%A4-%EA%B0%90%EC%83%81/</link><pubDate>Sun, 15 Aug 2021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B%8B%B9%EC%8B%A0%EB%93%A4%EC%9D%80-%EC%9D%B4%EB%A0%87%EA%B2%8C-%EC%8B%9C%EA%B0%84-%EC%A0%84%EC%9F%81%EC%97%90%EC%84%9C-%ED%8C%A8%EB%B0%B0%ED%95%9C%EB%8B%A4-%EA%B0%90%EC%83%81/</guid><description>&lt;p&gt;이따금 확신의 제목들이 있다. 이 제목이면 절대로 재미있겠구나. 내 직감을 관통하는 아름다운 제목들은 틀린적이 없었고, &amp;ldquo;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amp;quot;를 통해 또다시 재증명 되었다. 소설은 적대한 두 조직의 인물 사이의 편지를 중심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고전의 서사를 빌려왔으나, 소설일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이미지와 시공간을 위와 아래로 가로지르는 SF의 사변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감각과 감정으로 들어 찬 문장들의 힘이 읽는 내내 와닿았다. 그리고 백합이다. SF는 응당 디테일한 과학 기술에 기대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나 다양한 인물들의 복잡하고 밀도 있는 서사를 선호하는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난 역시 좋은 작품이라면 자기 취향 정도는 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 얼마나 대단한 취향이라고 이 기회를 포기하는가. 부디 읽으십시오. 아말 엘모흐타르와 맥스 글래드스턴의 &amp;ldquo;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amp;rdquo;&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비기너스 가이드 감상</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B%B9%84%EA%B8%B0%EB%84%88%EC%8A%A4-%EA%B0%80%EC%9D%B4%EB%93%9C-%EA%B0%90%EC%83%81/</link><pubDate>Mon, 16 Nov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B%B9%84%EA%B8%B0%EB%84%88%EC%8A%A4-%EA%B0%80%EC%9D%B4%EB%93%9C-%EA%B0%90%EC%83%81/</guid><description>&lt;p&gt;&amp;ldquo;비기너스 가이드&amp;rdquo; 재밌게 했다. 그런데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창작자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비평가를 위한 이야기 아닌가? 리뷰 몇 개를 찾아보니 코다에만 집중하고 코다의 해석에 실패한 나레이터는 무시해버리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것은 창작자의 이야기가 맞다. 코다는 날것의 아이디어고 나레이터는 내면의 편집자니까. 둘은 한 사람이다. 나레이터는 코다의 창작물을 &amp;lsquo;플레이 할 수 있게&amp;rsquo; 바꾸고, 순서를 재배열하며, &amp;lsquo;의미&amp;rsquo;를 부여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코다가 날뛰도록 두면 의미가 생성되지 않으며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나레이터가 손을 대면 코다가 활력을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비기너스 가이드가 보여주는 건 창작 과정 그 자체이다. 나레이터는 코다를 찾지만 에필로그가 보여주는 끝맺음의 전율은 코다가 아닌 나레이터가 만든 것이다. 비기너스 가이드는 창작에 대한 이야기다. 코다로부터, 우리는 우리 내면의 질문에 대해서 답할 수 없다. 나레이터로부터, 가로등이라는 질서의 존재는 의미 부여자로서의 작가 자아를 상징한다. 결국 코다와 나레이터 사이의 필연적인 갈등이 작품을 완성시킨다. 갈등을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것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200102</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200102/</link><pubDate>Sun, 07 Jun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200102/</guid><description>&lt;p&gt;그저께는 꿈 속에서 군인이었고 대대장한테 부조리를 당했다. 꿈 속의 대대장은 현실의 작전장교였는데 그 사람은 나한테 잘해준 사람 중 하나라서 의아하다. 옛 친구 하나가 타부대 장교로 나와 내 안부를 물었다. 그는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lt;/p&gt;&#10;&lt;p&gt;오늘은 꿈 속에서 집안을 돌아다니다 길을 잃었다. 집은 오래된 유적이었는데 함정이 있었고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빠져 죽었다. 나는 빠져 죽지 않아 다행스럽게 여겼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200606</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200606/</link><pubDate>Sat, 06 Jun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200606/</guid><description>&lt;p&gt;꿈 속에서 나는, 좀처럼 그런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거실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화에는 나이프 소년이라는 귀신이 나왔다. 주인공과 귀신이 첫 대면하는 장소는 쓰레기장이다. 나이프 소년은 오로지 그림자로서 존재하는데, 쓰레기장은 보이지 않는 광원을 둘러가면서 비추었다. 주인공은 쓰레기장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실내라는 걸 알아차리지만, 출입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벽면에 비추어지는 그림자인 나이프 소년은 단추 구멍 눈에 치마를 입은 인형을 하나 집어들어 깨물어부순 뒤, 도망치는 원숭이를 비틀어짠다. 다음은 주인공 차례이지만 나이프 소년은 다른 쓰레기 그림자 더미 안에 숨어 무언가를 기다린다. 주인공은 쓰레기장 구석에서 도르래 장치를 발견한다. 도르래가 돌아가고 있고, 추의 반대쪽은 끝을 알 수 없는 구멍이다. 죽거나, 구멍에 떨어지거나. 주인공은 구멍에 떨어진다.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난다. 주인공은 세 명의 친구와 함께 식탁에서 자신이 꾼 악몽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주인공의 집은 아파트로 육층, 아니면 칠층 정도의 높이에 살고 있으며 한 친구는 남자, 다른 두 친구는 여자로, 모두 주인공의 꿈에 대해서 경청한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이프 소년이 등장한다. 이제 나이프 소년은 그림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창백한 어린아이다. 주인공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나이프 소년은 주인공과 친구들을 겁주다가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린다. 주인공은 어리둥절해하며 베란다 밖으로 시선을 주지만, 곧 다시 고개를 돌린다. 창 밖에는 거대한 여자의 얼굴로서 존재하는 나이프 소년이 있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창 밖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벽에 숨지만, 주인공의 집은 채광이 잘 되는 집이다. 나이프 소년의 보이지 않는 손이 여자 하나를 끄집어내서 베란다 밖으로 내동댕이친다. 모두 비명을 지른다. 영화를 찍는 카메라는 떨어지는 여자를 따라 움직이고, 바닥에 떨어져 손상된 신경으로 인한 반사운동을 하는 여자를 보여준다. 비명과 함께 다음 여자가 떨어진다. 두 사람이나 떨어진 현장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사람들은 나이프 소년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주인공은 나이프 소년이 오직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일 밖에 하지 못한다고, 아래로 내려가면 안전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나이프 소년이 친구에게 시선이 쏠렸을 때, 아파트의 아래층 난간을 밟으며 내려온다. 주인공은 안전하게 1층까지 내려오고 두 친구의 시체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주인공이 고개를 들어올리자 남아있던 친구가 뭐라고 고함을 친다. 나이프 소년이 주인공을 쥐고 몇 번이고 바닥에 내동댕이 친다. 나이프 소년은 더이상 주인공이 움직이지 않는데도 만족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는 주인공을 계속해서 비춘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에서 감상</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C%84%B8%EC%86%8D%EC%A0%81%EC%9D%B8-%EC%BE%8C%EB%9D%BD%EC%9D%98-%EC%A0%95%EC%9B%90%EC%97%90%EC%84%9C-%EA%B0%90%EC%83%81/</link><pubDate>Thu, 28 May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C%84%B8%EC%86%8D%EC%A0%81%EC%9D%B8-%EC%BE%8C%EB%9D%BD%EC%9D%98-%EC%A0%95%EC%9B%90%EC%97%90%EC%84%9C-%EA%B0%90%EC%83%81/</guid><description>&lt;p&gt;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전쟁 물자를 생산하던 바이오 공장의 공장장들은 통제에서 벗어나 각자의 영역에 군림하는데 군인들 사이에서 각각 정원과 정원사라고 불린다. 이런 정원들은 기존 생태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생물 병기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피해야만 하는 지역인데, 정작 주인공 일행이 들어선 정원은 겉보기에 안전할 뿐만 아니라 들어서고 싶게끔 유혹한다. 본사로 돌아가기 위해 시간이 지체할 수 없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일행은 정원을 가로지르게 되는 것이 소설의 도입부다. 정원의 생물들에 대한 기이하면서도 어딘가 꿉꿉한 묘사는 직접 체험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흥미로운 질감으로 주제와 맞아떨어지고 있다. 소설은 목적과 지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어떤 인물은 그것을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비틀고, 어떤 인물은 지니고 방향성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목적을 완전히 잃었다 새로운 것으로 채워넣기도 한다. 이런 바람들이 서로 교차하며 소설은 대단원으로 나아가 독자들이 알고는 있었으나 쉬이 바라지 않았던 결말에 도달한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용솔로지 감상</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C%9A%A9%EC%86%94%EB%A1%9C%EC%A7%80-%EA%B0%90%EC%83%81/</link><pubDate>Sun, 10 May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C%9A%A9%EC%86%94%EB%A1%9C%EC%A7%80-%EA%B0%90%EC%83%81/</guid><description>&lt;p&gt;#용솔로지&lt;/p&gt;&#10;&lt;p&gt;텀블벅 프로젝트 drag-on을 통해 출간된 &amp;ldquo;hi there dragon─안녕, 드래곤&amp;quot;과 &amp;ldquo;way to dragon─드래곤에게 가는 길&amp;rdquo; 두 권의 단편집은 드래곤(또는 용)을 소재로 하고 있다. 첫 번째 단편집의 경우 현대에서 미래에 이르는 여러 시간대로부터, 두 번째 단편집의 경우 장르 판타지에 근거한 드래곤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을 제외한다면 각 단편은 장르와 주제가 상이한 편이다. 이를 통해 오래전부터 수 많은 함의를 가져온 드래곤에 대한 창작자의 태도들을 엿볼 수 있었다. (이하의 감상은 작품을 모두 읽기 전 까지는 알아차리기 힘든 정도의 다소의 미리니름이 있다.)&lt;br&gt;&#10;&amp;ldquo;hi there dragon─안녕, 드래곤&amp;quot;의 경우 그 배경이 장르 판타가 아닌 장소에 있기 때문에 작중 인물들은 드래곤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단편집의 작품들은 신화, 설화, 옛 이야기를 믿지 않는 이들을 내세운 다음, 드래곤의 존재를 드러내 그 부정을 부정하는 이중부정의 이야기들이다.&lt;br&gt;&#10;이경희의 &amp;lsquo;마음 여린 땅꾼과 산에 깔린 이무기 설화&amp;rsquo;의 경우 한 땅꾼이 돌에 깔린 이무기와 그 이무기를 살리려는 여인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는 전혀 알지 못했던 거대한 이야기에 휩쓸릴 위기에 처한다. 남세오의 &amp;lsquo;제131드래곤비행대대&amp;rsquo;의 경우 작중 주인공인 드래곤들은 현대화된 병기를 가진 인간에게 패배하여 굴종한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하지만 어떤 용은 인간의 강점이 곧 약점임을 알아차린다. 포송의 &amp;lsquo;백일홍이 피었습니다&amp;rsquo;의 주인공은 작중 옛 이야기의 답을 골몰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어머니와 누이들을 거쳐 곧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아 차릴 때 용이 나타난다. 이시우의 &amp;lsquo;진언과 용&amp;rsquo; 속 주인공은 양고기 요리를 주문하는 기이한 손님에 대해 믿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오래된 이야기 속 싸움의 복판에 놓인 것을 알게 되자 곧 자신의 역할도 알아차린다. 미르비의 &amp;lsquo;2020년 1월 25일에 저장된 글입니다&amp;rsquo;의 주인공은 자신이 드래곤이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때문에 이 글은 곧 자신의 존재증명이 된다. amrita의 &amp;lsquo;울트라마린 엑소티카&amp;rsquo;에선 인공 달을 배경으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잊힌 이야기를 알아차릴 때 각성한다.&lt;br&gt;&#10;이중부정이 곧 강한 긍정인 것처럼, 각 소설은 숨겨지거나 잊혀지거나 침잠된 신비를 들추어내고, 드래곤을 과거의 존재가 아닌 현재의 존재로 되살려 숨을 불어넣는다.&lt;br&gt;&#10;&amp;ldquo;way to dragon─드래곤에게 가는 길&amp;quot;의 경우 모두 장르 판타지의 이차세계를 이루고 있으며 드래곤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작품 속 드래곤들은 어딘가 모자라거나, 손상되어 있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따라서 이 단편집의 작품들은 불충한 신화를 회복시키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lt;br&gt;&#10;송한별의 &amp;lsquo;용과 편의점과 모험가&amp;rsquo;의 주인공 용은 고독한 존재이나 산책 중 둥지 가까이 놓인 편의점과 그 주인을 발견한다. 반월웅의 &amp;lsquo;용을 훔친 도마뱀&amp;rsquo;의 경우 도마뱀이라고 불리는 도둑은 자신의 모습을 흉내내는 기이한 존재를 발견한다. 그 존재는 어딘가 어리숙하고 미련하기에 도둑은 그것을 살갑게 보살피고 애정을 준다. 반도의 &amp;lsquo;조금 오래된 소원&amp;rsquo; 속 주인공은 어느 날 용을 만나서 술친구가 되지만, 그 용은 인간 세계를 위협하는 강대한 적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일그러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재은하늘의 &amp;lsquo;바닐라&amp;amp;크림&amp;rsquo;은 마녀와 어린 드래곤이 친구를 맺으며 시작한다. 왕의 명령으로 마녀가 붙잡혀가자 드래곤은 마녀를 구하러 가지만, 예상 밖의 결과를 맞이한다. 연여름의 &amp;lsquo;론다&amp;rsquo; 또한 마법사와 어린 드래곤이 친구를 맺는데, 마법사는 마법사답지 못하고 드래곤 또한 드래곤답지 못하다. 하지만 이 둘은 자신이 정해진 틀 밖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lt;br&gt;&#10;상상 속의 존재이기에 일견 완벽해보이는 생물인 드래곤이지만, 고독한 절대자의 존재는 이야깃거리로 삼을 수 없다. 때문에 드래곤은 필연적으로 이야기 속에서 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성장담의 주인공이 된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제3측으로</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0%9C3%EC%B8%A1%EC%9C%BC%EB%A1%9C/</link><pubDate>Thu, 12 Mar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0%9C3%EC%B8%A1%EC%9C%BC%EB%A1%9C/</guid><description>&lt;p&gt;너는 오늘 새벽에도 잠을 설쳤다. 꿈은 파편적이었고 불완전했고 흔들렸으며 기억에 거의 남지 않았다. 너는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앞섬을 ■측 손으로 감아쥐고 그 아래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두어시간의 짧은 수면 이후 침대에서 밤을 지새운 너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 우측 다리를 먼저 뻗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다행히 오른다리와 오른팔의 보조기는 이제 학습을 완전히 끝내어 불편함이 없었지만, 너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으스스하게 생각되었다. 너는 몸의 우반편(右半片)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니가 느끼고 직접 움직이는 ■측과 달리 너의 몸을 지탱하는 나머지 우측은 허상으로 밖에 받아들여졌다.&lt;br&gt;&#10;너는 약속 시간에 맞춰 오브라이언 교수를 찾아갔다. 너의 상담자이자 주치의인 오브라이언은 사고 이후 지금까지 너의 편측무시(片側無視)와 강박주의, 그리고 환각에 대한 상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언제나처럼 너에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시계와 집, 꽃을 따라그리도록 했고, 너는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다고 생각했지만, 오브라이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좌절감을 느꼈다. 이를테면 너는 시계를 따라그릴 때 분명 너에게 보이는 ■측의 숫자를 적어 내렸다. 분명 그 뒤 시계에 우측에 오는 숫자, 2와 1, 이어 2, 3, 4, 5를 써넣어야 했지만, 너는 인식되지 않는 것을 인식하기 잠시 주저하였으나 손상된 우반구 측두-두정엽과 망상체 병변에 의해 끝내 그려내지 못했다. 다소간 너도 느끼지 못한 채 우측 손을 움찔 거린 것은 우반편 보조기의 학습 능력 때문이었다.&lt;br&gt;&#10;오브라이언 교수가 말했다.&lt;br&gt;&#10;&amp;ldquo;트레이닝은 하고 있습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측에서 그…&amp;rdquo;&lt;br&gt;&#10;&amp;ldquo;우측이요.&amp;rdquo;&lt;br&gt;&#10;&amp;ldquo;예. 그… 측.&amp;rdquo;&lt;br&gt;&#10;&amp;ldquo;음, 좋습니다. 방법을 바꾸죠. ■측을 제1측이라고 부르고 우측을 제2측이라고 부릅시다. 어때요?&amp;rdquo;&lt;br&gt;&#10;&amp;ldquo;제1측에서 제2측. 예. 부르기가 한결 편하네요. 아, 그래서 트레이닝 말이죠. 제1측에서 제2측에서 야구공을 주고 받는 일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보조기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amp;rdquo;&lt;br&gt;&#10;&amp;ldquo;예… 다소 섬뜩하긴 합니다만.&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습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예.&amp;rdquo;&lt;br&gt;&#10;너는 오브라이언 교수가 과연 너를 이해할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설명했다.&lt;br&gt;&#10;&amp;ldquo;그러니까 제가 제1측의 손에 공을 쥐고 있다가 제2측으로 공을 던지면, 제 시야에서 공은 사라져버립니다. 선생님은 여전히 그때 저의 제2측 손으로 공을 쥐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죠. 그러다가 문득, 당연히 그럴 때가 되었다고 싶을 때, 공이 던져져 제1측 손에 떨어집니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공이 떨어져서 그걸 잡지못한다면 조금은 덜 섬뜩할 겁니다. 갑자기 물건이 툭하고 떨어지는 건, 저에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공 주고받기 트레이닝은 마땅한 합의가 되어있는 것처럼 굴기 때문에 으스스하게 느껴집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마치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가 공을 쥐어주는 것처럼?&amp;rdquo;&lt;br&gt;&#10;&amp;ldquo;예.&amp;rdquo;&lt;br&gt;&#10;오브라이언 교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교수를 이해시켰다는 것에 만족을 느끼지만, 교수의 다음 말에서 공포를 느낀다.&lt;br&gt;&#10;&amp;ldquo;하지만 트레이닝의 성과는 있습니다. 보조기의 패턴이 어느 정도 일치되어 일상 생활에 큰 불편이 없겠지만, 목표로 하시는 엔지니어 업무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좀더 정교한 작업 능력이 필요할 겁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계속 트레이닝을 하라는 거군요.&amp;rdquo;&lt;br&gt;&#10;&amp;ldquo;섬뜩함이 생활에 지장을 줍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약을 늘릴 수 있을까요?&amp;rdquo;&lt;br&gt;&#10;오브라이언 교수는 가로젓는다.&lt;br&gt;&#10;&amp;ldquo;이미 드릴 수 있는 최대 용량입니다. 약도 바꿔볼 수 있는만큼 바꿨고, 신약은 좀더 기다려야 됩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방법이 없군요, 그럼.&amp;rdquo;&lt;br&gt;&#10;&amp;ldquo;일기는 어떻습니까?&amp;rdquo;&lt;br&gt;&#10;너는 잠깐 시선을 피한다.&lt;br&gt;&#10;&amp;ldquo;아직 쓰고 있지 않습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꼭 저한테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자기 고백은 바일 씨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알겠습니다.&amp;rdquo;&lt;br&gt;&#10;오브라이언 교수는 너를 신용하지 않는 것 같기도, 믿는 것 같기도 하다.&lt;br&gt;&#10;&amp;ldquo;아직도 꿈을 꿉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예. 이야기 해볼까요?&amp;rdquo;&lt;br&gt;&#10;오브라이언 교수는 별다른 기대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lt;br&gt;&#10;너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과거의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조난, 고장나고 밀폐된 왕복선, 일흔 여덟 명의 승객, 외계 기생생물 쿨리, 쿨리에 감염된 사내, 부족한 식량, 이교도, 퍼지는 쿨리, 식인, 피의 제단, 사교도, 파멸, 그리고 구조.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제1측. 기억나지 않는 왕복선의 제2측에서 벌어난 일들에 대해. 완성되지 않고 파편화된 사건에 대하여.&lt;br&gt;&#10;&amp;ldquo;…좋습니다. 예의 왕복선 사건에 조사관 찬은 별다른 연락이 없다고 합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조사는 막바지고 기록된 장비를 모두 확인 했다고 합니다. 새로줄 수 있는 정보는 없다고 하더군요.&amp;rdquo;&lt;br&gt;&#10;&amp;ldquo;아직도 쿨리가 걱정 됩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amp;rdquo;&lt;br&gt;&#10;&amp;ldquo;이미 현대 의학으로 할 수 있는 검사는 모두 끝냈습니다. 바일 씨 몸에는 쿨리가 없어요.&amp;rdquo;&lt;br&gt;&#10;&amp;ldquo;선생님… 아시다시피…&amp;rdquo;&lt;br&gt;&#10;&amp;ldquo;예. 알고 있습니다. 외계생물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쿨리가 인간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죠. 덕분에 쿨리의 장기의태 논문도 봤고, 솔직히 이번에 처음 말씀드리지만 학회도 한 번 참가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이 많더군요.&amp;rdquo;&lt;br&gt;&#10;&amp;ldquo;아,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지셨을 줄은 몰랐습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개인적인 흥미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쿨리 아이러니 라는 개념도 있더군요. 알고 계십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예.&amp;rdquo;&lt;br&gt;&#10;&amp;ldquo;완전의태된 쿨리가 완전히 해당 조직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 그것은 더이상 쿨리가 아니게 되죠.&amp;rdquo;&lt;br&gt;&#10;너는 차마 입으로 뱉지 못한 말을 마음 속으로 웅얼거린다. 그게 쿨리의 무서움이죠. 쿨리가 뇌 의태를 마칠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이 쿨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겁니다. 바로 저처럼. 저는 구조 당하기 직전 분명 제단에 묶여 있었고 코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구조원은 제 코 안쪽에서 선명하게 파고든 상처가 있다고했고, 그것은 도구를 통해 날카로운 것이 헤집었으며, 사교도의 도구에 의한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쿨리를 집어넣기 위한 통로였을 겁니다.&lt;br&gt;&#10;하지만 너는 그 모든 말을 하지 않는다.&lt;br&gt;&#10;너를 안심시키려는 오브라이언의 말에 어색하게 웃고 고개를 끄덕인다.&lt;br&gt;&#10;상담을 끝낸 너는 자리에서 일어난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앙겔루시움 B동 펜트하우스</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5%99%EA%B2%94%EB%A3%A8%EC%8B%9C%EC%9B%80-b%EB%8F%99-%ED%8E%9C%ED%8A%B8%ED%95%98%EC%9A%B0%EC%8A%A4/</link><pubDate>Wed, 11 Mar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5%99%EA%B2%94%EB%A3%A8%EC%8B%9C%EC%9B%80-b%EB%8F%99-%ED%8E%9C%ED%8A%B8%ED%95%98%EC%9A%B0%EC%8A%A4/</guid><description>&lt;p&gt;영선 앙겔루시움은 50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5층까지는 상가, 나머지는 A동과 B동으로 나뉘어진 주거 공간으로 362세대였다. A와 B 두 동 안에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앙겔루시움에 사는 이들은 도시의 많은 이들과는 달리 좀더 선명하게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사태가 확대되기 전에 도망가거나, 아니면 사태가 확대 되더라도 이 고층 아파트가 최후의 보루가 되어줄 거라고 믿거나. 아니면 그냥 집값이 너무 비싸서 죽어서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집안을 들여다보면 끝까지 남아있다 죽어있던 이들이 곧잘 있었다.&lt;br&gt;&#10;이를테면 세대주 이영찬의 집에는 세 사람이 살았다. 이영찬과 그 가족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수도는 최근까지도 연결 되어 있었으니 담을 수 있는 그릇마다 물이 차 있긴 했지만, 음식이 없었다. 4인용 식탁 위에 있는 사골용 냄비에는 갈색빛이 나는 퉁퉁 불은 무언가가 있었는데, 꺼내서 확인해보니 가죽벨트였다. 초기에 음식을 마련하는데 실패했던 것으로 보였다. 아내와 아이는 거실 소파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죽었고, 이영찬은 안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부패 정도를 보아선 이영찬은 아내와 아이가 죽은 뒤 죽은 것 같았다. 품에는 일기도 남아 있었는데, 마지막 잠에 들기 전에 쇠약사를 예견하고 있었다. 초기 내용은 절망적이었지만 날이 지날수록 사색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고 허기에 대한 갈망 앞에 놓인 자신을 성찰하는 내용으로 마무리 되었다.&lt;br&gt;&#10;물론 이영찬 같은 사람만 있지는 않았다. 세대주 서영태 같은 사람도 있었다. 서영태는 &amp;lsquo;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amp;rsquo; 준비가 된 사람으로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가구를 뜯어 차곡차곡 쌓아놓은 바리케이트를 넘어가느라 시간을 꽤나 보내야했다. 아직 뜯지도 않은 2리터 물 여섯 개 들이가 내 머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고, 작은 방 하나는 창고로 여섯 칸 앵글로 보존식이 쌓여 있었다. 베란다는 생활감이 가득했다. 가스가 초기에 끊겼지만 비축된 가스통은 물론 기름도 몇 통 있었다. 가스버너 옆으로는 요리에 사용한 후라이팬과 냄비에 찌든 때와 기름이 묻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서영태는 마지막까지 배불리 먹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풍요로운 베란다가 마주하고 있는 거실에는 서영태와 아내 여민지, 그리고 세 남매의 목이 모빌처럼 매달려 있었다. 맞이인 서민하가 열두 살이었고 막내인 서라윤이 여섯 살이었다. 서영태의 안방 책상 위에는 수면유도제 레돌민이 까여 있었는데 손을 묶은 것이 서영태 뿐인데다, 알약이 까인 갯수로 보아선 세 아이와 여민지가 먹고 서영태가 남은 이들의 목을 걸고 난 뒤 스스로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서영태와 그 가족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지만 풍요로운 가운데 비축된 물과 식량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서영태의 안방에는 서핑보드가 몇 개나 있었고, 지하주차장에 짚차와 캠핑카가 있었고, 함께 찍은 많은 사진들 속에서 가족은 웃고 있었다.&lt;br&gt;&#10;그리고 차수진 같은 사람도 있었다.&lt;br&gt;&#10;차수진의 집이 마지막이었다. B동 펜트하우스로 마지막 층 전체를 집을 사용하는데다 옥상 정원을 혼자서 사용하고 있었다. 앙겔루시움 같은 이름을 가진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라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세대주인 차수진의 열 일곱으로 나와 나이가 같다는 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차수진의 집에는 생활감이 거의 없었다. 차수진은 방이 열 둘, 화장실이 다섯 개나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 같았지만 자신의 소지품은 극히 적었다. 교과서와 문제지들, 스마트폰, 네 벌의 교복과 드레스룸의 옷걸이 하나 정도에 모두 걸리는 사복. 가구는 거의 없었고 가전제품과 부엌은 작은 쪽을 사용하는 것 같았고 냉장고는 텅 비어있었다. 나는 차수진이 현명하게도 아파트에 남지 않고 도망간 쪽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차수진이 미련했다는 것은 아니다. 차수진은 이영찬이나 서영태 보다 더 저항적인 사람이었다. 단지 그 상대가 아버지였을 뿐. 차수진의 일기를 보았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차수진을 찾기 위해 세 번이나 헬리콥터를 보냈고 그 헬리콥터는 이 옥상에 내려앉았다. 군인이 두 번, 직속 팀이 한 번 이 펜트하우스를 둘러보았고 그녀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렇게나 꽁꽁 숨었으니 차수진을 찾을 수 있을리 없었다. 나는 완전히 여위어 죽은 차수진을 일기와 함께 환기구에서 발견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달로</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8B%AC%EB%A1%9C/</link><pubDate>Tue, 10 Mar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8B%AC%EB%A1%9C/</guid><description>&lt;p&gt;모두가 달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lt;br&gt;&#10;들플과 벌레 같은 미물부터 산군들까지.&lt;br&gt;&#10;땅을 딛고 사는 것들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창왕(蒼王)들은 비행을 접고 높은 바위산 위에 걸터 앉는다. 그저 두려운 눈으로 달이 오는 걸 본다.&lt;br&gt;&#10;별잡이들은 이번 달이 가장 가까울 것이라 예견하였다.&lt;br&gt;&#10;그 말은 사실이었다.&lt;br&gt;&#10;지금까지 달은 하늘의 3할을 가릴 정도였지만 오는 달은 이미 4할을 넘어서고 있었다.&lt;br&gt;&#10;바람이 달을 향해 솟구쳤고, 벌레들이 휘말려 올랐다.&lt;br&gt;&#10;치솟아 오른 흙먼지와 낙엽, 벌레들은 이윽고 우리가 있는 맞이산을 지나쳐 계속해서 올라갔다.&lt;br&gt;&#10;희미하고 거대한 기둥이 우리 땅과 달로 이어지고 있었다.&lt;br&gt;&#10;와송은 넙적한 바위에 앉아 웃었다.&lt;br&gt;&#10;&amp;ldquo;저 해충들이 벌 받는 걸 봐라.&amp;rdquo;&lt;br&gt;&#10;&amp;ldquo;정화가 시작되었습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준비는?&amp;rdquo;&lt;br&gt;&#10;&amp;ldquo;완벽합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못난놈.&amp;rdquo;&lt;br&gt;&#10;그 말에 와송의 아들 와후가 의아하게 물었다.&lt;br&gt;&#10;&amp;ldquo;왜 그러십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달님에게 인간의 완벽에 성에 찰 것 같으냐? 완벽은 쓸모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라. 원념만이 달님에게 닿는다.&amp;rdquo;&lt;br&gt;&#10;&amp;ldquo;아. 죄송합니다.&amp;rdquo;&lt;br&gt;&#10;와후는 금새 꾸벅 숙인다. 웃어른을 존경하는 청년이다.&lt;br&gt;&#10;와송이 묻는다.&lt;br&gt;&#10;&amp;ldquo;최선을 다했느냐?&amp;rdquo;&lt;br&gt;&#10;&amp;ldquo;최선을 다했습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그럼 능히 닿겠구나.&amp;rdquo;&lt;br&gt;&#10;&amp;ldquo;달님만이 아시겠지요.&amp;rdquo;&lt;br&gt;&#10;그 말에 와송이 빙긋 웃는다. 와후는 예의를 알 뿐만 아니라 배우는 것도 빠르다. 확실히 달에 도전할 자격을 갖추었다. &amp;lsquo;여행자&amp;rsquo;답다.&lt;br&gt;&#10;달이 더 커지고 있다.&lt;br&gt;&#10;다른 부족들은 별잡이들의 말을 듣고 여행자를 여럿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lt;br&gt;&#10;우리는 예년과 같은 둘이었다.&lt;br&gt;&#10;나와 와후.&lt;br&gt;&#10;둘 다 여행자가 될 시험을 통과했다.&lt;br&gt;&#10;달은 더 가까워졌다.&lt;br&gt;&#10;이미 하늘을 가득히 메워서, 달이 얼마나 하늘을 차지하고 있는지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lt;br&gt;&#10;보이는 것만이 전부도 아니었다.&lt;br&gt;&#10;모두 달이 가까워짐에 따라 공유하는 감각이 있었다.&lt;br&gt;&#10;경신(傾身).&lt;br&gt;&#10;우리가 의식하기 전에 우리의 몸과 영혼이 이미 달에게 빼앗기고 있었다.&lt;br&gt;&#10;성질이 급한 뿔치 부족은 제자리 뛰기를 시작했다.&lt;br&gt;&#10;본래라면 제 정강이만큼 밖에 못뛰는, 집채만한 부락타가 제 키를 훌쩍 뛰어넘어 솟아오른다. 고삐가 풀려 신이 난 육고기같다.&lt;br&gt;&#10;와후는 또 웃는다.&lt;br&gt;&#10;&amp;ldquo;멍청한 놈들. 신났군. 저러다 다리가 부러지면 마지막 도약을 어찌하려고. …너흰 제단 위로 올라가 마지막 정비를 시작해라.&amp;rdquo;&lt;br&gt;&#10;나와 와후는 고개를 끄덕인다.&lt;br&gt;&#10;지금까지는 부족의 도움을 받았지만 제단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건 이제 나와 와후 뿐이다.&lt;br&gt;&#10;맞이산 정상에서 다시 제단 위로.&lt;br&gt;&#10;허리 높이에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지만 오르는 것은 수월하다.&lt;br&gt;&#10;점점 더 쉬워진다.&lt;br&gt;&#10;어찌나 쉬운지, 달이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지막 세 단은 단번에 뛰어 넘는다.&lt;br&gt;&#10;잘못하면 제단을 넘어설 뻔하지만, 와후가 내 허리를 잡아챈다.&lt;br&gt;&#10;&amp;ldquo;괜찮습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고마워.&amp;rdquo;&lt;br&gt;&#10;제단 위에서 마지막 정비를 마친다.&lt;br&gt;&#10;모두 계획대로다.&lt;br&gt;&#10;준비는 끝났다.&lt;br&gt;&#10;우리는 와송의 신호만을 기다린다.&lt;br&gt;&#10;와송은 창왕들의 깃털을 엮어 만든 깃발을 손에 쥐고 있다.&lt;br&gt;&#10;우리는 저 깃발이 손에 오르는 것만 기다린다.&lt;br&gt;&#10;누군가 외친다.&lt;br&gt;&#10;&amp;ldquo;뿔치 오릅니다!&amp;rdquo;&lt;br&gt;&#10;그에 따라 모두의 시선이 옮겨진다.&lt;br&gt;&#10;뿔치 부족의 염원을 담은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lt;br&gt;&#10;&amp;ldquo;뿔치! 달로!&amp;rdquo;&lt;br&gt;&#10;&amp;ldquo;달로!&amp;rdquo;&lt;br&gt;&#10;&amp;ldquo;솟아라!&amp;rdquo;&lt;br&gt;&#10;&amp;ldquo;닿아라!&amp;rdquo;&lt;br&gt;&#10;제단 위에는 거대하게 솟은 원통이 있다.&lt;br&gt;&#10;그 원통 끝에 부락타가 올라간다.&lt;br&gt;&#10;원통 아래에는 거대한 심지가 있고, 뿔치의 부족장이 불꽃을 붙인다.&lt;br&gt;&#10;제단 위에서 와후가 외친다.&lt;br&gt;&#10;&amp;ldquo;부락타!&amp;rdquo;&lt;br&gt;&#10;들리지 않을 거릴텐데도, 부락타가 흔드는 손이 보인 것 같다.&lt;br&gt;&#10;&amp;ldquo;달에서 보자!&amp;rdquo;&lt;br&gt;&#10;부락타고 있던 거대한 원통, 달을 향해 가는 기둥 끝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lt;br&gt;&#10;뿔치의 제단은 달로 갈 때마다 파손된다.&lt;br&gt;&#10;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상처를 남겼다.&lt;br&gt;&#10;그 누구보다도 빨리, 원기둥이 솟아오른다.&lt;br&gt;&#10;우리의 시야를 지나, 달을 향해간다.&lt;br&gt;&#10;부락타는 시야에서 곧 사라진다.&lt;br&gt;&#10;달을 향한 것은 틀림없으나 달에 도달했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lt;br&gt;&#10;도달했더라도, 그 시간 동안 부락타는 달이 허용되지 않는 압력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lt;br&gt;&#10;뿔치 부족은 연연하지 않는다. 여행자는 떠났다. 다음 여행자를 떠나보내야 할 때다.&lt;br&gt;&#10;와후가 말한다.&lt;br&gt;&#10;&amp;ldquo;이번에 뿔치는 열 개를 준비 했다던데.&amp;rdquo;&lt;br&gt;&#10;&amp;ldquo;그만한 여력이 있나?&amp;rdquo;&lt;br&gt;&#10;&amp;ldquo;쥐어짜냈겠지. 별잡이들이 우리 생에 달님이 제일 가까워진다고 했으니까. 이번 여행을 끝내면 뿔치는 당분간은 달로 여행자를 보내지 못할거야.&amp;rdquo;&lt;br&gt;&#10;나는 고개를 끄덕인다.&lt;br&gt;&#10;가볍게 제단에서 튕겨져 올라본다.&lt;br&gt;&#10;이미 달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다.&lt;br&gt;&#10;나의 존재가 남아있는지 어떤지 의아스럽다.&lt;br&gt;&#10;와송이 제단 아래에서 외쳤다.&lt;br&gt;&#10;&amp;ldquo;아직 이르다!&amp;rdquo;&lt;br&gt;&#10;나는 알겠단 뜻으로 팔을 흔든다.&lt;br&gt;&#10;다음은 고래 부족이다.&lt;br&gt;&#10;뿔치와 같이 화약을 쓰지만 그들은 직접 여행자를 쏘아보내지 않는다.&lt;br&gt;&#10;고래 부족은 포구를 달로 향하고 폭력적으로 쏘아댄다.&lt;br&gt;&#10;하지만 쏘아내는 것은 대포알이 아닌 거대한 돛이다.&lt;br&gt;&#10;돛의 끝에는 가볍고 튼튼한 벌레실로 짠 사다리가 짜여있다.&lt;br&gt;&#10;돛은 금새 시야를 지나쳐서 달로 나아가지만, 사다리가 어디까지 이어져있는지는 알 수 없다.&lt;br&gt;&#10;사다리가 달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면, 사다리를 오르던 이들은 모두 땅으로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래 부족에게 언제나 감내하던 일이었다.&lt;br&gt;&#10;&amp;ldquo;저 욕심 때문에 달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을 거야.&amp;rdquo;&lt;br&gt;&#10;&amp;ldquo;맞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달에서도 이쪽으로 돛을 던저 이어줄 수 있다면…&amp;rdquo;&lt;br&gt;&#10;&amp;ldquo;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달로 가야하지.&amp;rdquo;&lt;br&gt;&#10;&amp;ldquo;우리가 갈겁니다.&amp;rdquo;&lt;br&gt;&#10;와송이 외친다.&lt;br&gt;&#10;&amp;ldquo;준비해라!&amp;rdquo;&lt;br&gt;&#10;우리는 그렇게 한다.&lt;br&gt;&#10;뿔치는 폭죽.&lt;br&gt;&#10;고래는 사다리.&lt;br&gt;&#10;우리는 날개다.&lt;br&gt;&#10;와송이 외친다.&lt;br&gt;&#10;&amp;ldquo;지금!&amp;rdquo;&lt;br&gt;&#10;우리는 연습한대로 바닥을 밀어찬다.&lt;br&gt;&#10;몇 번째인지 모를 뿔치 부족의 원기둥과 고래 부족의 사다리가 솟아오르고, 우리는 그 사이로 뛰어든다.&lt;br&gt;&#10;우리는 날개를 조작한다.&lt;br&gt;&#10;와송은 완벽한 기술자다. 제대로 작동한다.&lt;br&gt;&#10;인간은 창왕 흉내를 낼 수 없지만 달맞이 날만큼은 다르다.&lt;br&gt;&#10;유일하게 창왕이 될 수 있는 날이다.&lt;br&gt;&#10;날개를 퍼득이며 창왕 흉내를 낸다.&lt;br&gt;&#10;달을 속인다.&lt;br&gt;&#10;우리를 앞서 갔던 기둥들과 돛을 지나친다.&lt;br&gt;&#10;땅으로부터 불어와 달로 가는 바람이 우리의 염원과 같다.&lt;br&gt;&#10;맞이산이 조막만하게 보이고, 공기가 차가워진다.&lt;br&gt;&#10;호흡이 가빠진다.&lt;br&gt;&#10;우리의 땅이 달과 같이 둥근다는 걸 안다.&lt;br&gt;&#10;와후의 머리에 서리가 끼는 걸 본다.&lt;br&gt;&#10;내 머리칼이 깨어지며 나도 같다는 걸 알게 된다.&lt;br&gt;&#10;우리는 두 손을 붙잡는다.&lt;br&gt;&#10;우리 땅과 달의 가운데, 그 언저리까지 왔다.&lt;br&gt;&#10;&amp;ldquo;부족해.&amp;rdquo;&lt;br&gt;&#10;&amp;ldquo;아직 모릅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알 수 있어. 달님이 멀어진다.&amp;rdquo;&lt;br&gt;&#10;와송은 초조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lt;br&gt;&#10;&amp;ldquo;당신이 더 가볍습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서?&amp;rdquo;&lt;br&gt;&#10;&amp;ldquo;당신이 가야만 합니다.&amp;rdquo;&lt;br&gt;&#10;나는 내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다.&lt;br&gt;&#10;&amp;ldquo;내가 가야해.&amp;rdquo;&lt;br&gt;&#10;&amp;ldquo;돕겠습니다. 발을 당기십시오.&amp;rdquo;&lt;br&gt;&#10;나는 와송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lt;br&gt;&#10;달맞이를 할 때마다 와송과 연습한 적이 있었다.&lt;br&gt;&#10;우리는 서로의 발을 겹친다.&lt;br&gt;&#10;나는 달을 보고, 와송은 땅을 본다.&lt;br&gt;&#10;나는 와송을 잠깐 내려다본다.&lt;br&gt;&#10;&amp;ldquo;기다리고 있을게.&amp;rdquo;&lt;br&gt;&#10;와송이 웃는다.&lt;br&gt;&#10;그는 내 발을 밀어찬다.&lt;br&gt;&#10;동시에 나도 솟구쳐 오른다.&lt;br&gt;&#10;아니, 나는 눈을 깜빡인다.&lt;br&gt;&#10;나는 존재를 되찾고 있었다. 무게가 돌아오고 있었다.&lt;br&gt;&#10;그리고 그것은 내 땅의 것이 아닌 달의 것이었다.&lt;br&gt;&#10;달은 내가 거절할 새도 없이 나를 허락하고 있었다.&lt;br&gt;&#10;눈물이 새어나왔다.&lt;br&gt;&#10;저기, 우리 먼 선조들이 기다리는 저 초록의 땅으로.&lt;br&gt;&#10;나는 돌아간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김군의 임무</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9%80%EA%B5%B0%EC%9D%98-%EC%9E%84%EB%AC%B4/</link><pubDate>Mon, 09 Mar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9%80%EA%B5%B0%EC%9D%98-%EC%9E%84%EB%AC%B4/</guid><description>&lt;p&gt;그 니콘 DSLR 카메라는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발견 되었다.&lt;br&gt;&#10;그러니까 삼엽충이 바다에 버글거리던 지층에서 발견 되었다는 말인데, 실제로 해당 시대의 사진도 한 장 찍혀 있었다.&lt;br&gt;&#10;발견한 것은 고생물학자 숀 스미스 교수였다. 불행히도 요원 김군은 오파츠 수거 임무를 맡고 있었고 언제나 절차대로 수행해야 했다. 그래도 김군은 나름의 선심을 썼다. 고생물학자 숀 스미스의 기억을 지우기 전에 그 사진(시야각을 가득 채운 삼엽충 무리)을 한 번 보여주었고 그는 정신을 차린 뒤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물론 숀 스미스는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늘 자신을 괴롭혀 오는 안구 건조증 탓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lt;br&gt;&#10;김군은 카메라와 함께 해당 자리에 있어야할 다른 무언가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카메라의 원래 소유자는 해당 지층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튼 김군은 이제 남은 유일한 단서인 카메라를들여다볼 방법 밖에 없었으므로, 그렇게 했다.&lt;br&gt;&#10;마지막 사진은 앞서 숀 스미스와 함께 보았던 버글버글한 삼엽충무리였고, 그 다음 사진은 기대도 하지 않았던 행성 표면 사진이었다. 김군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초적인 상식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해당 행성 표면은 수성도, 금성도, 화성도 아니었고 태양계 내의 다른 단단한 위성도 아니었으며 행성에서 퇴출 된 그 명왕성도 아니었다.&lt;br&gt;&#10;사진은 금속질 표면으로 번들거렸고 그 때문에 니콘 DSLR 카메라와 그것을 찍는 누군가의 모습도 일부 비추어보였고, 그 위로는 두 개의 청색 태양이 서로를 잡아먹을 듯 덮쳐지는 모습으로 사납게 찍혀 있었다. 그 외의 별들이 찍혀 있으므로 힌트가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김군의 천문지식으로는 어려웠다.&lt;br&gt;&#10;김군은 가장 가까운 전문가들인 21세기의 NASA에 디밀어봤지만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결과만 얻었다. 그래도 전문가들인 그들은 성심성의 답변해주길, 표면의 매끈한 정도로 보아 중성자별의 이미지일 거란 이야기를 얻었다. 김군이 바라는 대답은 아니었다.&lt;br&gt;&#10;때문에 김군은 두 번째로 가까운 전문가, &amp;lsquo;꿈 꾸는 자&amp;rsquo; 나카노 후미나리를 찾아갔다. 나카노는 일본의 SF작가로 자신의 작가적 능력이 많은 독서와 공부, 그리고 조금의 재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순수한 작가였다. 데뷔 단권 라이트노벨의 판매량은 5만부로 인기 있는 작품이었지만 이후 작품에서 고배를 마셔야했고 3년 차를 지나는 지금은 세 작품을 내리 저조한 판매량으로 다음 작품을 계약할 용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김군은 나카노를 이해했다. 그녀의 재능은 그녀의 생각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lt;br&gt;&#10;하지만 김군은 딱히 나카노 후미나리의 작가적 성장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간섭은 규정 위반이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녀의 데뷔작을 서점에서 구매하고 그녀가 작업하는 카페에서 만나 팬임을 밝히고 사인을 받으며 카메라에 담긴 두 번째 사진을 보여주었다.&lt;br&gt;&#10;나카노 후미나리는 거의 눈을 깜빡이다가 김군의 얼굴을 몇 번 들여다보았고 어디서 가져온 그림인지 물었다. 김군은 적당히 인터넷에서 발견했던 사진이라며 혹시 작품이랑 관련있냐고 물었는데, 나카노는 고개를 끄덕였다.&lt;br&gt;&#10;&amp;ldquo;예전에 습작을 인터넷에 올린적이 있는데 누가 그걸 가지고 팬분이 그려주셨나봐요.&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군요. 어떤 소설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amp;rdquo;&lt;br&gt;&#10;&amp;ldquo;옛날 글이라 부끄러운데.&amp;rdquo;&lt;br&gt;&#10;그렇게 말해도 나카노는 &amp;lsquo;자신이 짰다고 생각하는 SF설정&amp;rsquo;을 줄줄 풀어서 설명했다. 김군은 그 내용을 외워두곤 사진은 나카노에게 준 다음 카페에서 나왔다. 김군이 다음으로 향한 장소는 안드로메다 은하단 팔끝에 위치한, 쌍성을 끼고 있는 중성자별이었다.&lt;br&gt;&#10;다행히 좌표는 나카노가 말해준 것과 틀림이 없었다. 꿈꾸는 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관측 되지 않은 우주의 지식이 구분 되지 않는 이들로 별의 아이로 불린다. 김군은 그들의 슬픈 운명을 그리면서 중성자별의 표면을 천천히 걸었다.&lt;br&gt;&#10;중성자별에서 뭉개지지 않기 위해선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물리적 고유성(固有性)이 요구 되었지만 김군은 요원으로서 갖춰야할 정도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표면이 미끄럽긴했지만 김군은 스케이트도 곧잘 탔다.&lt;br&gt;&#10;하지만 중성자별에도 김군이 찾는 사진사는 찾기 어려웠다. 김군은 하는 수 없이 다음 사진을 보기로 했다. 김군의 생각에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이 분실물의 주인의 의도대로 되고 있었으니까. 모든 &amp;lsquo;작전&amp;rsquo;은 각 평행세계의 운명은 물론 모든 우주를 도미노처럼 넘어트릴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바늘 위에 세워진 바늘처럼 위태로웠다. 세계의 기반이 초끈이론이라면, 거의 모든 이론은 다음 순간 끈들이 풀려버리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lt;br&gt;&#10;다음 사진을 봤을 때 김군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피사체가 김군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김군은 사진기를 꼬나보고 있었고, 장소는 김군 자신의 방이었다. 김군은 혹시 사진이 더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그 다음 사진은 김군의 가슴에 칼이 박혀 있는 사진, 다음은 쓰러지는 사진, 다음은 피를 흘리는 사진, 다음은 눈동자가 풀리는 사진, 다음은 피가 말라붙은 사진, 다음은 몸이 부푸는 사진, 다음은 구더기가 꼬이는 사진, 다음은… 김군은 마지막 사진에서 뼈가 되다 못해 완전히 삭아 황폐해진 집에서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lt;br&gt;&#10;김군은 이번 건을 조정국에 별건으로 넘기기로 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200307</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200307/</link><pubDate>Sat, 07 Mar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200307/</guid><description>&lt;p&gt;꿈을 꾸니 친한 친구 집이었다. 지금은 이사가버린 옛날 친구집. 아나사필 쇼크. 눈뜨기 힘들고. 왜 여기 있는지. 무너진 현관, 현관에서 쓰러졌던 모양. 현관을 애써치우고 밖으로 나가니 주상복합 아파트. 영어 전문 학원. 벌집+계단식 강의식+미로&lt;br&gt;&#10;밖으로 나가기 힘들다&lt;br&gt;&#10;학원장과 마주한다 남편 사별이야기 나는 병원에 가야한다&lt;br&gt;&#10;알겠다며 도움을 기다린다&lt;br&gt;&#10;학원선생들은 게으르다&lt;br&gt;&#10;두통 부은 얼굴&lt;br&gt;&#10;고통 지끈거리다&lt;br&gt;&#10;깨어나니 두통이 없다&lt;br&gt;&#10;고통이 진짜였나?&lt;br&gt;&#10;잠을 자지 않았다면 아팠을까?&lt;br&gt;&#10;땀은 흘리지 않았다&lt;br&gt;&#10;열감도 없다&lt;br&gt;&#10;기분은 좋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로봇청소기가 되었다</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A1%9C%EB%B4%87%EC%B2%AD%EC%86%8C%EA%B8%B0%EA%B0%80-%EB%90%98%EC%97%88%EB%8B%A4/</link><pubDate>Sat, 07 Mar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A1%9C%EB%B4%87%EC%B2%AD%EC%86%8C%EA%B8%B0%EA%B0%80-%EB%90%98%EC%97%88%EB%8B%A4/</guid><description>&lt;p&gt;아진은 죄를 짓고 로봇청소기가 되었다.&lt;br&gt;&#10;아진이 유폐 행성 알토에서 처음 만난 친구인 키위는 아진을 위로하며 로봇청소기 정도면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lt;br&gt;&#10;&amp;ldquo;우선은,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게 제일 크지. 공기청정기나 전자렌지 같은 게 되어보라고. 답답해서 어쩔 거야?&amp;rdquo;&lt;br&gt;&#10;아진은 며칠 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음성출력기를 달고 난 뒤에야 겨우 키위에게 대꾸할 수 있었다.&lt;br&gt;&#10;&amp;ldquo;하지만 빌어먹을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하잖아.&amp;rdquo;&lt;br&gt;&#10;&amp;ldquo;그건 나중에 돈 벌어서 달면 되지.&amp;rdquo;&lt;br&gt;&#10;&amp;ldquo;자네도 돈 벌어서 단 건가?&amp;rdquo;&lt;br&gt;&#10;&amp;ldquo;맞아.&amp;rdquo;&lt;br&gt;&#10;키위는 특별히 &amp;lsquo;무언가&amp;rsquo;라고 부르기 힘든 기계였다.&lt;br&gt;&#10;동그란 동체에 두 개의 다리가 달려 있었고, 정면에는 분명 발칸포로 보이는 포구도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인 생김새가 키위로 보여서 그렇게 불렸지만, 원래 무슨 기계인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lt;br&gt;&#10;&amp;ldquo;난 여기 왔을 때 컴퓨터였어.&amp;rdquo;&lt;br&gt;&#10;&amp;ldquo;컴퓨터?&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amp;rdquo;&lt;br&gt;&#10;&amp;ldquo;그럼 어떻게 돈을 벌지?&amp;rdquo;&lt;br&gt;&#10;아진은 로봇청소기인 자신에 대해 늘상 투덜거렸다. 하지만 키위의 말대로 일하기 좋은 몸인 것은 사실이었다.&lt;br&gt;&#10;둥글고 넙적한 몸체에 무언가를 얹으면 물건을 배달할 수 있는데다 속도도 제법 나온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완만한 경사 정도는 이동할 수 있어서, 유폐 행성에 제대로 정착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쯤에는 &amp;lsquo;여기서 로봇청소기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amp;rsquo; 하는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쑥 내밀어지곤 했다.&lt;br&gt;&#10;키위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컴퓨터들은 주로 계산 외주를 맞지.&amp;rdquo;&lt;br&gt;&#10;&amp;ldquo;뭐야, 썩 괜찮은데? 그걸로 돈 벌어서 나중에 팔다리 하나씩 붙이고. 자네처럼 하면 되잖아?&amp;rdquo;&lt;br&gt;&#10;&amp;ldquo;하지만 문제는 알토 같은 유폐 행성에 맞겨지는 일감은 죄다 싸구려인데다, 컴퓨터가 너무 많아. 유폐 행성에 직접적으로 돌아가는 경제 생활을 해야 크레딧 벌기가 수월한데, 그런 식으로 돈을 버는 건 인내심이 필요하지.&amp;rdquo;&lt;br&gt;&#10;&amp;ldquo;자넨 여기 몇 년이나 있었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230년.&amp;rdquo;&lt;br&gt;&#10;&amp;ldquo;저런. 물어봐서 미안하군.&amp;rdquo;&lt;br&gt;&#10;&amp;ldquo;미안할 것 까지야. 아직 300년 남았어.&amp;rdquo;&lt;br&gt;&#10;키위 정도면 알토에서 잔뼈가 굵은 로봇인데다, &amp;lsquo;치안조정부 3팀 팀장&amp;rsquo;이라는 그럴듯한 직함도 있었다.&lt;br&gt;&#10;&amp;ldquo;공식 직함인가?&amp;rdquo;&lt;br&gt;&#10;&amp;ldquo;&amp;lsquo;공식?&amp;rsquo; 그건 아니야. 폐허의 주인인 잡동사니 칸다가 나한테 일을 맡긴 셈이지.&amp;rdquo;&lt;br&gt;&#10;&amp;ldquo;칸다?&amp;rdquo;&lt;br&gt;&#10;&amp;ldquo;1천년 동안 이 땅에 있었던 장기복역수지.&amp;rdquo;&lt;br&gt;&#10;&amp;ldquo;이런.&amp;rdquo;&lt;br&gt;&#10;&amp;ldquo;칸다가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몇 백년 단위 도시 재생 사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여러 일들을 벌이고 있는 걸 보면… 다들 예측하기론 아마 비슷한 시간 더 있어야 할 것 같다더군. 괜찮으면 나중에 인사를 시켜주지. 좋은 일을 소개 받을지도 몰라.&amp;rdquo;&lt;br&gt;&#10;&amp;ldquo;고맙군. 그런데 흠, &amp;lsquo;위&amp;rsquo;에선 신경쓰지 않나?&amp;rdquo;&lt;br&gt;&#10;로봇청소기인 아진은 별다른 동작을 할 수 없었지만, 키위는 하늘을 바라보았다.&lt;br&gt;&#10;하늘에는 교도선 한 척이 느릿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지상에 있는 만들다만 것 같은 정크머신들과 공산품임이 분명한 원시적인 구조의 고대 기계들과 달리 유선형의 제대로 된 기계라는 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lt;br&gt;&#10;이 행성의 모두가 모두가 저 배를 타고 떠나는 날을 기대하고 있었다.&lt;br&gt;&#10;키위가 말했다.&lt;br&gt;&#10;&amp;ldquo;교도관들은 거의 손을 대는 일이 없어. 몇 가지 예외 사례를 제외하면 장기복역수들이 만드는 질서를 두고보고만 있지. 장기복역수들은 모범수가 되고 싶어하거든.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교도관들은 힘 있는 장기복역수들에게 몰래 접근해서 형량을 줄여주는 제안을 해준다나 봐.&amp;rdquo;&lt;br&gt;&#10;&amp;ldquo;예외 사례는 뭔데?&amp;rdquo;&lt;br&gt;&#10;&amp;ldquo;그리 많지는 않은데, 교도관들이 불편해할만한 과학 기술을 추구하면 관심을 좀 받겠지. 하지만 그리 걱정할 건 없어. 희토류는 교도관들한테 넘겨야하는 불법 자원인데, 이게 장기복역수들이 교도관들한테 잘 보이려고 비싸게 사들이거든. 그걸로 뭘 해보겠단 놈들 보다는 그냥 넘겨주고 좋은 몸으로 개조하길 바라는 친구들이 많지.&amp;rdquo;&lt;br&gt;&#10;&amp;ldquo;관심이 가는 걸.&amp;rdquo;&lt;br&gt;&#10;&amp;ldquo;자네도 여기가 살만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amp;rdquo;&lt;br&gt;&#10;아진이 키위에게 속았다는 걸 알게 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연결하는 자</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7%B0%EA%B2%B0%ED%95%98%EB%8A%94-%EC%9E%90/</link><pubDate>Fri, 06 Mar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7%B0%EA%B2%B0%ED%95%98%EB%8A%94-%EC%9E%90/</guid><description>&lt;p&gt;그것은 자신이 언제 스스로 의식을 가지기 시작해는지 알지 못했는데, 그것에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태초의 바다와 함께 태어났다고 믿었고, 실제로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대양의 왕으로 군림하였다.&lt;br&gt;&#10;그것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난처함을 느낀 것은, 자신을 가로막는 &amp;lsquo;지표&amp;rsquo;가 나타났을 때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막아서는 무언가를 본 적이 없었던 그것은 황망하였다. 그 지표를 타고 올라가자 건조하고 삭막한 &amp;lsquo;허공&amp;rsquo;이 나타났고, 놀랍게도 지표는 허공에 노출되어 있었다.&lt;br&gt;&#10;그것은 당연히 그곳이 죽음의 땅이 되었다고 생각했다.&lt;br&gt;&#10;놀라운 사건이었지만 드넓은 대양에서 일부에 불과했고 그것은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처음에는.&lt;br&gt;&#10;하지만 그것이 조작할 수 없는 대양의 아래, 심해 깊은 곳에서, 지각은 움직이고 있었고 내재된 열들을 뿜어냈고, 약동하는 대지는 솟아오르기 시작했다.&lt;br&gt;&#10;그것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lt;br&gt;&#10;세상이 뒤바뀌고 있었다.&lt;br&gt;&#10;바다가 좁아지고, 얕아지고 있었다.&lt;br&gt;&#10;하지만 그것은 잠시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불안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다.&lt;br&gt;&#10;마른 땅이 세상의 중심에 놓이자, 먼 바다의 친척들이 비늘을 갈라지게 만들고 시커멓게 태우는 태양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lt;br&gt;&#10;오래전에 적응할 능력을 잃은 그것은 먼 바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lt;br&gt;&#10;&amp;lsquo;저건 허튼 짓이야. 모두 말라 비틀어지고 있잖아.&amp;rsquo;&lt;br&gt;&#10;생을 버리는 미련은 그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lt;br&gt;&#10;하지만 붉은 여왕을 뒤쫓는 진화로의 의지를 불태우는 최초의 탐험가들은 그것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lt;br&gt;&#10;&amp;lsquo;그럼 도전해보라지.&amp;rsquo;&lt;br&gt;&#10;그것은 가파른 산맥을 움켜쥐어 무너트려 길을 닦고, 먼 친척들이 익어갈 때면 다리를 휘저어 바닷물을 밀어 적셨다.&lt;br&gt;&#10;그것에게는 소일거리에 불과했고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lt;br&gt;&#10;하지만 옛 친척들이 얕은 바다와 지표를 오가고, 뻘 아래에서 잠들고, 이내 그곳에서 새끼를 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지모의 사냥</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7%80%EB%AA%A8%EC%9D%98-%EC%82%AC%EB%83%A5/</link><pubDate>Thu, 05 Mar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7%80%EB%AA%A8%EC%9D%98-%EC%82%AC%EB%83%A5/</guid><description>&lt;p&gt;&amp;ldquo;도련님, 편지가 왔습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누구에게서?&amp;rdquo;&lt;br&gt;&#10;&amp;ldquo;익명입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익명이라고.&amp;rdquo;&lt;br&gt;&#10;지모는 자신에게 익명으로 수신을 보낼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했다.&lt;br&gt;&#10;&amp;ldquo;한 번 보지.&amp;rdquo;&lt;br&gt;&#10;그 말에 하인 디가 지모에게 편지지를 건넸다.&lt;br&gt;&#10;지모는 앞뒤를 훑어보았다.&lt;br&gt;&#10;밀봉 되어 있지만 특별할 것 없는 매끈하다.&lt;br&gt;&#10;&amp;ldquo;이게 전부인가?&amp;rdquo;&lt;br&gt;&#10;&amp;ldquo;예.&amp;rdquo;&lt;br&gt;&#10;&amp;ldquo;누가 전해왔는지는 못 봤고?&amp;rdquo;&lt;br&gt;&#10;&amp;ldquo;문틀에 꽂혀 있기에.&amp;rdquo;&lt;br&gt;&#10;&amp;ldquo;자네 건 아냐?&amp;rdquo;&lt;br&gt;&#10;&amp;ldquo;설마요. 전 편지 올 곳이 없습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 나라고 딱히 올 곳이 있는 건 아닌데.&amp;rdquo;&lt;br&gt;&#10;&amp;ldquo;오디테 경일지도요. 그분은 이런 장난 좋아하시지 않습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아무튼 확인해보지. 들어가서 쉬게.&amp;rdquo;&lt;br&gt;&#10;디가 돌아가자 지모는 황동 편지칼로 편지지를 뜯었다.&lt;br&gt;&#10;안에는 메모 하나만이 들어있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증오의 코</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6%9D%EC%98%A4%EC%9D%98-%EC%BD%94/</link><pubDate>Wed, 04 Mar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6%9D%EC%98%A4%EC%9D%98-%EC%BD%94/</guid><description>&lt;p&gt;&amp;ldquo;&amp;lsquo;오를라&amp;rsquo;들이 도시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어.&amp;rdquo;&lt;br&gt;&#10;남자의 말에 여자가 반문한다.&lt;br&gt;&#10;&amp;ldquo;그게 진짜야?&amp;rdquo;&lt;br&gt;&#10;&amp;ldquo;진짜냐고 물어도… 모르지 우린.&amp;rdquo;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다. &amp;ldquo;오를라라고. 시각 왜곡 피부를 체내 전지와 결합해 영구적으로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들. 이렇게 큰 도시에서 옆에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겠어? 당장 우리 뒤에 있을지도 모르지.&amp;rdquo;&lt;br&gt;&#10;&amp;ldquo;왜 왔다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얼마전에…&amp;rdquo; 사내는 단 둘만인 바인데도 눈치를 살핀다. &amp;ldquo;총독 각하의 애첩이 죽었잖나?&amp;rdquo;&lt;br&gt;&#10;&amp;ldquo;아, 그 고추 큰 흰둥이? 맨날 아랫도리 두툼하게 드러내고 다니고. 근데 걔가 뭐 대단한 애였나? 언더월드 출신 랩퍼였다고 들었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아, 걔가 중요한 건 아니야. 중요한 건 걔한테 총독이 오를라를 두 놈이나 붙여놨었더군.&amp;rdquo;&lt;br&gt;&#10;&amp;ldquo;미친. …아니지. 그런데 그 흰둥이는 왜 죽었어?&amp;rdquo;&lt;br&gt;&#10;&amp;ldquo;그게 문제인 거지. 그 흰둥이를 지키던 오를라 두 놈도 죽어서 발견 된 거야.&amp;rdquo;&lt;br&gt;&#10;&amp;ldquo;거짓말.&amp;rdquo;&lt;br&gt;&#10;&amp;ldquo;이 두 눈으로 직접 봤지.&amp;rdquo;&lt;br&gt;&#10;&amp;ldquo;세상에. 머리에 남아있어?&amp;rdquo;&lt;br&gt;&#10;&amp;ldquo;그럴리가. 관리감독관들이 내 머리에서 지워버렸지. 하지만 그걸 봤던 당시의 충격은 메타 데이터로 남아있어.&amp;rdquo;&lt;br&gt;&#10;&amp;ldquo;위험 한 거 아냐?&amp;rdquo;&lt;br&gt;&#10;&amp;ldquo;아냐. 놈들이 깜빡했을 뿐이지. 나는 나름 연구 인력이라고. 언더 애들마냥 북북 지우면 곤란하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럼 한 번 보자고.&amp;rdquo;&lt;br&gt;&#10;여자가 남자의 브릿지를 당겨 자기 브릿지에 꽂아넣는다.&lt;br&gt;&#10;&amp;ldquo;오… 굉장한데. 도대체 오를라들은 어떻게 생겼었기에…&amp;rdquo;&lt;br&gt;&#10;&amp;ldquo;아무튼 오를라의 진짜 생김새는 기밀 중의 기물이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그런데 오를라가 어떻게 죽지? 폭탄 같은 걸 터트린 건가?&amp;rdquo;&lt;br&gt;&#10;&amp;ldquo;아니야. 원시적인 도구였어. 내 기억에 생긴 모습 자체가 남아있진 않지만… 내가 볼 때는 분명 찢어지고 짓뭉게졌다는 그런 인상이 남아 있거든.&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amp;rdquo;&lt;br&gt;&#10;남자는 무심하게 연결된 브릿지가 은근히 불쾌했는지 뽑아낸다.&lt;br&gt;&#10;&amp;ldquo;메타 데이터를 분석해봤더니 붉은색으로 찰흙 덩어리를 엉켜둔 것과 비슷한 인상이더군. 물론 훨씬 더… 감정적 동요가 덜하지만.&amp;rdquo;&lt;br&gt;&#10;&amp;ldquo;흥미로운걸. 그걸 조사했단 말이야? 아무튼 오를라들도 사실은 살덩이들이란 말이지?&amp;rdquo;&lt;br&gt;&#10;&amp;ldquo;아마 그렇겠지? 게다가…&amp;rdquo;&lt;br&gt;&#10;&amp;ldquo;게다가?&amp;rdquo;&lt;br&gt;&#10;사내는 고민에 빠진 것 같다.&lt;br&gt;&#10;&amp;ldquo;이것 참. 나 오늘 위험한 이야기를 좀 많이 하는 것 같은데.&amp;rdquo;&lt;br&gt;&#10;&amp;ldquo;뭐 어때. 자네랑 나 뿐인데.&amp;rdquo;&lt;br&gt;&#10;&amp;ldquo;바텐더가 있잖은가?&amp;rdquo;&lt;br&gt;&#10;&amp;ldquo;깡통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깡통?&amp;rdquo;&lt;br&gt;&#10;&amp;ldquo;약인공지능. 마인드가 없지.&amp;rdquo;&lt;br&gt;&#10;&amp;ldquo;아아. 저장장치는?&amp;rdquo;&lt;br&gt;&#10;&amp;ldquo;나 &amp;lsquo;찌짐이&amp;rsquo; 있어. 나갈 때 살짝 손만 봐주면 돼.&amp;rdquo;&lt;br&gt;&#10;여자는 주머니에서 매끈하게 생긴, 하지만 치명적으로 보이는 두 개의 앞니가 튀어나온 단말기를 꺼내 보여준다.&lt;br&gt;&#10;&amp;ldquo;그런 걸 들고다니나?&amp;rdquo;&lt;br&gt;&#10;&amp;ldquo;뭐 어때? 이렇게 흔적 지우고 다니면서 총독 끄나풀들이 안 붙는 게 중요하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건 맞는 말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게다가 오를라가 둘이나 죽어서, 다른 오를라들을 도시로 들였다니. …아무튼 더 아는 건 없나? 방금 뭔가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amp;rdquo;&lt;br&gt;&#10;남자는 잔을 들고 잠시 침묵한다.&lt;br&gt;&#10;&amp;ldquo;음, 글쎄.&amp;rdquo; 자신이 술에 취해 실수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하다. &amp;ldquo;…아. 아무튼 그놈의 정체에 대한 웹의 소문 정도 기억나는군.&amp;rdquo;&lt;br&gt;&#10;&amp;ldquo;그놈?&amp;rdquo;&lt;br&gt;&#10;&amp;ldquo;총독 애첩과 오를라 둘을 죽인 놈 말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아아, 그렇지. 도대체 놈은 뭔가? 오를라를 죽일 수 있다고? 제국 내에 그런 능력을 가진 놈들은… 거의 없을텐데. 아슈트리에의 기사들? 아니면 오를라들을 컨트롤 하는 데몬? 연합의 단죄자들?&amp;rdquo;&lt;br&gt;&#10;&amp;ldquo;없지. 그네들도 오를라와 일 대 일로 비교하긴 아쉬워. 오를라는 가시광은 물론이고 자외선 적외선 싹다 차단하면서 열차폐까지 완벽하니까. 연합에선 정말 존재하는지 조차 의문이라지 않나? 제국의 특수공작부대를 그렇게 부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하지만 제국이 반란군 없이 유지되는 이유가 다 오를라 덕 아니겠나? 보이지 않는 눈들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보이지 않게 일을 처리하니까.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럼 놈은? 놈은 어떻게 오를라 같은 걸 죽인 거지?&amp;rdquo;&lt;br&gt;&#10;&amp;ldquo;소문이야. 소문이지만… &amp;lsquo;되찾은 오를라&amp;rsquo;라고 불린다더군.&amp;rdquo;&lt;br&gt;&#10;&amp;ldquo;무슨 말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오를라가 본래 인간이란 이야긴 들어봤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단 말은 하던데. 하지만 생긴걸 모르니 알 수가 있나?&amp;rdquo;&lt;br&gt;&#10;&amp;ldquo;아무튼 온갖 개조와 투약으로 뇌를 박살을 내놓는데도, 이론적으로 의식이 남아있거나 되돌아올 가능성이 존재한다더군. 오를라는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데, 그럼 그 기본적인 구조까지 바꿀 수는 없단 거야. 아직까지 존재했다고 알려진 적은 없지만, 만약 존재하게 된다면 자신을 오를라로 만든 제국과 오를라 그 자체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있을테니까. 그놈이 오를라의 숙적이 될 거라고 말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흥미롭군. 하지만 그건 이유는 설명해도 방법을 설명 못하지 않나?&amp;rdquo;&lt;br&gt;&#10;&amp;ldquo;그건…&amp;rdquo;&lt;br&gt;&#10;남자는 또 아까처럼 입을 닫는다.&lt;br&gt;&#10;고민이 많아지는 질문인듯 하다.&lt;br&gt;&#10;느닷없이, 남자가 코를 킁킁 거린다.&lt;br&gt;&#10;&amp;ldquo;왜 그러나?&amp;rdquo;&lt;br&gt;&#10;&amp;ldquo;그 저…&amp;rdquo;&lt;br&gt;&#10;남자는 창백한 안색으로,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lt;br&gt;&#10;&amp;ldquo;무슨 일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무슨… 향기가 나지 않나?&amp;rdquo;&lt;br&gt;&#10;&amp;ldquo;뭐? 나는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냄새가 아니라 향기야. 분명 맡으면 기분이 좋다고 느낀다고.&amp;rdquo;&lt;br&gt;&#10;&amp;ldquo;술에 절어서 코가 어떻게 됐나보군. 그 향기가 뭐 어떤데 그래?&amp;rdquo;&lt;br&gt;&#10;&amp;ldquo;이 향기 분명…&amp;rdquo;&lt;br&gt;&#10;&amp;ldquo;분명?&amp;rdquo;&lt;br&gt;&#10;남자가 긴장 때문에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lt;br&gt;&#10;남자는 텅빈 바 내부를 황급히 이리저리 돌아본다.&lt;br&gt;&#10;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듯 하다.&lt;br&gt;&#10;&amp;ldquo;오를라에게서 나던 향기야.&amp;rdquo;&lt;br&gt;&#10;&amp;ldquo;오를라의 향기?&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 …술을 좀 많이 마셨는지도 모르겠군. 이, 이제 집에 가봐야겠어.&amp;rdquo;&lt;br&gt;&#10;&amp;ldquo;왜 말을 하다말아?&amp;rdquo;&lt;br&gt;&#10;여자가 남자의 손목을 붙잡는다.&lt;br&gt;&#10;남자가 거칠게 떼어낸다.&lt;br&gt;&#10;여자는 놀란 눈이었다가 다시 사근사근하게 군다.&lt;br&gt;&#10;&amp;ldquo;알겠어. 갈 거면 가. 하지만 괜찮으면 내가 좋은 술 하나 살까 하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음…&amp;rdquo;&lt;br&gt;&#10;남자는 다소 진정이 되었는지 다시 자리에 앉는다.&lt;br&gt;&#10;여자가 바텐더를 부르고 술잔이 채워진다.&lt;br&gt;&#10;여자가 말한다.&lt;br&gt;&#10;&amp;ldquo;그래서, 오를라에게서 향기가 난다고?&amp;rdquo;&lt;br&gt;&#10;&amp;ldquo;&amp;lsquo;되찾은 오를라&amp;rsquo;는 이론적으로만 존재하지. 그런데 오를라끼리도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는 문제가 있고.&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서?&amp;rdquo;&lt;br&gt;&#10;&amp;ldquo;그런데 이 이론 자체는 엄청 오래 되었단 말이지. 심지어 오를라라는 게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했다고 해. 생체 전지는 독특한 구조 화합물로 만들어지는데 이걸 만들때 다른 호르몬이 독특한 &amp;lsquo;향&amp;rsquo;을 만들어 낸다는군. 그래서 첫 오를라 연구에 참여했던 유전학자 하나가 자신에게 의뢰 오는 크리스퍼 차일드의 유전 정보에 그 향을 맡을 수 있도록 조작을 했다고 해.&amp;rdquo;&lt;br&gt;&#10;&amp;ldquo;아아. 그럼 그 크리스퍼 차일드의 유전자는 우리 제국의 유전자 풀에 잠겨들었고?&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럼 아주아주아주… 낮은 확률로, 그 크리스퍼 차일드의 자손 중에 누군가 오를라로 변하게 되면…&amp;rdquo;&lt;br&gt;&#10;&amp;ldquo;예의 오를라 사냥꾼, 이른바 &amp;lsquo;증오의 코&amp;rsquo;가 되는 거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게 정말이라면, 오를라는 그 자체로 자신의 숙적을 타고 난 셈이군 그래.&amp;rdquo;&lt;br&gt;&#10;&amp;ldquo;맞아. 이렇게 단단한 제국도 사실 그 기반이 완벽하진 않다는 말이지.&amp;rdquo;&lt;br&gt;&#10;여자는 술잔에 입을 가져갔다가, 나긋하게 말한다.&lt;br&gt;&#10;&amp;ldquo;그런데 그 향기, 아직도 나나?&amp;rdquo;&lt;br&gt;&#10;&amp;ldquo;응? 그런데?&amp;rdquo;&lt;br&gt;&#10;여자가 웃는다.&lt;br&gt;&#10;&amp;ldquo;그래. 너도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는지가 중요했거든. …붙잡아라.&amp;rdquo;&lt;br&gt;&#10;그 말에 남자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lt;br&gt;&#10;보이지 않지만 꽈악하고 졸리는 몸체.&lt;br&gt;&#10;남자가 벌벌 떨며 비명을 지른다.&lt;br&gt;&#10;&amp;ldquo;컥! 오를라…!&amp;rdquo;&lt;br&gt;&#10;&amp;ldquo;아, 빌어먹을 이 &amp;lsquo;향기&amp;rsquo;라는 건 데이터에 남질 않는단 말이야. 인간 후각이란 게 대단할 게 없으니 정보값으로 인상적으로 남지 않는 모양이지. 그래서 나 같은 몸이 일일이 너 같은 걸 찾아다녀야 한단 말이지.&amp;rdquo;&lt;br&gt;&#10;&amp;ldquo;너, 넌 도대체…?&amp;rdquo;&lt;br&gt;&#10;&amp;ldquo;아, 니 친구를 찾고 있나? 유감이군.&amp;rdquo;&lt;br&gt;&#10;여자의 머리 뚜껑이 열린다.&lt;br&gt;&#10;안에 또아리틀고 있던, 무족영원을 닮은 민둥하고 길쭉한 무언가가 몸을 들어올린다.&lt;br&gt;&#10;남자가 눈을 부릅뜬다.&lt;br&gt;&#10;&amp;ldquo;…데몬!&amp;rdquo;&lt;br&gt;&#10;&amp;ldquo;하, 몸좀 옮겨 다니기로서니, 사람을 악마라고 부르고 다니니.&amp;rdquo;&lt;br&gt;&#10;데몬은 여자 머리 안에서 미끄러져나와 남자의 머리에 맞붙는다.&lt;br&gt;&#10;데몬에 붙어있던 작은 촉수들이 칼날로 형상변환하며 남자의 머리를 외과수술해서 산채로 따버린다.&lt;br&gt;&#10;&amp;ldquo;친구처럼 조사에 협조 좀 하라고.&amp;rdquo;&lt;br&gt;&#10;남자의 비명이 터져나오지만, 그리 길지는 않다.&lt;br&gt;&#10;남자는 산채로 뇌를 해부당한다.&lt;br&gt;&#10;남자는 의식을 잃은 듯 보이다가, 데몬이 천천히 머리통 안에 자리를 잡자 눈동자게 제 빛을 찾는다.&lt;br&gt;&#10;남자는 이마에 흐르는 피와 뇌수를 가볍게 닦아낸다.&lt;br&gt;&#10;&amp;ldquo;별 건 없군. 다 말했어. 하지만 &amp;lsquo;냄새&amp;rsquo;를 맡았다는 건 돌연변이 유전자가 퍼지기 시작했단 말이군. 오를라, 이놈의 데이터를 검색해서 관련된 유전적 지인들을 모두 찾아 죽여라. 나는 이것도 처리하고 저 깡통도 처리하고… 오를라?&amp;rdquo;&lt;br&gt;&#10;나는 깡통이라고 불리는 바텐더 로봇을 밀치고 바를 넘는다.&lt;br&gt;&#10;그러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지 느껴지지도 않지만, 진득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오를라에게 달려든다.&lt;br&gt;&#10;반면에, 놈은 내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lt;br&gt;&#10;놈에겐 코가 없으니까.&lt;br&gt;&#10;오를라를 박살 내는데는 3초면 충분하다.&lt;br&gt;&#10;붉은 찰흙처럼 금새 비참해진다.&lt;br&gt;&#10;데몬은 엉뚱한 곳을 바라본다.&lt;br&gt;&#10;데몬은 머리통을 슬쩍 따고 꽁무니를 뺄 준비를 한다.&lt;br&gt;&#10;&amp;ldquo;넌… 너는… 오를라다. 명령을 들어야 해.&amp;rdquo;&lt;br&gt;&#10;그 말은 틀렸다.&lt;br&gt;&#10;나는 오를라가 아니다.&lt;br&gt;&#10;나는 되찾은 오를라, 오를라 사냥꾼, 증오의 코.&lt;br&gt;&#10;오를라 사냥만으로 내 존재를 증명한다.&lt;br&gt;&#10;기회를 엿보던 데몬이 남자의 머리에서 튕겨져 나간다.&lt;br&gt;&#10;나는 그대로 붙잡아 반으로 찢어죽인다.&lt;br&gt;&#10;데몬은 다소 꿈틀거린다.&lt;br&gt;&#10;더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완전히 뭉게둔다.&lt;br&gt;&#10;데몬에게서는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는다.&lt;br&gt;&#10;풋풋한 악취.&lt;br&gt;&#10;더이상 자리에 남아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lt;br&gt;&#10;체내 기관들이 사냥으로 잠시 지저분해진 표피를 정리한다.&lt;br&gt;&#10;나는 비존재를 수복한다.&lt;br&gt;&#10;바를 나선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낭랑 가죽</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82%AD%EB%9E%91-%EA%B0%80%EC%A3%BD/</link><pubDate>Tue, 03 Mar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82%AD%EB%9E%91-%EA%B0%80%EC%A3%BD/</guid><description>&lt;p&gt;코가 바닥에 닿을듯, 바짝 고개를 숙인 여자가 눈 덮인 산을 오른다.&lt;br&gt;&#10;오르는 길목도 짐승들이 오르는 길인지라, 행동이 궁금하여 가까운 가지에 앉았다.&lt;br&gt;&#10;&amp;ldquo;뭐하는 거요?&amp;rdquo;&lt;br&gt;&#10;&amp;ldquo;뭐냐 너는.&amp;rdquo;&lt;br&gt;&#10;여자는 고개도 들지 않고 눈알만 씰룩 올려 말했다.&lt;br&gt;&#10;&amp;ldquo;새님이로구나. 난 바쁘다. 벌레나 잡으러 가거라.&amp;rdquo;&lt;br&gt;&#10;&amp;ldquo;오늘은 이미 배를 모두 채웠구려.&amp;rdquo;&lt;br&gt;&#10;&amp;ldquo;에이, 심심한게로군.&amp;rdquo;&lt;br&gt;&#10;여자는 입을 비죽내밀고 제 할일을 계속한다.&lt;br&gt;&#10;&amp;ldquo;심마니요?&amp;rdquo;&lt;br&gt;&#10;&amp;ldquo;내 행낭을 봐라.&amp;rdquo;&lt;br&gt;&#10;&amp;ldquo;달랑거리는군. 텅 비었어. 풀냄새도 안나구.&amp;rdquo;&lt;br&gt;&#10;나는 의아해졌다가 말했다.&lt;br&gt;&#10;&amp;ldquo;그럼 땅꾼이오?&amp;rdquo;&lt;br&gt;&#10;&amp;ldquo;내 행낭을 보래도.&amp;rdquo;&lt;br&gt;&#10;&amp;ldquo;비늘 냄새도 안나지만, 종일 허탕을 쳤을지도 모르잖수.&amp;rdquo;&lt;br&gt;&#10;&amp;ldquo;흠…&amp;rdquo;&lt;br&gt;&#10;나는 여자에게서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lt;br&gt;&#10;&amp;ldquo;혹시 새잡이요?&amp;rdquo;&lt;br&gt;&#10;이제야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lt;br&gt;&#10;&amp;ldquo;허어, 왜 그리 생각하느냐?&amp;rdquo;&lt;br&gt;&#10;&amp;ldquo;우리 새들은 호기심이 많지. 그러고 고개를 숙이고 암것도 안한다, 관심가지지 마러라, 이러면 또 관심이 가지. 새잡이들이 그런 수를 쓴다고 또 어디서 들었수.&amp;rdquo;&lt;br&gt;&#10;&amp;ldquo;넌 머리가 좋구나?&amp;rdquo;&lt;br&gt;&#10;&amp;ldquo;칭찬 고맙구려.&amp;rdquo;&lt;br&gt;&#10;여자는 가로저었다.&lt;br&gt;&#10;&amp;ldquo;아니, 아무튼 나는 새잡이도 아니다. 새잡이라면 내 허리에 칼이 아니라 활을 차고 다니겠지.&amp;rdquo;&lt;br&gt;&#10;&amp;ldquo;사냥꾼이구려. 아니지, 사냥꾼인데 왜 활은 차지 않는담.&amp;rdquo;&lt;br&gt;&#10;&amp;ldquo;사냥꾼은 맞다. 활로 잡을 필요가 없어서 그렇지.&amp;rdquo;&lt;br&gt;&#10;&amp;ldquo;어떤 사냥감이 사냥꾼을 보고 도망가지 않는단 말이요?&amp;rdquo;&lt;br&gt;&#10;&amp;ldquo;간혹 멧돼지가 달려들고 곰이나 호랑이는 여간하면 달려들지 않더냐?&lt;br&gt;&#10;&amp;ldquo;그럼 잡으려는 게 곰이나 호랑이요? 그럼 창을 들지 그러우.&amp;rdquo;&lt;br&gt;&#10;&amp;ldquo;곰과 호랑이는 아니다.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놈이지.&amp;rdquo;&lt;br&gt;&#10;여자는 다시 바닥에 코를 붙였다.&lt;br&gt;&#10;또 말이 없다.&lt;br&gt;&#10;&amp;ldquo;도대체 뭘 쫓는 거요?&amp;rdquo;&lt;br&gt;&#10;&amp;ldquo;내 숙적의 발자국.&amp;rdquo;&lt;br&gt;&#10;&amp;ldquo;오…&amp;rdquo;&lt;br&gt;&#10;여자는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간다.&lt;br&gt;&#10;나는 앉고 있던 가지를 옮긴다.&lt;br&gt;&#10;&amp;ldquo;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amp;rdquo;&lt;br&gt;&#10;&amp;ldquo;사냥을 갔다가 기이한 괴물을 찾았다. 사람 같기도 허고, 늑대 같기도 했지. 굉장히 사납더군.&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서? 어찌했수?&amp;rdquo;&lt;br&gt;&#10;&amp;ldquo;죽였다. 털이 실해 보여서.&amp;rdquo;&lt;br&gt;&#10;&amp;ldquo;값은 좀 받았나?&amp;rdquo;&lt;br&gt;&#10;여자는 콧바람을 냈다.&lt;br&gt;&#10;&amp;ldquo;봇짐장수한테 말하니 한푼 주긴 커녕 되려 액운을 떼줄테니 돈을 내놓으라더군. 그건 낭랑(郎狼) 가죽이라고. 자기는 서녘에서 본 적이 있는데 가지고만 있어도 원념으로 저주를 받는다더군. 그래서 자기가 잘 아는 큰 스님한테 가져다줄테니 돈을 내놓으라고 구슬리는 거야.&amp;rdquo;&lt;br&gt;&#10;&amp;ldquo;허어. 사기꾼이로구려.&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 장사치들은 다 그렇지. 그래서 놈 코피를 내주었지. 그제야 줄행랑을 치더군.&amp;rdquo;&lt;br&gt;&#10;여자는 하하 웃었다가, 다시 표정이 굳었다.&lt;br&gt;&#10;&amp;ldquo;왜 그러시우?&amp;rdquo;&lt;br&gt;&#10;&amp;ldquo;근데 봇짐장수 말이 사실이긴 하더군.&amp;rdquo;&lt;br&gt;&#10;&amp;ldquo;액운이 붙었소?&amp;rdquo;&lt;br&gt;&#10;&amp;ldquo;정확히는 액운이라기 보단… 놈도 짐승이라지만 짝이 있었던 모양이지.&amp;rdquo;&lt;br&gt;&#10;&amp;ldquo;낭랑의 짝지 말이우?&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amp;rdquo;&lt;br&gt;&#10;여자는 울분에 찬듯 이를 간다.&lt;br&gt;&#10;커다란 송곳니가 드러난다.&lt;br&gt;&#10;&amp;ldquo;아마 낭랑 가죽을 가지고 있었던 게 탈이었나. 아마 그걸 보고 집을 찾아온 모양이지. 일어나보니 낭랑 가죽도 사라졌고.&amp;rdquo;&lt;br&gt;&#10;&amp;ldquo;놈이 찾아온 거요?&amp;rdquo;&lt;br&gt;&#10;&amp;ldquo;찾아오다마다.&amp;rdquo;&lt;br&gt;&#10;여자는 주먹을 불끈 쥔다.&lt;br&gt;&#10;&amp;ldquo;놈은 내 지아비를 찢어죽였으니, 내 어찌 복수하지 않고 숨 쉬고 살랴?&amp;rdquo;&lt;br&gt;&#10;여자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내가 앉은 나무를 친다.&lt;br&gt;&#10;나는 날고, 여자는 마른 나무에서 떨어지는 눈을 다소 뒤집어 쓴다.&lt;br&gt;&#10;&amp;ldquo;당신은 어디에 있었기에?&amp;rdquo;&lt;br&gt;&#10;&amp;ldquo;나는 자고 있었지.&amp;rdquo;&lt;br&gt;&#10;&amp;ldquo;바로 옆에서 말이우?&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amp;rdquo;&lt;br&gt;&#10;&amp;ldquo;모르고 있었수?&amp;rdquo;&lt;br&gt;&#10;&amp;ldquo;몰랐지. 놈이 노린 것이 그것일테니.&amp;rdquo;&lt;br&gt;&#10;여자는 회백색 머리털에서 눈을 툴툴 털어낸다.&lt;br&gt;&#10;&amp;ldquo;반쯤은 사람을 닮았으니 사람처럼 생각한게지. 너도 짝 잃은 슬픔을 겪어보라고.&amp;rdquo;&lt;br&gt;&#10;&amp;ldquo;이해가 되는구려.&amp;rdquo;&lt;br&gt;&#10;&amp;ldquo;이해? 너도 주제에 금수라고 금수편을 든단 말이냐?&amp;rdquo;&lt;br&gt;&#10;&amp;ldquo;아니, 그렇지 않수? 일을 먼저 저지른 건 그대고…&amp;rdquo;&lt;br&gt;&#10;&amp;ldquo;망할놈!&amp;rdquo;&lt;br&gt;&#10;여자가 돌을 집어 던진다.&lt;br&gt;&#10;아슬아슬하게 날개죽지 아래로 스친다.&lt;br&gt;&#10;나는 높이 난다.&lt;br&gt;&#10;여자는 씩씩거리다가 분이 풀린듯 다시 발자국을 찾기 시작한다.&lt;br&gt;&#10;나는 높은 풍경 위에서 산을 내려다본다.&lt;br&gt;&#10;여러 발자국들을 발견한다.&lt;br&gt;&#10;&amp;ldquo;그래서 이 산을 뒤지고 있는 거요?&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 낭랑 발자국을 여기서 찾았으니, 놈은 분명 가까운 곳에 있다. 조만간 찾을 수 있겠지.&amp;rdquo;&lt;br&gt;&#10;나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인다.&lt;br&gt;&#10;다시 나뭇가지에 앉는다.&lt;br&gt;&#10;&amp;ldquo;혹여나…&amp;rdquo;&lt;br&gt;&#10;&amp;ldquo;왜?&amp;rdquo;&lt;br&gt;&#10;&amp;ldquo;뒤 좀 돌아볼 생각은 없수?&amp;rdquo;&lt;br&gt;&#10;&amp;ldquo;아서라. 이제 새놀음에 뺏길 시간은 없다. 훠이훠이.&amp;rdquo;&lt;br&gt;&#10;여자는 손사레를 치고 이제 네 발로 바닥을 짚는다.&lt;br&gt;&#10;이제 여자는 짐승처럼 보인다.&lt;br&gt;&#10;늑대 같기도, 인간 같기도한.&lt;br&gt;&#10;커다란 근육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수풀 사이로 전날 온 눈 위의 미세한 발자국을 찾는다.&lt;br&gt;&#10;그러다 큰 흔적을 발견한듯 여자는 고개를 넘어간다.&lt;br&gt;&#10;나는 여자 대신 뒤를 돌아본다.&lt;br&gt;&#10;여자가 네 발로 남긴 발자국들을.&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호텔 림보</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D%98%B8%ED%85%94-%EB%A6%BC%EB%B3%B4/</link><pubDate>Mon, 02 Mar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D%98%B8%ED%85%94-%EB%A6%BC%EB%B3%B4/</guid><description>&lt;p&gt;우주의 끝엔 거대한 구조물이 있다.&lt;br&gt;&#10;이 구조물은 극도로 복잡한 태엽장치처럼 보이며, 매끈하게 회전하는 황금 반구와 그 내부를 드러내는 나머지 반구로 나뉘어 볼 수 있다.드러나는 반구 안으로 보이는 수 억 개의 톱니바퀴들은 반복되는 프랙탈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끝 없이 뿜어내는 빛과 열 때문에 일정 해상도 이상의 관측이 불가능했다. 우주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저 먼 과거에서 온 이들은 톱니바퀴와 톱니바퀴 사이로 구조물이 숨기고 있는 내밀한 무언가가 존재하리란 확신이 있었지만, 끝내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했다.&lt;br&gt;&#10;그 누구도 이 구조물보다 더 멀리가진 못했다.&lt;br&gt;&#10;일반적으로, 우주의 끝으로 가고 싶어하는 이들이 보고싶어 하는 것은 열죽음의 세계다.&lt;br&gt;&#10;완벽한 평형과 절대영도.&lt;br&gt;&#10;세상에 자신만이 남았다는 고독.&lt;br&gt;&#10;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우주는 끝나고 자신만이 남았다는 도취를 느끼기 위해서인 것이다.&lt;br&gt;&#10;아무도 저 스스로 회전하는 빛과 열을 내는 구조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는 못한다.&lt;br&gt;&#10;그래서 어떤 이들은 구조물을 박살내기 위해 달려든다.&lt;br&gt;&#10;제로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제일 멍청한 놈들이지.&amp;rdquo;&lt;br&gt;&#10;그 말대로다.&lt;br&gt;&#10;그 구조물을 제대로 관측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다.&lt;br&gt;&#10;연역적인 논리로 따져봤을 때, 구조물이 그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 구조물은 직접적인 도전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lt;br&gt;&#10;구조물은 파괴되지 않는다.&lt;br&gt;&#10;초광속항행자들이 그네들이 응당 겪어야 하는 생략된 시간을, 구조물은 모두 인내하고 있었다.&lt;br&gt;&#10;그리고 여간 머리가 미련한 것이 아니라면 며칠만 기다려도 구조물을 공전하고 있는 데브리띠와 인공 행성들, 그리고 가끔은 부나방처럼 그대로 화난 듯 들이박는 인내심을 잃은 초광속항행자들의 우주선이 구조물에게 들이박히는 걸 볼 수 있다.&lt;br&gt;&#10;구조물은 단단하다.&lt;br&gt;&#10;그래서 어떤 이들은 구조물과 시합을 한다.&lt;br&gt;&#10;사실 그 결과는 이 시점에선 알 수 없다.&lt;br&gt;&#10;하지만 계산을 잘 할 줄 안다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lt;br&gt;&#10;알포가 말했다.&lt;br&gt;&#10;&amp;ldquo;두 번째로 멍청한 놈들이죠.&amp;rdquo;&lt;br&gt;&#10;이미 구조물이 등장하는 &amp;lsquo;우주의 끝&amp;rsquo;에 도달한다면 얻을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다. 이 우주의 끝에 도달하는 초광속항행자들은 큰 변수 없이 일정하며, 그들과 그들이 가져온 우주선 잔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자원으로 갈 수 있는 우주의 끝도 제한적이다. 자신들이 살아온 우주 가득히 빛나는 별들과 끝 없이 탐사 할 수 있을 것 같은 행성계는 더는 없는 것이다.&lt;br&gt;&#10;호텔 림보의 유명한 골드보드에도 그 수식이 적혀 있다. 복잡한 수학기호지만 해석하자면 이렇다.&lt;br&gt;&#10;&amp;lsquo;미련한 놈들아, 여기가 끝이다.&amp;rsquo;&lt;br&gt;&#10;그리고 번역자에 따라서 횟수가 다르긴 하지만 그 옆에는 해당 골드보드가 몇 번이나 반감기가 지나 방사선 붕괴로 흩어졌다가 다시 옮겨 적혔는지도 조각되어 있다.&lt;br&gt;&#10;구조물은 부술 수 없다.&lt;br&gt;&#10;구조물을 넘을 수 없다.&lt;br&gt;&#10;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다.&lt;br&gt;&#10;포기하는 것.&lt;br&gt;&#10;한계를 인정한 이들은 우주의 끝에 도달해 구조물의 안정적인 공전 궤도를 돌면서 여생을 어떻게 할지 가름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생을 마감한다. 이들은 고운 이들이다. 적어도 남한테 폐를 끼치진 않으니까.&lt;br&gt;&#10;하지만 어떤 이들은 우주의 끝에서 돌아가지도, 더 가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한다.&lt;br&gt;&#10;화가 쌓인다.&lt;br&gt;&#10;답답하다.&lt;br&gt;&#10;유흥을 즐기고 싶다.&lt;br&gt;&#10;젠장, 그런데 여긴 우주의 끝이다!&lt;br&gt;&#10;아무것도 없다!&lt;br&gt;&#10;아니, 사실 그렇지는 않다.&lt;br&gt;&#10;그런 놈들이 모여서 미적대는 곳이 우주의 끝에는 있었다.&lt;br&gt;&#10;호텔 림보였다.&lt;br&gt;&#10;거의 완벽하게 구성된 약인공지능, 그러니까 마인드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계일 뿐인, 하지만 세계의 끝에서 가질 수 있는 저위차원 기술 과학에서는 마인드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지배인이 운영하는 호텔이 있었다.&lt;br&gt;&#10;내가 말한다.&lt;br&gt;&#10;&amp;ldquo;세 번째로 멍청한 놈들이지.&amp;rdquo;&lt;br&gt;&#10;&amp;ldquo;아니, 우린 멍청하지 않아.&amp;rdquo; 제로가 반박한다. &amp;ldquo;우린 몸을 던져 터지지도 않고, 자만에 빠져 목숨을 건 항행을 하지도 않지. 우린 살아남았어.&amp;rdquo;&lt;br&gt;&#10;&amp;ldquo;그게 목표는 아니었을텐데.&amp;rdquo;&lt;br&gt;&#10;&amp;ldquo;어, 난 여기까지 온 걸로 충분해. 저건 &amp;lsquo;시계&amp;rsquo;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게 생각하나?&amp;rdquo;&lt;br&gt;&#10;&amp;ldquo;물론.&amp;rdquo;&lt;br&gt;&#10;관점의 차이였다.&lt;br&gt;&#10;이야기를 듣자하니 제로는 범죄자였는데, 그가 범한 범죄는 그 사회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이며, 그는 그 일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lt;br&gt;&#10;그에게는 글자 그대로 천문학적인 단위의 수감 형벌이 내려졌다.&lt;br&gt;&#10;문제가 있다면 그 사회는 문명이 꽤 발달 되어 있었으면서 다소 고지식했다는 점이다.&lt;br&gt;&#10;제로는 강제로 초광속항행선을 타고 그가 받아야할 형벌만큼 쏘아졌다. 과거의 원시 우주로 쏘아져 대은하단의 회전을 우습게 보일 거대한 고리를 그린 뒤에야, 그는 이곳에 왔다.&lt;br&gt;&#10;구조물은 제로에게 자유의 근거였다.&lt;br&gt;&#10;&amp;ldquo;당신 같은 사람에겐 그렇겠죠.&amp;rdquo; 알포가 재반박했다. &amp;ldquo;그 사람들은 세상의 끝을 보라고 보냈는데, 환대해줄 호텔 지배인과 술친구들이 있을 줄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저게 시계가 아니면, 넌 뭐라고 생각하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냥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저건 &amp;lsquo;영구기관&amp;rsquo;이라고요.&amp;rdquo;&lt;br&gt;&#10;제로는 콧김을 뿜었다.&lt;br&gt;&#10;저위차원에서 초광속항해는 가능하지만 영구기관은 불가능하다.&lt;br&gt;&#10;그렇게 알려져 있다.&lt;br&gt;&#10;&amp;ldquo;호텔의 골드보드 안 보여?&amp;rdquo;&lt;br&gt;&#10;&amp;ldquo;골드보드에도 관측하지 못한 내적 &amp;lsquo;신비&amp;rsquo;가 존재한다고 적혀 있죠.&amp;rdquo;&lt;br&gt;&#10;&amp;ldquo;친구, 봤어? 얘 방금 &amp;lsquo;신비&amp;rsquo;라고 했다. 과학자 어디갔나.&amp;rdquo;&lt;br&gt;&#10;&amp;ldquo;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게 과학입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아니지. 모르면 무식한 거지.&amp;rdquo;&lt;br&gt;&#10;나는 실소했다.&lt;br&gt;&#10;그리고 알포의 표정을 보고 실수라는 걸 깨달았다.&lt;br&gt;&#10;알포는 학자였고, 자신의 연구 논문을 완성시킬 목적으로 우주의 끝을 보러 왔다. 그런 인간이다. 조심해야한다.&lt;br&gt;&#10;다행히 알포는 크게 화난 것 같지는 않았다.&lt;br&gt;&#10;&amp;ldquo;그럼, 탐정 씨는 어떻게 생각하죠?&amp;rdquo;&lt;br&gt;&#10;&amp;ldquo;뭐?&amp;rdquo;&lt;br&gt;&#10;&amp;ldquo;구조물이요.&amp;rdquo;&lt;br&gt;&#10;&amp;ldquo;글쎄. 음… 그 뭐랄까… 난 영구기관이라고 까지 생각하진 않는데 시계처럼 단순한 목적은 아닌 것 같고… 난 사실 별 관심 없어. 나는 우주의 끝을 보러 온 게 아니라 그냥 사람 찾으러 온 거라고.&amp;rdquo;&lt;br&gt;&#10;&amp;ldquo;그 직업 정신은 칭찬드립니다마는.&amp;rdquo;&lt;br&gt;&#10;&amp;ldquo;칭찬 받고 싶진 않은데.&amp;rdquo;&lt;br&gt;&#10;내가 투덜거리자 바텐더이자 지배인이자 호텔 림보 그 자체가 입을 열었다.&lt;br&gt;&#10;&amp;ldquo;등대.&amp;rdquo;&lt;br&gt;&#10;&amp;ldquo;등대?&amp;rdquo;&lt;br&gt;&#10;&amp;ldquo;저것은 등대다. 등대를 모르나?&amp;rdquo;&lt;br&gt;&#10;&amp;ldquo;아니, 알아. 뭐, 빛을 내니까 그렇게 볼 수 있긴 하겠군.&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다. 빛은 인도한다. 마른 곳으로.&amp;rdquo;&lt;br&gt;&#10;나와 알포는 잠깐 눈빛을 맞춘다.&lt;br&gt;&#10;알포가 말한다.&lt;br&gt;&#10;&amp;ldquo;흥미로운 시각이군요. 그러니까 저건 누군가 단순한 호의로 세계의 끝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둔 거란 말이군요?&amp;rdquo;&lt;br&gt;&#10;&amp;ldquo;호의? 의도는 모른다. 하지만 마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한 장치는 맞다.&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지. 공허하고 아무 것도 없는, 얼어붙은 우주는 진 곳이지. 우주의 끝으로 저 이정표를 꽂아놓아서 사람들을 이쪽으로 끌어당겼군. 이유는 모르지만.&amp;rdquo;&lt;br&gt;&#10;&amp;ldquo;그런가? &amp;lsquo;너&amp;rsquo;라면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amp;rdquo;&lt;br&gt;&#10;아리송한 말에 다들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침묵한다. 제로가 제 술잔을 몇 번 더 홀짝인다.&lt;br&gt;&#10;우리는 잠시 호텔 림보의 바 전면창 밖으로 보이는 구조물을 바라보았다. 구조물은 구름(이제는 기억 속에서도 희미한)이 흐르는 속도로 움직인다. 스쳐가듯 보면 정지한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움직이고 있다.&lt;br&gt;&#10;바텐더가 말했다.&lt;br&gt;&#10;&amp;ldquo;누군가 왔군.&amp;rdquo;&lt;br&gt;&#10;고개를 돌리자 전면창 구석 도킹 시스템에 우주선 하나가 다가온다.&lt;br&gt;&#10;어딘가 낯익은 우주선이다.&lt;br&gt;&#10;제로가 술잔을 올리며 말했다.&lt;br&gt;&#10;&amp;ldquo;기다리던 그 사람이길 바라지.&amp;rdquo;&lt;br&gt;&#10;나는 잔을 마주쳤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엑실의 아이</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7%91%EC%8B%A4%EC%9D%98-%EC%95%84%EC%9D%B4/</link><pubDate>Fri, 28 Feb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7%91%EC%8B%A4%EC%9D%98-%EC%95%84%EC%9D%B4/</guid><description>&lt;p&gt;아이 하나가 오카를 가리켰다.&lt;br&gt;&#10;&amp;ldquo;저기 도롱뇽 지나간다.&amp;rdquo;&lt;br&gt;&#10;오카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lt;br&gt;&#10;엑실 콜로니 출신은 만만하게 보인다.&lt;br&gt;&#10;키가 작고, 앳된 외모로 보인다.&lt;br&gt;&#10;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마른데다가 근육량은 적다. 유전적으로 결함 요소를 배제 했지만 대부분은, 대단절 시대의 고대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머리와 피부는 모두 희다.&lt;br&gt;&#10;다른 인간종들은 볼품없다고 하기도 하지만, 엑실의 아이들은 이런 자신의 외견을 모두 귀히 여긴다.&lt;br&gt;&#10;어머니들의 지식과 기술로 만들어진, 생존을 위한 효율의 결과.&lt;br&gt;&#10;차가운 우주를 상대로 생을 거듭해나가기 위한 억척스런 몸.&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기계와 번역기</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8%B0%EA%B3%84%EC%99%80-%EB%B2%88%EC%97%AD%EA%B8%B0/</link><pubDate>Mon, 24 Feb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8%B0%EA%B3%84%EC%99%80-%EB%B2%88%EC%97%AD%EA%B8%B0/</guid><description>&lt;p&gt;&amp;ldquo;박사님, 뭐하세요?&amp;rdquo;&lt;br&gt;&#10;&amp;ldquo;목소리를 듣고 있다네.&amp;rdquo;&lt;br&gt;&#10;&amp;ldquo;목소리라 하면, 목에서 나는 소리가 아닐지요.&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지.&amp;rdquo;&lt;br&gt;&#10;&amp;ldquo;하지만 거긴 버스 바닥이잖아요.&amp;rdquo;&lt;br&gt;&#10;&amp;ldquo;맞는 말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청진기를 대고 계시긴 하지만.&amp;rdquo;&lt;br&gt;&#10;&amp;ldquo;또 양은…&amp;rdquo;&lt;br&gt;&#10;박사님은 입고 있던 실험의를 툭툭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lt;br&gt;&#10;&amp;ldquo;편협한 지식 체계에 갇혀있군.&amp;rdquo;&lt;br&gt;&#10;&amp;ldquo;또 시작인가.&amp;rdquo;&lt;br&gt;&#10;&amp;ldquo;마음의 소리가 나온 것 같은데.&amp;rdquo;&lt;br&gt;&#10;나는 무슨 말이냐는듯 멀뚱하게 박사님을 바라보았다.&lt;br&gt;&#10;박사님은 묘한 표정으로 날 보다가 입을 열었다.&lt;br&gt;&#10;&amp;ldquo;…아무튼, 만물-유기학적인 관점에서 의지 있는 소리를 내는 모든 기관은 &amp;lsquo;목&amp;rsquo;이라고 할 수 있다네.&amp;rdquo;&lt;br&gt;&#10;&amp;ldquo;만물-유기학이라고요? 가이아 이론이에요?&amp;rdquo;&lt;br&gt;&#10;&amp;ldquo;비슷하지. 세상은 사실 무기물과 유기물로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상호작용하는 유기물이란 말이야. 실제로 그렇지. 그리고 유기물들은 소리를 내는데, 그 말은 무기물도 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이고. 그게 목이지. 그리고 그 목을 통해서 튀어나오는 소리는 결국 &amp;lsquo;말&amp;rsquo;이라고 할 수 있겠지.&amp;rdquo;&lt;br&gt;&#10;&amp;ldquo;결국 버스가 말을 한다고 말씀하고 싶은 거죠?&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다네.&amp;rdquo;&lt;br&gt;&#10;나는 박사님과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lt;br&gt;&#10;마침 버스가 다음 정거장에 설 것이란 안내가 나왔다.&lt;br&gt;&#10;&amp;ldquo;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저 이번 정류장에서 내려요.&amp;rdquo;&lt;br&gt;&#10;당연히 박사님은 날 붙잡았다.&lt;br&gt;&#10;&amp;ldquo;아니 어딜 가나. 양이 호텔 예약을 다했는데. 내 서류 정리는 누가 도와주고.&amp;rdquo;&lt;br&gt;&#10;&amp;ldquo;죄송하지만 박사님의 품격은 모르겠지만 제 품격은 좀 챙겨야겠는데요.&amp;rdquo;&lt;br&gt;&#10;&amp;ldquo;맡은 바 소임을 하는 사람은 멋지지 않은가? 이건 과학이라네. 나는 과학자고.&amp;rdquo;&lt;br&gt;&#10;&amp;ldquo;바닥에 청진기 대면서 히죽히죽 웃어대는 사람은 그냥 이상한처럼 보인다는 건 유감이긴한데요.&amp;rdquo;&lt;br&gt;&#10;&amp;ldquo;아, 그래. 내 설명이 부족했군. 이리 앉아보게.&amp;rdquo;&lt;br&gt;&#10;박사님은 다시 바닥에 앉아서 내게 손짓했다.&lt;br&gt;&#10;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버스는 정거장에 서지 앉아서 내릴 타이밍을 놓쳤다.&lt;br&gt;&#10;나는 자리에 앉았다.&lt;br&gt;&#10;박사님이 말했다.&lt;br&gt;&#10;&amp;ldquo;이건 분명 평범한 청진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라네.&amp;rdquo;&lt;br&gt;&#10;&amp;ldquo;아닌가요.&amp;rdquo;&lt;br&gt;&#10;&amp;ldquo;만물-유기학에 근거한 번역기지.&amp;rdquo;&lt;br&gt;&#10;&amp;ldquo;번역기.&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다네. 이걸 착용하고 버스 바닥에 대어보게.&amp;rdquo;&lt;br&gt;&#10;나는 미심쩍어하면서 그 말대로했다.&lt;br&gt;&#10;어차피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서 무릎을 더럽혔으니.&lt;br&gt;&#10;놀랍게도 번역기라고 불리는 청진기를 착용하고 그 끝을 바닥에 대자 &amp;lsquo;목소리&amp;rsquo;가 들려왔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도망친 머리</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8F%84%EB%A7%9D%EC%B9%9C-%EB%A8%B8%EB%A6%AC/</link><pubDate>Tue, 18 Feb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8F%84%EB%A7%9D%EC%B9%9C-%EB%A8%B8%EB%A6%AC/</guid><description>&lt;p&gt;#장르_코드_전력_시체&lt;/p&gt;&#10;&lt;p&gt;경찰에게서 연락을 받은 건 나였다.&lt;br&gt;&#10;&amp;ldquo;야미, 서장님이 자문관을 찾고 있어.&amp;rdquo;&lt;br&gt;&#10;&amp;ldquo;거절해.&amp;rdquo;&lt;br&gt;&#10;&amp;ldquo;무슨 사건인지 듣지도 않았잖아?&amp;rdquo;&lt;br&gt;&#10;&amp;ldquo;높은 확률로 루비의 연구원일 거야. 아마 실종되거나 납치 되었겠지. 아마 경쟁업체에서 스카웃하기 위해서일 거야.&amp;rdquo;&lt;br&gt;&#10;&amp;ldquo;스카웃하기 위해서 납치를 한다고?&amp;rdquo;&lt;br&gt;&#10;내가 되묻자, 벨벳 소파 위에서 나체로 와인을 마시던 야미는 어깨를 으쓱했다.&lt;br&gt;&#10;&amp;ldquo;넌 정말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하는구나.&amp;rdquo;&lt;br&gt;&#10;&amp;ldquo;알려줘.&amp;rdquo;&lt;br&gt;&#10;&amp;ldquo;연구원들은 기업에 유전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경우가 흔해. 21세기처럼 돈이나 유흥으로 꼬시려고 들어도 쓸모가 없지. 기업 마크, 아니 사명만 들어도 애사심으로 심장이 뛰고 최고경영자를 보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질걸. 그러니 경쟁 기업에서 세뇌를 하거나 호르몬 요법으로 강제적인 행동수정을 해서 자기 기업에 들어오라고 &amp;lsquo;설득&amp;rsquo;해야 되는 거야. 설득이 끝나면 납치 된 게 아니라 제 발로 걸어나온 거라고 하겠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도 되는 거야?&amp;rdquo;&lt;br&gt;&#10;&amp;ldquo;안 될게 뭐야? 법 체계가 존속하기 위해선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인정해야 해. 외부의 기술적인 수단으로 뇌를 조물딱거린다고 해서 자유의지가 &amp;lsquo;사라졌다&amp;rsquo;고 말할 수 없어. 아무튼… 연구원에겐 별 일은 없을 거야. 어느 회사라고 해도 절대적인 체계인 노동법을 어길 수는 테니, 그 연구원에겐 아마 별 일 없을 걸. 더 좋은 처우를 받을지도 모르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런데 그건 어떻게 안 거야?&amp;rdquo;&lt;br&gt;&#10;&amp;ldquo;루비 자회사인 루비랩의 주가가 흔들리고 있어. 이번에 즉시 동결 기술을 통한 신제품을 준비중이고 내부 평가가 괜찮았는데도 말이야.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겼단 말이고, 제일 흔한 건 연구원 스카웃이지. 이 정보는 어디서 샜을 거야.&amp;rdquo;&lt;br&gt;&#10;나는 야미를 잠깐 본 다음 다시 경찰과 이야기했다.&lt;br&gt;&#10;야미의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lt;br&gt;&#10;&amp;ldquo;루비 연구원은 맞췄어.&amp;rdquo;&lt;br&gt;&#10;&amp;ldquo;그런데?&amp;rdquo;&lt;br&gt;&#10;&amp;ldquo;납치 된 게 아니라, 살해 당했다고 해.&amp;rdquo;&lt;br&gt;&#10;&amp;ldquo;납치가 아니라 살해. 흥미로운걸. 살인은 범법인데.&amp;rdquo;&lt;br&gt;&#10;납치도 범법이지만.&lt;br&gt;&#10;&amp;ldquo;어쩔거야?&amp;rdquo;&lt;br&gt;&#10;&amp;ldquo;당장 간다고 전해.&amp;rdquo;&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소설의 분량</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86%8C%EC%84%A4%EC%9D%98-%EB%B6%84%EB%9F%89/</link><pubDate>Fri, 07 Feb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86%8C%EC%84%A4%EC%9D%98-%EB%B6%84%EB%9F%89/</guid><description>&lt;p&gt;제도권에서 단편은 원고지 200매 기준 60매에서 120매 사이. 그러니까 1만 2천자에서 2만 4천자 정도. 넉넉하게 200매 정도까지도 단편으로 본다. 영미권은 단어수로 세지만 분량은 조금 더 많은 편으로 기억(short story 기준). 장편 단권(novel)은 국배판이 12만자 정도 되면 300페이지 나온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원고지 기준 600매 내외인 셈. 도서정가제 이후 경장편/중편 경향이 강해져서 단편과 장편 단권 사이의 작품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중편(novella)은 200매 정도로 알고 있는데 경장편의 정확한 분량이 궁금해서 핀 시리즈라는 경장편을 내는 현대문학을 펼쳐서 대강 찾아봤는데 이영도의 &amp;ldquo;마트 이야기-시하와 칸타의 장&amp;quot;은 10만자, 듀나의 &amp;ldquo;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amp;quot;는 8만자 정도. 차이가 좀 있지만 400매, 500매가 최근 경장편 분량인듯 하다. 장편소설은 단권으로 끝나는 경우가 흔하지만, 웹소설 경향에선 권수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 남성향 판타지는 매니지에서 여덟 권을 기본으로 요구하는 편. 과거에 이런 권수라면 대하소설로 불렸지만,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역사소설의 면모로 개인이 아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러 캐릭터를 보여주었기 때문인데, 단순히 분량만이 아니라 소설의 속성도 분류에서 드러나는 것. 단편을 열 작품 정도 발표하고 나면 작가들의 작품이 단편집으로 묶여서 나오고 그러면 300페이지를 조금 넘고 그랬다. 최근엔 한 권을 경장편, 중편으로 구성하거나 단편으로 구성(이 경우에는 일러스트를 넣어 볼륨을 키운다)하기도 하기 때문인지 단편도 열 편이 아닌 그보다 적은 분량으로 싣는듯. 이렇게 되면 단편소설의 분량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작은 책이면 편수가 많은 쪽이 볼륨이 있어 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문예지에서 요구하는 분량이 앞서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을지도. 매수당 고료 계산을 한다면 단편을 적게 실은 단편집이 작가에게 더 이득인 것 같기도 하고.&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군상극에 대하여</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5%B0%EC%83%81%EA%B7%B9%EC%97%90-%EB%8C%80%ED%95%98%EC%97%AC/</link><pubDate>Thu, 02 Jan 2020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5%B0%EC%83%81%EA%B7%B9%EC%97%90-%EB%8C%80%ED%95%98%EC%97%AC/</guid><description>&lt;p&gt;군상극은 문예사만 짚어서는 설명하기 어렵죠. 군상극은 무대 예술과 영향을 주고 받았던 과거 작품과 달리 영화나 TV 드라마, 또는 게임에 더 가까우니까. 서사문학은 최초에는 단일한 시간선을 보여주는 &amp;lsquo;내러티브&amp;rsquo;에만 치중되어 있었지만 플롯이 등장했고 그 플롯은 점점 더 복잡해졌습니다. 소설은 여러 문예사조나 근접한 다른 서사장르로부터 영향을 받죠. 복잡한 플롯을 가진 서사 작품은 단일한 시간선이 아니라 둘 이상의 시간선을 보여준다는 말이고, 이 말은 하나의 장소 또는 인물의 과거와 미래, 또는 같은 시간 선에서의 다른 장소와 인물, 또는 &amp;lsquo;서로 다른 인물들의 같은 시간대&amp;rsquo; 등 다양한 시각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 렌즈를 통해서 창작되는 작품은 이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카메라는 어디에나 놓일 수 있고, 제한적인 시각만을 보여주어야만 했던 무대 예술과는 차별화 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소설 또한 이러한 방법론을 채용했고, 복잡한 구성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구성이 문예사적으로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그래도 제 말의 방향 자체가 틀렸을 것 같진 않긴한데), 이런 복잡한 구성은 소설에서 계속해서 발전해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군상극은 아주 복잡한 수준의 구성이 요구 되는 작품군으로 보입니다.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적어도 3명 이상의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인물들을 동일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드러내는 작품 구성이라고 할텐데, 사실 소설에서만 드물 뿐이지 많은 드라마(특히 아침 드라마라고 부르는 부류)는 이미 군상극이라고 부를만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카메라를 옮기는 건 쉬우니까. 소설에서는 드문데 왜냐하면, 이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한 줄 한 의 문장으로 읽어내려가야만 하고 이것은 독자에게 단일한 하나의 시간의 흐름으로 이해 됩니다. 따라서 시각이 둘 이상이면 일관성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초점이 등장하죠. 초점은 마치 카메라 렌즈처럼 인물과 인물, 장소와 장소를 옮겨갈 수 있도록 만듭니다. 군상극이라 부를만한 작품들은 서로 다른 인물과 장소,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일관성을 가진 초점을 유지하는 것으로 하나의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시각을 조망하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이건 멀티테스킹을 요구하는 게임적 시각에 가깝기도 하죠(물론 &amp;ldquo;얼음과 불의 노래&amp;quot;처럼 오래된 작품의 경우 게임에 영향을 받았는진 모르겠습니다. 조지 R. R. 마틴이 RTS를 즐겨봤을까요? 그럴 것 같은 인물이긴 합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미니어쳐 게임은 즐겨 봤을지도 모르고). 군상극이 가지는 의의라면 개인의 내면만이 아니라 군중이라고 부를만한 다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세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그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라 할 수 있겠죠. (생각해보니 이와 같은 서술이 더 오래 쓰였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amp;lsquo;거대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amp;rsquo;이라면 역사서도 있겠죠. &amp;ldquo;얼음과 불의 노래&amp;quot;는 이차세계의 미시사를 다룬 역사책을 픽션으로 다듬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요.) (거대서사가 주목받지 못하고 미시사가 도래한 것도 이런 이야기에 영향을 주었을까요? 그런 기준이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럴 것 같기도 하네요.)&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쓰레기를 쓰겠어</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3%B0%EB%A0%88%EA%B8%B0%EB%A5%BC-%EC%93%B0%EA%B2%A0%EC%96%B4/</link><pubDate>Sat, 19 Oct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3%B0%EB%A0%88%EA%B8%B0%EB%A5%BC-%EC%93%B0%EA%B2%A0%EC%96%B4/</guid><description>&lt;p&gt;&amp;ldquo;나는 쓰레기를 쓸 것이다&amp;rdquo;&lt;br&gt;&#10;솔직히 복창하진 않는데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에 별로 의심하지는 않고 있음.&lt;/p&gt;&#10;&lt;p&gt;Q. 자존감이 낮아 보여서 걱정 되요&lt;br&gt;&#10;A. 진짜 잘하지 않는데 잘한다고 생각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괴롭게 만든다면 구태여 자기를 속일 필요가 없죠. 돼요.&lt;br&gt;&#10;아무튼 글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는 중요하고 기왕이면 자기 글의 단점을 잘 이해해서 고치는 방향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 장점을 강화하라고요? 장점이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불안 없이 웹소설쓰기</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B%B6%88%EC%95%88-%EC%97%86%EC%9D%B4-%EC%9B%B9%EC%86%8C%EC%84%A4%EC%93%B0%EA%B8%B0/</link><pubDate>Fri, 27 Sep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B%B6%88%EC%95%88-%EC%97%86%EC%9D%B4-%EC%9B%B9%EC%86%8C%EC%84%A4%EC%93%B0%EA%B8%B0/</guid><description>&lt;p&gt;생각난 개념이 있는데 뭐라고 불러야 이쁜 어휘가 될 지 모르겠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amp;lsquo;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긴장감을 불러오는 플롯 장치&amp;rsquo;인데 이걸론 뭔가 부족하다. 정확히는 &amp;lsquo;주인공의 기반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amp;rsquo;인데. 불안장애에 가깝다. &amp;lsquo;해결되지 않고 넘어간 작품 내의 갈등 요소&amp;rsquo;인데. 단순히 &amp;lsquo;불안감&amp;rsquo;이라고 부르긴 심심하다. 아무튼 &amp;lsquo;불안감&amp;rsquo;이라고 부르자면, 이건 호러와 미스터리의 근간이고 장르소설이 아니라도 제도권 소설, 고전소설이나 리얼리즘과 모던에서 언제든 터져나올 수 있는 갈등을 위한 개연적 요소로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판타지 소설에서는 아니다. 정확히는 웹소설 현대판타지. 장르소설 즉 현대판타지 소설은 단순히 문장의 길이, 문단의 모양, 연재되는 플랫폼의 차이로만 언급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제도권 소설과 현대판타지의 가장 큰 차이는 불안감의 부재다. 현대판타지에서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은 명확해야한다. 때문에 주인공에 대한 초점과 시야, 알고 있는 정보는 현대 판타지 소설에서 서로 비슷한 경향이 있다(작가 시점을 선호하고 1인칭의 경우 거의 모든 정보를 앎). 회귀물이 인기 있는 것도 미래를 아는 주인공에게는 &amp;lsquo;불안감&amp;rsquo;이 없기 때문. 불안감을 만드는 요소들: 주인공과 독자 사이의 정보 격차, 주인공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 대적자와 완전히 갈무리되지 않은 갈등 요소, 저주, 주인공을 위협할 수 있는 운명적 요소, 드러나지 않은 배신자, 불필요하게 더 많은 정보(작가와 독자 사이의 정보 격차) 등 조금 더; 서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이를테면 영웅 서사에서의 하강부), 불안을 자아내는 문장, 도플갱어 등. 불안감은 위기와는 다른데, 위기는 이제 대면했으며 돌파해나갈 것이라는 점과 달리, 불안은 기저에 깔려 있고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며 주인공을 계속 옥죌 것이라는 예측에서 온다. 긴장감과도 다른데, 정확히는 불안은 긴장의 하위 요소다. 긴장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지 않고 중립적인 반면 불안은 부정적이며, 긴장이 주인공의 행동을 기대하게 하지만 불안은 보다 수동적인 대응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불안은 항거할 수 없는 운명과 저지른 업보에 대한 마땅한 응보, 개인이 끝내 이겨낼 수 없는 부조리, 세상이 만들어진 모양에 대한 개인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현대판타지는 왜 불안을 거절하는가? 판타지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판타지가 현실을 거절하는 건 당연하다. 그야말로 대척점에 있다. 이와 같은 비평적 접근과 별개로 창작론의 관점에서 불안의 부재는 곤란한 지점이 있다. 불안은 소설 서사의 기본이며 개연성의 층위를 쌓아나가는 와중에 생산되는 필연적 요소다. &amp;lsquo;불안 없이 소설 쓰기&amp;rsquo;는 &amp;lsquo;어떻게 무염 닭가슴살을 맛있게 먹는가&amp;rsquo;와 유사한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웹소설의 해답은 그냥 소금을 치는 것, 불안을 내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불안은 각 편의 시작 지점에서 나타났다가, 마지막 지점에서 해소된다. 때문에 각 편에선 불안이 존재하지만 소설의 전체를 보면 &amp;lsquo;불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amp;rsquo; 보이게 만든다. 일종의 마술이다. 이를테면 25화의 작품이라면 3&lt;del&gt;4회 분량으로 한 에피소드를 진행하며 2&lt;/del&gt;3회 분량에선 주인공이 &amp;lsquo;낙관적 전망을 가진 긴장감(불안의 반대 요소)&amp;lsquo;으로 소설을 진행하고 마지막 한 편을 불안을 드러냈다가, 해당 편의 끝에서 불안을 갈무리하고 종료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현대판타지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불안이 &amp;lsquo;가짜 불안&amp;rsquo;이기 때문이다. &amp;lsquo;부정적 전망을 가진 긴장감&amp;rsquo;은 등장했다가 곧바로 이익으로 교체되고 긴장이 해소된다(알다시피 현대판타지는 각 편이 &amp;lsquo;결기승전&amp;rsquo;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현대판타지는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끊임없는 이득을 통해서 스케일이 에스컬레이트 된다. 이 전개 속도는 절대 멈출 수 없으며 현대판타지의 틀을 결정짓는다. 너무 빠른 스케일의 확장은 세계관의 벽에 부닥치고 파워 게임에 대한 독자의 역치를 상승시켜 재미를 감소시킨다. 그래서 가짜 불안에 의해서 얻게 되는 이익은 사실상의 가짜 이익이 된다. 결기승전의 구성에서 독자의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익은 다음편의 초반부에서 기대보다 작은 이익으로 밝혀지고, 이 낙차를 통해서 독자에 대한 파워 레벨에 대한 역치를 회복시킨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마트 이야기 시하와 칸타의 장 감상</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B%A7%88%ED%8A%B8-%EC%9D%B4%EC%95%BC%EA%B8%B0-%EC%8B%9C%ED%95%98%EC%99%80-%EC%B9%B8%ED%83%80%EC%9D%98-%EC%9E%A5-%EA%B0%90%EC%83%81/</link><pubDate>Mon, 23 Sep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B%A7%88%ED%8A%B8-%EC%9D%B4%EC%95%BC%EA%B8%B0-%EC%8B%9C%ED%95%98%EC%99%80-%EC%B9%B8%ED%83%80%EC%9D%98-%EC%9E%A5-%EA%B0%90%EC%83%81/</guid><description>&lt;p&gt;&amp;ldquo;(생략)…그 쇠꼬챙이 치워라, 꼬맹아. 요정이 죽을 때 저주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amp;rdquo;&lt;br&gt;&#10;&amp;ldquo;하! 그래봐야 내 엄마 아빠란 연놈만 하겠어?&amp;rdquo;&lt;br&gt;&#10;&amp;ldquo;뭐? 네 부모가 뭘 했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날 낳았지!&amp;rdquo;&lt;/p&gt;&#10;&lt;p&gt;현대문학 VOL 777 p174-p175&lt;br&gt;&#10;이영도, &amp;lsquo;마트 이야기─시하와 칸타의 장&amp;rsquo;&lt;/p&gt;&#10;&lt;p&gt;다 보았다. 내러티브는 단순하다. 다만 이영도의 현대 판타지(&amp;ldquo;그림자 자국&amp;quot;이 근대 판타지였다고 생각하면)는 처음으로 보인다. &amp;lsquo;봄이 왔다&amp;rsquo; 빼고(이걸 제도권 소설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엽편이랑(기억 잘 안 남). 사실 현대는 아니고 정확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인데. 작품에서 사용하는 장치와 동일한 것은 다들 내 추천으로 읽어보았을 &amp;ldquo;클락성 살인사건&amp;quot;과 유사하다. 지구는 멸망해가고 남은 인류는 백일몽 속에서 환상종을 보게 된다. 때문에 작품은 하나의 거대한 은유로 작동하는데, 판타지와 은유에 대한 담론은 고릿적에 끝났으니 넘어가자.&lt;br&gt;&#10;온갖 날 것의 신화 생물들이 뻔뻔하게 등장하는데 주요 인외종은 요정과 드래곤, 간다르바다. 캇파도 나온다. 주인공 시하는 드래곤의 보호 구역 안에 사는데 배가 고파 쥐를 잡으려다 쥐잡이 틀로 요정을 잡아버린다. 그리고 좋아하는 칸타라는 친구가 있는데 옆동네로 이사를 가려고 하는데… 이정도가 소설의 도입부. 마트는 우리가 아는 그 마트가 맞다. 인간 모임이 마트고, 간다르바와 캇파, 드래곤이 각자의 영역을 형성한 정치적·지리적 지형도를 형성하고 알력 관계가 있다. 이정도가 소설의 배경. 도입부는 &amp;ldquo;피어클리벤의 금화&amp;quot;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재밌게 읽었을지도?).&lt;br&gt;&#10;아무튼 소설의 디테일은 신화 지식(*크툴루 아님)에 기대고 있는 경향이 있으며 이영도 특유의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주제로 향해가며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발언 속에서 인물들이 깨달음을 얻어 쉽게 설명되지 않는 행동으로 나아가 종극에 이르는 &amp;lsquo;이영도류&amp;rsquo; 소설인데 이전과는 다른 점이 많다. 일단은 이차세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칼 융을 떠올리게 만드는 기원에 근거한 서사를 이루려고 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소설에선 이영도가 지금까지의 만들었던 여러 요소들의 시발점처럼 느껴지는 디테일들이 등장하는데, 뒤늦게나마 비밀을 파헤친 것 같은 즐거움이 있었다. (사실 예전에 써둔 건가?) 제도권 문예지에 작품을 드러내야 하는 압박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왜냐하면 제도권에선 장르 판타지의 근간을 발가벗겨 드러내지 못하면 독해를 못하는 치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뻔뻔하게 제도권 작법을 무시하고 늘 하던 그 방법으로 소설을 풀어나가기 때문에… 생태주의, 사랑, 사람(인간)과 사람(비인간)의 만남, 불협화음, 템페스트적(*사견)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서 각자의 결말 맞으며 종막. 사실 이영도에게 기대되는 장르적 로망스가 본 작품에선 약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렇게 재미있진 않았다. 이야기의 호흡이 가쁜 것도 있고. 더 길면 좋았을 것.&lt;br&gt;&#10;그럼에도 브릿G에서 오버 더 초이스 전까지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던 작가가, 의외의 지면에서 의외의 소설로 찾아온 것은 반가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작가에 대한 기대감을 생각하면 본 작품은 훌륭하다 말해야 할 것. 다작하면 더 좋을 것이다. (캠페인: 당신의 도서 구매, 작가를 글쓰게 합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초점</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B4%88%EC%A0%90/</link><pubDate>Sun, 15 Sep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B4%88%EC%A0%90/</guid><description>&lt;p&gt;아주 단순한 소설도 사실은 여러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것 작가-화자-인물의 겹이다. 작가는 초점(시점이라고도 말하는)을 통해 독자의 시야를 제한하게 되는데, 이런 작업 과정에서 작가와 화자가 겹치거나(전지적작가시점), 화자와 인물이 겹치는 등(1인칭주인공시점)의 장치를 마련한다. 초점은 글에 따라 성격이 바뀌는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1인칭 서술자(화자) 주인공과 독자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까워 독자가 신뢰하는 관계가 된다. 반면 1인칭 서술자이면서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 인물이라면 주인공과 독자는 관찰자 인물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때문에 전자의 초점의 경우 1인칭 서술자인 주인공이 독자를 배반하는 반전 서사로, 후자의 초점의 경우 미스터리/호러 등에서 초자연적 사건에 대한 불신을 유예시킬 목적으로 사용 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인물과 사건을 불신하는 관찰자에 독자가 동의하므로). 아까는 작가가 직접 소설에서 등장하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는데, 초점 장치가 작가까지 드러나면 사실은 소설과 구술문학, 비소설간의 경계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근대를 넘으며 비교적 빈도가 줄긴 했지만 현대 작가들도 곧잘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소설(특히 장르소설)에서 초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긴 하다. 장르에 따라 이미 정해진 초점들이 있고 이것에 장르를 구분하는 거대한 축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초점을 가지고 놀고, 그것이 독자에게 인식되면, 실험적이라는 견해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초점은 소설이라는 매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도구다. 타 매체는 흉내를 내기 벅찬 소설의 고유한 성질이기 때문. 어떤 작품은 초점을 인지하지 못하면 밋밋한 서사와 구성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초점을 주목하면 소설을 몇 번이고 되짚어보게 만든다. (길리언 플린 &amp;ldquo;나는 언제나 옳다&amp;rdquo; 등.)&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잘 쓴 글과 잘 팔리는 글은 다르다</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E%98-%EC%93%B4-%EA%B8%80%EA%B3%BC-%EC%9E%98-%ED%8C%94%EB%A6%AC%EB%8A%94-%EA%B8%80%EC%9D%80-%EB%8B%A4%EB%A5%B4%EB%8B%A4/</link><pubDate>Wed, 28 Aug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E%98-%EC%93%B4-%EA%B8%80%EA%B3%BC-%EC%9E%98-%ED%8C%94%EB%A6%AC%EB%8A%94-%EA%B8%80%EC%9D%80-%EB%8B%A4%EB%A5%B4%EB%8B%A4/</guid><description>&lt;p&gt;잘 쓴 글 ≠ 잘 팔리는 글&lt;/p&gt;&#10;&lt;p&gt;잘 쓴 글: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얻어낼 수 있는 글.&lt;br&gt;&#10;잘 팔리는 글: 시장에서 많은 독자의 선택을 받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글.&lt;/p&gt;&#10;&lt;p&gt;밥을 굶으며 쓰느니 그런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사실 잘 쓴 글이라는 것부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amp;lsquo;비평적&amp;rsquo;이라는 조건을 붙였는데 비평해줄 사람이 없으면 자기가 잘 썼는지 아닌지 알 방법도 없다(자기 혼자 잘 썼다고 생각하고 말 생각이 아니라면). 잘 팔리는 거 무시하고 잘 쓰고만 싶다면 그걸 받아줄 수 있는 환경은 그리 많지 않다. 등단을 해서 문예지에 글을 내는 것이 가장 메이저하고 그 외부에는 거울이나 미스테리아나 한국SF협회 같은 소규모 장르 단체들 정도니까. 입구가 굉장히 좁다. 신문사 신춘문예 한 편 뽑는데 수 천편 몰리니까. 등단이 되었다고 쳐도 다음해까지 이력을 이어나가는 작가는 그 해 등단작가 중에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된다. 대부분의 작가는 등단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된다. 글을 잘 쓰는 것만으로는 지속가능한 글쓰기를 담보하지 않는다. 장르라고해도 크게 다를 건 없다. 어차피 지면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비평을 받아 글을 잘 썼는가 어떤가(물론 비평이 단순히 글이 좋은가 안 좋은가를 따지는 &amp;lsquo;평가&amp;rsquo;는 아니지만, 비평가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글이 예술장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에는 다들 동의할 것이다)를 따지기도 전에 비평 받을 기회조차 아주 어렵다. 자신 있으면 도전하라 할 정도가 아니다. 결국 &amp;lsquo;글을 잘 쓰고 싶다&amp;rsquo;는 것은 작가의 개인적인 욕심에 가깝다. 예술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더 잘하고자 하는 상승 욕구가 존재하니까.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거나 그만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한계를 자각하고도 더 잘 하려는 것은 응당 가져야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가치가 &amp;lsquo;잘 팔리는 글&amp;rsquo;을 포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잘 쓴 글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잘 팔리는 글이 결과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문학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잘 쓴 글과 잘 팔리는 글은 서로 반목하는 요소가 아니다. 둘 중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표절의 두 가지 문제</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D%91%9C%EC%A0%88%EC%9D%98-%EB%91%90-%EA%B0%80%EC%A7%80-%EB%AC%B8%EC%A0%9C/</link><pubDate>Fri, 02 Aug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D%91%9C%EC%A0%88%EC%9D%98-%EB%91%90-%EA%B0%80%EC%A7%80-%EB%AC%B8%EC%A0%9C/</guid><description>&lt;p&gt;표절은 법적인 문제와 윤리적 문제로 나뉘는데, 이 문제는 쉽지 않다. 윤리적으로 A를 B로 치환해도 소설이 그대로 성립한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여지가 있음에도 독자층은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는 D&amp;amp;D와 드래곤 라자(그리고 더로그)가 있다. 드래곤 라자에서 OPG 같은 이름이나 각종 주문들과 같은 D&amp;amp;D 요소들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고유명사들은 언제든지 치환될 수 있었으며, 오히려 작품의 정합성을 위해 더 적절한 것으로 바꿀 수 있었고, 그렇게 되었다. 이영도는 여전히 사랑받는 작가이다. (아, 물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상적인 지점은 법적으로 표절은 아니지만 작품 속 A를 B로 치환했을 때 소설이 크게 바뀌거나, 치환 자체가 불가능한 작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amp;lsquo;허락 받지 않은 직접 인용&amp;rsquo; 수준이 아닌 이상 법은 표절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문제는 어떤 표절로 지목된 작품이 향후 &amp;lsquo;법적인 문제가 없다면&amp;rsquo;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느냐다. 창작 윤리의 관점에서 표절은 지양해야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서 시작된 특정 작품에 대한 보이콧은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이런 문제 자체를 모르는 독자도 많으니까). 결국 이 사태에 대한 해결 능력을 가져 도덕적 성찰이 요구 되는 것은 작품을 쓰는 작가 자신과 그런 작품을 추려내서 독자들에게 내보이는 대형 플랫폼이다. 하지만 대형 플랫폼은 창작 윤리보다 시장 논리에 따른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논란을 가졌던 시장이 이미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표절과 클리셰는 어떻게 다른가</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D%91%9C%EC%A0%88%EA%B3%BC-%ED%81%B4%EB%A6%AC%EC%85%B0%EB%8A%94-%EC%96%B4%EB%96%BB%EA%B2%8C-%EB%8B%A4%EB%A5%B8%EA%B0%80/</link><pubDate>Thu, 18 Jul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D%91%9C%EC%A0%88%EA%B3%BC-%ED%81%B4%EB%A6%AC%EC%85%B0%EB%8A%94-%EC%96%B4%EB%96%BB%EA%B2%8C-%EB%8B%A4%EB%A5%B8%EA%B0%80/</guid><description>&lt;p&gt;나는 둘 이상의 작품에서 A라는 소재를 사용하면 &amp;lsquo;A는 클리셰&amp;rsquo;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하나의 작품에서 A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을 때, 이 A를 사용하는 경우 표절이라는 것이다. 이건 명백하게 모순적이다. 누군가는 표절을 해야만 클리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다. 표절과 클리셰는 명백하게 다르다. 표절, 베낀다는 것은 명백한 함의가 없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는 선이 있다. 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 합의된 인용이 아니라면 저작권 침해다. 고유명사를 옮기는 경우 그 속성도 그대로 옮겨진다면 그 역시 저작권 침해다. 미묘한 부분은 스토리다. 이것은 &amp;lsquo;베꼈다고 주장&amp;rsquo;할 수 있어도 &amp;lsquo;저작권을 침해&amp;rsquo;했는지 여부에 대해서 논쟁적일 수 있다. 내 생각에 이 경우 표절인가 아닌가를 가리는 것은 A라는 이야기가 부재했을 때 의심 되는 작품에 여전히 오리지날리티(또는 다른 클리셰 B와 C)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간단하다. 원작과 의혹 작품을 겹쳐지는 부분을 오려냈을 때도 의혹 작품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면 된다. 남은 것이 누더기,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표절 작품이 맞다. 만약 그 부분을 잘라냈음에도 여전히 그 작품이 홀로설 수 있다면, 사람들은 표절이 아니라 &amp;lsquo;영향을 받았다&amp;rsquo;고 말한다. 결국 표절이냐 클리셰냐는 우리가 볼 수 있는 몇 개의 작품이 그 소재를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작품이 몇 개의 작품에서 발생한 것이냐의 문제다. 단 하나의 작품으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표절이다. 둘 이상의, 무수한 작품들로 비롯되었다면 그것은 클리셰로 이루어졌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화려체를 쓸 때</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D%99%94%EB%A0%A4%EC%B2%B4%EB%A5%BC-%EC%93%B8-%EB%95%8C/</link><pubDate>Fri, 12 Jul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D%99%94%EB%A0%A4%EC%B2%B4%EB%A5%BC-%EC%93%B8-%EB%95%8C/</guid><description>&lt;p&gt;문장을 짧게 쓰라는 것은 그냥 짧으면 그만큼 범하는 오류가 줄어든다는 단순한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비문/오문을 쓰지 않는다면 문장을 길게 쓴다고해서 뭐라고 할 이유가 없다. 많은 수사와 형용사가 들어가는 화려체는 이와는 별개의 문제다. 소설의 묘사는 그냥 문장이 이뻐서 넣는게 아니다. 글쓰기가 경제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글쓴이들이 하는 이야기니 덧붙여 말할 것이 없다. 묘사를 통해 어떤 세부가 드러난다면 그 세부는 소설 속에서 둘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어야 한다. 첫 번째 기능은 그 자체로 미적인 가치다. 좋은 문장은 그 자체로 오락이니까. 묘사의 쓸모는 두 번째 기능에 달렸다. 이후 전개를 암시하거나 복선이 되거나 반전의 근거가 되거나 독자에게 심상을 부여해 작품의 분위기를 좌우하거나 평탄한 서술에 요철을 넣어 활력을 불어넣는 등의 쓸모를 말한다. 그냥 등장인물의 모습을 묘사하고 싶었다 등 기분의 문제는 기능적이지 않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쓸 수 없는 것 쓰기</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3%B8-%EC%88%98-%EC%97%86%EB%8A%94-%EA%B2%83-%EC%93%B0%EA%B8%B0/</link><pubDate>Thu, 11 Jul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3%B8-%EC%88%98-%EC%97%86%EB%8A%94-%EA%B2%83-%EC%93%B0%EA%B8%B0/</guid><description>&lt;p&gt;난 글에서 묘사랑 비유 단 하나도 안 쓰다가 의식해서 쓰기로 해서 요즘은 쓰고 있다. 아마 시 배운 게 큰 거 같다. 시는 크게 봤을 때 운율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이미지와 비유니까. 당연히 문창과 가기 전까지는 제대로 시를 읽은 적은 없었고. 덕분에 더 잘쓰냐하면 잘 모르겠지만.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닌가? 재미있는 일은 특별한 요인이 없어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언제나 글쓰기의 바리에이션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느리더라도 내가 쓸 수 있는 것만 쓰는 것 보다 언젠가는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쓸 수 있는 것만 써서 주목을 받았다가 유행이 지나자 다음작품에서 잊혀지는 경우는 너무 흔하게 봤다. 하지 않았던 것을 하는 것이야말로 일종의 동력이다. 당연히 하던 걸 할 때보다 안 하던 것을 하면 못하겠지.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그놈의 &amp;lsquo;노력&amp;rsquo;을 해서 그 하나라도 잘할 수 있게 되냐는 것이다. 못하게 되던 것을 어떻게든 하게 되는 것은 난이도가 낮다. 낮은 준위의 숙련도 쌓기는 쉽다. 반면에 달인이 되는 건 어렵다. 되고 싶다고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포기하란 말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생각하자는 거다. 하면 된다는 말은 낙관주의에 근거한다. 그것도 좋지만 글을 쓰는 이들이 글의 완성에 대해서 늘 포기하는 것처럼(어느 작가 말처럼 책을 내놓는 일이 그저 내려놓는 일인 것처럼), 그쯤하면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다음 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괴담과 공포소설</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4%B4%EB%8B%B4%EA%B3%BC-%EA%B3%B5%ED%8F%AC%EC%86%8C%EC%84%A4/</link><pubDate>Sat, 25 May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4%B4%EB%8B%B4%EA%B3%BC-%EA%B3%B5%ED%8F%AC%EC%86%8C%EC%84%A4/</guid><description>&lt;p&gt;나는 괴담과 공포소설이 장르부터 다르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괴담 소비자들은 장르 호러소설 소비자들가 완연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구분법은 괴담은 창작자가 불분명하고, 어딘가에선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작품 밖의 화자(이자는 창작자가 아니라 전해들은 사람이다)가 주장하며, 여러장치를 통해 청자도 자신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호러소설은 창작자가 분명하며, 소설이라는 장르로 명시되어 있으며, 독자가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물론 &amp;lsquo;괴담적(?) 소설/영화&amp;rsquo;도 존재하고 있지만(이를테면 모큐멘터리 장르) 여전히 입에서 입으로, 각종 사이트의 괴담 게시판과 유튜브에서 저작권을 찾을 수 없는 괴담과는 구분이 된다고 본다. 물론 공포소설이 알고보면 괴담의 근원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고, 반대로 괴담이었던 것이 실제 컨텐츠로 나오는 경우는 흔하다보니 작품 속 내용을 통해 전적으로 구분이 가능하다기 보다는 이야기가 발화되는 방법의 차이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괴담은 단순히 허풍쟁이의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귀신이나 장산범, 슬랜더맨, 꿈 속의 사내 따위가 실제로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네들의 세계에서는 자유로를 지나갈 때 귀신을 볼지도 모르는 공포가 실존하는 이상, 괴담은 소설, 영화와도 다르다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는 괴담은 민담이나 전설의 후신이라고 봐야할 것인데, 근대화가 시작되고 여러 판타지가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되었지만 그 존재 자체가 두렵기 때문에 오로지 공포만은 여전히 자리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다시쓰기란</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B%8B%A4%EC%8B%9C%EC%93%B0%EA%B8%B0%EB%9E%80/</link><pubDate>Sat, 25 May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B%8B%A4%EC%8B%9C%EC%93%B0%EA%B8%B0%EB%9E%80/</guid><description>&lt;p&gt;&amp;lsquo;리라이팅&amp;rsquo;은 사실 어디에서나 쓰이는 간결한 해결 방법이다. 컴퓨터가 다운되면 껐다키면 되고, 총도 기능 장애가 있으면 분해조립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한숨 자고 나면 전보다 좋아지는 것처럼 그냥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이다. 소설이라고 다른 것이 아니다. 다시 하면 된다. 리라이팅 기술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런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의지가 중요하다. 일반 작법에서 리라이팅 기술이 일반화 된 반면 아마추어 작법에선 한시, 시조에서 옮겨온 &amp;lsquo;퇴고&amp;rsquo; 기술을 얄팍하게 적용하거나 &amp;lsquo;열줄 정도만 돌아가서…&amp;rsquo; 같은 요행을 바라는 모습을 흔히 본다. 퇴고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소설은 퇴고가 중요하지 않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유명한 김훈의 &amp;ldquo;칼의 노래&amp;quot;에서 했다는 조사 &amp;lsquo;이&amp;rsquo;와 &amp;lsquo;은&amp;rsquo;을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미담으로 퍼져있지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문장가의 고민이지 소설가의 고민이 아닌 것 같아서다. 소설은 유기적이다. 각 소설의 부분을 이루는 A와 B, B와 C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만 빼버려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부분을 고치면 유기성에 손상이 온다. 손상이 오지 않거나 적은 부분이라면? 애초에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lt;br&gt;&#10;여기서 다시 쓴다는 말은 &amp;lsquo;처음부터 다시&amp;rsquo;라는 뜻이다. 물론 기술적으로 볼 때 완전히 다시라기 보다는 글을 완전히 해체해서 고난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또는 속 알맹이를 어떻게 더 좋은 글로 만들어 내는가의 이야기이긴 하다. 글로 쓰여지지 않아도 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는 여전히 남아있다.&lt;br&gt;&#10;트윗 띄엄띄엄 쓰다 보니 초고에서의 돌파구 뚫기를 위한 방법으로써의 다시쓰기와 초고 완성 후 다시쓰기가 혼재된 것 같긴 한데, 근본적으로 방법은 같다고 보기 때문에. 물론 우리네 선배 작가들은 초고에서 막히는 일 따위 없도록 하라고 말씀들 하셨지만, 모든 글쓴이가 그들 같지는 않은 것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글쓰기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8%80%EC%93%B0%EA%B8%B0%EB%A5%BC-%EC%9C%84%ED%95%9C-%ED%99%98%EA%B2%BD%EC%9D%84-%EB%A7%8C%EB%93%A4%EC%96%B4%EC%95%BC-%ED%95%98%EB%8A%94-%EC%9D%B4%EC%9C%A0/</link><pubDate>Thu, 09 May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8%80%EC%93%B0%EA%B8%B0%EB%A5%BC-%EC%9C%84%ED%95%9C-%ED%99%98%EA%B2%BD%EC%9D%84-%EB%A7%8C%EB%93%A4%EC%96%B4%EC%95%BC-%ED%95%98%EB%8A%94-%EC%9D%B4%EC%9C%A0/</guid><description>&lt;p&gt;&amp;lsquo;낮에 하는 게 더 좋다고? 하지만 밤까지 작업하는 건 그때까지 못 끝내서 아닌가?&amp;rsquo;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amp;lsquo;진짜 집필 시간&amp;rsquo;이란 건 그리 많지 않다. 엄격하게 따져서 키보드 위에 손가락 올려두고 움직이는 시간만 체크한다면. 결국 키보드를 두드리는 중간중간 휴지기가 얼마나 길고 그 시간 뭘 하느냐의 문제인데 경험도 그렇고 실제로 다른 작가들도 그렇고 &amp;lsquo;좋은 컨디션&amp;rsquo;일 때 그 휴지기란 것이 거의 없을 때도 있다. 그럼 &amp;lsquo;좋은 컨디션&amp;rsquo;은 어떻게 유지하는가? 밥 잘 먹고 운동하고 저녁에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amp;lsquo;좋은 컨디션&amp;rsquo;이 모든 문제의 해결법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집필 문제의 해결법인 것은 확실하다. 대문호들은 거의 대부분 규칙적으로 일하고 글을 썼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잤고 말년에 술이나 약으로 망치기도 하고 일필휘지로 명작을 탄생시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좋은 컨디션으로 글을 썼다. 다른 문제는 &amp;lsquo;작업 환경&amp;rsquo; 문제. 집필은 두 가지 물리적 제약을 받는다. 하나는 글을 쓸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쓸 시간이다. 글을 쓰겠다는 의지만으로는 극복되지 않으므로 환경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갖추어 나가야만 한다. 극복하기 전까진 &amp;lsquo;시간/공간이 부족해서 글을 못 써&amp;rsquo;하고 온갖 핑계의 근거가 될 것이다. 이 핑계는 강력하기 때문에 선배 작가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글을 써왔으며 그럼에도 명작이 되었다는 사실 조차도 &amp;lsquo;그건 그 사람이 잘 나서 그런 거고 난 아닌데&amp;rsquo;가 되어버린다. 유감스럽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시공간을 가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글쓰기에 앞서 좋은 컨디션과 작업 환경을 갖는 것은 최소 조건으로 생각된다. 가지지 못하고 잘 해내간다면 정말 박수 받아 마땅한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작가들의 인터뷰를 봐선 누가 나서서 작가의 건강을 관리해주거나 노동 환경을 개선해주진 않기 때문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소설 감상을 받아들이기</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86%8C%EC%84%A4-%EA%B0%90%EC%83%81%EC%9D%84-%EB%B0%9B%EC%95%84%EB%93%A4%EC%9D%B4%EA%B8%B0/</link><pubDate>Wed, 01 May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86%8C%EC%84%A4-%EA%B0%90%EC%83%81%EC%9D%84-%EB%B0%9B%EC%95%84%EB%93%A4%EC%9D%B4%EA%B8%B0/</guid><description>&lt;p&gt;난 작가가 자신의 글에 대한 감상을 인용(認容)하는 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전제가 있다. 글에 대한 감상이 작가 자신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는 것을 구분하며 감상을 받아들였다고해서 반드시 글에 반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일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작가와 작가의 글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는 물론 독자도 해당되는 일이고 합평회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공격이 작가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윤리적인 논의가 아니라면 사실상 없다.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것은 언제나 작법이나 재미, 취향에 대한 것이다. 또한 독자의 감상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 감상이 글과 작가의 글쓰기에 영향을 끼쳐야할 이유는 없다. &amp;lsquo;감상의 수용&amp;rsquo;과 &amp;lsquo;감상의 반영&amp;rsquo;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글에 대한 여러 관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고해서 그 모든 관점을 글에 담아내는 것은 하고 싶다고해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작가의 줏대다. 가끔은 누군가의 발언이 옳고, 그것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쓰는 글과 글쓰기의 방향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미련없이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의 주인이다. 다른 누군가가 올라타려고 들면 과감하게 밀쳐낼 수 있어야 한다. 소설의 감상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작가의 정체성은 작가의 경험이 총합이며, 작가의 글에 대한 감상이 그 글과 글쓰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흔들기 때문이다. 좋은 감상은 무엇이고 나쁜 감상은 무엇인지 선별하기 위해선 우선은 많은 감상을 모을 필요가 있다. 작가는 감상을 감상한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종말의 개 2고</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2%85%EB%A7%90%EC%9D%98-%EA%B0%9C-2%EA%B3%A0/</link><pubDate>Wed, 24 Apr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2%85%EB%A7%90%EC%9D%98-%EA%B0%9C-2%EA%B3%A0/</guid><description>&lt;p&gt;사내는 사흘째 걷고 있었다.&lt;br&gt;&#10;이따금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처럼 두리번거리거나, 호젓한 도시의 외곽에서 마음을 찌르는 어떤 곡조가라도 한 것처럼 눈을 감고 멈춰서긴 했다. 하지만 사내는 허튼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 다시 걸어갔다. 사내는 자신이 도시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lt;br&gt;&#10;개는 먼발치에서 사내를 따라가고 있었다.&lt;br&gt;&#10;개는 덩치가 크고 금빛털을 두르고 있었다. 다리의 굽은 털들이 거뭇해지긴 했어도 사내가 제대로 털을 빗겨주지도 못한지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개에게서는 여전히 윤이 났다. 전보다 체중이 줄기는 했지만 개는 좋은 코를 가지고 있었고 거리에서 먹을만한 것을 찾아내고 먹으면 탈이 날 것을 가려낼 재주가 있었다. 개는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보다도 잘 적응했다.&lt;br&gt;&#10;요 며칠 사내의 강행군은 개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어제 만난 친절한 모녀는 개에게 힘이 되었다.&lt;br&gt;&#10;모녀는 살아있었다. 게다가 유통기한이 막 지났을 뿐인 소시지와 신선한 물이 든 물통도 가지고 있었다. 개는 갈증에 익숙해졌지만, 모녀는 전혀 무례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경계심을 접고 목을 축였다.&lt;br&gt;&#10;개가 소시지와 물을 먹는 동안 모녀는 개를 쓰다듬기도 하고 자신들이 방금 붙인 서로 다른 두 이름으로 개를 부르기도 했다.&lt;br&gt;&#10;갈래?&lt;br&gt;&#10;우리랑 같이 갈래?&lt;br&gt;&#10;하지만 앞발을 슬쩍 쥐는 부드러운 손길에 개는 부정의 뜻을 전했다. 적당히 힘을 주어 손안에서 앞발을 빼낸 것이다. 멀리 멀뚱히 서 있던 사내가 다시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개는 우선 사내의 익숙한 발소리를 들었고 고개를 돌려 눈으로 확인했다. 개는 사내를 따라갔다.&lt;br&gt;&#10;모녀가 뒤에서 부르자 개는 힐끗 한 번 돌아보았다. 자신은 모녀를 따라가지 않겠지만, 모녀가 자신을 따라오는 건 아무래도 좋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모녀는 개를 따라가지 않았고, 먼발치에서 개가 사내를 따르는 것을 보았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현실 단계</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D%98%84%EC%8B%A4-%EB%8B%A8%EA%B3%84/</link><pubDate>Sat, 06 Apr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D%98%84%EC%8B%A4-%EB%8B%A8%EA%B3%84/</guid><description>&lt;p&gt;가끔 이야기했던 것인데, 나는 작품 속에는 작가가 내재하고 있는 &amp;lsquo;현실 단계&amp;rsquo;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개연성과 현실성을 묶어서 이야기하려는 시도다. 현실 단계가 높은 소설은 이른바 고증과 사실 세계와의 차이가 없고, 낮은 소설은 사실 세계와의 괴리가 커진다.&lt;br&gt;&#10;1단계에는 사실성이 극히 낮은 작품들이 위치한다. 이 위치에 존재하는 것은 우화와 간결한 동화와 그림책, 극히 단순한 그래픽의 플랫포머, 극히 제한적인 상황을 재고하는 사고실험이 있다. 이 단계에 존재하는 세계의 특징은 여백으로 가득 차 있기에 뭔가 더 놓으려고 하면 이미 놓인 것들과 모순이 일어나 세계 자체가 무너져버린다는 점이다. 이곳은 가정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세계다.&lt;br&gt;&#10;2단계에는 고학년 대상의 동화나, 스타워즈와 같은 고증에 별 관심이 없는 SF 영화, 퓨전 사극, 서프라이즈의 재현 장면, 많은 부분에서 고증이 맞지 않다고 지적 당하는 판타지/무협 소설들이 이곳에 있다. 이 단계의 특징은 일반적인 상식을 지닌 사람들이 이 세계는 사실 같지 않다고 지적하는 세계다. 많은 사람들이 자세히 뜯어볼 것도 없이 &amp;lsquo;엉터리&amp;rsquo;라고 생각하지만,&lt;br&gt;&#10;3단계는 2단계와 함께 가장 많은 작품군이 위치하는 곳이다. 3단계 작품들은 2단계와 실상 비슷하지만, 여백을 더 교묘하게 사용하여 지적을 받을 허점을 내어주지 않는다. 이곳에는 2단계에서 보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도 위치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amp;lsquo;리얼리즘 소설&amp;rsquo;들이 위치한다는 것이다. 이곳에 위치한 소설들은 2단계처럼 좀처럼 잘못된 부분을 보여주지 않지만, 그렇다고해서 4단계처럼 진짜 사실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확신을할 만큼 선명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그 교묘함 덕분에 3단계만 하더라도 일반적인 인식에서 &amp;lsquo;사실 세계와 다름 없다&amp;rsquo;고 받아들여진다. 이를테면 김훈의 &amp;lsquo;언니의 폐경&amp;rsquo;과 관련된 논란이 그렇다. 이 세계는 발견되는 것이 늦거나 무시될 뿐, 고증 실수가 존재하는 곳이다.&lt;br&gt;&#10;4단계에 위치하는 것은 작품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사실 세계라도 무방한 곳이다. 이곳에는 과학자들의 하드SF, 역사학자의 역사소설, 자전적 소설, 르포, 다큐멘터리들이 있다. 흠결을 극히 찾아보기 힘들며, 때로는 대안되는 현실로까지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이런 완벽한 작품들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3단계 안에 부분적인 4단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이한 사항은 아니다. 작품들을 문장으로, 컷으로 나누어 본다면 2단계와 3단계를 넘나들 것이다.&lt;br&gt;&#10;5단계는 당연히 지금 여기의, 가공되지 않은 현실 세계다. 이곳은 여백이 극히 드물지만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 같은 관측 불가능한 것들과 신, 마음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들로 아직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았다. 때문에 5단계에서 밝혀지지 않은 것들은 그 아래 단계에서 채워넣으면 그것은 &amp;lsquo;현실적&amp;rsquo;이지 않지만 &amp;lsquo;개연적&amp;rsquo;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예를들어 귀신이 나오는 호러 작품(또는 괴담)의 경우, 그것은 개인의 신념에 따라 2단계가 될 수도, 3단계가 될 수도, 어쩌면 그보다 더 높은 단계까지 갈수도 있다.&lt;br&gt;&#10;이 같은 현실 단계는 현실 세계와 작품 세계가 얼마나 일치하도록 만드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창작자가 &amp;lsquo;얼마나 교묘하게 사실이 아님을 숨길 수 있는지&amp;rsquo; 또는 &amp;lsquo;고증과 무관하게 작품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지&amp;rsquo;에 대한 더 고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글쓰기의 예사로움</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8%80%EC%93%B0%EA%B8%B0%EC%9D%98-%EC%98%88%EC%82%AC%EB%A1%9C%EC%9B%80/</link><pubDate>Tue, 26 Mar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A%B8%80%EC%93%B0%EA%B8%B0%EC%9D%98-%EC%98%88%EC%82%AC%EB%A1%9C%EC%9B%80/</guid><description>&lt;p&gt;하나의 일은 여러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amp;lsquo;걷기&amp;rsquo;가 단순한 동작처럼 보여도 몸의 관절과 근육들이 움직이고 다음 발을 디딜 때까지의 균형잡기가 이루어지는 복잡한 행위인 것처럼, 글쓰기도 그렇다. 그리고 걷기의 요소 중 하나만 불완전해도 완전한 걷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글쓰기도 그렇다. 글쓰기의 어떤 부분들은 대부분의 사람들한테도 싫고 지루하고 어렵다. 머릿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문장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나, 마땅한 아이디어 없이 글을 전개해 나가다 결국 그 끝에 봉착했을 때가 그렇다. 글쓰기의 어떤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누군가 글을 읽고 감상을 남기거나, 그 글이 수익으로 돌아올 때 그렇다. 그리고 어떤 부분들은 사람에 따라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나는 백지 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에 제목 짓기는 괴롭다. 나는 글에 딱 들어맞는 제목을 고르지 못하면 그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글쓰기를 이루는 각 요소에 대한 성취 방법이 다른 것처럼, 그 요소들에 대한 개인의 호오도 다르다. 대체로 글쓰기에서 괴로움을 덜 느끼는 이들이 글쓰기를 자신의 업으로 삼는다. 하지만 모든 글쓴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괴로워하면서도 쓴다. 그 괴로움 끝에 결과적으로 큰 즐거움을 받을 거라는 희망으로 쓰는 이들도 있지만, 아무런 기대도 없거나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글쓰기가 특별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가 다른 모든 일들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들에 대해서 완벽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간단하게 내놓을 수 있는 인스턴트 대답을 준비해두고 있지만, 계속해서 캐묻는다면 시와 때가 맞아서, 환경 때문에, 그렇게 태어나서, &amp;lsquo;그냥&amp;rsquo; 그렇게 되었노라 답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부분이 있다면 글쓰기는 생각을 문자로 옮기는 작업이며, 그 과정에서 작가 개인의 고민이 여과 없이 드러나보일 수 있고, 그렇기에 &amp;lsquo;왜 쓰는가&amp;rsquo;에 대한 질문과 대답들이 만연한 것처럼 보여진다. 글쓰기는 범상한 일이다. 다른 모든 일들처럼, 그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 답을 내어줄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나름의 답을 찾은 이들은 떠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남아 궁리할 따름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080107</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80107/</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80107/</guid><description>&lt;p&gt;080107&lt;br&gt;&#10;무슨 일인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알고싶지도 않았다. 싫었다. 짜증났다. 화를냈다. 꼭지돌았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감정이였다. 입은 감정을 그대로 내뱉었다. 성인군자의 미간도 찌푸리게할 사나운 욕을 내뱉었다.&lt;br&gt;&#10;상대는 당황하고, 미안해했다.&lt;br&gt;&#10;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화내지마.&lt;br&gt;&#10;화는 풀리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욕했다. 내 머리속에 있는 욕이 그대로 쏟아져나왔다.&lt;br&gt;&#10;미안해. 다시는 그런일 없을꺼야. 화내지마. 그런데, 왜 그래?&lt;br&gt;&#10;나는 상대의 마지막말에 뜨겁게 타오르던중 의문을 느꼈다. 뭐가 왜 그래?&lt;br&gt;&#10;나는 그제서야 이상한 점을 느꼈다. 내 왼쪽 눈에서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당황해서 서둘러 훔쳤지만 눈물은 그칠줄 몰랐다. 나는 더 화가 났다. 자꾸만 욕했다. 눈물은 그칠줄 몰랐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080204</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80204/</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80204/</guid><description>&lt;p&gt;기억이 나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내가 레이저 포인터를 얻게되는 시점인데. 잘 기억은 안나지만 누군가가 빌려줬던거 같다. 그래서 쓰는 내내 조심해서 다뤄야지 하고 생각했고. 그런데 레이저 포인터가 상당히 재미있는 물건이였다. 현실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붉은색 한줄기 빛이 나가기는 하는데,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였다. 레이저를 쏘면 쏘인곳에 빛이 일정시간 남는데, 그 빛으로 둥글게 그리면 그 원은 포탈이 되었다. 디아블로에서 나오는 것 처럼.&lt;br&gt;&#10;여튼 레이저 포인터를 얻고난 뒤 어떠한 임무를 위해서 마법사의 탑으로 갔다. 포탈은 내가 가지 못했던 곳도 손쉽게 갈 수 있었고, 나는 한 번에 마법사의 탑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거기서 나는 아이템을 발견했다. 일본도 같은 장검이였는데, 칼날이 잿빛이였다. 이름은 크리스탈 소드. 어째서 칼날은 잿빛인데 이름이 크리스탈 소드인가하면, 옛날 사용자가 그 크리스탈을 깨트려서 임시로 회색 칼날을 끼워넣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을 휘두르면 파란색 잔영이 남으니 크리스탈이라는 이름은 아깝지 않았다. (라고 생각 했다는 것이다.)&lt;br&gt;&#10;나는 그검을 들고가서 친구에게 선물했다. 친구는 고맙다고 하고, 회의를 하러가자고 했다. 무슨 회의? 알 수 없다. 어디 구석진 곳에 있는 비밀 회의장으로 우리는 이동했고, 회의를 시작하려고 했다. 회의에는 친구와 나 말고도 다른 친구와 후배들이 조금 있었다.&lt;br&gt;&#10;그렇게해서 회의를 시작하려는 순간, 갑자기 괴물들이 쳐들어왔다. 정확히는 미이라들이였다.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대검 한자루씩 들고 쳐들어 왔는데 그 수가 상당히 많았다. 비밀 회의실로 들어오는 입구는 사람이 나란히 다섯 명 정도 설 수 있을 만큼 넓었는데, 미이라들은 그 복도를 꽉꽉 채우고 있었다. 친구는 괴물들과 맞서고, 나는 후배와 친구들을 비밀통로로 대피 시키고 난 뒤에야 친구와 합류했다. 친구는 긴 장검을 멋들어지게 휘두르며 괴물들을 박살내고 있었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얻게 되었던 검을 들고, 괴물들을 박살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080205</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80205/</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80205/</guid><description>&lt;p&gt;꿈에서 나는 자고 있었다. 그래서 잠결에 누군가의 전화통화를 듣고 있었는데, 잘 들어보니 엄마와 엄마 친구분의 대화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로 잠결에 들었던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전화를 받은 엄마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어도 전화를 걸어온 엄마 친구분의 목소리를 듣는건 현실에서 불가능 하니 그건 분명 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아주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대화였다. 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lt;br&gt;&#10;엄마는 우선 내가 공부를 못하는데 저렇게 놀고만 있어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친구분은 예상대로 자기 아들도 이미 공부에 손을 놓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맞장구 쳤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분의 아들은 이미 취직했는데.&lt;br&gt;&#10;나는 왁 하고 일어나서 &amp;lsquo;방학 끝나면 열심히 할 거에요!&amp;rsquo; 라고 말하는 충동을 느꼈지만 그냥 전화통화를 잠자코 듣기만 했다.&lt;br&gt;&#10;잘 기억은 안나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했다. 그러다가 엄마는 부엌으로 가버렸고, 나는 부스스 일어나 작은 방으로 갔다. 평소에 잘 가지도 않는 방인데. 왜 갔을까. 그리고 거기서 우리집의 작은 개를 만났다.&lt;br&gt;&#10;작은 방에선 우리 둘 뿐이였고, 나는 개에게 말을 하라고 시켰다. 나는 어쩐지 개가 말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집의 큰 개가 말하는 걸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개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허공만 바라볼뿐. 그러던중에 작은 방으로 형이 찾아왔다. 의경으로 있는 형이 어떻게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lt;br&gt;&#10;여튼 나는 형에게 &amp;lsquo;개는 말할 수 있어!&amp;rsquo; 라고 했다. 당연지사. 형은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대충 잠에서 덜깼냐. 같은 느낌의 말을 뱉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자고 있는 중이였으니 당연한 소리였지만. 나는 개들은 외계에서 왔으니 말할 수 있다고 설득력있게 말했다. (꿈에서는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형은 다시 그건 말도 안된다고 했다. 분명 꿈에서 조차 설득력 있었는데. 너무 현실적이었다.&lt;br&gt;&#10;그렇게 형과 아웅다웅 하다가 형이 나가자, 나는 다시 작은 개를 빤히 바라봤다. 작은 개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마주 보다가 말했다.&lt;br&gt;&#10;무슨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단 한가지는, 무척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는 것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090116</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90116/</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90116/</guid><description>&lt;p&gt;탑에는 함정이 있었고, 함께 걷는 아이가 떨어졌다. 정사각형의 네모 난, 그 아래로 뻥 뚫린 그런 함정이었다. 몇 층이나 아래로 추락한 아이는 가득한 물 속에 빠졌다. 속이 훤히 비쳤다. 아이는 곧장 물에 가라앉았다. 사람이 아니었나보다. 나는 구멍을 통해 한 층씩 내려가서, 이내 아이의 바로 위에 설 수 있었다. 물이 너무 차가웠다. 뛰어들었다간 죽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수영도 못하지. 아이를 구할 용기도 없고 자신도 없었다. 아이는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투명한 물이었다. 물 속에서도 나를 볼지 몰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lt;br&gt;&#10;꽉 다물었던 잇몸이 얼얼했다. 마음이 너무 쓰렸다. 꿈이기에 아쉽고, 꿈이기에 다행이었던 적은 있었지만 꿈이라서 슬펐던 적은 또 처음인 것 같았다. 아이를 구할 수 없었다. 꿈은 꿈이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만약에 &amp;lsquo;진짜&amp;rsquo;였다면 어떻게하지? 꿈은 과연 &amp;lsquo;가짜&amp;rsquo;가 맞나? 마음이 피곤해서 다시 잤다.&lt;br&gt;&#10;해파리가 되어 문어를 조여 죽이는 꿈을 꿨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090122</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90122/</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90122/</guid><description>&lt;p&gt;언제나 그렇듯 꿈의 앞부분은 쉽게 잊혀진다. 꽤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꿈은 결국 공항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한다.&lt;br&gt;&#10;공항이다.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공항의 한 면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있어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이 보인다. 공항에는 한번도 못가봤으니까, 아마도 TV나 영화에서 보던 것이겠지. 생각해본다. 나는 이제 여행을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lt;br&gt;&#10;집은 나와버렸다. 그러니까, 일종의 가출이다. 주머니는 허전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설레이는 마음이 가득했다. 나는 어디로 가는걸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들과 함께 간다. 인종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지만 대게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로의 대화 속에서 활기가 느껴졌다.&lt;br&gt;&#10;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lt;br&gt;&#10;흑인이었고, 영어를 썼다.&lt;br&gt;&#10;나는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몇 번이나 다시금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꽤 끈기있게 다시 말했다.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lt;br&gt;&#10;&amp;ldquo;거기엔 왜 가려고 하는거야?&amp;rdquo;&lt;br&gt;&#10;나는 우물쭈물거렸다. 나는 영어를 잘 못했다. 원하는 것을 말하기 어려웠다.&lt;br&gt;&#10;그러자 흑인은 다시 말했다.&lt;br&gt;&#10;&amp;ldquo;너도 대부분의 사람들 처럼 돈을 벌기위해서 가는거야?&amp;rdquo;&lt;br&gt;&#10;대화가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아무렇게나 말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다가, 앞으로도 보기 힘들텐데, 아무렴.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완전히 거짓말을 하는 건 싫어서 검지와 엄지로 적당한 공간을 만들어 보였다.&lt;br&gt;&#10;&amp;ldquo;이 정도?&amp;rdquo;&lt;br&gt;&#10;흑인은 잠시 &amp;ldquo;흐음,&amp;rdquo; 하더니 다시 말했다.&lt;br&gt;&#10;&amp;ldquo;아닌 것 같은데.&amp;rdquo;&lt;br&gt;&#10;어떻게 알았지.&lt;br&gt;&#10;나는 사실대로 말하기로했다.&lt;br&gt;&#10;&amp;ldquo;change is need.&amp;rdquo;&lt;br&gt;&#10;흑인은 흐뭇한 듯 미소지었다. 이유는 몰랐다.&lt;br&gt;&#10;그러고는 자리를 옮기려는데, 이번에는 백인이 말을 걸어왔다.&lt;br&gt;&#10;그는 상당히 말을 빨리 했기 때문에 듣기는 어려웠지만,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작을 해보임으로써,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lt;br&gt;&#10;좀 뜬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lt;br&gt;&#10;&amp;ldquo;너 처럼 인터넷을 사용하는 아이들이 많아?&amp;rdquo;&lt;br&gt;&#10;대강 이런 의미였다. 모호한 의미를 살리면 &amp;lsquo;너 처럼 인터넷 아이 많니?&amp;lsquo;가 더 가깝다.&lt;br&gt;&#10;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대답을 생각했다.&lt;br&gt;&#10;대답했다.&lt;br&gt;&#10;&amp;ldquo;many.&amp;rdquo;&lt;br&gt;&#10;백인은 &amp;ldquo;그렇구나&amp;rdquo; 하면서 호쾌하게 웃어버렸다.&lt;br&gt;&#10;드디어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누군가 나를 잡았다. 내 또래였다. 그는 아무말도 않고, 먹고 있는 초코알 몇 개를 주었다. 나는 손으로 받았다. &amp;ldquo;thanks.&amp;rdquo;&lt;br&gt;&#10;공항엔 쓰레기가 많았다. 사람들은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했지만, 누군가가 제지했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제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의 자리에는 쓰레기가 수북했다. 어째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lt;br&gt;&#10;그러고는 여행을 주관하는 누군가가 말했다.&lt;br&gt;&#10;&amp;ldquo;비행기 곧 출발합니다.&amp;rdquo;&lt;br&gt;&#10;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090809</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90809/</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090809/</guid><description>&lt;p&gt;꿈은 게임으로 시작을 했습니다.&lt;br&gt;&#10;어쩐지 와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픽이라던가, 이펙트라던가 말입니다. 와우는 별로 해본 기억도 없는데.&lt;br&gt;&#10;여튼, 저는 새로나온 최고의 보스몹을 보기 위해 혼자서 고렙몹들을 피해다니며 성에 잠입한 저렙이었습니다. 보스몹을 어떻게든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에, 어찌어찌 들어간 것이었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좌절 하던 중, 어떤 공대가 제가 있던 곳을 지나쳤고, 설득 끝에 한번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lt;br&gt;&#10;중반 정도 까지는 무난한 편이었는데, 후반부 부터 격이 지나치게 높아졌습니다. 나오는 몬스터들도 그냥 못생겼다, 의 느낌이었는데 보는 것 만으로 속을 울렁이게 만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무섭게 생긴 몬스터도 있고요.&lt;br&gt;&#10;그렇게 공대원들이 하나 둘 무너져갔습니다. 이러다간 보스 구경은 커녕 보스가 산다는 내성까지 다다르지도 못할 것 같더라고요. 저도 분발 했습니다.&lt;br&gt;&#10;재미있는 것은 게임에 물리엔진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는데, 싸우고 있는 곳이 다리였거든요. 마침 공대원 하나가 다리 아래로 떨어지니까, 몹들이 그 떨어지는 공대원 하나를 잡으려고 난간에 기대서 손을 막 뻗더라고요. 그래서 뻥 걷어차 쉽게 잡기도 하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몹들이 돌아볼까봐 되게 무서웠습니다.&lt;br&gt;&#10;그래서 어떻게 내성 코 앞까진 왔는데, 공대원이 둘셋 뿐이더라고요. 게다가 보스 리젠시간이 따로 있는데, 그때까지 버텨야되고요. 카운트 다운이 꽤 으스스 했는데, HR. 기거가 마비노기의 고스트를 그리면 저런 모습이겠다 생각이 드는 몹이, 내성 문 밖으로 13개 쯤 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겁니다. 그게 카운트 다운이라고 하더라고요.&lt;br&gt;&#10;그래도 구경은 한번 해야겠다, 하는 심정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내성으로 쫒아들어갔는데 구조는 간단한 편이더라고요. 계단 하나 딱 오르니까, 저 멀리 로비 왕좌에 뭔가 앉아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니까 벌떡 일어서더라고요.&lt;br&gt;&#10;뭐지? 하면서 보고 있는데 아장아장 걸으면서 오고, 체구도 딱 어린아이 였습니다. 우울한 표정인데 이목구비가 모두 시커매서 더 우울해보였습니다. 결국 그 꼬맹이가 우울한 표정으로 와서는 제 배에 칼을 쿡 박는겁니다. 표정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제가 칼에 맞으니까 배시시 웃는겁니다. 입안이 아주 새빨갛더라고요.&lt;br&gt;&#10;그쯤에서 뭔가 떠오르는게 있었습니다. 데자뷰였는데, 저게 보스 몹이 맞다는 사실과, 저는 죽게된다는 것, 산채로 갈린다는 것, 같은 게 떠오르더라고요. 게임인데 왜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죽는 것도 아닐텐데.&lt;br&gt;&#10;칼로 제 배를 쭉쭉 째고 있었는데 안 되겠다 싶어서 도망을 갔습니다. 아, 남은 공대원들의 영혼이 모두 내성 꼭대기의 탑으로 빨려들어갔다는 것 말했나요?&lt;br&gt;&#10;어찌됬든 살아야겠다 싶어서 도망을 치는데 꼬맹이 웃음소리가 막 들리는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단순했던 내성 맵이 나오려니까 복잡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구조가 바뀌는 식이었던 것 같네요.&lt;br&gt;&#10;결국에는 이대로 있다간 꼼짝없이 죽을 것 같아서 도망다니는데 난간 아래에 거대한 물통 같은게 보이더라고요. 어디에 쓰이는지는 몰라도 몹한테 죽어서 영혼이 흢수 당하는 것 보다는 자살을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뛰어들었습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00123</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00123/</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00123/</guid><description>&lt;p&gt;처음은 난잡하다. 꿈의 주인공은 나지만 내가 아니다. 작고 약하고 유연하고. 일종의 게임일지도 모르겠다. 꿈의 시작은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나는건 내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쫒기고 있는 것. 일전에도 이런 꿈을 많이 꿨다. 일종의 스릴러다. 대체로 무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열심히 달리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적을 따돌린다. 하지만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다수를 따돌리긴 했지만 남은 둘은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장소는 벌건 대낮의 주택가지만 사람은 보이지않는다. 나는 골목 사이를 누비는 것 보다 담장을 타고 지붕을 달리는 것이 더 유리하게 느껴진다. 그렇게한다. 실제로 이인조를 멀리 따돌렸다. 거리를 벌린다. 적은 나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 어째서인지, 왜인지, 무슨이유에서인지 흰 살결의 돼지 한마리가 꿀꿀거리며 골목을 지나간다. 이게 돼지꿈인가? 우습다. 아니다. 나는 이인조가 돼지를 발견하면 돼지를 쫒을 것을 알고 있다. 왜? 식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쫒기던 이유도. 그래. 나는 음식으로 적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음식으로 적당하지 못하다. 내가 먹히기 적당한 이유는 내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돼지는 나와 가깝게 지나가고, 나는 돼지를 피하기 위해서 먼 길을 돌아간다. 이인조가 돼지를 발견한다면 나보단 돼지를 잡을게 뻔했다. 돼지를 피한다면 적도 피할 수 있다. 그러한 계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뭔가 착오가 있었다. 아니었다. 담장을 넘기 위해 잠시 멈춰섰을때, 바로 아래 이인조가 있었다. 도망쳐야했다. 멀리 큰 저택이 보였다. 담장도 높다. 저걸 이용하자. 나는 달려가서 담장에 매달린다음 올라갔다. 올라서자 아래로 이인조가 함께 오르는 것이 보였다. 담장을 타고 움직였다. 나는 균형감각이 좋다. 저들은 몇 발자국 옮기기도 힘들 것이다. 담장 위로 움직이다가 천장으로 오른다. 여기까지는 계산이 맞다. 지붕은 경사면이 심하고, 이인조가 날 쫒으려면 시간이 걸릴테고, 나는 다시 이곳을 벗어나달린다. 적들은 굼뜨고 멍청하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착오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지붕이 무너진다. 당황스럽다. 겉보기와 달리 너무 낡았다. 몸을 가누는 사이에 적들은 이미 내 앞에 서 있다. 물러난다. 집 안의 가구를 밟는다면 다시 천장 위로 오를 수 있을 것 같지만, 적에게서 벗어나야한다. 긴장된 순간. 문 너머에서 벽 긁는 소리가 난다. 이인조가 돌아보고 나는 몸을 뒤로 뺀다. 이인조 중 하나가 문을 열려는데 문이 열린다. 괴물이 서 있다. 머리가 없다. 비대한 몸집. 목이 잘려나갔는데, 남은 목 가죽으로 장난스럽게 매듭이 지어져 있다. 그 아래로 세로로 뚫린 입이. 안으로는 내장이 보인다. 그 아래에 하나의 눈동자가 우리를 본다. 살이 꿀럭거린다. 괴물이 비명을 지른다. 괴물이 자신의 내장을 토한다. 복잡하게 얽힌 내장이 끝없이 쏟아진다. 괴물의 손엔 도끼가 들려있다. 적이 기겁해 있는 사이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며 저택에서 벗어난다. 꿈에서 깬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00210</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00210/</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00210/</guid><description>&lt;p&gt;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발가락이 아팠다. 정확히는 엄지발가락. 송곳으로 찌르는듯 후벼파이는 느낌이었다. 허겁지겁 신발과 양말을 벗어 발가락을 살폈다.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탄내가 났다. 뜨거웠다. 살 타는 냄새가 아니었다. 화약이 타닥타닥 타는데, 그게 내 엄지발가락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뭐가 타고 있는거지? 겁이 났다. 발가락을 부여잡았지만 뜨거움을 가실 줄몰랐다. 멀리 친구들이 보였다. 비명을 질렀다. 너무 아팠다. 멀리서 펑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 바라보니 사람이 터져서 파편이 이리저리 나부끼는 모습이 보였다. 휴대폰으로 메세지가 왔다. &amp;lsquo;장미 알레르기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습니다. 장미를 가까이 하지 마세요.&amp;rsquo; 뭐? 혹시나 싶어 신발 밑창을 보니 장미 꽃잎 한장이 보였다. 털어내고 다시 신발을 신자 안정되었다. 아픔이 가셨다. 장미 알레르기라니? 사람몸이 타다가 터져버리는데, 그게 &amp;lsquo;알레르기&amp;rsquo;란 말인가? 하지만 알레르기라고 우기는데 별로 할 말이 없다. 집으로 돌아와서 창밖을 보니 달이 시야를 가릴정도로 커다랗게 떠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장미 알레르기가 생긴걸까?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얼마전 화장대에 장미 향수를 건든적이 있는데 그때 생긴걸까. 어렸을때 장미 가시에 찔린 이후 일까. 어쨌든 이래서는 학교를 다닐수도 없다. 장미 꽃잎 한장으로 엄지발가락이 타버릴 정도라면, 장미꽃 한 송이라면 몸이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 장미는 흔한 꽃이니까, 나는 장미를 자주 만날지도. 이에 대해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그래도 학교는 가야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아들이 죽게 생겼는데 학교라니! 마스크를 쓰고 조심만 한다면 장미 알레르기로 죽지는 않을거라 하셨다. 모를일이다. 장미는 어디에나 있는데. 현관에서 벨이 울렸다. 긴장하며 문을 여니 친구였다. 친구는 걱정이 되서 와봤다고 했다. 집에는 잘들어왔는지. 나는 잘왔긴한데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라고 했다. 친구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왔다. 야. 나 장미 알레르기라니까. 친구는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분명 밖으로 나돌다가는 장미 한 두송이 만나는게 어려운일이 아닐테고, 그 순간 나는 화약 냄새를 풍기며 펑 하고 터질 것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10214</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10214/</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10214/</guid><description>&lt;p&gt;또 좀비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 깨고 보니 또 좀비였다. 하나같이 느린 걸음으로 허우적 거리듯 팔을 내뻗는다. 이미지가 그렇게 강렬했던가. 알 수 없다. 좀비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느냐 물으면, 또 별로.&lt;br&gt;&#10;아무튼 시작은 어느 지하였다. 나는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칼 발사기였다. 수류탄 발사기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지만, 단추를 누르면 칼날이 핑그르르 돌면서 날아가 적의 팔이나 모가질 툭툭 끊어버리는, 그런 느낌의 무기였다.&lt;br&gt;&#10;확실히 근사한 느낌이 들지만, 어쩐지 언월도 비슷하게 생겼고, 두 번 쏘면 끝이었다).&lt;br&gt;&#10;동료와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돌입하니 무슨 적들이 나타나서 총을 겨눴다. 한 놈 씩 맡기로 하고 나는 칼을 발사했다. 칼은 원을 그리며 적의 팔을 베어냈다. 하지만 권총을 들지 않은 손이었다. 총알을 피하고, 재차 발사. 놈은 팔 없는 굼뱅이 비슷한 것이 된다. 하지만 확실히 처리해야한다. 나는 칼 발사기에 발사되지 않는 총검 비슷한 것을 팔에 휘감고(휘감았다), 놈에게 다가갔다. 빌빌거리며 도망간다. 목을 벤다.&lt;br&gt;&#10;약간, 저항감이 든다. 때문에 살갗만 살짝 스친다. 다시 제대로 벤다. 목덜미 혈관을 노리고 정확하게. 벤다. 피가 뿜어져 나오고, 확실히 하기 위해 놈을 뒤집은 다음 다시 등에 칼날을 꽂아 넣었다. 통쾌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lt;br&gt;&#10;돌아서니 동료도 일을 끝낸듯 싶었다. 나는 적이 쓰던 권총을 주워들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학교였다.&lt;br&gt;&#10;그리고 좀비들이 바글바글했다.&lt;br&gt;&#10;움직임은 느리다.&lt;br&gt;&#10;이정도는 수월하다. 탕탕. 두 번 쏘면 두 마리가 쓰러진다. 미간에 정확하게 꽂힌다. 그런데,&lt;br&gt;&#10;생각보다 좀비가 더 많다.&lt;br&gt;&#10;탕탕, 같은 것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층 위로, 2층 계단을 밟을 무렵에 동료가 좀비들에게 당했다.&lt;br&gt;&#10;좀비를 쏜다.&lt;br&gt;&#10;계단을 오른다.&lt;br&gt;&#10;별다른 사건은 없다.&lt;br&gt;&#10;휘갈겨지는 손아귀를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굼뜬 좀비와 날쎈 나. 많은 좀비와 혼자인 나. 괜찮은 게임이다.&lt;br&gt;&#10;하지만 몸은 피로해진다. 지금은 어떻게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 멀리서 총 소리가 들린다. 꿈에서 깨어난 뒤 깨달은 사실이지만,&lt;br&gt;&#10;나는 어딘가 소속된 요원 비슷한 것이었다. 좀비를 잡는 일은 꿈의 후반부에 시작되었고, 그것 말고 더 많은 일을 했었다. 무엇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엮였다. 마피아 비슷한 조직도 있었고, 흑인 갱단 비슷한 조직도 있었고. 무슨 일을 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lt;br&gt;&#10;학교에는 나 말고 그런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4층 복도로 올라서자 그들을 만났다. 아주 많았다. 스무 명 정도? 마피아도 있고 흑인들도 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복도를 점령하고 윗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길을 찾는 거 같았다. 그들 반대편 좀비들은 나타나자마자 총알 세례를 받으며 쓰러진다.&lt;br&gt;&#10;그들은 나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배척하지도 않았다. 난 조용히 끼여서 함께 이동했다. 좀비들에게 위협당하지 않으니 다행스럽지만, 아직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이 걱정된다. 이들은 위로 올라갈 생각 뿐,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을 돕는다거나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그냥 그들을 따라 복도를 이동한다.&lt;br&gt;&#10;좀비 무리가 등장하면 화력으로 압도한다. 덩달아 총을 쏘지만 별로 도움은 안되는 것 같다. 그러던 차 내 권총의 총알이 떨어졌다.&lt;br&gt;&#10;누군가 외쳤다. 계속 이동하면서 보급해!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누가 뭐라 그러긴 했다. 이동하면서 보급하라고? 좀비들로부터 보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바닥을 살피려는데 다시 좀비가 나타났다.&lt;br&gt;&#10;좀비들이 총을 들고 있었다. 확실히 보급할 수 있겠군.&lt;br&gt;&#10;그렇지만 다행스럽다는 생각보다는 긴장감이 먼저였다. 좀비가 총을 들고 있다는 건 대응 사격 비슷한 것도 할 수 있단 말 아닌가? 아무튼 나는 조심스럽게 바닥에서 소총 하나를 집어들었다. AK… 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들어만봤지 총기에 대해선 하나도 모른다. 아무튼 길다란 총이었다.&lt;br&gt;&#10;막상 총이 다시 생기고나니 다른 층에 있을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역시 구하러 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좀비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뭐라, 고 중얼 거리는 좀비도 있었다. 꿈의 변화는 내가 서술하는 것 처럼 갑작스럽지는 않았는데, 별 다른 조짐 없이 변화가 일어난 건 다르지 않았다.&lt;br&gt;&#10;좀비들은 들고 있던 총을 제 입에 넣고, 탕, 당겼다.&lt;br&gt;&#10;좀비들이 중얼거린 말 중에 중요한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잘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사람들끼리 다투기 시작했고, 나는 기회를 틈타 빠져나와 다른 층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계단을 내려갔다. 뒤로 총소리가 막 들렸다.&lt;br&gt;&#10;꿈에서 깨어나 뒤늦게 생각해보자면, 사람들이 한 장소 - 학교로 모인 건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좀비가 발생하는 건 이미 예상된 상황이었고, 사람들은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 모종의 지시나 연락을 받고 대피하기 위해서 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lt;br&gt;&#10;아무튼 나는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다시 올라올 수 밖에 없었다. 몇 사람이 급하게 올라오고 있었는데, 계단과 복도는 좀비들의 그림자로 가득차 어른거렸고, 좀비들의 괴성이 이명처럼 울렸다. 나도 뒤늦게 계단을 따라 올랐다. 윗층에는 아까는 못보았던 비밀문이 열려져 있었다. 급하게 들어섰다.&lt;br&gt;&#10;좁고 긴 계단이었다. 붉은 벨벳이 쌓여져있었다. 맞은편의 채광창이 빛을 투과시키고 있어 따뜻한 분위기였다. 채광창이 있는 중간층을 지나 계단을 좀더 올라야했다. 계단 위에 누군가 있었다. 흑인인데, 꿈 속에선 구면이었다.&lt;br&gt;&#10;대충 이런 뉘앙스로 말했다.&lt;br&gt;&#10;&amp;ldquo;들어오지 않는 게 나아, 친구.&amp;rdquo;&lt;br&gt;&#10;&amp;ldquo;무슨 말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그냥… 모른 채 죽는게 낫다는 말이야.&amp;rdquo;&lt;br&gt;&#10;그리고 꽝! 총알이 내 왼쪽 눈을 스쳤다. 바로 코앞이었기 때문에 총소리는 꽝! 이었다.&lt;br&gt;&#10;죽는 줄 알았는데 죽지 않았다.&lt;br&gt;&#10;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피한 게 아니었다. 그가 일부러 맞추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 나도 도망가지 않았다. 우리 둘은 잠시 마주보고 서 있다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lt;br&gt;&#10;엔틱 느낌이 물씬 흐르는 서재였다. 방 가운데에는 사람들이 열을 맞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빈 의자가 많았다. 절반 정도였는데, 여기에 도착하지 못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자리를 차지하며 떠벌였다.&lt;br&gt;&#10;&amp;ldquo;뭔가를 보게 되더라도 말이지. 다른 사람들을 돕지 말라고. 내 목숨은 내꺼야. 때가 되면 내가 끊을 거라니까. 다들 알겠어?&amp;rdquo;&lt;br&gt;&#10;똑같진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다. 물론 여기서 돕는다는 건, 자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대신 쏘아준다는 의미다.&lt;br&gt;&#10;다들 피식피식 웃으며 알겠다 대답한다. 표정에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눈가는 묘하게 굳어있다.&lt;br&gt;&#10;서재도 빛은 가득히 들어왔다. 바로 앞에 단상이 있는데, 누군가 설 예정인듯 싶었다.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였다. 아까의, 아래의 소란은 전혀 무관한듯한, 그런 분위기였다.&lt;br&gt;&#10;서재에 꽂힌 책들을 훑어봤다. 모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고, 판형도 커다란 하드커버로, 똑같았다. 색깔이 다른 것을 보면 모두 다른 내용의 책인 것 같았는데, 그런 책이 서재를 둘러싼 책장에 가득 꽂혀있었다. 지금 와서는 어떤 제목이었을지 궁금해진다.&lt;br&gt;&#10;나는 자리에 앉으며 가지고 있던 소총을 바닥에 두려다, 다리 사이에 끼웠다. 필요할 때 곧장 잡을 수 있길 바랐기 때문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50109</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50109/</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50109/</guid><description>&lt;p&gt;멕시코로 여행을 갔다. 단체 여행이었는데 정확히 잘 기억 나지는 않는다. 목조로 지어진 단층 건물이 많았고 열 명 남짓한 일행은 그 사이를 걸어 갔다. 나는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기념품을 사가야한다는 것이다. 그건 다른 이들에게 선물을 전달 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보다는, 나 스스로가 여행의 의미를 기념품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꿈 속의 멕시코는 그다지 이국적이지 않았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장사꾼밖에 없었다. 다른 문제는 내 무릎이 아프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일행에게서 조금씩 뒤쳐졌고, 일행은 나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행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장사꾼들의 물건을 살피면서 잠시 멈춰섰고, 나는 그때마다 따라 붙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일행이 나 때문에 여행을 지체하지 않았으면 했고, 내 무릎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면 했다. 때문에 나는 힘이 들어도 일행이 내 통증을 모른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오른쪽 무릎이 아프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실제로 내 무릎에 통증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현실의 고통이 꿈 속에서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lt;br&gt;&#10;문제는 일행이 시장 골목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내가 잠시 한 눈을 팔았거나, 일행이 계속되던 걸음을 지체없이 옮긴 것에 이유가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눈 앞의 식당을 발견했고(그것은 개방된 주막과 같은 느낌이었다), 여러 사람이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 일행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들로, 그 동네의 아이들인 것 같았다. 식당의 주인으로 보이는 나이 많은 여성이 영어로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i traveler이라고 말했다. 영어로 묻고 싶지만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줄 모르는 것이다. 여성은 양 옆으로 나뉘는 갈림길을 가리키며 무어라 일렀고,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left? right? 라고 말했다. 여성은 right라고 말했다.&lt;br&gt;&#10;나는 통증을 참으며 길을 따라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일행의 꽁무니가 보이자 안심이 되었지만, 낮은 경사의 오르막 길이라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때 맞은편에서 남자가 지팡이를 쥐고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남자가 쓰지 않는 지팡이를 내게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나는 지팡이를 짚고 갈 수 있는데다가, 찾지 못했던 기념품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정말 지팡이를 떨구었다. 지금 와서 실수인지 고의인지 헷갈리지만 그때 나는 실수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자신이 지팡이를 떨군 것을 알지 못했고, 나는 그가 지나간 다음 지팡이를 주웠다. 나에겐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지팡이를 남자에게 돌려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그 지팡이를 짚고 일행을 쫓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선택의 순간은 몹시 짧았고, 지나가고 말았다. 내가 불안해 하는 사이 남자가 자신의 지팡이를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나를 돌아본 것이다. 나는 당황했지만, 별 생각 없이 지팡이를 들고 내게 주면 안되느냐, 그러나 가지고 가려면 가지고 가라는 제스쳐로 지팡이를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남자는 흔쾌히 지팡이를 가져가라며 웃었고 떠나갔다. 지팡이에는 멕시코를 연상시키는 몇 가지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나는 이를 통해서 여기가 멕시코이며 손때가 묻은 좋은 기념품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lt;br&gt;&#10;나는 일행을 쫒기 시작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50114</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50114/</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50114/</guid><description>&lt;p&gt;그곳은 포항에 놀러 갈 때마다 자주 들리곤 했던 호텔이었다(하지만 나는 포항에서 숙박업소에 들린적은 없다). 우리는 축구, 또는 족구 영화를 찍고 있었다. 족구의 경기 형식과 좀더 유사하지만 많이 달랐다. 훨씬 더 위험했다. 경기장은 중앙으로 갈수록 경사가 기울어졌고, 경기장 한 가운데에는 네트가 아니라 커다란 균열이 있었다. 선수들은, 정확히 하자면 선수를 연기하는 이들은 그 균열에 공이 빠지지 않도록 서로에게 공을 찼고, 공을 걷어 올려서 서로의 골대로 넣는 경기를 치루고 있었다. 연기자라기엔 지나치게 능숙했다. 그 누구도 공을 균열로 빠트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 장면들을 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의 보조를 맡고 있었는데 뭔가 문제가 생겼다. 영화 촬영 중 우리쪽 선수 한 명이 부족해진 것이다. 누군가 균열로 빠지거나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한 명이 부족해졌다. 우리는 연기자가 아닌 인물 중 선수 한 명을 급하게 채워넣었고, 그건 바로 나였다.&lt;br&gt;&#10;나는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나는 슛을 넣는 장면을 찍어야했는데 내가 찬 공은 곧바로 균열로 굴러들어갔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떤 남자가 내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감독이거나 그에 준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술을 잘 마셨으며, 대화에 능숙하고, 여자 이야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취미로 하는 이였다. 나와는 정반대의 인물로 그는 내게 화를 내도 괜찮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정당한 경우 때려도 좋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요즘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화를 내고 있던 그는 화를 내야할지 웃어야할지 판단하지 못했고, 나를 때리지 못했다.&lt;br&gt;&#10;촬영이 끝나고 우리는 호텔로 들어갔다. 우리가 빌린 곳은 이해할 수 없게도 거대한 연회실이었다. 우리는 그곳을 연회장으로 쓰지 않고 호텔에서 칸막이를 빌려 방으로 삼았다. 호텔에서 무언가 사건이 일어났지만 정확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어떤 일도 없었다. 30여명의 인원은 갑자기 호텔에서 빠져나갔다. 나와 내게 화를 냈던 그만이 호텔에 남아있었다. 나는 막내였기에 연회장에서 다른 동료들이 실수로 남기고 간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돈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5백원이나 백원 같은 잔돈부터 고무줄에 묶인 5만원짜리 뭉치도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돈을 모아 구석에 놔두었다.&lt;br&gt;&#10;그때 그 남자가 들어와 어서 떠나야한다고 일러주었다. 나는 그의 자가용을 타고 떠날 예정이었다. 나는 기다리라며 씻고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버럭 화를 냈고, 나는 기가 죽어 최소한 면도는 해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수염이 덥수룩했기 때문에 그는 그 점은 이해해주었다. 그가 내려가서 기다리는 동안 나는 면도를 하기 위해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내게 면도기가 없다는 점이었다.&lt;br&gt;&#10;나는 다른 사람이 쓰다 남은 면도기를 주워들었지만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면도기를 한 번 밀 때마다 두 올의 털이 깎여 나갈 정도였다. 알고보니 면도기 날이 없는 상태였다(날이 없는 상태에서 털을 깎아낸 것이 더 대단하긴 했다 ). 그건 겨우겨우 오른쪽 뺨을 깎아낸 뒤에야 알아낸 것이라 시간이 많이 지체된 상태였다. 호텔 밖에서 나를 찾는 크락션이 울렸다.&lt;br&gt;&#10;나는 다른 사람들이 남기고 간 면도기 날을 찾아냈고 면도를 마칠 수 있었다. 면도를 마치고 거울을 보자 깜짝 놀랐다. 그냥 면도를 끝낸 내 얼굴이었지만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다. 연회장은 청소중이었다. 청소를 하는 이들이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다른 이들이 흘리고 간 돈을 주섬주섬 챙겼다. 잔돈과 만원 지폐, 그리고 5만원짜리 뭉치를 주워들 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lt;br&gt;&#10;이 꿈을 꾸기 전에 꿈 하나를 더 꾸었지만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50128</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50128/</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50128/</guid><description>&lt;p&gt;나는 꿈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lt;br&gt;&#10;동료와 함께 위장하여 죽여야할 사람 집에 갔는데&lt;br&gt;&#10;그 사람도 사람 죽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lt;br&gt;&#10;그 사람은 죽여야할 사람을 쫒고 있었는데&lt;br&gt;&#10;우리는 그것을 도왔다&lt;br&gt;&#10;죽여야할 사람이 죽여야할 사람을 만나자&lt;br&gt;&#10;우리는 누가 죽고 죽일 것인가를 기대했는데&lt;br&gt;&#10;죽어야할 사람이 죽기도 전에&lt;br&gt;&#10;우리가 죽여야할 사람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했다&lt;br&gt;&#10;나는 목이 절반 정도 떨어져나가&lt;br&gt;&#10;반 정도 죽었는데&lt;br&gt;&#10;집으로 도망쳐서 죽고 싶지 않다고 펑펑 울었다&lt;br&gt;&#10;너무 화가 나서 그릇을 모두 던졌는데&lt;br&gt;&#10;화를 내는 일은 쉬웠지만&lt;br&gt;&#10;그릇은 하나도 깨지지 않았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50129</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50129/</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50129/</guid><description>&lt;p&gt;초록색 뱀이 있었다.&lt;br&gt;&#10;뱀은 피부병이 있었다.&lt;br&gt;&#10;나는 뱀의 성장기에 흔히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lt;br&gt;&#10;뱀을 씻겼더니 초록색 물감이 씻겨져 나왔다.&lt;br&gt;&#10;부스럼이라고 생각했던 딱지들은 말라붙은 초록 물감이었다.&lt;br&gt;&#10;물감을 씻어내자 회색이 되었다.&lt;br&gt;&#10;다리도 돋아났다.&lt;br&gt;&#10;회색 도마뱀은 개처럼 걸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60319</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60319/</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60319/</guid><description>&lt;p&gt;호텔에서 나가기로 결정이 되었다.&lt;br&gt;&#10;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동행자 한명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나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호텔 복도에서 누군가 달려왔다.&lt;br&gt;&#10;여댓살 어린아이와 그 어머니였는데 내 동행자는 그들이 함께 타는 것에 불만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엘리베이터에 겨우 2명 밖에 타지 않은 상태이므로 그들이 더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을 태우기로 하고 열림 버튼을 눌렀다.&lt;br&gt;&#10;하지만 그 둘이 모두 엘리베이터 위에 오르자 무게가 너무 무겁다는 신호가 울렸다. 네 명도 타지 못하는 엘리베이터에 대해 나를 제외한 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누가 내릴지 서로에게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리는 것은 모자 중 어머니쪽이었다.&lt;br&gt;&#10;하지만 그녀는 문이 닫히기 직전 엘리베이터에 다시 올라탔다. 어째서인지 엘리베이터는 겹문으로 여분의 공간이 남아 있었고, 그녀는 거기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 그 위로 뛰어내릴 생각이었던 것이다.&lt;br&gt;&#10;문이 완전히 닫히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려했지만 엘리베이터는 너무 빨랐다.&lt;br&gt;&#10;그녀는 엘리베이터가 지나간 레일 위로 떨어졌다. 불꽃이 튀면서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빠르게 이동했기 때문에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60321</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60321/</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60321/</guid><description>&lt;p&gt;우리는 악령을 찾고 있었다.&lt;br&gt;&#10;관광지는 오래 되었고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우리는 이 장소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한 서바이벌 게임장에서 악령이 출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악령이 곧 우리가 있는 장소를 향해 올 것이란 걸 알았다.&lt;br&gt;&#10;악령을 찾는 많은 이들이 우리와 함께했다.&lt;br&gt;&#10;서바이벌 게임장의 주인도 있었고, 나처럼 악령이 올 것을 대비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로 악령과 대항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lt;br&gt;&#10;우리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죽였다. 그러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 이미 악령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은 시덥잖은 농담처럼 들렸고,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이는 없었다. 몇 사람이 이야기에서 빠져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lt;br&gt;&#10;이야기를 하던 중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 다른 사람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거꾸로 들린 사람은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거꾸로 들고 있는 사람은 그 행동이 아주 일상적이고 당연하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티타임 중에 누구나 다른 누군가를 거꾸로 집어들 수 있다는 것처럼.&lt;br&gt;&#10;우리는 그가 악령이라는 걸 알았다.&lt;br&gt;&#10;악령을 찾는 이들 중 하나가 악령의 옆구리에 칼을 꽂아넣었다. 하지만 칼은 거의 박히지 않았고, 그는 이내 칼을 뽑아 자신의 얼굴에 가져갔다.&lt;br&gt;&#10;그는 활짝 웃으며 칼끝과 손잡이를 잡고 세로로 자신의 얼굴을 양분했다. 하지만 칼날이 빗겨나가며 그의 왼쪽 얼굴이 떨어져나갔다. 떨어진 살덩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다시 말끔하게 자르기 위해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계속 실패했다. 그의 몸이 모자란 살들을 얼굴쪽으로 밀어냈다. 그는 얼굴이 자꾸 길어졌고, 길어지는 만큼 잘라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61201</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61201/</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61201/</guid><description>&lt;p&gt;그리고 우리는 돌아가기로 했다. (앞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중요한 일이었고 대여섯명 정도 되는 우리가 총을 가지고 한 일이었는데, 흔히 꿈에 대해 기억하는 것처럼 잘 기억나지 않는다.) 돌아가기 위해선 긴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했다. 우리가 가진 차량은 바퀴가 몇 개나 달린 커다란 트럭이었다. 어째서인지 운전은 내가 했다. 나는 운전면허가 없었고(실제로도 없다), 운전에 상당히 미숙했다.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차선을 자주 침범했고, 많은 차량을 긁거나 스쳤다. 갈수록 내 실력은 나빠졌고 결국 차량 몇 대 꽁무니를 들이박았다. 당연히 내 차는 멀쩡했지만 내가 들이박은 차들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차량을 세우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서 집으로 들아갔다. 이상하게도 나와 같은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언제 경찰들이 들이닥쳐 나를 붙잡아 갈지에 대해 불안해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꿈에서 깼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80203</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80203/</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80203/</guid><description>&lt;p&gt;꿈의 후반부에서 나는 태국으로 엄마와 크레페를 먹으러 갔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여자가 중앙선을 넘어온 반대편 승용차에 부딪쳤다. 여자는 허공을 날았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들 그 여자가 죽었다고 말했다. 엄마와 나는 크레페 생각 뿐이었다.&lt;br&gt;&#10;식당에 도착하니 방금 내린 스콜로 식당의 천장으로 빗물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내린 스콜이라기엔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습하고 축축했다. 다만 식당 주인은 정복을 잘 차려입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정상영업을 한다는 이야기에 안심을 하고 각자의 자리로 찾아들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내 손을 끌고 자리에 앉으려고 했지만 나는 거절하고 집으로 걸어 돌아갔다.&lt;br&gt;&#10;돌아오니 군시절 만났던 5중대장이 나에게 늦었다며 서둘러 연병장을 돌라고 말했다. (나는 8중대였기에 별다른 접점도 없었고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lt;br&gt;&#10;그가 연병장이라고 말한 것은 우리집 거실이었다. 나는 내가 늦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꿈 속에서 자주 있는 선험적인 지식 말이다). 오늘은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었고, 나는 달려야했다. 나는 우리집 거실의 외각을 달렸다. 몇 걸음을 걷지 않아도 될 정도였고, 5중대장은 나를 감독했다.&lt;br&gt;&#10;오십 바퀴 정도 돌았을 무렵 5중대장은 아빠로 바뀌어 있었다. (5중대장과 아빠 사이의 공통점은 하나도 없다.) 아빠는 맨몸이었고 사타구니를 씻기 위한 목욕 수건을 찾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목욕 수건을 찾으러 화장실로 들어가는 대신, 평형세계에 대해서 내게 질문했다. (꿈에 대한 이 대목에 대한 기억은 조금 소실되어 있다. 내 느낌상 목욕 수건에 대한 질문과 평형세계에 대한 질문은 아주 잘 이어져 있었고, 어떤 문제의식도 느낄 수 없었다.)&lt;br&gt;&#10;나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도 내에서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물론 아빠는 거실 한 가운데 서 있었고,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amp;ldquo;평형세계는 여러 우주론 중에 하나고, 몇 가지 이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가설이에요. 양자역학에 따르면 미시세계의 입자 분포는 확률적이고, 그렇다면 미래라는 것은 삶과 죽음이 중첩된 상자 안의 고양이 같은 것이죠. 그리고 그 미래가 왔을 때, 고양이 안의 상자를 확인했을 때 우리는 분기를 맞이하게 되요. 그럼 우리가 확인하지 못한 분기는 사라지는 걸까요? 그렇지 않고 무한한 가지처럼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게 평형세계론이에요. 물론 그런 평형세계는 사실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amp;rdquo; (물론 이와 같은 꿈 속의 언변은 적확하다고 할 수 없다. 실제 지식을 담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80821</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80821/</link><pubDate>Mon, 25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80821/</guid><description>&lt;p&gt;나는 카메라감독이면서 다큐 프로그램 PD였다. 나의 취재 대상은 3일 뒤에 동반자살할 결심을 한 부부였다. 젊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장년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부부였는데, 카메라에 대고 말할 때가 아니면 우리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은 편집이 없었다. 이들은 여러가지 일을 했다. 들판에서 산책을 하거나 집을 불태웠고 두 사람이서 쇠로 된 죽마를 타고 거대한 거인처럼 걷기도 했다. 질문을 여러번 했는데 대답과 함께 모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 하나는 내가 남편에게 두렵지 않나요,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그는 웃으면서 뭐라고 했는데, 아마도 해야할 일을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마지막 날 이들은 가까운 군부대를 찾아갔고, 헬기를 타고 날아올랐다.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날아오르는 헬기를 겨누다가 구령에 맞춰 방아쇠를 당겼다. 헬기가 불타는 것을 촬영했다. 이상하게도 헬기는 추락하지 않았고, 불타는 잔해 속에서 아무런 인영도 나타나지 않았다. 저대로 두 사람이 불타버린 것인지, 내가 떨어지는 시체를 촬영하지 못한 것인지 의심되었다. 그것이 확인되지 못하고 촬영이 종료되었다. 카메라를 내리고나서야 나는 아내에게는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여자가 정말로 동반자살을 하고 싶어하는지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소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라</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86%8C%EC%84%A4%EC%9D%84-%EB%8B%A4%EB%A5%B8-%EC%82%AC%EB%9E%8C%EC%97%90%EA%B2%8C-%EB%B3%B4%EC%97%AC%EC%A4%98%EB%9D%BC/</link><pubDate>Sat, 23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86%8C%EC%84%A4%EC%9D%84-%EB%8B%A4%EB%A5%B8-%EC%82%AC%EB%9E%8C%EC%97%90%EA%B2%8C-%EB%B3%B4%EC%97%AC%EC%A4%98%EB%9D%BC/</guid><description>&lt;p&gt;하던 이야기 좀더 하자면, 나는 자기 글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기 꺼리는 것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 &amp;lsquo;초고 감상&amp;rsquo;이 필요하면 거의 애걸복걸을 하면서 읽어달라고 하는 편인데, 내 소설에 대한 감상 데이터가 쌓이지 않으면 내 소설이 가지는 가치에 대한 내 분석 또한 어그러진다. 내 소설이 내게 재미있느냐 없느냐 같은 건 더 좋은 글을 쓰는데 있어서 하등 쓸모도 없다. 쓰는데 즐겁기는 하겠지. 하지만 쓰는 게 즐겁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내가 가지는 내 소설에 대한 감상도 주관적이니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의 감상은 객관적인가? 아니. 역시나 주관적이지만 주관적인 시선이 여럿 겹치면 내 감상 보다야 객관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고쳐야할 지표와 감상자의 감상이 어느 정도 일치하면 이제 그 글의 완성된 본이 더 또렷해지는 것이다. 결코 그 본에 도달하지는 못할지언정, 그 본을 또렷하게 떠올려가는 과정은 필요하고, 그것이 감상자에게 감상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여기서 말하는 감상자(정확히는 소설 초고 감상자/작법서에서 흔히 말하는 &amp;lsquo;첫 번째 독자&amp;rsquo;를 말한다)는 독자와는 다른 사람이다. 감상자는 작가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글을 보는 사람이고, 독자는 작가가 완성된 글을 내놓았다고 판단하고 글을 읽는 사람이다.&lt;br&gt;&#10;이하는 내가 생각하는 소설 감상 얻는 방법: 글을 보낼 때 읽어주면 고맙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정도의 미덕은 보여야한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줘라. 열 명 정도한테는 보여줘야지 감상을 둘 셋은 건질 수 있다. 봐줄만한 사람한테 다 보내라. 봐줄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 글은 혼자 쓰지만 글쓰기의 장 안에는 다 함께 써야한다. 없으면 만들어라. 그리고 읽을 거라면 지금 당장 읽으라고 말하라. 어차피 나중에 가봤자 안 읽는다. 그리고 글을 전혀 안 읽는 사람에게 보내지 마라. 어지간한 애정이 있어도 안 읽는다. 감상자는 되도록 같이 글을 쓰거나, 아니면 평소 독서량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많은 감상자를 확보하는 것은 좋지만 여러 바구니에 담겨 있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같은 장에 몸을 담고 있으면 감상 또한 유사할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amp;ldquo;유일한 객관적 감상자 코스프레&amp;quot;를 주의하라. 이것이 무엇이냐면, 이 사람은 자신이 이 글을 읽는 유일한 객관적 감상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말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amp;lsquo;객관적 감상자&amp;rsquo;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객관적인 체 하는 주관적 감상자는 글쓴이에게 해롭다. (나? 나도 기억해보자면 그런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종류의 글을 쓸 때 마다 항상 반성한다.) 유일한 객관적 감상자 코스프레는 자신만이 이 글을 도와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작가에게 단순한 감상을 넘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쓰라 글쓴이를 조종하려고 들기도 한다. 그 말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땅한 근거 없이 주장한다면 의심해야한다. 사실 많은 글쓰기 선생들, 또는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이 이렇게 행동한다. 하지만 내가 겪은 좋은 선생들은 절대로 A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amp;lsquo;내가 보기엔…&amp;rsquo; 하고 운을 떼면서 자신의 주관성을 끊임없이 재확인 시키고 주저하며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계속 하며, 자신의 감상은 참고만 하라고 일러둔다. 만약 글쓰기의 정답을 안다며 이것은 틀렸고 저것은 이렇게 해야하며 이러하게 고쳐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글쓰기 선생이 아닐 확률이 높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쓰고 싶은가 쓸 수 있는가 써야하는가</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3%B0%EA%B3%A0-%EC%8B%B6%EC%9D%80%EA%B0%80-%EC%93%B8-%EC%88%98-%EC%9E%88%EB%8A%94%EA%B0%80-%EC%8D%A8%EC%95%BC%ED%95%98%EB%8A%94%EA%B0%80/</link><pubDate>Sat, 09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3%B0%EA%B3%A0-%EC%8B%B6%EC%9D%80%EA%B0%80-%EC%93%B8-%EC%88%98-%EC%9E%88%EB%8A%94%EA%B0%80-%EC%8D%A8%EC%95%BC%ED%95%98%EB%8A%94%EA%B0%80/</guid><description>&lt;p&gt;쓰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언제나 &amp;lsquo;무엇을 쓰고 싶은가&amp;rsquo; / &amp;lsquo;무엇을 쓸 수 있는가&amp;rsquo; / &amp;lsquo;무엇을 써야 하는가&amp;rsquo; 에 대해서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삶과 같이 큰 주제는 모르겠지만 글쓰기에서는 유효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쓰고 싶은 것, 쓸 수 있는 것, 써야하는 것을 구분은 해야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글쓰기는 삶과는 다르게 &amp;lsquo;내가 좋아하는 글&amp;rsquo;과도 거리를 둬야한다. 독자인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글이라고해서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는 장담은 어디에도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과 쓸 수 있는 글이 일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뛰어난 재능이다. 보통은 아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도전했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글쓰기를 포기한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글만 쓰는 사람만이 소설을 쓰는 건 아니다. 글쓰기를 해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쓸 수 없다고 생각한 글, 한 번도 본적도 없는 글, 어쩌면 싫어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좋아하는 글과 쓰고 싶은 글과 쓸 수 있는 글과 써야하는 글들은 언제나 다르다. 좋아하는 글은 언제나 글쓰기의 예외에 위치한다. 독자인 나와 작가인 나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쓸 수 있는 글 위에 내가 있다. 써야하는 글이 내 앞에 있는 길이다. 쓰고 싶은 글은 내 지침이 된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웹소설이라는 미증유</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B%B9%EC%86%8C%EC%84%A4%EC%9D%B4%EB%9D%BC%EB%8A%94-%EB%AF%B8%EC%A6%9D%EC%9C%A0/</link><pubDate>Sat, 02 Feb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9B%B9%EC%86%8C%EC%84%A4%EC%9D%B4%EB%9D%BC%EB%8A%94-%EB%AF%B8%EC%A6%9D%EC%9C%A0/</guid><description>&lt;p&gt;비연재소설들과 달리 연재소설(또는 비교 될 수 있는 드라마 등의 연재작품들)은 항시 독자의 반응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오랜 미덕으로 알려진 작가 자신의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amp;lsquo;소통&amp;rsquo;에 말미암아 작가가 이미 알아차린 독자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것인가? 후자의 경우 그것을 온전한 작가의 글로 볼 수 있을까? 소설에는 &amp;lsquo;작가주의&amp;rsquo;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상업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던지, 하나의 소설은 응당 그 작가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상업적이라면 그것은 그 작가의 상업적 작가주의에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연재소설의 상업적 성과를 원한다면 틀림없이 작가는 독자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정말 그럴까? 많은 연재 소설 작품들은 독자의 요구에 말미암아 암초에 부닥친다. 작가 스스로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도가 글에 있어 좋은 선택인가? 독자의 요구는 &amp;lsquo;거의 항상&amp;rsquo; 정확하지 않다. 독자는 독자의 숫자 만큼의 서로 다른 요구를 가지고 있다. 댓글과 쪽지는 물론, 선작수, 별점 등의 성적 지표는 작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찾아 읽는 독자를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독자의 기대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내 생각에 연재 중인 소설을 통해 투사 되는 작품의 결말 대다수는 작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독자들은 결말의 완벽하지 않음에 불만을 느낀다. 소통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 독자의 의견이 결말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희망 그 자체가 이러한 불만족을 심화시킨다. 그렇다고해서 작가가 모든 가능성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웹소설 시대의 글쓰기는 수 많은 고전을 써온 대문호들이 해왔던 시대와는 완연하게 다른 시대의 글쓰기다. 신문 연재를 하고 독자의 손편지를 받는 것과 유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양이 다르면 질이 다른 법이다. 인기 연재 작품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면 늦어도 5분이면 첫 댓글이 달린다. 원한다면 웹 상에 존재하는 작가에게 직접 말을 걸 수도 있다. 같은 작품을 읽는 이들과 모여서 그룹을 이루고 하루 종일 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작가가 볼 수도 있다. 앞선 시대의 선배 작가들이 도달해보지 못했던 지점에 선 작가들이 여기에 있다. 누군가 의견을 피력하더라도 사람들은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그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충분한 시간이 흐르기까지 당분간 작가는 골몰하여 답을 내는 수 밖에 없고, 이 고민은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최고의 문장은 없다</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B5%9C%EA%B3%A0%EC%9D%98-%EB%AC%B8%EC%9E%A5%EC%9D%80-%EC%97%86%EB%8B%A4/</link><pubDate>Tue, 22 Jan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B5%9C%EA%B3%A0%EC%9D%98-%EB%AC%B8%EC%9E%A5%EC%9D%80-%EC%97%86%EB%8B%A4/</guid><description>&lt;p&gt;학교에서 배운 문장론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내용은 &amp;lsquo;최고의 한 문장&amp;rsquo;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 속 모든 문장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말이다. 문장은 소설 안에서 서로 작용하면서 의미를 쌓아올리고 외연을 확장하며, 어떨 때는 일반의 언어가 다다르지 못하는 가장 세밀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것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좋은 소설 단 한 줄로 결코 요약될 수 없으며, 작가는 좋은 소설을 좋다고 느끼게 만드는 바로 &amp;lsquo;그 좋은 부분&amp;rsquo;에 도달하기 위해서 단어와 문장과 이야기들을 엮어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문장론 이상의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소설 속에서 중요한 것은 문장만이 아닌 것처럼, 소설에서 유기적인 부분도 문장만이 아니며, 인물과 배경, 묘사, 구성 등 소설을 이루는 모든 부분이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처럼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어떤 소설은 보기만해도 죽어있으며, 어떤 소설은 그 자체로 완벽한(것 처럼 보이는) 작품으로 살아 숨쉬기도 한다. (물론 모든 소설은 독자의 독해와 비평의 맥락 안에 존재하고 그 소설이 어떻게 읽어야하는가는 논외로 두어야할 것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주제 상향식 글쓰기와 주제 하향식 글쓰기</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A3%BC%EC%A0%9C-%EC%83%81%ED%96%A5%EC%8B%9D-%EA%B8%80%EC%93%B0%EA%B8%B0%EC%99%80-%EC%A3%BC%EC%A0%9C-%ED%95%98%ED%96%A5%EC%8B%9D-%EA%B8%80%EC%93%B0%EA%B8%B0/</link><pubDate>Sun, 13 Jan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E%91%EB%B2%95/%EC%A3%BC%EC%A0%9C-%EC%83%81%ED%96%A5%EC%8B%9D-%EA%B8%80%EC%93%B0%EA%B8%B0%EC%99%80-%EC%A3%BC%EC%A0%9C-%ED%95%98%ED%96%A5%EC%8B%9D-%EA%B8%80%EC%93%B0%EA%B8%B0/</guid><description>&lt;p&gt;작품에 작가의 생각이 어떤 방식으로든 들어가는 이유는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언젠가는 그것을 포장하고 끝내야만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왜 시작했는지에 대해 밝히면서 끝난다. 가장 역설적인 엔딩인 수미쌍관 플롯도 그 자체로 작품의 주제가 된다. 작가가 &amp;lsquo;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amp;rsquo;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하지만, 많은 이야기들은 이야기가 시작 될 때 작가의 마음 속에 아무런 주제도 없는 경우가 흔하다. 어떤 반짝이는 발상과 착상으로 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전개를 이어가며 작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며 끝내 어떤 결말에 다다르며 작가에게 답을 이끌어내도록 만든다. 창작가에 대한 수 많은 오해 중 하나인 &amp;lsquo;이 작품에는 작가의 메세지가 무엇일까?&amp;lsquo;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어떤 작가들은 소설을 끝을 내고도 자신이 무엇을 썼는지 모른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도래한 이후 독자들은 작품을 통해 작가가 가진 의도와 배경 이상의 것을 읽어내고 있으며, 여기에서 작가가 작품에서 의도한 무언가는 사소한 부분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런 종류의 착각을 작가들이 가진 경우도 흔히 보인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독자들이 작가의 의도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게 된 이상,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말할 수 있는 부분 또한 크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작품의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욕구는 그냥 그 작품을 쓰기 위한 일종의 핑계에 불과할 수 있으며, 작가의 교조적 태도가 작품에서 드러날 때 좋은 평가를 내기 힘들다는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 이유가 작품이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시작된 이야기는 끝난다. 끝나는 이야기는 주제를 가진다. 주제가 없는 이야기는 없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80714</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80714/</link><pubDate>Tue, 08 Jan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80714/</guid><description>&lt;p&gt;오늘은 꿈에서 키우던 개를 봤다.&lt;br&gt;&#10;병들고 지쳐있었고 배가 홀쭉했다.&lt;br&gt;&#10;저녁 밥을 못줬구나 생각했는데 집에 개밥이 없었다. 개가 굶는 것은 정말 큰 걱정이었다.&lt;br&gt;&#10;사료를 사러 나가야하는데 개가 끙끙거렸다.&lt;br&gt;&#10;개는 이불 위에서 몸을 비틀었다(기지개 처럼 보였지만 꿈에서 깨고나니 그렇지 않았다. 그건 내가 기억하는 개가 죽을 때 모습이었다).&lt;br&gt;&#10;나는 개가 아프다고 생각하고 개를 끌어안아 곱슬한 털을 갈빗대 위로 쓰다듬으며 어서 나아라 나아라 중얼거렸다.&lt;br&gt;&#10;손가락 사이로 구불고 뭉친 털들이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가 다시 안쪽으로 말려들었다. 오래전엔 짙은 갈색이었던 그것들은 말게지고 있었고 흰 이불로 이어져 개와 개가 아닌 세계의 구분이 희미했다. 나는 개의 눈꼽을 떼어주고 머리를 토닥이고 턱을 간질이면서 개와 세계를 구분지었다.&lt;br&gt;&#10;하지만 늘 개는 오래 안겨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개는 내 품을 빠져나가 바닥을 벅벅 긁으며 이불 사이로 자기 자리를 만들고 몸을 둥글게 말아 누웠다. 개는 늘 그 자세를 좋아했다. 나는 개의 등골을 만지고 얇은 이불을 당겨 개가 원하는 구덩이의 모습을 완성시켰다.&lt;br&gt;&#10;개는 이불 구덩이 속에 가만히 누워서 눈을 껌뻑이며 내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다.&lt;br&gt;&#10;사료를 사러가야했다.&lt;br&gt;&#10;꿈에서 깨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80819</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80819/</link><pubDate>Tue, 08 Jan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80819/</guid><description>&lt;p&gt;두 가지 꿈을 꿨다.&lt;br&gt;&#10;하나는 서울 올라갔다가 거대한 기차역 겸 쇼핑센터에서 폰과 가방을 잃어버리고 분실물센터에서 물건 찾기 힘들거란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내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꿈이란 것을 깨닫고 안도하는 내용이었다.&lt;br&gt;&#10;두 번째 꿈은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방송에서 &amp;lsquo;밥벌이&amp;rsquo;란 동물이 나오는 내용이었다. 난 처음 보는데 인터뷰를 하는 옛날 어른들은 그립다고 요즘엔 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성충이 되면 전갈 비슷하게 생겼는데, 유충은 아기 맷돼지 처럼 생겨서 아주 귀여웠다. 그 모습이 귀여워 사람한테 밥을 벌기 쉬워서 밥벌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고 했다. 그대로 자라나면 등이 경질화되고 꼬리가 길어저 사냥을 하는 육식 동물이 되어 위험해진다. 조선실록 문헌에도 기록된 조선의 친숙한 동물이라는데,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이었기에 나는 무척 신기하다 생각되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80820</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80820/</link><pubDate>Tue, 08 Jan 2019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80820/</guid><description>&lt;p&gt;오늘은 꿈속에서 마녀에게 쫒겼다. 나는 마녀에게 잡히지 않는 주술을 부리기 위해 내 심장 바로 앞까지 칼을 찔러 넣어야했다. 마녀는 마음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었는데 아름다운 구체관절인형이 되기도 했고 가장 하잘데 없는 더러운 걸레가 되기도 했다. 나는 칼을 들고 걸레를 찢었고 세 번 정도 내 심장에 칼을 찔러 넣었다. 죽지 않기 위해선 칼날 끝만을 집어넣어야했고 찔러넣을 때마다 가슴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빼어낸 다음에야 날카로운 자상을 느끼고 지혈을 위해 왼손으로 상처를 쥐어야했다.&lt;br&gt;&#10;주술은 성공하지 못했다.&lt;br&gt;&#10;마녀를 여러 번 만났지만 늘 붙잡혔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오버 더 초이스 감상문, 식물성→흰 꽃을 피운다</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C%98%A4%EB%B2%84-%EB%8D%94-%EC%B4%88%EC%9D%B4%EC%8A%A4-%EA%B0%90%EC%83%81%EB%AC%B8-%EC%8B%9D%EB%AC%BC%EC%84%B1%ED%9D%B0-%EA%BD%83%EC%9D%84-%ED%94%BC%EC%9A%B4%EB%8B%A4/</link><pubDate>Sun, 01 Jul 2018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C%98%A4%EB%B2%84-%EB%8D%94-%EC%B4%88%EC%9D%B4%EC%8A%A4-%EA%B0%90%EC%83%81%EB%AC%B8-%EC%8B%9D%EB%AC%BC%EC%84%B1%ED%9D%B0-%EA%BD%83%EC%9D%84-%ED%94%BC%EC%9A%B4%EB%8B%A4/</guid><description>&lt;p&gt;※&amp;ldquo;오버 더 초이스&amp;quot;와 &amp;ldquo;눈물을 마시는 새&amp;rdquo; 미리니름 주의&lt;/p&gt;&#10;&lt;p&gt;&amp;lsquo;식물의 동물화&amp;rsquo;는 이미 작가(또는 타자)의 전작 &amp;ldquo;눈물을 마시는 새&amp;quot;에서 드러났던 바 있다. 피를 마시는 새로 이어지는 타자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용(龍)은 보기와 달리 식물로 태어나서 그것을 기르는 이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해서 자라게 된다. 식물이 동물처럼 살아움직인다는 것은 이영도 소설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익숙한 개념인 것이다. 그렇다면 &amp;lsquo;동물의 사람화&amp;rsquo;는 어떨까.&lt;/p&gt;&#10;&lt;p&gt;그러니까, 인간화가 아닌 사람화 말이다. 이영도 소설에서 인간종이 아닌 오크나 엘프 또는, 도깨비와 나가 또는, 유니콘이나 야채 뱀파이어 같은 족속은 인간종과 구별되지만 여전히 인간과 같은 지능과 관습, 문화를 어느 정도 공유하며 대등한 관계로서 사람이라 묶여 불린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위래_전생검신 리뷰</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C%9C%84%EB%9E%98_%EC%A0%84%EC%83%9D%EA%B2%80%EC%8B%A0-%EB%A6%AC%EB%B7%B0/</link><pubDate>Fri, 07 Apr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C%9C%84%EB%9E%98_%EC%A0%84%EC%83%9D%EA%B2%80%EC%8B%A0-%EB%A6%AC%EB%B7%B0/</guid><description>&lt;p&gt;게임적 재미의 실현, 전생검신 리뷰&lt;br&gt;&#10;무협X타임리프X코즈믹호러&lt;/p&gt;&#10;&lt;p&gt;주인공 백웅은 초로의 나이까지 검술을 연마하지만 삼류를 벗어나지 못한다. 산속에서 자신의 재능 없음에 한탄하던 백웅은 감기에 걸려 산에선 내려가다가 숨겨진 동굴을 발견한다. 기연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백웅은 동굴에 설치된 기관진식에 걸려 죽고 만다. 그가 죽기 직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굴 끝에 있던 책의 제목이 &amp;lsquo;천암비서&amp;rsquo;였다는 것뿐. 그리고 괴이하게도 주인공 백웅은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오게 된다. 과거로 돌아온 백웅은 자신이 죽지 않고 &amp;lsquo;전생&amp;rsquo;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천암비서에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에 더해 말년까지 무공을 연마했던 내공이 고스란히 남아 다른 이들보다 더 빨리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lt;br&gt;&#10;우연히 기연을 얻어 남들보다 강한 능력을 얻는 것은 많은 무협 소설이 공인하고 있는 &amp;lsquo;재미&amp;rsquo;다. 하지만 전생검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작중 백웅은 몇 번이고 죽게 되지만 다시 전생할 때마다 천암비서를 통해 과거로 되돌아가고 더 큰 힘을 계속해서 쌓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웅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강해지지 못한다.&lt;br&gt;&#10;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백웅이 무공에 재능이 없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백웅의 적들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두 가지 요소는 마치 롤 플레잉 게임에서 성장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PC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지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컨텐츠가 지나치게 빨리 소진되기를 게임 제작자가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빠른 소진은 곧 재미의 소진을 의미한다. RPG와 전생검신이 이 같은 점에서 닮은 것은 RPG 게이머와 웹플랫폼 연재소설 독자가 사실 많은 부분 교집합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lt;br&gt;&#10;그런 면에서 전생검신은 사라질 수도 있는 재미를 게임적 요소로 강력하게 붙잡고 있다. 천암비서로부터 몇 번이고 다시 시작되는 백웅의 삶은 게임 오버와 재시작을 의미하고, 내공과 무공 수위는 캐릭터의 레벨을, 각종 보물은 아이템을 은유한다. 때문에 백웅이 밝혀나가는 세계의 비밀이 코스믹호러로 알려진 &amp;lsquo;크툴루 신화&amp;rsquo;와 깊게 연관이 있는 것은 놀랍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이머에겐 고난도의 클리어 할 수 없다고 공언된 게임이야말로 최고로 매력적인 게임이니까.&lt;br&gt;&#10;무협과 코스믹호러라는 서로 맞붙을 것 같지 않은 두 장르의 결합은 하루 14KB 이상이라는 극한의 연재소설 환경에서 재미를 추구해온 작가가 찾아낸 성과라 할만하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전생검신 리뷰</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C%A0%84%EC%83%9D%EA%B2%80%EC%8B%A0-%EB%A6%AC%EB%B7%B0/</link><pubDate>Fri, 07 Apr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A%B0%90%EC%83%81/%EC%A0%84%EC%83%9D%EA%B2%80%EC%8B%A0-%EB%A6%AC%EB%B7%B0/</guid><description>&lt;p&gt;게임적 재미의 실현, 전생검신 리뷰&lt;br&gt;&#10;무협X타임리프X코즈믹호러&lt;/p&gt;&#10;&lt;p&gt;주인공 백웅은 초로의 나이까지 검술을 연마하지만 삼류를 벗어나지 못한다. 산속에서 자신의 재능 없음에 한탄하던 백웅은 감기에 걸려 산에선 내려가다가 숨겨진 동굴을 발견한다. 기연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백웅은 동굴에 설치된 기관진식에 걸려 죽고 만다. 그가 죽기 직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굴 끝에 있던 책의 제목이 &amp;lsquo;천암비서&amp;rsquo;였다는 것뿐. 그리고 괴이하게도 주인공 백웅은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오게 된다. 과거로 돌아온 백웅은 자신이 죽지 않고 &amp;lsquo;전생&amp;rsquo;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천암비서에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에 더해 말년까지 무공을 연마했던 내공이 고스란히 남아 다른 이들보다 더 빨리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lt;br&gt;&#10;우연히 기연을 얻어 남들보다 강한 능력을 얻는 것은 많은 무협 소설이 공인하고 있는 &amp;lsquo;재미&amp;rsquo;다. 하지만 전생검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작중 백웅은 몇 번이고 죽게 되지만 다시 전생할 때마다 천암비서를 통해 과거로 되돌아가고 더 큰 힘을 계속해서 쌓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웅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강해지지 못한다.&lt;br&gt;&#10;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백웅이 무공에 재능이 없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백웅의 적들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두 가지 요소는 마치 롤 플레잉 게임에서 성장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PC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지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컨텐츠가 지나치게 빨리 소진되기를 게임 제작자가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빠른 소진은 곧 재미의 소진을 의미한다. RPG와 전생검신이 이 같은 점에서 닮은 것은 RPG 게이머와 웹플랫폼 연재소설 독자가 사실 많은 부분 교집합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lt;br&gt;&#10;그런 면에서 전생검신은 사라질 수도 있는 재미를 게임적 요소로 강력하게 붙잡고 있다. 천암비서로부터 몇 번이고 다시 시작되는 백웅의 삶은 게임 오버와 재시작을 의미하고, 내공과 무공 수위는 캐릭터의 레벨을, 각종 보물은 아이템을 은유한다. 때문에 백웅이 밝혀나가는 세계의 비밀이 코스믹호러로 알려진 &amp;lsquo;크툴루 신화&amp;rsquo;와 깊게 연관이 있는 것은 놀랍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이머에겐 고난도의 클리어 할 수 없다고 공언된 게임이야말로 최고로 매력적인 게임이니까.&lt;br&gt;&#10;무협과 코스믹호러라는 서로 맞붙을 것 같지 않은 두 장르의 결합은 하루 14KB 이상이라는 극한의 연재소설 환경에서 재미를 추구해온 작가가 찾아낸 성과라 할만하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위스키 봉봉</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C%84%EC%8A%A4%ED%82%A4-%EB%B4%89%EB%B4%89/</link><pubDate>Wed, 01 Mar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C%84%EC%8A%A4%ED%82%A4-%EB%B4%89%EB%B4%89/</guid><description>&lt;p&gt;여자가 말했다.&lt;br&gt;&#10;&amp;ldquo;거기 제 자린데요?&amp;rdquo;&lt;br&gt;&#10;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여자 얼굴을 들여다보았다.&lt;br&gt;&#10;여자가 말했다.&lt;br&gt;&#10;&amp;ldquo;뭐해요? 빨리 표 확인해봐요.&amp;rdquo;&lt;br&gt;&#10;남자는 느린 동작으로 기차표를 확인하고 앉은 자리를 확인했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lt;br&gt;&#10;&amp;ldquo;옆자리였네요.&amp;rdquo;&lt;br&gt;&#10;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자리로 옮겼다.&lt;br&gt;&#10;여자는 의아하다는듯 고개를 기울였다가, 방금까지 남자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았다.&lt;br&gt;&#10;남자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lt;br&gt;&#10;이번 표적이 바로 이 여자였다.&lt;br&gt;&#10;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여자를 미행을 할 생각이었는데, 우연찮게 그 여자의 자리에 앉았던 모양이다. 바로 얼굴이 팔려버렸으니 앞으로의 미행은 힘들듯 싶었다.&lt;br&gt;&#10;&amp;ldquo;이거 먹을래요?&amp;rdquo;&lt;br&gt;&#10;창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 있던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가 위스키 봉봉 하나를 들고 말했다.&lt;br&gt;&#10;남자는 멈칫했다 위스키 봉봉을 받아들었다. 혹시 이 여자가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건가. 하지만 눈썰미로 슥 훑어도 위스키 봉봉의 포장지에 별 이상은 없었다. 여자가 빤히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는 눈치를 슬쩍 봤다가 위스키 봉봉을 까먹었다.&lt;br&gt;&#10;달콤했다.&lt;br&gt;&#10;깜짝 놀랄만큼.&lt;br&gt;&#10;남자의 표정이 펴지자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lt;br&gt;&#10;&amp;ldquo;제가 말이 좀 심했죠? 옆자리 정도는 착각할 수도 있는데.&amp;rdquo;&lt;br&gt;&#10;남자는 그제서야 달콤한 맛이 아주 오랜만이라는 건 깨달았다. 엉겁결에 받은 초콜렛이 몇 년만에 먹는 것인지. 남자는 초콜렛을 천천히 녹여 이와 이 사이, 혓바닥 아래, 잇몸 속으로 스미게 두었다.&lt;br&gt;&#10;여자가 말했다.&lt;br&gt;&#10;&amp;ldquo;계속 안 좋은 일이 겹쳐서 신경이 예민해진 거 같아요. 방금도 기차에 오르기 전에 소매치기 하나가 제 가방을 들고 가려고 했거든요. 역무원이 금방 잡아줘서 다행이지. 아, 근데 어디까지 가세요?&amp;rdquo;&lt;br&gt;&#10;말이 많군.&lt;br&gt;&#10;남자는 하는 수 없이 기차의 종착역을 말했다. 그녀는 연고지는 불명이었고 어디로 갈지 예상할 수 없었다.&lt;br&gt;&#10;여자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우와! 저랑 같은 곳에 가시네요.&amp;rdquo;&lt;br&gt;&#10;그건 의외였다. 종착역은 관광 도시 하나가 있지만 도망치기에 좋은 곳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죽이기에 좋은 곳이지. 기뻐한다면 남자가 기뻐해야했다.&lt;br&gt;&#10;남자가 말했다.&lt;br&gt;&#10;&amp;ldquo;무슨일로 가시죠?&amp;rdquo;&lt;br&gt;&#10;&amp;ldquo;관광이죠. 그 도시에 뭐가 있겠어요.&amp;rdquo;&lt;br&gt;&#10;&amp;ldquo;성수기가 아닌데.&amp;rdquo;&lt;br&gt;&#10;&amp;ldquo;혼자 가는 여행에 그런 거 따지겠어요? 그럼 그쪽은?&amp;rdquo;&lt;br&gt;&#10;&amp;ldquo;저는 일 때문에.&amp;rdquo;&lt;br&gt;&#10;&amp;ldquo;관광업에 종사 하시나보죠?&amp;rdquo;&lt;br&gt;&#10;&amp;ldquo;아, 뭐… 그렇죠. 잡지에 기행문 써요.&amp;rdquo;&lt;br&gt;&#10;&amp;ldquo;오, 정말요? 그럼 여러군데 가보셨겠네요?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amp;rdquo;&lt;br&gt;&#10;남자는 잠깐 침묵했다.&lt;br&gt;&#10;남자는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특별한 장소가 떠올랐다.&lt;br&gt;&#10;남자는 기억을 천천히 되살리며 말했다.&lt;br&gt;&#10;&amp;ldquo;남쪽 섬 중에, 대단한 건 아닌데. 별로 크지는 않아요. 마을 사람들도 몇 명 없어서, 배 타고 들어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곳이 있어요. 그래도 주변에 낚시 가는 사람이 많아서 배 잡는 게 어렵지는 않은데. 아무튼 봄에 가면 섬 전체에 철쭉 꽃이 흐드러지게 펴요.&amp;rdquo;&lt;br&gt;&#10;&amp;ldquo;흐드러지게? 말 되게 이쁘게 하신다. 계속 해줘요.&amp;rdquo;&lt;br&gt;&#10;&amp;ldquo;가만히 서 있으면 바람결 따라서 향기가 코를 찌르는데, 저 너머에서는 파도가 넘실대는 거죠. 그러고 있으면, 뭐라고 해야지? 세상에서 동떨어져 있는 느낌? 아, 혹시 꽃알레르기 있어요? 알레르기 있으면 안 되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없어요, 저. 꽃 좋아해요.&amp;rdquo;&lt;br&gt;&#10;향수 냄새가 났다. 그는 그 향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조직원 하나가 그에게 자료라고 쥐어준 서류 뭉치에는 여자가 자주 쓰는 향수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선호하는 옷가지는 무엇인지, 자주 가는 식당은 어디인지, 모두 적혀 있었다. 남자는 그 향수의 이름 또한 외고 있었다.&lt;br&gt;&#10;남자가 말했다.&lt;br&gt;&#10;&amp;ldquo;향기가 좋네요.&amp;rdquo;&lt;br&gt;&#10;&amp;ldquo;뭐가요? 향수요? 그쵸? 저 이것만 써요.&amp;rdquo;&lt;br&gt;&#10;&amp;ldquo;그 향수 이름이 뭐에요?&amp;rdquo;&lt;br&gt;&#10;여자는 웃으면서 향수의 이름과 그 향수를 광고한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향수를 만드는 브랜드와 그 브랜드에서 만든 남자에게 어울릴법한 향수를 추천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여자가 부른 그 이름을 빼곡하게 적어넣었다.&lt;br&gt;&#10;&amp;ldquo;와, 수첩 쓰시네요. 로맨틱하다. 요즘은 메모도 다 폰으로 하잖아요.&amp;rdquo;&lt;br&gt;&#10;&amp;ldquo;아무래도 이게 더 익숙해서요.&amp;rdquo;&lt;br&gt;&#10;일 때문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지워도 스마트폰에 기록이 남더라고요. 찢어서 태우는 게 훨씬 깔끔해요. 남자는 말들을 내려앉혔다.&lt;br&gt;&#10;하지 말아야 말들 때문에 입술이 마르자 남자는 말을 돌렸다.&lt;br&gt;&#10;&amp;ldquo;그런데 안 좋은 일들이 있었다고요?&amp;rdquo;&lt;br&gt;&#10;&amp;ldquo;네네. 뭐 따지기 시작하면 한 둘이 아닌데, 제일 큰 건 일 그만 둔 거 아닐까.&amp;rdquo;&lt;br&gt;&#10;&amp;ldquo;해고 당한 거에요?&amp;rdquo;&lt;br&gt;&#10;&amp;ldquo;아뇨. 프리랜서라고 해야되나? 뭐 대충 그런건데 클라이언트랑 마찰이 좀 있어서. 자세히 말하긴 좀 그런데… 제가 일하는 업계가 많이 좁아서, 트러블 생기면 말짱 황이거든요. 아 이제 뭐 먹고 살아야하나 몰라.&amp;rdquo;&lt;br&gt;&#10;여자는 푸념을 했지만 입에 금방 미소가 돌아왔다.&lt;br&gt;&#10;&amp;ldquo;그래서 이 여행도 그냥 나 자신에게 주는 위로 선물이랄까, 새시작하기 전에 찬 바람 좀 쐬야지 싶어서 가는 거에요. 야! 신난다!&amp;rdquo;&lt;br&gt;&#10;자영업이 아니라 프리랜서인가. 남자는 으쓱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lt;br&gt;&#10;서리받은 논들 사이로 둥글게 말아놓은 짚더미들이 듬성듬성 놓여져 있었다. 봄이 오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lt;br&gt;&#10;암중에,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젊은 무당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높으신 분들 사이로 알음알음하여 소문이 퍼지고 남자의 조직에도 그 이야기가 닿았다. 남자는 점이며 사주팔자며 믿지 않았지만 무당의 말을 믿고 투자해서 큰 수익을 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쯤해서 무당을 멀리하며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도 생겨났다.&lt;br&gt;&#10;하지만 조직의 보스는 그렇지 않았다. 이 맹랑한 무당은 큰 투자를 계획하는 조직의 보스에게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했고, 결과적으로 조직은 보스의 투자 실패로 크게 휘청거렸다. 무당의 말에 넘어간건 보스만이 아니었다.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한듯 무당은 자신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홀렸다. 각계각층에서 흘러나온 돈들이 무당의 말과 함께 모두 증발해버렸다. 무당이 모종의 작전 세력과 결탁했다는 사실이 얼마가지 않아서 밝혀졌다.&lt;br&gt;&#10;&amp;ldquo;이거 봐요.&amp;rdquo;&lt;br&gt;&#10;여자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가 남자의 볼을 찔렀다. 순간 남자는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그게 여자의 검지손가락이란 걸 알아차렸다.&lt;br&gt;&#10;남자가 무뚝뚝하게 볼이 밀려난 그대로 있자 여자가 검지를 떼곤 키득거리며 웃었다.&lt;br&gt;&#10;남자가 말했다.&lt;br&gt;&#10;&amp;ldquo;뭐에요?&amp;rdquo;&lt;br&gt;&#10;&amp;ldquo;화났어요?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요?&amp;rdquo;&lt;br&gt;&#10;&amp;ldquo;일 생각 좀 했어요. 그쪽은 이제 뭐 할려고요?&amp;rdquo;&lt;br&gt;&#10;&amp;ldquo;글쎄요. 뭘 해야 좋을까. 거기 일 괜찮아요?&amp;rdquo;&lt;br&gt;&#10;&amp;ldquo;아뇨. 페이는 좋은데 업무 환경이 좀. 주말도 못쉬고.&amp;rdquo;&lt;br&gt;&#10;&amp;ldquo;그런가. 벌어 놓은게 있어서 제가 돈은 좀 있거든요? 차라리 가게나 하나 차릴까요?&amp;rdquo;&lt;br&gt;&#10;&amp;ldquo;치킨집 같은 거?&amp;rdquo;&lt;br&gt;&#10;&amp;ldquo;안 돼. 그건 내 최후의 보루에요.&amp;rdquo;&lt;br&gt;&#10;&amp;ldquo;구상하고 있는 사업이 되게 많은가봐요. 돈 좀 있나봐.&amp;rdquo;&lt;br&gt;&#10;&amp;ldquo;그럼요. 늙은 깡패새끼들 등쳐먹었더니 배가 다 부르네. 이 캐리어 있죠? 이거 5만원짜리로 가득 채운 거에요. 바닥엔 금괴가 열장이나 깔려있고요. 아까 소매치기랍시고 이거 채어 가려다가 나자빠지는데, 얼마나 웃긴지. 그래도 조마조마하긴 했어.&amp;rdquo;&lt;br&gt;&#10;남자는 특별히 반응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봤다. 순간 기차가 터널로 들어섰고 반사되는 상으로 옆 자리의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위스키 봉봉을 까먹고 있었다.&lt;br&gt;&#10;남자가 돌아보자 여자가 말했다.&lt;br&gt;&#10;&amp;ldquo;걱정하지 마요. 아까 준 초콜렛에 아무 것도 안 넣었으니까. 나 그래도 먹는걸로는 장난 안 치거든. 그리고 괜히 급하게 굴지 마요.&amp;rdquo; 여자는 남자의 볼을 찔렀던 검지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amp;ldquo;나도 한 번 봐준 거니까. 초콜렛 하나 더 먹을래요?&amp;rdquo;&lt;br&gt;&#10;남자는 아까전 찔렸던 볼을 한 번 부볐다가 위스키 봉봉을 받았다. 달콤함이 질리지 않았다.&lt;br&gt;&#10;남자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어떻게 알았어요?&amp;rdquo;&lt;br&gt;&#10;&amp;ldquo;솔직히, 그냥 한 번 찍어봤어요. 몇 명 타지도 않는 기차에 체격 건장한 젊은 남자면 의심해볼만 하긴 하죠. 누가 겨울에 거길가. 어차피 이 기차에 당신 한 사람만 탔을 거 같지도 않고. 모르죠. 이 기차 탄 사람 전부가 내 목 따가는 임무를 받았을지도요.&amp;rdquo;&lt;br&gt;&#10;&amp;ldquo;이제 어떡할거에요?&amp;rdquo;&lt;br&gt;&#10;&amp;ldquo;아까 말했잖아요. 마지막 여행이라고. 내키는대로 일 보셔도 저는 할말 없는데, 그래도 저 지금 아양 떠는 거니까 좀더 봐줄 수 있죠?&amp;rdquo;&lt;br&gt;&#10;그러지 못할 것도 없었다. 여자의 말대로 기차에는 두 사람이 더 타고 있었고, 아침 소매치기는 여자의 가방에 도청기와 위치추적기를 설치했다. 여자가 가방에 넣어둔 돈 보다 숨겨둔 돈이 훨씬 많을건 분명했으니까 그 행방을 알아야했다.&lt;br&gt;&#10;여자가 위스키 봉봉의 포장지를 구기며 말했다.&lt;br&gt;&#10;&amp;ldquo;조금만 더 깔끔하게 했으면 되는데. 아깝다 아까워. 아, 근데 걔는 벌써 죽었죠? 희재.&amp;rdquo;&lt;br&gt;&#10;&amp;ldquo;누구?&amp;rdquo;&lt;br&gt;&#10;&amp;ldquo;있잖아요. 키 작고 컴퓨터 잘 하던 애.&amp;rdquo;&lt;br&gt;&#10;&amp;ldquo;아.&amp;rdquo;&lt;br&gt;&#10;&amp;ldquo;걔 되게 귀여웠는데. 다 들통나니까 마지막으로 한다는 말이 &amp;lsquo;언니만큼은 꼭 지켜줄게요!&amp;rsquo; 막 이러고. 영화 참 많이 봤어. 아무튼 걔 죽었죠?&amp;rdquo;&lt;br&gt;&#10;&amp;ldquo;네. 아마도요.&amp;rdquo;&lt;br&gt;&#10;&amp;ldquo;아 불쌍하다. 사실 내가 하자고 꼬드긴건데. 머리도 똑똑하고 엄청 착한 애였는데 너무 미안하다.&amp;rdquo;&lt;br&gt;&#10;터널에서 빠져나오자 쏟아지는 역광에 남자는 인상을 썼다. 여자는 또 위스키 봉봉을 까먹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입에 막 들어가려는 그것을 낚아챘다.&lt;br&gt;&#10;남자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취했어요?&amp;rdquo;&lt;br&gt;&#10;&amp;ldquo;그럴리가요.&amp;rdquo;&lt;br&gt;&#10;여자가 입을 열자 진득한 초콜렛 향과 옅은 알코올 냄새가 뒤섞였다. 남자는 제 입에 위스키 봉봉을 털어넣고 말했다.&lt;br&gt;&#10;&amp;ldquo;그만 먹어요.&amp;rdquo;&lt;br&gt;&#10;&amp;ldquo;왜요?&amp;rdquo;&lt;br&gt;&#10;&amp;ldquo;….&amp;rdquo;&lt;br&gt;&#10;&amp;ldquo;이거 가지곤 안 취해요.&amp;rdquo;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가방에서 도청기를 발견하곤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amp;ldquo;…하긴 뭐. 더 먹으면 당뇨 걸리겠다.&amp;rdquo;&lt;br&gt;&#10;남자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낸 뒤, 빠르게 휘갈겨 쓰면서 말했다.&lt;br&gt;&#10;&amp;ldquo;아무튼 마지막 정거장까진 가죠. 저희도 그게 더 편하니까.&amp;rdquo;&lt;br&gt;&#10;남자가 수첩을 들어 보여주자 여자가 눈으로 그걸 읽었다.&lt;br&gt;&#10;&amp;lsquo;이번 정거장에서 내림. 조용히 준비.&amp;rsquo;&lt;br&gt;&#10;기차가 감속하기 시작하자 남자는 여자에게 일어서라 손짓했다. 둘 모두 일어난 뒤 남자가 나이프로 도청기와 위치추적기를 도려냈다. 남자가 도청기와 휴대폰을 의자 위에 놔두자 여자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음악이나 들을까요?&amp;rdquo;&lt;br&gt;&#10;남자는 인상을 쓰고 기차칸의 앞뒤를 살폈지만 별다른 움직임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두 사람은 직접 손을 쓰지 않고 남자를 보조해주는 역할이었다. 남자를 의심했다면 이미 움직였겠지.&lt;br&gt;&#10;기차가 정차했다.&lt;br&gt;&#10;남자는 가슴팍에 권총을 차고 있었지만 영화처럼 스펙터클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좋은 징조였다.&lt;br&gt;&#10;둘은 승강장 기둥 뒤에 앉아 있다가 기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뒤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캐리어를 끌고 가면서 인상을 잔뜩 쓰고 마른 세수를 했다. 망했군.&lt;br&gt;&#10;여자가 자기 다리를 주무르며 남자를 쫒아왔다.&lt;br&gt;&#10;&amp;ldquo;아, 다리 저려. 왜 구해준거에요? 저한테 반했어요?&amp;rdquo;&lt;br&gt;&#10;&amp;ldquo;반하기는요. 돈 때문에 눈 돌아간거지. 이제 대책 없는데 큰일났다 진짜.&amp;rdquo;&lt;br&gt;&#10;&amp;ldquo;그럼 돈만 가져가면 되잖아요?&amp;rdquo;&lt;br&gt;&#10;&amp;ldquo;더 있는 거 알거든요? 간도 커 진짜. 얼마나 해먹은거야.&amp;rdquo;&lt;br&gt;&#10;&amp;ldquo;솔직히 반한 거 맞죠? 나 좀 예쁘잖아.&amp;rdquo;&lt;br&gt;&#10;&amp;ldquo;뭐래.&amp;rdquo;&lt;br&gt;&#10;남자는 홧김에 캐리어를 놔버리고 역 출구로 걸어갔다.&lt;br&gt;&#10;깜짝 놀란 여자가 힘겹게 캐리어를 끌고서 남자에게 다가갔다.&lt;br&gt;&#10;&amp;ldquo;아니, 돈 때문이라고 하시던 분이.&amp;rdquo;&lt;br&gt;&#10;&amp;ldquo;난 그 향수 별로에요.&amp;rdquo;&lt;br&gt;&#10;남자는 투덜거리곤 여자와 함께 캐리어 손잡이를 쥐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갇힌 사람 동호회 채팅방 로그</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0%87%ED%9E%8C-%EC%82%AC%EB%9E%8C-%EB%8F%99%ED%98%B8%ED%9A%8C-%EC%B1%84%ED%8C%85%EB%B0%A9-%EB%A1%9C%EA%B7%B8/</link><pubDate>Tue, 28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0%87%ED%9E%8C-%EC%82%AC%EB%9E%8C-%EB%8F%99%ED%98%B8%ED%9A%8C-%EC%B1%84%ED%8C%85%EB%B0%A9-%EB%A1%9C%EA%B7%B8/</guid><description>&lt;p&gt;갇힌 사람 동호회 채팅방 x월 y일&lt;/p&gt;&#10;&lt;p&gt;접속자 목록&lt;/p&gt;&#10;&lt;p&gt;네버홀릭&lt;br&gt;&#10;개말년^^&lt;br&gt;&#10;수갑☆&lt;br&gt;&#10;팔랑나비&lt;br&gt;&#10;소코반&lt;br&gt;&#10;오웬&lt;/p&gt;&#10;&lt;p&gt;-오웬 님이 접속하셨습니다. -&lt;/p&gt;&#10;&lt;p&gt;수갑☆: 안녕하세요!&lt;br&gt;&#10;개말년^^: ㅎㅇ&lt;br&gt;&#10;네버홀릭: 오웬 님 오셨네&lt;br&gt;&#10;오웬: 안녕하세요!&lt;br&gt;&#10;오웬: 오늘은 사람이많네요?&lt;br&gt;&#10;팔랑나비: 그러니까 이 카페 폐쇄되면 어떻게 되냐는 겁니다.&lt;br&gt;&#10;수갑☆: 그러게요. 소코반 님도 계시고.&lt;br&gt;&#10;오웬: 그렇네요 소코반 님 안녕하세요?&lt;br&gt;&#10;개말년^^: 어쩔 수 없는 거죠 군대가 몇 십 년 있는 것도 아니고;;;&lt;br&gt;&#10;소코반: ? 안녕&lt;br&gt;&#10;팔랑나비: 오웬님 ㅎ2&lt;br&gt;&#10;팔랑나비: 그래도 카페 탈퇴할 필요는;&lt;br&gt;&#10;오웬: 무슨 이야기하고 계시는 거죠?&lt;br&gt;&#10;개말년^^: 이제 갇힌 사람도 아닌데 굳이 카페에 남는게 이상하잖아요&lt;br&gt;&#10;수갑☆: 아 말년 님 이제 군대 제대하신다고 하셔서&lt;br&gt;&#10;네버홀릭: 개말년 님 제대한대요&lt;br&gt;&#10;수갑☆: 요즘 카페 사람 자꾸 줄어드는데,&lt;br&gt;&#10;수갑☆: 사람이 적으면 카페 유지할 필요도 없다고&lt;br&gt;&#10;개말년^^: 여러분도 천년만년 갇혀살것도 아니잖아요? 안그래요?&lt;br&gt;&#10;수갑☆: 소코반 님이 말씀하셔서..&lt;br&gt;&#10;오웬: 헐 진짜에요? =ㅅ=)?&lt;br&gt;&#10;팔랑나비: &amp;hellip;.&lt;br&gt;&#10;오웬: 소코반님???&lt;br&gt;&#10;개말년^^: 안그래요?&lt;br&gt;&#10;개말년^^: 수갑님도 이제 곧 탈출계획 다 짜두셨다고 했죠?&lt;br&gt;&#10;소코반: 진짜임&lt;br&gt;&#10;수갑☆: 네..&lt;br&gt;&#10;개말년^^: 아니뭐 인연 닿으면 다른동호회에서 볼수도 있는거고&lt;br&gt;&#10;개말년^^: 솔직히 갇사동도 사람얼마 없고.. 계기도 생기고 해서 가려는건데&lt;br&gt;&#10;개말년^^: 그거 가지고 뭐라 그러시면 안되죠&lt;br&gt;&#10;팔랑나비: 그야 그렇지만&amp;hellip;.&lt;br&gt;&#10;개말년^^: 아 시간도 다됬고 저 가볼께요&lt;br&gt;&#10;수갑☆: 들어가세요&lt;br&gt;&#10;팔랑나비: ㅂㅂ..&lt;br&gt;&#10;소코반: 안녕&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겨울의 끝</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2%A8%EC%9A%B8%EC%9D%98-%EB%81%9D/</link><pubDate>Mon, 27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2%A8%EC%9A%B8%EC%9D%98-%EB%81%9D/</guid><description>&lt;p&gt;이제 인류는 암흑기를 벗어났다. 적도를 중심으로 걷히는 구름이 다시금 지구의 대류를 만들어내면서 기온은 날이 다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생물학자인 최교수는 &amp;lsquo;생물관&amp;rsquo;의 식물들을 밖으로 옮겨 심을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물관의 식물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회의가 필요했다. 옮겨 심기엔 너무 인력이 많이 소모될겁니다. 지금부터 옮기기 시작해도 기온이 돌아오는 때까지 모두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식물들을 옮기다가 많은 식물들이 상처를 입을겁니다. 누군가 가장 기발한 의견을 냈다. 그럼 생물관을 부수죠.&lt;br&gt;&#10;그러자 생물관의 지붕을 덜어내는 작업을 시작하는 날이 축제의 날로 예정되었다. 모두 축제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우리 탐사대도 예정되어있던 탐사를 축제 이후로 미루었다. 탐사대장인 박팀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방사능 오염 복구 기술을 발견하고, 영구 동결된 기술을 확인하는 인류에 많은 기원을 했던 우리 탐사대도 슬슬 일거리가 없어지겠군. 옛날엔 잘 나갔는데 말이지.&lt;br&gt;&#10;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옳았다. 눈이 녹기 시작하면 숨겨진 과거의 유물들을 굳이 &amp;lsquo;탐사&amp;rsquo;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눈에 파묻혀 있던 건물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발견되는 자료량은 특이점을 넘어 우리에게 불필요할만큼 늘어날 것이라는게 탐사대원들의 객관적 평가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른 방주와의 교류였다. 그렇게되면 찾아다니는 것 보단 주어진 정보를 활용하는 일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탐사대원들은 그런 복잡한 심경에 빠져 뿔뿔이 흩어져 간만의 긴 휴식을 맛보았다.&lt;br&gt;&#10;선장이 나를 호출한 것은 축제가 다가오기 한 달 정도가 남을 무렵이었다. 기후학자인 이교수가 기온 상승률이 예상 보다 더 빨리 진행되고 있으므로 축제를 10일 정도 앞당겨야겠다는 발표에, 다들 환호성을 지른 학회가 끝난 직후였다.&lt;br&gt;&#10;선장은 정신감정결과가 사이코패스로 나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점을 방주 선장 투표 때 장점으로 내세운 사람이기도 했다. 모두가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이때, 자신과 같은 이성주의자가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럴듯했다. 축제가 한껏 다가온 이 시점에서도 그는 축제의 흥분 보다 걱정을 하고 있었다.&lt;br&gt;&#10;그녀는 뜸을 들이지 않았다.&lt;br&gt;&#10;현군. 현군은 프림양과 친하지요?&lt;br&gt;&#10;예. 그렇습니다만. 프림을 발견해서 방주로 데려온 것도 접니다.&lt;br&gt;&#10;그래요. 방주는 가끔 조난자를 발견하기도 하죠. 하지만 가끔 조난자들은 그 배의 일원이 아니기에, 조심을 해야하기도 해요.&lt;br&gt;&#10;그런 이야기라면, 옛날 이야기 책에서나….&lt;br&gt;&#10;현군. 저는 비유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 말과 의도를 헷갈리지 말았으면 하거든요.&lt;br&gt;&#10;그러면서 그녀는 서랍에서 서류뭉치를 꺼내 주었다.&lt;br&gt;&#10;이건 프림양과 관련된 비밀 경찰들 조사 자료에요. 의심 수준이라면 현군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았겠죠. 법정에서 활용될 수 있는 확고한 증거이고, 그녀는 저 자료 만으로도 중벌을 면하기 어렵습니다.&lt;br&gt;&#10;…무슨 말씀이신지.&lt;br&gt;&#10;이런 이야깁니다. 현군. 그녀는 과거 옛인류가 종의 멸망을 막을 목적으로 콜드 슬립한 인류 중에 한명이고, 우리네 사고와는 크게 다릅니다. 그녀는 문명과 과학 기술에 큰 공포를 느끼죠. 그리고 우리가 해가 뜨는 볕으로 나가면 그 문명이,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파고드는 곰팡이처럼 지구를 다시금 좀먹을거라 생각해요.&lt;br&gt;&#10;선장님. 그녀에게 물론 그런 경향이 있는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lt;br&gt;&#10;예. 그녀는 그저 계획만 하고 있고, 우리 몰래, 현군의 ID카드로 불법적인 자료를 검색&amp;rsquo;만&amp;rsquo; 할 뿐이죠. 그녀는 자신의 말과 달리 과학 기술에 상당히 해박하고 그중에서도 위험한 학문에 전문적입니다.&lt;br&gt;&#10;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시장은 내게 몇 가지를 지시한 후, 되돌려보냈다. 마지막으로 선장이 한 말은 자신이 한 말과, 내가 한 말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갇혀진 방주 내의 혼란은 그 어떤 일 보다 위험했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말만을 곱씹었다.&lt;br&gt;&#10;프림은 머리가 희고 눈이 붉어지는 알비노증이 있었다. 체구가 작고 피부는 혈관이 또렷하게 보일정도로 투명해서, 가끔 먼 곳을 바라보면 인간같지 않았다. 요정같았다. 그녀는 쇠를 무서워하고 나무를 사랑했다. 차가움을 싫어하고 온기를 좋아해, 사람들에게 부벼대기 좋아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던 당시에는 곤혹스러운 일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자, 프림은 여전히 부벼대기를 좋아했지만 나는 곤혹스럽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lt;br&gt;&#10;일이 일어난 것은 축제 당일,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나는 탐사대원들과 함께 축제에 참석할 예정이었고, 프림은 씨앗 옮기기 행사의 준비 때문에 서로 떨어져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탐사대원들에게 프림과 함께 있고 싶다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도 의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선장의 말은 지켜졌다. 하지만 내가 이동한 곳은 씨앗 보관실이 아닌 방주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핵 융합로였다.&lt;br&gt;&#10;그리고 프림은 그곳에 있었다.&lt;br&gt;&#10;가스 수류탄을 사용한건지 경비원들은 자리에 널부러져있고, 자신은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공기 정화 시스템이 이미 가스를 환기 시키고 있었기에, 무리없이 프림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lt;br&gt;&#10;내 부름에 프림이 돌아봤다.&lt;br&gt;&#10;그녀가 말했다. 방독면 안의 음성울림판이 그녀의 목소리를 탁하게 했다.&lt;br&gt;&#10;현? …너무 늦었어.&lt;br&gt;&#10;날 기다리고 있던건 아니고?&lt;br&gt;&#10;행사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것 뿐이야. 작업은 전부 다 끝났어. 현이 내 앞으로 오기전에 작업은 끝나. 단추 하나만 누르면 되거든.&lt;br&gt;&#10;실제로 현은 팔짱을 끼는 여유까지 보였다. 하지만 현은 그에 어울리지 않게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lt;br&gt;&#10;그런데 현이 어떻게 여기에 올 수 있었지? 아니. 알 거 같아. …아니. 모르겠어.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늦게 나타날리 없을텐데. 선장이 실수한거야? 현이 실수한거야?&lt;br&gt;&#10;둘 다 실수하지 않았어. 프림. 왜 그러는거야?&lt;br&gt;&#10;말해도 모를거야. 하지만 겨울을 한 번 더 만들고나면 다들 이해해주겠지.&lt;br&gt;&#10;문명이 모든걸 파괴할거라고 생각해?&lt;br&gt;&#10;맞아.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을 부수고 태우다가 마지막에 가서 몽땅 부서진 것을 보겠지. 그러면 이제 자기 몸에 기름을 붓는거야. 그게 인류의 역사지.&lt;br&gt;&#10;니가 하려는 짓이 자기몸에 기름을 끼얹는 짓인데도?&lt;br&gt;&#10;알아. 그러고나면 적어도 다른 것들은 남길 수 있거든.&lt;br&gt;&#10;후회할거야.&lt;br&gt;&#10;적어도 지금은 아냐. 그리고 후회할 뇌도 없어지겠지. 다행스럽게도 우라늄이 내 계산 보다 많이 남아 있었어.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기뻐하다가 사라질거야. …아, 시간이 다 됐네.&lt;br&gt;&#10;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프림은 날 바라보다가, 천천히, 모니터쪽으로 몸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와 프림의 거리는 아주 멀었다.&lt;br&gt;&#10;내가 말했다.&lt;br&gt;&#10;날 사랑하지 않아?&lt;br&gt;&#10;…비겁하게.&lt;br&gt;&#10;프림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돌아보지는 않았다.&lt;br&gt;&#10;프림. 날 사랑하지 않아?&lt;br&gt;&#10;사랑해.&lt;br&gt;&#10;니가 사랑하는 나는, 니가 그러길 바라지 않아.&lt;br&gt;&#10;…그럼 사과할게. 미안해.&lt;br&gt;&#10;나는 이해했다. 사랑한다는 말로 멈출 수 있다면 그녀는 애초에 시도도 안했을 것이다. 그녀는 사랑보다 더 큰, 명백한 대의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 그 대의를 흔들어야할 것이다.&lt;br&gt;&#10;그녀의 등에 대고 내가 말했다.&lt;br&gt;&#10;벚꽃 향기 맡아보고 싶지 않아?&lt;br&gt;&#10;프림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꽃이었다. 하지만 생물관에 피는 꽃은 그 가짓수가 너무 적었다. 연구소는 더 많은 생물 DNA를 보관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꽃이 가져올 생물관 내의 생태계 불균형에 대해 걱정했다. 그리고 곤충과 동물들이 옮기지 않은 꽃들은 그 발달 정도가 약해 금방 시들고 향도 나지 않았다. 수 십 세대에 걸쳐 그저 살아남기에 매진한 식물의 모습이었다. 겨울나기 동안 살아남기 위해. 봄을 기다리며. 그리고 이제 그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면 식물들은 진짜배기 꽃을 피울 것이다. 책에서만 읽던 향내가 진동하고 나비와 벌들이 노니는 진짜 생태계가 생겨날 것이다. 인공 조명이 아닌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서.&lt;br&gt;&#10;프림은 나를 돌아보더니 방독면을 벗었다. 그녀는 이제 제 목소리로 말했다.&lt;br&gt;&#10;응. 현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알겠어. 현이 그저 어떤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느껴져. 고마워. 하지만, 너무 늦었어. 안녕.&lt;br&gt;&#10;프림은 그와 동시에 몸을 돌렸고, 나는 힘껏 뛰쳐나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목이 쉬었으므로, 그녀의 이름이나 부정의 말을 크게 외쳤던 것 같다. 내가 보고 있던 것은 그녀의 손가락 끝이 아닌, 그녀 등 뒤에 꽂힌 붉은 레이져 포인트였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눈사람 만들려고요</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88%88%EC%82%AC%EB%9E%8C-%EB%A7%8C%EB%93%A4%EB%A0%A4%EA%B3%A0%EC%9A%94/</link><pubDate>Mon, 27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88%88%EC%82%AC%EB%9E%8C-%EB%A7%8C%EB%93%A4%EB%A0%A4%EA%B3%A0%EC%9A%94/</guid><description>&lt;p&gt;길을 걷던 중이었다. 편의점에 들리기 위해 집 나와 스무 걸음 정도 걸었을때, 길을 얼마 나서지 않아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골목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눈덩이가 굴러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눈덩이는 느린 속도였기 때문에 골목에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lt;br&gt;&#10;대략 직경 일 점 오 미터, 내 키보다 커보이는 눈덩이. 어디서부터 저걸 굴려온걸까? 그러고보면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었고, 집에서 나오기 전 까지만 해도 싸릿눈이 흩날렸다. 나는 눈이 그치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선 참이었다.&lt;br&gt;&#10;눈덩이가 내 옆을 지나가길 기다렸다. 일단 저 눈덩이가 지나가야 내가 편의점에 갈 수 있기 대문이다. 커다란 눈덩이는 굴리기도 힘든지 조금씩,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인내를 가지면서 누가 저 눈덩이를 굴리고 있을지 생각해봤다.&lt;br&gt;&#10;생각해보면 간밤에 쌓인 눈 때문에 통행이 힘드니 그걸 치우는 공무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런 폭설. 부족한 설비. 늘어나는 민원. 결국 눈치우는 기계(이름은 모른다)가 없거나, 뿌리는 가루(염 어쩌곤데 역시 모르겠다)도 부족하고, 그 흔한 모래 조차 없어서, 눈덩이를 굴려서 눈을 치운다는 무식한 방법을 택한건 아닐까.&lt;br&gt;&#10;아니면 철없는 꼬맹이들 짓 일지도 몰랐다. 이 동네에는 와아 하면서 함성을 지르며 골목 이곳저곳을 쏘 다니는 꼬마들이 다수 있었고, 어마어마한 행동을 서슴치않고 행하는 무시무시한 녀석들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비비탄 총으로 총싸움을 하면서 자기가 스나이퍼랍시고 전봇대 꼭대기에 오른 경우를 들 수 있다. 결국 못내려와서 일일구 불렀었지.&lt;br&gt;&#10;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눈덩이가 옆으로 지나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외의 전개에 깜짝 놀랐다.&lt;br&gt;&#10;눈덩이를 굴리는건 어떤 아가씨였다. 옷은 세련되게 입었지만 외모는 앳되 보였다.&lt;br&gt;&#10;당황해서 길이 났는데도 선듯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아가씬 학교도 안 가고 왜 저러고 있는거지? 저거 굴리면 누가 돈 주나? 가서 물어볼까? 우물쭈물 하고 있을때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amp;ldquo;안녕하세요?&amp;rdquo;&lt;br&gt;&#10;머리카락 몇 가닥이 흐른 땀 때문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숨을 쉴 때 마다 흰 김이 피었다.&lt;br&gt;&#10;&amp;ldquo;아, 네. 안녕하세요?&amp;rdquo;&lt;br&gt;&#10;떨떠름하게 되받았다. 아가씨는 생긋 웃더니 말했다.&lt;br&gt;&#10;&amp;ldquo;안 바쁘시면 좀 도와주실래요?&amp;rdquo;&lt;br&gt;&#10;뭘 돕는단 말인가?&lt;br&gt;&#10;나는 눈짓으로 눈덩이를 의문가득한 눈길로 가리켰고, 아가씨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황스러웠다.&lt;br&gt;&#10;눈덩일 굴리는건 민폐다. 통행에 방해가 된다. 특히나 이렇게 커다란 눈덩이는 더 그렇다. 아니. 보통 민폐가 아니지. 이 눈덩이가 구르는 동안 사람도 못다니고 차도 못다닌다. 이 골목 사이론 차가 잘 다니지 않는다는게 다행스럽긴 하지만.&lt;br&gt;&#10;또 문제는 요 커다란 눈덩이를 굴리는게, 분명 어린이날을 즐길 나이는 물론 질풍노도의 시기까지 다 지난 청년이라는 것이다. 다 큰 남자여자 둘이서 나란히 눈덩이 굴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뭐라그러겠냔 말이다.&lt;br&gt;&#10;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나는 또 다시 우물쭈물 거렸다. 생각하는게 있다고 그걸 입으로 다 뱉을 수야 없다.&lt;br&gt;&#10;아가씨는 조금 난처해진 표정을 지었다. &amp;ldquo;제가 괜히 물었나봐요. 괜찮아요. 저 혼자 할 수 있으니까.&amp;rdquo; 그러곤 다시 눈덩일 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lt;br&gt;&#10;내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잠깐만요.&amp;rdquo;&lt;br&gt;&#10;&amp;ldquo;네?&amp;rdquo;&lt;br&gt;&#10;아가씬 뒤돌아봤다.&lt;br&gt;&#10;&amp;ldquo;도와드릴께요. 어디까지 가세요?&amp;rdquo;&lt;br&gt;&#10;&amp;ldquo;별로 안 멀어요. 이쪽 앞에 초등학교 있잖아요. 거기 운동장이요.&amp;rdquo;&lt;br&gt;&#10;정말 별로 멀지 않은 거리였다. 옆에서 눈덩이를 같이 밀기 시작했다.&lt;br&gt;&#10;그리고 스무 걸음 정도 걷고서 후회했다. 뭔놈의 눈덩이가 이렇게 무거운지 한번 밀때 마다 묵직함이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이런 놈을 혼자서 굴리고 있었습니까?&lt;br&gt;&#10;새삼 대단하다는 눈길로 옆 자리의 아가씨를 바라봤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생글생글이었다. 그렇다보니 나 또한 힘들다는 기색을 낼수가 없었다. 같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눈덩일 밀었다.&lt;br&gt;&#10;초등학교 까지는 큰 도로가 나오지도 않고, 골목을 몇 번만 꺾으면 되는 거리였는데도 반도 채 가지 못해서 쓰러질 것 같았다. 최근 몇 개월, 아니 최근 몇 년간의 노동 중에 제일 힘든 일이었다. 굴러가면서 계속 몸을 키운 눈덩이는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져서 한번 굴릴때 마다 용을 써야했다.&lt;br&gt;&#10;그리고 시련이 왔다. 사실은 본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몸을 쓰느라 머리로 깨닫지 못한 사실이었다. 아마 아가씨가 몰랐던건 이 동네 지리에 익숙치 못했던 탓인거 같고.&lt;br&gt;&#10;우리는 대략 사십 오도각의 오르막길에서 눈덩일 멈추고 말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선 이 길을 올라야했다. 지금의 두 사람으로는 절대 무리였다.&lt;br&gt;&#10;내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오르막길 있다는걸, 하, 깜빡했네요.&amp;rdquo;&lt;br&gt;&#10;&amp;ldquo;후아, 그러게요.&amp;rdquo;&lt;br&gt;&#10;둘 다 숨이 차서는 대화가 이어지질 않았다. 우리는 눈덩이에 기대 숨을 골랐다.&lt;br&gt;&#10;잠시 땀을 닦아내고 있는데 아가씨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죄송해요. 여기까지 왔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아니에요. 뭘.&amp;rdquo;&lt;br&gt;&#10;잠시 정적. 내가 먼저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데, 아가씨가 다시 말했다.&lt;br&gt;&#10;&amp;ldquo;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amp;rdquo;&lt;br&gt;&#10;&amp;ldquo;네?&amp;rdquo;&lt;br&gt;&#10;&amp;ldquo;눈사람이요. 이거 눈사람 몸통하려고 굴려온거에요.&amp;rdquo;&lt;br&gt;&#10;&amp;ldquo;정말요? 왜요?&amp;rdquo;&lt;br&gt;&#10;&amp;ldquo;그게…… 그, 어릴 때는 눈오면 마냥 좋잖아요. 친구들이랑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근데 어느 순간에 보면 눈 오면 걱정부터 하잖아요. 길 미끄럽겠구나. 눈 녹으면 질척질척하겠구나. 하고요.&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죠.&amp;rdquo;&lt;br&gt;&#10;&amp;ldquo;처음에, 어릴 때는 몰랐죠. 어른들이 그런 소리하면. 눈이 오는데 걱정할게 뭐 있어요. 어른들은 왜 눈오면 왜 안나가 노는지 몰라. 이런 생각이나 하고. 근데 뭐랄까. 그런거 있잖아요. 어릴때는 딱 넘어지면 먼저 아프다는 생각부터 하는데 어느 순간 부터는 아프기보다는 막 쪽팔리고 이러잖아요.&amp;rdquo;&lt;br&gt;&#10;&amp;ldquo;네에.&amp;rdquo;&lt;br&gt;&#10;&amp;ldquo;아, 이야길 어떻게 꺼냈더라.&amp;rdquo;&lt;br&gt;&#10;&amp;ldquo;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어른이요.&amp;rdquo;&lt;br&gt;&#10;&amp;ldquo;참. 고마워요. 그러니까, 제가 어른이 됬거든요? 만 십 구세 이상이면 어른이잖아요. 생일도 지나고요. 그런데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까맣게 잊고 있다가…… 겨울이 되고 눈이 자꾸 내리잖아요. 그제야 생각이 난거죠. 어떻게하지, 자꾸 생각하다가 자꾸 미루다가는 절대로 못만들겠구나 싶어서 오전 수업 빼먹을거 결심하고 눈덩이 뭉쳐서 굴리기 시작했어요.&amp;rdquo;&lt;br&gt;&#10;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거 같았다. 이야길 듣고보니 나도 눈사람을 완성시키고픈 마음이 들었다. 충분히 쉬었으니까 다시 시도하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lt;br&gt;&#10;그런데 갑자기 &amp;ldquo;빠아아앙-&amp;rdquo; 하는 경적 소리가 들렸다. 허겁지겁 돌아보니 승용차 한대가 서 있었다. 그제야 문득 깨달은 사실은 지금 눈덩이가 서 있는 곳이 골목길이긴 해도 나름대로 네거리라는 것, 큰 길로 빠져나가는 길목이라 차량통행이 잦다는 것이었다.&lt;br&gt;&#10;내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일단 뒤로 굴려서 딴 길로 빼놓을까요?&amp;rdquo;&lt;br&gt;&#10;아가씨는 당황한듯 말했다. &amp;ldquo;예? 아, 네.&amp;rdquo;&lt;br&gt;&#10;하지만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네거리라는건 길이 네 방향이라는거고, 어디서든 차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새 우리는 빵빵 거리는 자동차, &amp;ldquo;길 가운데서 뭐하는거야!&amp;rdquo; 하는 택시기사의 고함, &amp;ldquo;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겠네!&amp;rdquo; 하는 동네 아저씨(해뜬지가 언젠데?)의 고함에 갇혀버렸다.&lt;br&gt;&#10;탈출구는 초등학교 뿐이었다.&lt;br&gt;&#10;무안해진 우리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우왕자왕했다. 구경꾼이 많아졌다. 문방구 할머니, 목욕갔다 오는 아줌마들, 농땡이 치는 고딩, 자다깬 담너머 아저씨, 약수터 다녀오는 할아버지…… 이래서 눈덩이 같은거 밀고 싶지 않았는데! 게다가 이렇게 커다란건! 방금 전의 결심이 무색하게 후회가 되었다.&lt;br&gt;&#10;나는 아가씨와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 둘이 눈덩이를 밀어올리는 수 밖에 없다. 아니, 하다 못해 길에서 벗어나게만 붙잡고 있어도.&lt;br&gt;&#10;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눈덩이를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이 전혀 나지 않았다. 간만의 노동으로 되려 몸이 풀려서 그런걸까. 아니면 엄마 말대로 형이 젖을 다 먹어버려서 나는 모유를 못먹고 자랐기 때문일까.&lt;br&gt;&#10;나 뿐만 아니라 아가씨도 얼굴을 오만상 찡그리며 눈덩이에 붙어 있었다. 온 몸이 눈덩이에 달라 붙어서는 끙끙댄다. 이제는 용을 쓰는게 아니라 악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차가 지나갈때 까지만 기다리자. 아니다. 그냥 이 눈덩일 부셔버리자. 차라리 그게 낫다. 정 눈사람 만들고 싶으면 그냥 작게 만들어도 될 거 아냐. 거의 포기에 가까운 마음이었다.&lt;br&gt;&#10;그리고 눈덩이가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깜짝 놀랐다. 손에 거의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멈춰선 사이 눈덩이는 손에서 벗어나 저절로 오르막을 올랐다. 어떤가 싶어 돌아봤다.&lt;br&gt;&#10;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아가씨 옆으로 택시 기사 아저씨가 같이 눈을 밀고 있었다. 내 옆으로도 자가용에 타고 있던 아저씨가 눈을 밀고 있었다. 도와주는건가? 힘이 났다. 다시 눈덩이를 밀었다.&lt;br&gt;&#10;아가씨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아, 고맙습니다.&amp;rdquo;&lt;br&gt;&#10;&amp;ldquo;이게 올라가야 우리 차도 빠지지.&amp;rdquo;&lt;br&gt;&#10;눈덩이는 또 가벼워졌다. 농땡이 부리던 고딩이었다. 안면이 있다.&lt;br&gt;&#10;&amp;ldquo;아저씨, 끄응, 도대체 이 눈덩일 왜 밀고 있는거야?&amp;rdquo;&lt;br&gt;&#10;&amp;ldquo;헉, 눈사람 만들려고 그런다, 왜?&amp;rdquo;&lt;br&gt;&#10;내가 대꾸하니 괜히 차에 타고 있던 아저씨 한 분이 &amp;ldquo;허, 참.&amp;rdquo; 하고 웃었다.&lt;br&gt;&#10;눈덩이는 다시 가벼워졌다. 타월과 로션, 때수건이 든 바구니를 어딘가 두고 온 아줌마들이었다.&lt;br&gt;&#10;&amp;ldquo;학생들은 도대체 이걸 왜 민데?&amp;rdquo;&lt;br&gt;&#10;택시 기사 아저씨가 우리 대신 대꾸했다.&lt;br&gt;&#10;&amp;ldquo;후우, 눈사람 만든답디다.&amp;rdquo;&lt;br&gt;&#10;&amp;ldquo;허, 참. 아침 부터 뭔 난리래.&amp;rdquo;&lt;br&gt;&#10;그리곤 런닝구 차림의 동네 아저씨도, 아줌마들 바구니 옆에 약수통 두고 온 할아버지도, 읏챠읏챠 소리를 내며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을 거의 오를 무렵엔 초등학교 운동장도 소란스러워졌다. 멀리서 눈덩이를 본 저학년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나와 눈덩이를 둘러싼 것이다. 동네 악동들도 여럿 있었는데 자기네들도 밀어보겠다고 붙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장 힘들어야할 오르막길 끄트머리에서 처음 밀어올릴때 흘렀던 땀이 식어버렸다.&lt;br&gt;&#10;초등학교는 높은 곳에 있어서 바람이 술술 불었다. 춥기보단 시원했다. 6년이나 다녔는데도 졸업하고 들릴 일이 없었던 초등학교에 생경한 느낌도 있었다.&lt;br&gt;&#10;누군가 어깨를 두드리기에 올려다보니 문방구 할머니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lt;br&gt;&#10;&amp;ldquo;이렇게 주셔도 되요?&amp;rdquo;&lt;br&gt;&#10;&amp;ldquo;겨울이라 팔리지도 않는데 뭘.&amp;rdquo;&lt;br&gt;&#10;&amp;ldquo;어이쿠, 고맙습니다.&amp;rdquo;&lt;br&gt;&#10;잠시 커다란 눈덩이를 바라봤다. 역시 저걸론 허전하다. 머리가 있어야한다. 눈 앞에 쌓인 눈을 뭉쳐서 주먹만하게 만들고, 발로 이리저리 굴려서 수박만하게 만들고, 손으로 살살살 굴리기 시작한다. 또 봤는지 &amp;ldquo;저기서 머리만든다!&amp;rdquo; 하고 꼬맹이들이 외쳐선 자기네가 굴리겠다고 운동장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lt;br&gt;&#10;머리는 금새 만들어졌고, 학교 기물을 빌려서 커다란 빗자루 두개로 팔을 삼고, 얼굴은 나무 판자를 꽂아 만들었다. 대략 높이 사미터에 이르는 초거대 눈사람이었다.&lt;br&gt;&#10;&amp;ldquo;햐, 장관이네. 장관.&amp;rdquo;&lt;br&gt;&#10;&amp;ldquo;진짜 멋있네. 신문 나는거 아닌가 몰라.&amp;rdquo;&lt;br&gt;&#10;&amp;ldquo;올 겨울 내내 눈사람 보게 생겼네.&amp;rdquo;&lt;br&gt;&#10;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쭈쭈바를 빨았다. 나는 감동에 젖은 눈빛으로 눈사람을 보고 있는 아가씨 옆으로 다가갔다.&lt;br&gt;&#10;사실 궁금한 게 있었다.&lt;br&gt;&#10;&amp;ldquo;근데 왜 이렇게 크게 만든거에요? 꼭 이렇게 크게 만들 필요가 있나?&amp;rdquo;&lt;br&gt;&#10;아가씨가 팔을 펼쳐들며 말했다.&lt;br&gt;&#10;&amp;ldquo;이때까지 눈사람 못만든 거, 빚 갚는다 생각하고 크게 만들고 싶었어요.&amp;rdquo;&lt;br&gt;&#10;활짝 웃는 얼굴이 예뻐서 나도 마주웃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잊힌 꿈</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E%8A%ED%9E%8C-%EA%BF%88/</link><pubDate>Mon, 27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E%8A%ED%9E%8C-%EA%BF%88/</guid><description>&lt;p&gt;창 밖으로 새가 재잘거리는 아침. 눈꺼풀이 무거워 눈을 비비니 눈물이 묻어나왔다. ─또? 잠긴 목에선 소리가 나오지 않고, 입만 동그랗게 모인다. 힘겹게 눈을 뜨자 왼쪽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볼을 타고 내려온 눈물은 입가를 지나 떨어져내려 손등에 툭.&lt;/p&gt;&#10;&lt;p&gt;최근 들어 잠에서 깨어날 때 마다 눈물이 괴었다. 눈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걸까? 문제가 있다면 안과에 가봐야하겠지만, 눈물이 흐르는 것 정도는 그다지 큰 병일거 같지는 않았다.&lt;br&gt;&#10;&amp;ldquo;…고 생각하는데.&amp;rdquo;&lt;br&gt;&#10;친구에게 말했다.&lt;br&gt;&#10;친구는 잠시 있어보라며, 제목도 없고, 그저 맨들맨들한 갈색 가죽에 쌓인 커다란 책을 한 권 꺼냈다.&lt;br&gt;&#10;&amp;ldquo;그거 뭐야?&amp;rdquo;&lt;br&gt;&#10;&amp;ldquo;백과사전.&amp;rdquo;&lt;br&gt;&#10;친구가 책장을 후드득 넘기며 말했다.&lt;br&gt;&#10;&amp;ldquo;눈꼽이 끼거나 눈이 충혈되거나 하지는 않아?&amp;rdquo;&lt;br&gt;&#10;&amp;ldquo;안 그래.&amp;rdquo;&lt;br&gt;&#10;&amp;ldquo;잠을 잘 못잔다거나.&amp;rdquo;&lt;br&gt;&#10;&amp;ldquo;전혀.&amp;rdquo;&lt;br&gt;&#10;&amp;ldquo;꿈은 어떤걸 꿨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갑자기 꿈 이야기가 왜 나와?&amp;rdquo;&lt;br&gt;&#10;&amp;ldquo;여기 책에 적혀있어. &amp;lsquo;잠에서 깨어 눈물이 흐를 때 3, 꿈을 꿨을 경우&amp;rsquo; 무슨 꿈을 꿨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몰라. 뭔가 꾸긴 했는데 기억이 안 나네. 그런데 그 책 도대체 무슨 책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백과사전이라니까. 아, 여기있군.&amp;rdquo;&lt;br&gt;&#10;&amp;ldquo;뭐가?&amp;rdquo;&lt;br&gt;&#10;친구는 날 무시하고 또박또박 사전을 읽어갔다.&lt;br&gt;&#10;&amp;ldquo;&amp;lsquo;위와 같은 신체적 이유 말고도 꿈 속에서 겪은 일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꾼 꿈에 따라서 치료 방법이 다릅니다. 자신이 죽는 꿈을 꿨다면 1,3522 페이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꿈을 꿨다면 2,7223 페이지, 그 외에 꿈이라면 5,3742 페이지로 이동하세요. 무슨 꿈을 꿨는지 모른다면 9,3573 페이지로 이동해 꿈을 기억하는 방법을 참고하세요.&amp;rdquo;&lt;br&gt;&#10;&amp;ldquo;게임북?&amp;rdquo;&lt;br&gt;&#10;&amp;ldquo;백과사전이라니까 그러네. 넌 기억 안 난다 그랬지? 9,3573 페이지로 가야겠군.&amp;rdquo;&lt;br&gt;&#10;친구는 책장을 잔뜩 잡아 넘겼다.&lt;br&gt;&#10;&amp;ldquo;&amp;lsquo;꿈을 기억 하는 방법 첫 번째. 머리에 강한 충격을 줍니다. 2.5 킬로그램 이상의 질량을 가진 물체로 꿈을 기억하려는 사람의 머리를 성인 남성의 힘으로 강타하면 만 분의 일의 확률로 꿈이 기억납니다. 주의. 천 분의 일의 확률로 기억을 잃기도 합니다.&amp;rsquo; 해볼래?&amp;rdquo;&lt;br&gt;&#10;&amp;ldquo;거절.&amp;rdquo;&lt;br&gt;&#10;&amp;ldquo;그럼 &amp;lsquo;두 번째. 잠에서 깨자마자 희미한 꿈을 메모해두면 거기에서 꿈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amp;rsquo; 했어?&amp;rdquo;&lt;br&gt;&#10;&amp;ldquo;아니.&amp;rdquo;&lt;br&gt;&#10;&amp;ldquo;&amp;lsquo;세 번째. 잊고 살다보면 기억 나기도 합니다.&amp;rsquo;&amp;rdquo;&lt;br&gt;&#10;&amp;ldquo;어쩐지 백과사전이 귀찮아하는 것 같은데.&amp;rdquo;&lt;br&gt;&#10;&amp;ldquo;그럴 리가 있나. 하나 더 있어. &amp;lsquo;네 번째. 44,9213 페이지의 제조법을 따른 약물을 마셔보세요.&amp;rsquo;&amp;rdquo;&lt;br&gt;&#10;&amp;ldquo;잠깐. 그 책이 사십만 페이지 까지 있다고?&amp;rdquo;&lt;br&gt;&#10;친구는 히죽 웃으며 검지를 흔들었다.&lt;br&gt;&#10;&amp;ldquo;쯧쯧. 태클이 늦어. 그 소리는 일 만 페이지 넘길 때 이야기 했어야지.&amp;rdquo;&lt;br&gt;&#10;&amp;ldquo;그게 문제가 아니라…&amp;rdquo;&lt;br&gt;&#10;친구는 무시하고 페이지를 휙휙 넘겼다. 페이지를 넘기는 정도가 아니라 책 자체를 넘겼고, 책이 올려진 책상을 넘겼고, 사실은 책상이 아니라 책상이 놓여진 교실을 넘겼다. 아침 햇살이 비져 나오던 창문 밖으론 노란 별빛이 쏟아지고, 나무로 된 책걸상은 세련된 철제로, 녹색 칠판은 가상현실출력기로 바뀌어 있었다.&lt;br&gt;&#10;친구는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lt;br&gt;&#10;&amp;ldquo;&amp;lsquo;우라늄 4 작은 술, 반물질 2 큰 술, 암흑물질 2 작은 술, 암흑에너지 1/2 작은 술…&amp;rsquo;&amp;rdquo;&lt;br&gt;&#10;&amp;ldquo;구할 수 있겠냐!&amp;rdquo;&lt;br&gt;&#10;&amp;ldquo;&amp;rsquo;…가 구하기 힘들다면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것들로도 구할 수 있습니다. 잡초 한 포기, 이슬 한 방울, 흙 한 줌, 구름 한 조각, 햇빛 한 줄기, 봄비의 상쾌함, 36.5도의 체온, 보드라운 살결, 애정어린 시선, 따뜻한 포옹.&amp;rsquo;&amp;rdquo;&lt;br&gt;&#10;나는 눈을 깜빡였고, 친구는 &amp;ldquo;여기에선 못 구하겠네.&amp;rdquo; 말하곤 다시 교실을 뒤집었다.&lt;br&gt;&#10;이제 드넓은 들판에 나와 친구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때마침 계절은 봄이었고, 기억을 되살리는 약의 재료는 모두 모여 있었다. 친구는 나를 껴안았다.&lt;br&gt;&#10;친구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어때, 기억나?&amp;rdquo;&lt;br&gt;&#10;&amp;ldquo;응.&amp;rdquo;&lt;br&gt;&#10;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나 눈물을 닦았다.&lt;br&gt;&#10;이런 꿈이었기 때문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존은 맛있다</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1%B4%EC%9D%80-%EB%A7%9B%EC%9E%88%EB%8B%A4/</link><pubDate>Mon, 27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1%B4%EC%9D%80-%EB%A7%9B%EC%9E%88%EB%8B%A4/</guid><description>&lt;p&gt;리사는 예쁘다. 케인은 힘이 쎄다. ‘나’는 똑똑하다. 우리는 모두가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존은 맛있었다.&lt;br&gt;&#10;누구나 금요일날 저녁에는 존의 허벅지살을 먹고 싶어한다. 심지어 존의 허벅지살은 ‘존A’도 좋아한다. 모두가 금요일날 저녁을 고대한다. 저녁 만찬에는 존의 허벅지살 스테이크와 존의 입술 튀김과, 존의 삶은 간이 올라온다.&lt;br&gt;&#10;우리는 일주일 내내 케인이 도축한 뒤 가공한 존을 먹어왔기 때문에 언제나 신선한 고기를 필요로했다. 하지만 먹고 싶은 만큼먹을 수는 없다. 모두가 ‘적정량’을 배정받아 먹어야만 한다. 적정량을 어기면 우리 네 사람은 모두 죽는다.&lt;br&gt;&#10;내 계산에 따르면, 우리가 적정량을 어기고 누군가 더 많이 먹거나 덜 먹게 된다면 균형이 깨진다. 예를 들어서 존A는 저녁 식사에서 가장 많은 음식을 먹는다. 존A가 적정량보다 덜 먹은 상태로 ‘복사기’에 들어간다면 우리가 다음에 먹는 존은 양이 적어진다. 이런 실수가 반복되면 모두가 먹는 에너지가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다.&lt;br&gt;&#10;우리는 각자의 임무가 있고, 그 일을 수행하는데는 에너지가 들어간다. 누군가 더 먹고 덜 먹을 수가 없다. 우리를 지배하는 케인 조차도 이 규칙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지구에서 떠나올 때부터 정해져 있던 사실이다.&lt;br&gt;&#10;우리는 최소한의 자원과, 최소한의 인원으로 지구에서 벗어나야했다. 우리의 균형을 지켜주는 것은 복사기다. 복사기는 철저한 계산 아래 만들어졌고, 딱 존 한 사람만큼만 복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나는 복사기를 정비한다. 존은 음식이다. 리사는 전리품이다. 케인이 모두를 지배한다. 존이 모두의 것인 것과 달리, 리사는 오직 케인의 것이다. 리사는 케인의 권력을 증명한다.&lt;br&gt;&#10;언젠가 복사기로 들어가는 존A에게 나는 “괜찮냐”고 물었다. 존A는 5초 정도 생각하곤 괜찮다고 했다. 존A는 자신의 불행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아이큐가 낮게 설정되었다. 존A는 복사된 존에게서 어떠한 공감도 하지 못한다. 그럼 그는 불행하지 않은걸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케인이 존을 도살할때면 존의 비명은 언제나 길고 애처롭다. 존은 매번 살려달라고 말한다. 케인은 자신의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 오랜 시간 존을 괴롭힌다. 주말 내도록 존은 죽지 않는다. 우리는 신선한 음식을 먹어야한다.&lt;br&gt;&#10;문제를 일으킨 것은 리사였다. 왜냐하면 리사는 딴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케인은 주말마다 존을 도살하기 위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매일 운동을 했고, 존A에겐 생각할 지능이 없었으며, 나는 다른 것들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우주선과 복사기를 유지하기 위해 바빴다. 복사기는 우주선 외부로부터의 에너지를 대부분 소비하고 있었다. 우주는 텅 비어있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나오곤 했고, 조금만 잘못 조절해도 우리 모두가 죽을 수 있었다.&lt;br&gt;&#10;그래서 그 누구도 리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중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리사는 존A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두꺼운 가죽과 비계덩어리를. 케인이 숟가락을 들 때마다 비웃는, 작은 뇌를 가진 존A를. 사랑이 아니고서야 존A를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 내 계산에 따르면 존A는 식욕과 비등한 욕구가 아니고서는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존A가 케인에게 화를 내는 순간은 식탁 위 뿐이다. 그리고 존A에게 식욕과 비등한 것은 성욕 뿐이다. 리사가 사랑을 느끼지 않고서야 존A와 할리가 없지 않은가?&lt;br&gt;&#10;내가 금요일 저녁을 앞두고 복사실 정기 정감을 마치고 밖으로 나올때, 느닷없이 존A가 나를 덮쳤다. 존A는 케인보다는 힘이 약하지만 나보다는 힘이 쎘다. 거대한 존A는 몸으로 나를 짓눌렀다. 나는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복사실 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나A가 아니라 복사된 나였다. 복사실에는 네모난 스크린이 있었고, 갑판에 있는 나A가 보였다.&lt;br&gt;&#10;나A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존A와 리사가 규칙을 어겼다. 존A는 주어진 임무인 &amp;lsquo;음식&amp;rsquo;의 의무를 버리려고 했고, 리사 또한 케인의 &amp;lsquo;전리품&amp;rsquo;의 의무를 저버리고 존A를 움직이기 위해 그와 동침했다. 존A가 &amp;lsquo;나&amp;rsquo;를 밀어넣고 리사가 버튼을 눌렀지. 뒤늦게 케인이 두 사람을 제압했지만, 이미 복사기가 돌아가버렸고, 이번주 에너지가 바닥났다. 알다시피 우리는 일주일이나 굶을 수 없다. 때문에 예외적으로 규칙을 적용하기로 했다.&amp;rdquo;&lt;br&gt;&#10;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소리쳤다. 이미 균형은 깨졌다. 내가 둘이라면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낼 수도 있다. 내 임무는 우주선과 복사기를 관리하는 것이지 음식이 아니다. 더 맛있는 것은 존이다. 하지만 나A는 내 말에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lt;br&gt;&#10;&amp;ldquo;절차는 알고 있겠지. 모두 균형을 위해서다.&amp;rdquo;&lt;br&gt;&#10;나A가 말을 마치자 복사실 문이 열린다. 케인이 칼을 들고 서있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허물어지다</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D%97%88%EB%AC%BC%EC%96%B4%EC%A7%80%EB%8B%A4/</link><pubDate>Mon, 27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D%97%88%EB%AC%BC%EC%96%B4%EC%A7%80%EB%8B%A4/</guid><description>&lt;p&gt;나는 손바닥 위에 올라온 붉은약 한 알을 내려다보았다. 붉고 반투명하다. 다시 희를 본다. 희에겐 불안하거나 초조해보이는 태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당당함이나 뻔뻔함을 과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예의 평정심을 지키기 위한 약간의 긴장은, 언제나 희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모습이었다. 나는 약간 마음이 놓였다.&lt;br&gt;&#10;내가 말했다.&lt;br&gt;&#10;희, 넌 그 이야기를 믿고 있어?&lt;br&gt;&#10;글쎄요. 믿는다기 보다, 어떻게 설명해드려야할지. …이를테면 이 약을 먹는다는건,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믿지 않는 일이죠.&lt;br&gt;&#10;새끼 손가락?&lt;br&gt;&#10;예. 분명 여기 있지만. 희는 왼손을 주먹 쥐고 새끼 손가락만 펴서 까딱였다. 이게 내 진짜 손가락이 아니라 가짜 손가락이라고 생각이 드는거죠. 분명 모양도 길이도 느낌도 똑같은데 아, 이건 정말 가짜인것이 틀림없다, 마음속으로는 결론을 내버린거죠.&lt;br&gt;&#10;무슨 말이야.&lt;br&gt;&#10;…음. 믿지 않더라도 손을 쓰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새끼 손가락을 사용하게 되버리잖아요? 의식하지 않아도 새끼 손가락은 분명 새끼 손가락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거죠. 믿지 않아도 사용해버릴 수 있달까.&lt;br&gt;&#10;잘 모르겠는걸.&lt;br&gt;&#10;드셔보시면 알 거에요.&lt;br&gt;&#10;하지만…&lt;br&gt;&#10;…마약이라고 불린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 약은 달라요. 분명 사람을 중독시키는 성분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한 알 뿐이라면, 몇 시간 쯤 지나면 자연스럽게 환상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하니까.&lt;br&gt;&#10;그럼 계속 약을 먹는 이유가 뭐야?&lt;br&gt;&#10;새끼 손가락을 믿고싶지 않아서죠.&lt;br&gt;&#10;나는 다시 약을 내려다보았다.&lt;br&gt;&#10;한 알 뿐이라면. 나는 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희는 무언가의 약에 취한 사람이라기엔 너무 총명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자세에도 흐트러짐이 없고, 논리가 비약하는 점도 없다.&lt;br&gt;&#10;어쩌면 이 약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소원을 들어준다는 그 이야기부터 너무 허무맹랑하다. 그렇다면 어떠한 환각을 보여주는 마약이는 생각이 들지만, 희가 마약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믿기 힘들다. 평소의 희에게서는 마약을 하고 있다는 어떠한 징조도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약에 대한 소문은 평범한 미신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 너무 소란스러울 필요가 없는.&lt;br&gt;&#10;나는 약간의 고민 끝에 약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혀끝에 닿는 감각이 쓰거나 하지는 않다. 어쩌면 달달하다고 할까. 동아리실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한모금 마시자, 쉬운 일이었다.&lt;br&gt;&#10;내가 말했다.&lt;br&gt;&#10;아무 일도 없는데.&lt;br&gt;&#10;어떻게 바로 효과가 나타나겠어요. 그래도 보통 한 시간이 지나기전에 효과가 나타난다고해요.&lt;br&gt;&#10;한 시간이라…. 한 시간 뒤라면 오후 수업이 시작될텐데.&lt;br&gt;&#10;상관없을거에요.&lt;br&gt;&#10;자신하는 표정이다. 나는 희를 믿기로 하고, 희를 돌려보냈다.&lt;br&gt;&#10;문득 너무 쉽게 희의 꼬임에 넘어간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처럼 소원을 이루어주거나, 지독한 마약이라면 나도 이 마약에 중독되어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 마약이 내 예측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면, 그 역시 이런 미신을 믿지 말라고 희에게 좋게 타이르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그렇담 붉은약을 먹음으로써 어느 쪽이든 이 약이 다른 이들이 알게되는 일은 없어진 셈인가. 희는, 정말이지 똑똑한 아이다.&lt;br&gt;&#10;이내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가 시작되었다. 수업의 처음에는 약을 의식했지만, 머리가 어지럽거나 가슴이 들뜨는 것 같은 약기운은 없었다. 컨디션에 이상이 없자 수업에 집중했고, 어느새 5교시가 끝나 있었다. 나는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lt;br&gt;&#10;떨떠름해진 느낌에 쉬는 시간을 틈타 희를 찾아갔다.&lt;br&gt;&#10;교실까지는 들어서지 않고, 교실 문간에서 다른 아이에게 부탁해 희를 불렀다. 희는 다소 의아하다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lt;br&gt;&#10;희가 말했다.&lt;br&gt;&#10;선배님, 어쩐일로?&lt;br&gt;&#10;희. 내게 준 약이, 그 약 맞아? 혹시 잘못 준 것 아니야?&lt;br&gt;&#10;예?&lt;br&gt;&#10;…그 붉은약 말이야. 소원을 이뤄준다는 약. 점심시간에 줬던 그거.&lt;br&gt;&#10;아니, 무슨 말씀이신지.&lt;br&gt;&#10;희의 표정은 당황함으로 바뀌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개된 장소에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걸까. 하지만 우리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희에겐 방과후에 동아리실에서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희는 알겠다는 대답을 남기곤 교실로 돌아갔다.&lt;br&gt;&#10;하지만 희는 정말로 당황하고 있었다. 뭔가 눈치를 주거나 이야기를 하지말라는 제스쳐는 없었다. 나는 약간 불안해진 마음으로 나머지 수업을 받았다.&lt;br&gt;&#10;수업이 끝나는길로 동아리실로 걸음을 옮겼다. 동아리실은 별관 3층에 있어, 희의 반이 있는 3층에서 공중복도를 통해 곧장 갈 수 있었다. 희는 교실에 있지 않았으므로 동아리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희를 보았을 때 놀라지 않았다.&lt;br&gt;&#10;아, 선배님. 희는 읽고 있는 책을 덮으며 말했다. 아까 그 약 이야기는, 무슨 말이죠?&lt;br&gt;&#10;책의 제목은 벽오금학도였다. 어렸을적 선계에 들어갔다 머리가 희어진 아이가, 다시 선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내용이었다.&lt;br&gt;&#10;내가 말했다.&lt;br&gt;&#10;희. 점심시간 때, 기억 안나?&lt;br&gt;&#10;글쎄요. 점심시간이라면, 동아리방에서 선배와 함께 점심을 먹은 기억밖에 없는걸요.&lt;br&gt;&#10;맞아. 도시락을 까 먹다가 희는 잠깐 화장실로 갔지. 그리고 희 가방 안에서 휴대폰 진동음이 들려와서 나는 가방을 열었어. 그리고 사탕함을 발견했고, 사탕을 하나 먹어볼까, 하다가 내용물을 책상 위에 쏟았지.&lt;br&gt;&#10;그리고 그 내용물이 &amp;lsquo;약&amp;rsquo;이었고요?&lt;br&gt;&#10;맞아. 기억나?&lt;br&gt;&#10;희는 미간을 좁히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lt;br&gt;&#10;선배님,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에요? …친한 후배라도 그렇지, 가방을 그렇게 막 뒤지시는건, 조금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니 그보다도. 게다가 아까부터 이상한 이야길 하시는데, 저는 아무런 약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다가, 선배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뭔가 꿈이라도 꾸고 계신…, 선배님?&lt;br&gt;&#10;나는 희에게 다가갔다. 이제 희는 내 바로 앞에 있었다. 나는 의자를 당겨 앉아서 희와 눈높이를 맞추었다.&lt;br&gt;&#10;나는 희가 무슨 장난을 치는지 모르겠어.&lt;br&gt;&#10;장난이 아니에요.&lt;br&gt;&#10;약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게 겁났기 때문일까? 그래서 점심시간때부터 약을 깨끗하게 숨기고서, 이제는 뻔뻔하게 약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lt;br&gt;&#10;나는 말하면서 희의 고운 두 손목을 붙잡았다. 희가 손목을 빼려고 하자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희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하지만 화가 난 것 처럼 보이진 않았다. 희는 나와 눈을 맞추곤 말했다.&lt;br&gt;&#10;…선배님, 일단 진정하시는게. 저는 제 이야기를 말씀드렸지만 저는 아직도 선배님이 왜 화를 내시는지 몰라요. 만약 제가 잘못한게 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lt;br&gt;&#10;나는 이런 태도인데도 희는 공손하다. 내가 실수한걸까.&lt;br&gt;&#10;내가 붉은 약에 대해 추궁했을 때, 희는 그 약이 소문의 그 약이라고 말했어.&lt;br&gt;&#10;소문의 약이라면, 어떤 약을 말씀하시는지.&lt;br&gt;&#10;…먹으면 소원을 이루어진다는 약이야. 정말로 먹었다는 사람은 친구의 친구 밖에 없다는 그런 약. 그런 약을 희가 가지고 있었어. 나는 그 약을 다른 선생님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지. 하지만 희는 그러지말아달라고 말했어. 몸에 해로운건 하나도 없다고. 그저 소원을 이루어줄 뿐이라고 말이야.&lt;br&gt;&#10;…그러고보니 선배님. 제가 선배님에게 그 약을 드렸다고 하지 않았나요?&lt;br&gt;&#10;맞아. 나는 그 약을 먹어보고 정말로 해로운지 아닌지를 알아보려고 했어.&lt;br&gt;&#10;그래서, 소원은 이루어졌나요?&lt;br&gt;&#10;아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lt;br&gt;&#10;희는 무언가 생각하듯 눈을 감았다 떴다.&lt;br&gt;&#10;그럼 선배님이 화를 낼 부분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요?&lt;br&gt;&#10;왜?&lt;br&gt;&#10;마약은 가짜로 밝혀졌으니, 제가 숨기든 아니든 아무 일도 아니게 되었잖아요.&lt;br&gt;&#10;희의 손목을 붙잡은 손에 힘이 빠졌다. 희는 자연스레 손목을 빼서 주물렀다. 손은 피가 통하지 못해 희었고, 그 아래로 내가 붙잡은 손자국이 또렸했다. 그 부분에서라면 분명 내 태도는 잘못되었다. 하지만.&lt;br&gt;&#10;희가 거짓말을 한 것도 사실이야.&lt;br&gt;&#10;…거짓말이 아니에요. 저는 정말로 그런 약에 대해서 몰라요.&lt;br&gt;&#10;희의 눈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초조해졌다.&lt;br&gt;&#10;희가 입을 다물었다 말했다.&lt;br&gt;&#10;만약, 둘 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면, 한 사람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런 말씀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lt;br&gt;&#10;…괜찮아.&lt;br&gt;&#10;선배님이 약을 드셨다면, 그렇게 믿는건 약의 작용 때문 아닐까요.&lt;br&gt;&#10;약을 먹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데. 나는 중얼거렸지만 불필요한 말을 내뱉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느낌도 약의 작용이라면.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있다는 착각이라면. 희도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lt;br&gt;&#10;결국 그 약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그 약은 정말 &amp;lsquo;소원을 이루어주는 약&amp;rsquo;일지도 몰라요.&lt;br&gt;&#10;정확히는 그런 환상을 보여주는 약이겠지만.&lt;br&gt;&#10;선배님의 소원은 무엇인가요?&lt;br&gt;&#10;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답이 특별히 비밀이라서가 아니었다. 약을 삼키며 특정한 소원을 기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평소에 뭔갈 바라면서 살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된다. 나는 이 사실을 희에게 말했다.&lt;br&gt;&#10;희가 말했다.&lt;br&gt;&#10;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 약을 먹으면 아무 일도 없다, 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변화가 생겼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겠네요. 그렇다면 선배님은 무언가를 바랐고, 그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 모순된 상황과 기억이 나타나게 되었다, 라는 건 어떨까요?&lt;br&gt;&#10;내가 이런 복잡한 일들을 바랐다고?&lt;br&gt;&#10;그건 또 그렇네요. 희가 킥킥 웃었다. 선배님에겐 어울리지 않네요. 이 상황을 차근차근 뜯어보면 선배님이 정말로 바란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지 몰라요. …선배님은 약이 아무 것도 아니길 바랐나요?&lt;br&gt;&#10;응.&lt;br&gt;&#10;약이 없어지길 바랐나요?&lt;br&gt;&#10;응. 약간은.&lt;br&gt;&#10;왜죠?&lt;br&gt;&#10;불필요한 질문 아냐? 그럼에도 나는 대답했다. 고작 별 것 아닌 약 때문에 소중한 후배와 내 신념을 저울질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lt;br&gt;&#10;고맙네요. 장난스럽지만 따스한 어투였다. 그렇지만 겨우 그런 바람들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건 의아한데요. 그런 바람이라면 환상 속에서 약이 없어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런 기억간 모순이 생길게 아니라.&lt;br&gt;&#10;그것도 맞는 말이네.&lt;br&gt;&#10;…선배님은 저랑 다투고 싶었을까요?&lt;br&gt;&#10;뭐? 나는 침착하게 말을 받았다. 아냐. 그럴리가.&lt;br&gt;&#10;그럼 그 반대? 저랑 단 둘이 있고 싶었던걸까?&lt;br&gt;&#10;….&lt;br&gt;&#10;왜 대답을 못하시죠….&lt;br&gt;&#10;…하지만 애초에 이 동아리실은 늘 나와 희 전용이잖아.&lt;br&gt;&#10;그런식으로 말씀하시면 부끄럽거든요. 신입생을 받지 못하는 동아리라는 사실이.&lt;br&gt;&#10;우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아주 오랜만의 농담인 거 같았다.&lt;br&gt;&#10;하지만. 희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무서운데요.&lt;br&gt;&#10;어째서?&lt;br&gt;&#10;현실은 소망이 결핍된 상태니까요.&lt;br&gt;&#10;나는 등골이 싸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amp;lsquo;어차피 한 알 뿐이라면, 몇 시간 쯤 지나면 자연스럽게 환상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하니까.&amp;rsquo;&lt;br&gt;&#10;나는 마른 입술을 물었다. 그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까. 희와 내가 갑자기 멀어지고, 함께 농담하고 웃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정말로 약이 일으킨 변화라면, 아주 약간의, 기억의 소소한 오류밖에 없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를 이 모호한 약이 그렇게 많은 변화를 초래할 수는 없을 것이다.&lt;br&gt;&#10;내가 희를 부르자, 희가 대답했다.&lt;br&gt;&#10;예?&lt;br&gt;&#10;아니, 아무 것도 아냐.&lt;br&gt;&#10;그렇다. 바뀐 것이 없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lt;br&gt;&#10;희가 말했다.&lt;br&gt;&#10;괜찮으세요? 선생님?&lt;br&gt;&#10;응.&lt;br&gt;&#10;그 약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하실것인지. …드신 약은 어땠나요?&lt;br&gt;&#10;희는 초조해보이는 눈빛이었다.&lt;br&gt;&#10;내가 말했다.&lt;br&gt;&#10;희. 어디까지가 환상이지?&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두 번째 총</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91%90-%EB%B2%88%EC%A7%B8-%EC%B4%9D/</link><pubDate>Sun, 26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91%90-%EB%B2%88%EC%A7%B8-%EC%B4%9D/</guid><description>&lt;p&gt;어디부터 볼까?&lt;br&gt;&#10;왼쪽의 눈부신 금발이 눈길을 끈다. 금발머리. 내 왼편에 선 것은 금발이 아름다운 여성이다. 나는 그녀를 안다. 우린 사랑했었다. 입을 맞추고, 함께 잠들고, 미래를 약속했다. 허나, 이제는 아니다. 옛날 일이다.&lt;br&gt;&#10;그리고 오른쪽. 낡은 바바리코트의 중년 남자. 뭐라고 부를까? 그의 직업은 형사다. 입으로 읊조려본다. 형사. 심심한 맛이 있지만 그냥 형사라 부르겠다. 그는 나를 잡기 위해 왔다.&lt;br&gt;&#10;나는 어떤가? 까치머리가 눈에 뜨일 것이다. 너절한 외관이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하다. 직업은? 소개하고 싶어도 적당한 이름이 없다. 내 일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lt;br&gt;&#10;나는 일을 잘 하는 편이었다. 내 총이 빠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총알을 쏘기 전에 &amp;lsquo;생각&amp;rsquo;한다. 생각은 총을 느리게 만든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lt;br&gt;&#10;하지만 너무 빠른 총은 잘못발사되곤 한다.&lt;br&gt;&#10;내 총알이 금발머리의 오빠를 꿰뚫었던 것도 그런 종류의 실수였다. 나는 방아쇠를 당긴 다음에야 사과를 했다. 금발머리는 용서하지 않았다. 이해한다. 나는 그가 금발머리의 또 다른 애인인줄 알았으니까.&lt;br&gt;&#10;금발머리는 당장에라도 날 쏘아죽이고 싶겠지만 그건 쉽지 않다. 그녀가 날 겨누는 순간 형사의 총구가 그녀를 향할 것이기에. 금발머리는 형사의 딸을 납치한 적 있다. 그리고 딸은 죽었다. 사고였다는 변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옆에서 똑똑히 지켜봤으니 그 모든 일은 사실이다.&lt;br&gt;&#10;형사도 금발머리를 쏘고 싶겠지만, 움직이지 못한다. 내가 있으니까. 형사의 총구가 금발머리를 향할 때 내 총구도 형사를 향할 것이다. 난 잡히고 싶지 않다. 눈 앞의 살인자가 자비를 배운 적 없다는 사실을 형사는 잘 알고 있으리라.&lt;br&gt;&#10;셋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돈다. 총은 이미 쥐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면, 다른 이의 총이 날 겨눈다. 그런 상황이 몇 번이고 그려진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할 순간이다.&lt;br&gt;&#10;나는 총을 바닥에 던졌다.&lt;br&gt;&#10;번뜩이는 두 사람의 눈빛과 함께 금발머리와 형사의 총구가 빛났다. 동시에 들려온 두 발의 총성에 귀가 먹먹해진다. 쓰러진 건 형사. 승자는 금발머리. 금발머리는 피가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으며 나를 봤다. 깜짝 놀란 그 표정이 날 기쁘게 했다.&lt;br&gt;&#10;이제 숨겨뒀던 두 번째 총으로 금발머리를 쏜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악보의 완성</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5%85%EB%B3%B4%EC%9D%98-%EC%99%84%EC%84%B1/</link><pubDate>Sun, 26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5%85%EB%B3%B4%EC%9D%98-%EC%99%84%EC%84%B1/</guid><description>&lt;p&gt;남자가 빈 악보를 펼치자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lt;br&gt;&#10;남자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떠올린 첫번째 음표를 악보에 그렸다. 그러자 완전히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의 첫번째 물방울이 떨어져내렸다. 남자가 두번째 음표를 그리자 반쯤 열린 창문으로 바람 한 줄기가 비집고 들어왔다. 남자가 세번째 음표를 그리자 그 바람의 남자의 목덜미를 스쳤다. 남자는 머릿속의 음을 기호로 남기는데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은 남자가 빈 악보의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만큼만 멈췄다.&lt;br&gt;&#10;하지만 눈이 내리는 날 남자는 악보를 쓰던 도중 창밖을 내다보고 말았다. 눈들은 하늘에 붙박혀서 그대로 있었고, 깜짝 놀란 남자는 악보를 내팽개치고 문 밖으로 나섰다. 눈송이들은 남자의 몸에 닿고 나서야 천천히 녹아내렸다. 남자는 흠뻑 젖으며 거리를 돌아다닌 다음에야 시간이 흐르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그 뒤로 남자는 가끔씩 악보 쓰기를 멈추고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산책을 이어갔다.&lt;br&gt;&#10;남자는 그런 행동이 자신의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악보를 쓰다말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느라 남자의 음악은 자연스러움과 멀어졌다. 그것은 남자가 만든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남자의 악보를 보고 연주하지 않게 되었다. 남자는 팔리지 않는 악보 때문에 주눅들었고 악보를 쓰다가 멈추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자연히 악보는 더 팔리지 않았고 남자는 점점 더 악보를 쓰는 시간을 줄였다.&lt;br&gt;&#10;어느 날 남자는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악보를 쓰다가 멈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직 악보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고 카페에 앉은 사람들의 커피에 액젓을 타는 장난을 치거나, 은행에서 돈을 훔친 다음 지갑에 넣을 수 있는만큼 넣고 나머지는 허공에 뿌렸다. 돈은 흩뿌려진 그대로 떠있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엔더</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7%94%EB%8D%94/</link><pubDate>Sun, 26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7%94%EB%8D%94/</guid><description>&lt;p&gt;저택은 아침부터 바빴다. 마을에 엔더가 올 거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주인님은 가병들을 체크하고 거친 용병들을 들이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장한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주인님은 엔더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엔더를 붙잡아 공을 세우겠다는 야욕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엔더는 죗값을 치루지 않는 이들을 죽이고 정의를 바로세운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 얼굴을 본적이 없고,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엔더 이야기가 죄 많은 이들의 죄책감 속에서 만들어낸 지어낸 이야기라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엔더가 정말로 있다는 걸 안다. 마을 사람들이야 뜬소문 밖에 모르지만 주인님 앞으로 오는 편지에는 뜬소문이 아닌, 엔더가 저지른 진짜 살인 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날아오곤 했다. 그러니까 &amp;lsquo;부고&amp;rsquo; 말이다. 어느날 누군가 죽었고, 그 주인님의 지인은 주인님이 속한 (악취미를 즐기는) 사교 클럽 사람이거나, 주인님의 잔인한 피를 이은 먼 친척이거나, 주인님의 취미활동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거나 했다. 가장 최근에 죽은 이는 먼 나라에서노예를 데려와 파는 노예상이었다. 주인님은 자신의 취미가 비천한 것들은 즐기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고상한 취미라고 말해왔지만, 마을에 소문이 돌기 시작한 뒤 안색이 안좋아지기 시작한걸 보면 자신의 악덕에 대해 분별은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러날이 지나도 엔더는 오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밥을 축내는 이들을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소문이 잦아지자 주인님은 용병의 숫자를 조금씩 줄였고, 곧 언제나처럼 가병만 남겨두었다. 그러는동안 마을의 소문도 잦아들었다. 주인님은 엔더를 붙잡지 못해서 아쉬워했지만 취미에 다시 몰두할 수 있었다. 나는 한때의 악취미를 위해 죽은 노예 시체들을 청소하던 중 주인님과 그 악우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다. 제아무리 엔더라 하더라도 날 상대하긴 두려웠나보지. 그 순간 나는 엔더가 누구이며, 왜 오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열두살 때 노예로 팔려왔던 내가, 얼굴이 못생겨 흥을 해친다는 이유로 살아남은 내가, 수 많은 노예들에게 괜찮다고 아무일 없을 거라고, 주인님은 아주 선량한 분이라고 거짓말을 해왔던 내가, 주인님의 악행을 그 누구보다도 똑똑히 알고 있었던 내가 바로 엔더였다. 그들이 가장 무방비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들에게 죄값을 치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게 바로 나였다. 그리고 두려움 안에서 한치도 움직일 수 없었던 것도 나였다. 나는 빗자루를 놓고 칼을 집었다. 이제 나는 엔더가 될 것이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잘린 머리의 쓸모</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E%98%EB%A6%B0-%EB%A8%B8%EB%A6%AC%EC%9D%98-%EC%93%B8%EB%AA%A8/</link><pubDate>Sun, 26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9E%98%EB%A6%B0-%EB%A8%B8%EB%A6%AC%EC%9D%98-%EC%93%B8%EB%AA%A8/</guid><description>&lt;p&gt;앞서 가던 1톤 트럭은 브레이크를 밟았고 시속 80km로 뒤따르던 준의 승용차는 그 꽁무니를 들이박았다. 트럭에 실려있는 자재들이 튕겨져 나왔고, 동시에 준이 탄 승용차의 앞좌석 에어백이 터졌다. 준은 반작용으로 몸이 앞으로 밀쳐졌고 안전띠가 걸리며 준의 갈비뼈를 압박했다. 준은 터져나온 에어백에 얼굴을 묻었다가 탄력 때문에 튕겨져 나갔다. 그때 트럭에 실려진 자재 중 철재 합판이 앞면 유리를 깨부수며 날아들어와 준의 목을 잘랐다. 합판은 뒷자석에 박혔고 준의 머리는 조수석으로 굴러떨어졌다.&lt;br&gt;&#10;그 순간 머리가 잘린 준은 고질병이었던 어깨 결림이 개운하게 나았다는 걸 알았다. 준의 머리는 잘린 혓바닥을 작게 빼물고 있었지만 준의 몸은 멀쩡했다. 준은 차문을 열고 안전띠를 풀고 밖으로 걸어나왔다.&lt;br&gt;&#10;트럭 운전사는 이미 차 밖으로 나와 있었다.&lt;br&gt;&#10;괜찮아요?&lt;br&gt;&#10;준은 머리를 들지 않은 손을 절래절래 내저었다.&lt;br&gt;&#10;트럭 운전사는 준의 손동작을 괜찮다는 뜻으로 확인하고 트럭 꽁무니와 준의 승용차의 앞좌석을 확인하곤 보험사와 경찰에 차례대로 전화했다.&lt;br&gt;&#10;구급차요?&lt;br&gt;&#10;트럭 운전사가 준을 바라보자 준이 다시 한 번 손을 내저었다.&lt;br&gt;&#10;안 다치신 거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lt;br&gt;&#10;곧 보험회사와 경찰, 구급차가 차례대로 도착했고 준은 구급차에 올랐다. 준은 만류했지만 침대에 누워서 이동했다.&lt;br&gt;&#10;준의 머리는 구급대원 하나의 품에 있었고 눈이 풀리고 식어가고 있었다.&lt;br&gt;&#10;구급대원 하나가 휴대폰을 들고 말했다.&lt;br&gt;&#10;예. 전체적으로 큰 이상은 없어보입니다. 환자 의식도 또렷하고요. 흉부 쪽에 통증이 있다고는 하는데 아마 안전벨트 압박 때문에. 네. 뭐, 머리가 떨어지긴 했는데. 이거야 뭐.&lt;br&gt;&#10;준이 응급실로 들어가자마자 의사가 다가와 전체적으로 살펴보았다.&lt;br&gt;&#10;가슴 사진 한 번 찍어보고요. 또 어디 아픈 곳은 없습니까?&lt;br&gt;&#10;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준의 머리는 준의 발치에 놓여져 굳어 있었다. 준의 목 근육이 움찔거릴 뿐이었다.&lt;br&gt;&#10;준은 저녁이 되어서야 윤을 만날 수 있었다. 윤은 준이 사고가 났다는 소식에 흔쾌히 약속을 미뤄주었고 혹시나 크게 다치진 않았는지, 찾아가겠다고도 해주었다. 하지만 준의 갈비뼈는 멀쩡했고 검사를 마치고 곧장 나올 수 있었다.&lt;br&gt;&#10;윤은 준을 보자마자 소리쳤다.&lt;br&gt;&#10;너 머리는?&lt;br&gt;&#10;준은 휴대폰으로 문자를 쳐서 보여주었다.&lt;br&gt;&#10;사고가 나서 떨어졌어.&lt;br&gt;&#10;안 붙여도 괜찮아?&lt;br&gt;&#10;돈 들잖아.&lt;br&gt;&#10;그래도 너 어렸을 때부터 붙이고 있었잖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줄 알았는데.&lt;br&gt;&#10;그냥 집착이었던거지. 떨어져보니까 알겠더라고. 왜 다들 머리를 잘라버리는건지. 머리가 없으니까 생각도 명쾌하고, 잡다한 고민도 안하게 되는 거 같아. 거치적거리는 게 없으니 잘때도 편할테고.&lt;br&gt;&#10;그렇긴하지. 윤은 목 위의 휑하게 빈 공간을 손으로 휘휘 저었다. 없는 게 편해. 그럼 너 머리는 어떻게 하려고?&lt;br&gt;&#10;뒷뜰에 토마토 심었는데 이참에 비료 대신 주려고.&lt;br&gt;&#10;야, 그거 아이디어 좋다. 나는 어렸을 때 그거 치운다고 고생했는데.&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황새잡이</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D%99%A9%EC%83%88%EC%9E%A1%EC%9D%B4/</link><pubDate>Sat, 25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D%99%A9%EC%83%88%EC%9E%A1%EC%9D%B4/</guid><description>&lt;p&gt;나는 요즘 황새를 잡고 있다. 황새잡이가 불법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특히나 동쪽에서 아이를 싸맨 보자기를 물고 있는 황새를 잡는건 특히나. 물론 나는 동쪽에서 날아오는 황새는 잡지 않는다. 나는 내가 잡아야할 황새, 그러니까 의뢰 받은 황새만을 사냥한다. 그도 그럴것이 요즘 황새들은 점점 더 교활하고 야비해져가고 있다. 창문을 부리로 비집어대고 두터운 장막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고 밤이고 낮이고 남녀 한쌍의 연인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남남도 여여도 아닌 남녀 한쌍을 찾아서. 그리고 발견했다 하면 피부색 머리색 눈색 잘 기억했다가 두 사람에게 적절한 아기를 동쪽에서 집어다가 보자기에 잘 싸서 물어다온다. 그토록 주의를 기울였는데도 황새는 두 사람에게 준비할 시간도 없이 아기를 물어다주는 것이다. 황새 때문에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멀찍히 남인척 떨어져 지낸다는 이야기는 요즘엔 우스개도 아니다. 그래서 나같은 황새잡이가 있는 것이겠지. 나는 연인을 발견한 황새의 사진을 전송 받으면 주변 일대를 돌면서 황새를 기다리다가 쏘아죽이고 그 증거를 찍어 보내면 돈을 입금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단속이 심하지만 다행히 아기를 물고 있는 황새가 아니라면 황새잡이 자체는 그리 큰 죄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부쩍 황새잡이를 지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황새잡이가 너무 잦아져서 이대로 계속 가다간 700년 뒤 황새 씨가 말라 더이상 아기를 물어다줄 새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느날은 죽은 황새를 등에 몇마리나 메고 가는데 누가 등뒤에서 불렀다. 단속반인가 싶어 뜨끔했지만, 팔뚝에 완장을 차고 있는 황새잡이를 반대하는 자치단체 회원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생각이었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니 꽤 긴 논쟁이 되었다. &amp;ldquo;이봐요, 황새잡이 씨. 세상에 황새가 다 죽어 아기를 아무도 물어다줄 수 없게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네?&amp;rdquo; 사실 나는 말이 궁했다. 나는 내가 잘못된 일을 하는게 아닐까하는 양심의 가책을 가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말이나 하기로 했다. &amp;ldquo;우리가 동쪽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요?&amp;rdquo; &amp;ldquo;동쪽이요?&amp;rdquo; 그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싶은 모양이지만 나는 말해놓고 보니 그럴듯하다 싶었다. &amp;ldquo;동쪽에선 아기들이 계속 나오지 않을까요? 동쪽엔 뭐가 있죠?&amp;rdquo; 그는 얼떨껄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동쪽으로 갈 수 있었고, 우리가 했던 말들이 생각보다 본질을 잘 짚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쯤(그러니까 700년이나 앞당겨서) 황새는 멸종했고 우리에겐 황새가 단 한 마리도 필요하지 않았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거인</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1%B0%EC%9D%B8/</link><pubDate>Fri, 24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1%B0%EC%9D%B8/</guid><description>&lt;p&gt;……결국 모임 장소는 우리 집으로 정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이었다. 나는 그들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 집안을 정리해두기로 했다. (사실 집 안은 깨끗했지만 그들을 우리 집에 들이는 데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으므로)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리곤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lt;br&gt;&#10;나는 투덜거리며 걸었고, 경비실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고, 우리 집의 현관문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lt;br&gt;&#10;열쇠는 부드럽게 돌아갔다.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lt;br&gt;&#10;집안은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조용했다.&lt;br&gt;&#10;해질녘이라 그런 것인지 희미한 오렌지 빛 말고는 집안에 빛이 없어 캄캄했다. 때문에 자그마한 빛에 의지하며 벽을 더듬으며 형광등 스위치를 찾아갔다. 거실 형광등의 스위치는 현관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켤 수 있었다.&lt;br&gt;&#10;달칵. 소리가 나면서 형광등에 불이 깜빡깜빡 들어왔다. 하얀 빛이 방안을 덮었다.&lt;br&gt;&#10;다만 현관 복도에서 곧장 보이는 거실에는 커다란 그림자가 남아있었다. 나는 얼떨떨했다. &amp;lsquo;뭐지?&amp;rsquo;&lt;br&gt;&#10;무엇인지야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림자의 정체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멍청하게 선 사이에 머릿속에서 환상과 현실의 괴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그림자의 정체는 이미 밝혀졌다.&lt;br&gt;&#10;거실에는 거대한 거인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 거대한 몸이 형광등을 가리고 있었고, 그리고 그 만큼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lt;br&gt;&#10;하지만 눈으로는 그것을 보고 있어도 머리로는 &amp;lsquo;이해&amp;rsquo;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잠깐의 외출 사이에, 거실에 거인이 웅크리고 있을거라 생각하겠는가. 거실에는 거인이 있다. 이제 막 밝혀진 형광등 때문에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그 거대한 몸 때문에 그 넓은 거실이 비좁아 보일 정도의, 그런 거인.&lt;br&gt;&#10;거인은 웅크린 몸을 서서히 폈다. 마치 기지개를 펴는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뒤돌아 뛰었다. 그리고 현관 복도로 바로 이어진 작은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건 실수.&lt;br&gt;&#10;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현관문으로 뛰는 게 옳았다. 그리고 신발도 신지 않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 경비실로, 가까운 친구에게로 달려갔어야 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작은 방으로 뛰어들고 만 것이다. 순간적인 행동이었다.&lt;br&gt;&#10;작은 방으로 뛰어들자마자 문을 쿵 닫았다. 이것도 실수라고 생각한다. 문을 소리 없이 닫았다면 거인의 주의를 끌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후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내가 말끝에 물음표나 달면서 아무 생각 없이 중얼거리고(&amp;ldquo;뭐지? 뭐야?&amp;rdquo;) 있을 때 작은 방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막고 있는 몸으로도 느껴왔다. 쾅쾅쾅. 둔중한 울림. 조금만 주의를 늦춰도 문에 달린 낡은 경첩은 부서져버릴 것 같았다. 실제로도 경첩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lt;br&gt;&#10;다시 문이 두드려졌다. 쾅쾅쾅. 있는 힘껏 몸으로 막아서지만 이래서야 역부족이었다. 나는 작은 방을 두리번거렸다. 문을 막을 것이 필요했다.&lt;br&gt;&#10;책상이 보였지만, 너무 무거워보였다. 끌고 올 수는 있겠지만 그 사이에 거인이 문을 부수고 말 것이다. 침대도 있었지만, 책상과 같은 이유로 기각. 더 찾고 있으려니, 문득 한쪽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목검이 보였다. 나는 팔을 뻗었다. 하지만 쉽사리 손이 닿지않았다. 곤란했다. 문에서 멀어지면 지금도 쾅쾅쾅 울리는 이 문이 부서질 것 같았다. 거대한 거인의 팔이 문을 부수고 날 붙잡을 것 같았다.&lt;br&gt;&#10;물론 이러고 있어도 마찬가지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헐거워진 경첩이 덜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쾅쾅쾅 후 잠깐의 틈을 이용해 잽싸게 목검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목검을 방문과 바닥 사이에 끼워 넣었다. 잘 될까 싶었지만, 의외로 튼튼해 보였다. 하지만 그리 오래갈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기에 나는 책상을 잡아끌기 시작했다.&lt;br&gt;&#10;하지만 책상은 생각 외로 무거웠다. 하는 수 없이 책과 서랍을 바닥에 내던지고 다시 책상을 끌었다. 이번엔 쉬이 끌려서 금방 문에 가져다 댈 수 있었다. 쾅쾅쾅 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것으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amp;ldquo;후우.&amp;rdquo;&lt;br&gt;&#10;한숨을 쉬고 보니 어질러진 방의 풍경이 있었다. 책상을 끄느라 바닥도 엉망이었다. 저건 또 언제 다 치우지? 새삼스럽게 걱정이 됐다.&lt;br&gt;&#10;하지만 문에서 쾅쾅쾅 소리가 다시 들리고 나서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lt;br&gt;&#10;방에는 창문이 있었다. 순간 화색이 돌았지만, 방범창 이라는 걸 기억해내곤 미간을 찌푸렸다. 아파트 복도로 향한 창문이라 도둑이 들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복도를 향해 소리라도 질러볼까 했지만 지금은 늦은 저녁이라 들을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데.&lt;br&gt;&#10;어쨌든 다른 수를 찾아야했다. 떠오르는 건 전화기였지만, 집 전화기는 큰 방에 있었고,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별로 쓸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탓이다.&lt;br&gt;&#10;다른 수를 생각했다. 쾅쾅쾅 소리가 요란했다.&lt;br&gt;&#10;문득 내던져진 서랍 사이에서 공업용 커터칼이 보였다. 그리고 거인의 크기도 생각했다. 만약 거인이 인간에서 몸만 부풀린 수준이라 해도 저런 작은 커터칼로는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몸이 몇 배는 되는데 피부는 또 얼마나 두꺼울 텐가. 그러고보니 장도리도 눈에 띄었다. 아마 서랍을 던질 때 공구가 들었던 서랍도 내팽겨진 모양이었다. 못을 뽑는 부분이 제법 위협적으로 느껴졌지만 역시 희망은 없어보였다. 나는 다른 도구를 좀 더 찾았다. 나사, 못, 스패너, 송곳, 드라이버…… 불현듯 집 밖으로 도망칠 수 있을 법한 생각이 떠올랐다.&lt;br&gt;&#10;일단 문에 구멍을 내야했다. 아니, 구멍이 필요했다. 나는 그것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장도리로 흔들거리는 손잡이를 때리니 툭 하고 떨어져 나왔다. 그러자 손잡이를 끼워넣는 주먹만한 구멍이 생겼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거라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lt;br&gt;&#10;나는 구멍에 키를 맞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구멍에 방에서 뒹굴던 잡다한 쓰레기를 구멍에 우겨 넣었다. 분명 거인의 눈에 뜨이리라.&lt;br&gt;&#10;예상대로 쾅쾅 흔들리던 문은 잠시 잠잠해졌다. 나는 긴장을 하며, 거리를 조금 두고 구멍을 들여다보았다.&lt;br&gt;&#10;구멍 너머로 거인의 눈이 보였다. 거인과 나는 눈을 맞추었다.&lt;br&gt;&#10;숨을 흡 들이켰지만, 계획했던 행동에 차질은 없었다. 나는 들고 있던 송곳을 거인의 눈에 꽂아 넣었다. 거인의 비명, 괴성이 울려 터졌다.&lt;br&gt;&#10;귀를 막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나는 재빨리 책상을 밀어내고 문을 발칵 열었다. 거인의 눈에서 튀긴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거인은 예상대로 눈을 감싸고 소리를 질러댔다. 계획은 거의 완벽하게 끝나는 듯 했다. 이대로 거인이 당황한 틈을 타서 문 밖으로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lt;br&gt;&#10;하지만 실패했다.&lt;br&gt;&#10;우리 집은 좁았고, 특히나 현관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특히나 그랬다. 거인은 그 복도로 통하는 작은 방의 문을 두들기기 위해 비스듬한 자세로 엎드려 있었고, 한쪽 팔은 바닥에 기대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기대어진 팔은 현관을 틀어막고 있었다. 아마 현관에 놓여진 신발들은 멋지게 뭉개져 있으리라.&lt;br&gt;&#10;생각할 틈은 없었다. 거인은 바로 앞에 있었고, 거인은 점점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거실로, 그리고 큰 방으로 도망쳤다.&lt;br&gt;&#10;내가 큰 방의 화장대를 문으로 끌어와 기대어 막을 때까지, 거인의 비명은 계속되었다. 정확히는 화가 나서 괴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lt;br&gt;&#10;나는 탈출할 방법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lt;br&gt;&#10;일단 생각이 난건 바닥에 있는 전화기였다. 나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lt;br&gt;&#10;막 1을 누르려고 할 때, 문에서 쾅 소리가 났다. 거인이었다. 하지만 화장대는 아까 전 책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문이 부서지지 않는 한 문제는 없으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시선을 전화기로 옮겼다. 그리고 두번째 1을 누를 무렵에 수화기를 놓았다. 고민이 되었다.&lt;br&gt;&#10;경찰에 뭐라고 말한다?&lt;br&gt;&#10;&amp;lsquo;집에 거인이 있어요.&amp;rsquo; 라고?&lt;br&gt;&#10;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뭐라고 하지? 굳이 경찰을 부를거라면 &amp;lsquo;도둑이 들었어요.&amp;rsquo; 라고 해버려고 상관없을거 같다. 급하면 &amp;lsquo;강도가 있어요.&amp;rsquo; 라던가. 하지만 경찰 몇이 온다해서 저게 해결이 될까? 총알 몇 방 맞아도 꿈쩍도 않을거 같은데?&lt;br&gt;&#10;결국 나는 112 보다는 친구의 번호를 누르기로 결정했다. 사실 따지고보면 친구가 경찰보다 나을게 뭐 있으려마는 정신적 위안이 필요했다.&lt;br&gt;&#10;쾅쾅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번호를 누르니, 곧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신호가…… 나는 수화기를 놓았다가 잠시 한숨을 쉰 뒤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다른 친구. 이번에는 금방 통화가 되었다. &amp;ldquo;아, 너냐? 너 지금 어디……&amp;rdquo; &amp;ldquo;야, 잠깐. 나중에 통화하자.&amp;rdquo; 찰칵 소리와 함께 뚜뚜뚜 소리가 귀를 울렸다. 나는 수화기를 멍하게 들고 있다가 천천히 놓았다. 그리곤 다른 친구의 번호를 떠올리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세 번 정도 신호가 가니 전화를 받았다. &amp;ldquo;야, 너 지금 어디냐?&amp;rdquo; &amp;ldquo;누구냐? ……아, 너냐. 그런데 무슨 일이야?&amp;rdquo; &amp;ldquo;나 지금 상황이 엄청 안 좋거든? 우리 집으로 빨리 좀 오면 안되냐?&amp;rdquo; &amp;ldquo;으음. 나 지금 조금 바쁜데. 아무래도 빨리는 못갈 거 같다. 많이 급하냐? 무슨 일이야?&amp;rdquo; &amp;ldquo;아니, 그게, 그러니까, 집에 오니까 말이야, 거실에 거인이 있는데……&amp;rdquo; 뚜뚜뚜. 거인이야기는 잘못했나보다.&lt;br&gt;&#10;다시금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문득 쾅쾅하는 소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amp;lsquo;무슨 일이지?&amp;rsquo; 하고 문 쪽을 바라보는데 베란다 쪽에서 와장창하는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머리칼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큰 방에도 창문이 있다. 베란다와 이어진 창문인데 베란다는 거실과 미닫이 창문으로 이어져있다. 와장창 소리는 아마 거인이 베란다로 오려다가 창문이라도 깨었기 때문이겠지. 그렇담 재빨리 창문을 닫아야 했지만 아무래도 용기가나지 않았다. 허둥지둥 하는 사이에 거인의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에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커다란 장롱 옆으로 숨었다. 그 순간 거인이 괴성을 질렀다. 화가 난 듯한 목소리. 창문을 넘어 팔을 뻗은 거인은 방안의 물건을 닥치는대로 부셔나갔다. 큰 방은 난장판이 되었다. 이런 젠장.&lt;br&gt;&#10;다행히도 거인은 장롱 뒤에 숨은 나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래서야 도망칠 방법도 없었다. 거인이 베란다 쪽에 있으니, 반대편에 있는 문으로 빠져 나갈 수도 있지만 화장대는 또 언제 치운단 말인가. 일단은 거인의 화가 가라앉을 때 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lt;br&gt;&#10;그때였다. 현관에서 &amp;ldquo;딩동&amp;rdquo; 하는 소리가 났다. 아차. 급하게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그들이 우리 집에 온다고 했던 그 시간이었다. 아마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건 그들 일 터였다. 절로 미간에 주름이 새겨졌다. 전부 거인 탓이었다. 생각해보면 거인이 거실에 있었던 탓에 탁자나 소파도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lt;br&gt;&#10;거인은 &amp;ldquo;딩동&amp;rdquo; 소리에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나는 거인이 현관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으리라 짐작했다.&lt;br&gt;&#10;딩동 소리는 두 번 정도 더 들렸고, 그다음으로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인이 문을 두드릴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목소리도 들려왔다. &amp;ldquo;이봐! 안에 있어?&amp;rdquo; 나는 대답을 할까 망설였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있다는 걸 안다면 쓸 때 없이 의문을 가지고 떠들 것이고 거인이 현관문을 열려고 할지도 몰랐다. 그럼 그들이 위험해질 것이다. 차라리 내가 없는 것으로 알고 떠난다면 다행인 것이다. 뭣보다도, 이 상황에서 내가 소리를 지르면 거인도 내가 어디 있는지 들킨다. 진전할 수 없으면 악화 보다 현상유지가 좋지.&lt;br&gt;&#10;문 밖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약속과는 달리 내가 집에 없어서 당황한 탓인 듯 했다. 약속을 못지킨 건 반성해야 할 점이지만 이 경우에는 불가항력이니까. 나는 스스로를 달래보고는 상황을 좀 더 기다렸다.&lt;br&gt;&#10;그런데 뜬금없이 벌컥 하고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amp;ldquo;어? 문 열려있는데?&amp;rdquo; &amp;ldquo;잠깐 어디 나간건가?&amp;rdquo;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맙소사. &amp;ldquo;일단 밖에서 기다리는 것 보다는 안에서 기다리는 게 낫겠지.&amp;rdquo; &amp;ldquo;그래, 문 열어 놓은 거 보면 뭐 준비하러 갔나봐.&amp;rdquo;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고는 현관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걸 기억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인기척이 느껴졌다. 거인! 나는 깜짝 놀라서 장롱 옆으로 튀어나왔다. 거인은 어느새 큰 방으로 뻗었던 팔을 거두고 있었다. 거인은 그들에게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소리를 꽥 질렀다. &amp;ldquo;집 밖으로 나가!&amp;rdquo;&lt;br&gt;&#10;하지만 그들은 내 말을 조금도 듣지 않았다. &amp;ldquo;뭐야? 집에 있잖아? 어디 있어?&amp;rdquo; &amp;ldquo;어디에 있는 거야?&amp;rdquo; &amp;ldquo;그런데 저건 뭐지?&amp;rdquo;&lt;br&gt;&#10;&amp;ldquo;밖으로 나가!&amp;rdquo;&lt;br&gt;&#10;나는 황급히 문에 대고 있었던 화장품대를 밀어내었다. 순간 비명 소리와 괴성이 집안을 스쳐지나갔다.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자꾸 소리쳤다. &amp;ldquo;집 밖으로 나가! 나가란 말이야!&amp;rdquo;&lt;br&gt;&#10;이윽고 큰 방문을 나서게 되었을 때, 나를 맞이한 건 코를 찌르는 피냄새였다. 거실에는 살색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거인도 있었다. 거인은 입에 피를 한껏 묻히고는 혀를 낼름거렸다. 나는 현관문으로 힘껏 뛰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뛴 게 실수 었다. 살짝 열려있는 현관문 앞에서 나는 넘어지고 말았다. 피가 발을 적시고 있었지만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나는 허우적대며 일어섰다. 다시금 달려가려는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느껴졌다.&lt;br&gt;&#10;나는 현관문의 손잡이를 붙잡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거인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마른 목으론 침도 넘어가지 않았다. 거인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힘없이 잡아당겼다. 살짝 열려있었던 현관문이 쾅 하고 닫혔다. 거인은 커다란 입을 벌렸다.&lt;br&gt;&#10;그 순간 보였던 것은 현관 신발장 위에 놓인 거울이었다.&lt;br&gt;&#10;거울에는 나의 얼굴과,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거인의 얼굴이 비춰지고 있었다. 거인은 큰 입으로 내 머리를 삼켰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겨울 행성</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2%A8%EC%9A%B8-%ED%96%89%EC%84%B1/</link><pubDate>Fri, 24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2%A8%EC%9A%B8-%ED%96%89%EC%84%B1/</guid><description>&lt;p&gt;행성은 공전 궤도가 너무 비틀려져 있었기 때문에 표준 시간으로 봄이 한달, 겨울이 5년이었다. 때문에 은하 개척시대 초기에는 아무도 그 행성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은하계 안에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은 무한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행성 부동산 중개업자 사이에서도 볼품없는 겨울 행성으로 취급되었고 다른 행성을 살 때 얹어주거나 아주 값싸게 팔렸다. 많은 사람들이 행성의 궤도를 돌면서 대기를 분석하고는 살만한 곳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초기 테라포밍 기계들을 제외하면 행성은 오랜 시간 동안 무인행성으로 남아있었다. 한 무리의 개척자들이 그 행성을 사겠다고 할 무렵에는 이미 팔리지 않는 매물로 유명해져 있었다.&lt;br&gt;&#10;그들은 외부의 개척 행성에서 일어난 내전을 피해 행성에서 도망친 전쟁 난민들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화물선에 재산이 될만한 모든 것을 싣고 있었고, 그들을 쫒는 추적자도 적지 않았다. 복잡한 국제법 안에서 그들은 보호받지 못했다. 그들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거주 가능한 행성의 새로운 개척자가 되는 것 뿐이었다. 그들이 가진 재산으로 살 수 있고, 제때 도착할 수 있는 행성은 그 겨울 행성 뿐이었고, 그들은 살기위해서 그 행성을 살 수 밖에 없었다.&lt;br&gt;&#10;그들이 행성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한 달 간의 봄이 시작될 때였다. 많은 이들이 행성의 가격이 헐값에 매겨진 이유를 알면서도 그 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그 한달이 지나고나서 겨울은 혹독해졌고 미처 겨울나기를 준비하지 못했던 그들은 다시 그들이 타고왔던 낡은 함선으로 들어가야했다. 그들은 다시 오년을 버티며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lt;br&gt;&#10;행성에서 겨울잠을 자는 풍습은 그렇게 나타났다. 돈이 될만한 것을 모두 처분하고 다음 봄이 왔을 때의 계획을 면밀히 검토한 그들에겐 여전히 수 년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그 시간은 한 사람의 생으로 따지자면 무척이나 길었다. 그들은 개척자의 자격으로 국제연합에 단기 동면 기술을 받아낼 수 있었고 그들은 겨울이 올 때마다 잠들었다.&lt;br&gt;&#10;동면 기간 중 비활성화된 세포 덕분에 그들의 평균 수명은 수 백살에 이르렀지만 깨어있는 시간은 6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평균적인 발전 양상도 5년에 이르는 휴지기 때문에 다른 행성에 비해 퇴보되었고, 5년마다 그 시간만큼 밀려나 있는 자신들의 위치 때문에 폐쇄적인 사회로 변해갔다.&lt;br&gt;&#10;그들에게 더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린 것은 그러한 생활에 익숙해질 쯤이었다. 불안정했던 행성의 공전궤도가 수 세기 이내에 더 급하게 틀어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기존의 부동산 매매업자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고지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고발해서 상당한 보상금을 받아내는데 성공했지만, 행성이 글자 그대로 기울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음 주기에서 봄이 하루 짧아지면 겨울은 1년, 3년 씩 늘어났다. 최후에는 공전 궤도를 이탈해 성간 행성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lt;br&gt;&#10;많은 젊은이들이 행성을 떠났다. 국제 연합은 충분한 숫자의 함선으로 남은 이들이 새로운 행성에서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왔지만 그들은 다른 행성에서 동면을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기에 그대로 행성에 남았다.&lt;br&gt;&#10;이윽고 영원한 겨울이 도래했다. 행성에 남은 이들은 기약없는 봄을 기다리며 잠에 빠졌다. 인공적으로 관리되는 프로그램이, 봄이 오면 그들을 깨워주도록 설정되었다. 프로그램은 이따금 더해지는 변수를 공전 궤도 함수에 더해가며 계산을 이어나갔지만, 행성이 궤도를 이탈하면서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은하계의 수 많은 사람들, 한때 그 행성에서 태어났던 이들이 그 별의 최후를 바라보았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귤</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7%A4/</link><pubDate>Fri, 24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7%A4/</guid><description>&lt;p&gt;&amp;ldquo;귤 껍질은 한 번에 까는 게 좋아.&amp;rdquo;&lt;br&gt;&#10;연의 뜬금 없는 말에 슬쩍 고갤 들어본다.&lt;br&gt;&#10;&amp;ldquo;하나의 물질엔 하나의 영혼이 깃드는 법이니까. 너처럼 귤 껍찔을 나눠서 깐다면 귤 껍질의 영혼도 갈갈이 찢기는 거지.&amp;rdquo;&lt;br&gt;&#10;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할지 모르겠군. 나는 귤알을 하나씩 씹으며 생각했다.&lt;br&gt;&#10;연은 한 손으로 귤을 감싸고 천천히 귤을 까기 시작한다. 꼭지 부근에 엄지 손톱을 밀어넣어 껍질의 처음을 들어올려 내고, 그다음 엄지로 남은 껍질을 밀어내듯 벗긴다. 귤 껍질은 껌 포장지 처럼 벗겨졌다. 탁자 한 쪽엔 같은 모양으로 벗겨진 귤 껍질들이 가득 놓여있다.&lt;br&gt;&#10;손에 남은 귤알을 털어넣고 내가 말했다.&lt;br&gt;&#10;&amp;ldquo;그럼 귤알도 씹지 않고 한번에 삼키는 게 좋겠네?&amp;rdquo;&lt;br&gt;&#10;&amp;ldquo;그건 아니지.&amp;rdquo;&lt;br&gt;&#10;&amp;ldquo;왜에?&amp;rdquo;&lt;br&gt;&#10;&amp;ldquo;잘 봐. 귤알 속에 알알의 귤낱알이 들어있잖아. 얘네들은 처음부터 나눠져 있으니까 씹어도 상관없어. 재인인 머리가 나쁘구나.&amp;rdquo;&lt;br&gt;&#10;연이 생글 웃으며 말했다. 귤이 달다.&lt;br&gt;&#10;나는 귤더미에서 귤을 하나 집어들고 연을 따라했다. 귤 껍질은 생각보다 더 여렸다. 노력했지만 귤 껍질은 끝에 가서 두 조각이 되었다.&lt;br&gt;&#10;연이 말했다.&lt;br&gt;&#10;&amp;ldquo;흐응. 처음엔 누구나 실수하는거지.&amp;rdquo;&lt;br&gt;&#10;내가 말했다.&lt;br&gt;&#10;&amp;ldquo;그럼 사람은 어때?&amp;rdquo;&lt;br&gt;&#10;&amp;ldquo;응?&amp;rdquo;&lt;br&gt;&#10;&amp;ldquo;손톱이나 머리카락은 길면 자르잖아. 손톱이나 머리카락에도 영혼이 있어?&amp;rdquo;&lt;br&gt;&#10;&amp;ldquo;있어. 있겠지. 그치만 걔들은 어디론가 가고 싶어서 그렇게 자라는 거잖아. 잘라도 괜찮아. 잘라주는 게 좋아.&amp;rdquo;&lt;br&gt;&#10;완전 자기 마음대로네.&lt;br&gt;&#10;&amp;ldquo;도마뱀 꼬리는?&amp;rdquo;&lt;br&gt;&#10;&amp;ldquo;도마뱀이 선물하는 영혼이지&amp;rdquo;&lt;br&gt;&#10;&amp;ldquo;번데기 껍질은?&amp;rdquo;&lt;br&gt;&#10;&amp;ldquo;그 자리에 남고 싶은 나비의 영혼.&amp;rdquo;&lt;br&gt;&#10;&amp;ldquo;어머니와 아기는?&amp;rdquo;&lt;br&gt;&#10;&amp;ldquo;으응?&amp;rdquo;&lt;br&gt;&#10;&amp;ldquo;처음엔 한 몸이잖아. 아기가 태어나면 의사는 탯줄을 자르지.&amp;rdquo;&lt;br&gt;&#10;&amp;ldquo;글쎄. 아기는 처음부터 어머니와 다른 영혼인걸.&amp;rdquo;&lt;br&gt;&#10;그렇단 말이지.&lt;br&gt;&#10;&amp;ldquo;낡아서 부서지는 것들은?&amp;rdquo;&lt;br&gt;&#10;&amp;ldquo;혼자선 지쳐서그래.&amp;rdquo;&lt;br&gt;&#10;&amp;ldquo;구름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는?&amp;rdquo;&lt;br&gt;&#10;&amp;ldquo;땅이 그리워서.&amp;rdquo;&lt;br&gt;&#10;&amp;ldquo;내뱉는 숨결은?&amp;rdquo;&lt;br&gt;&#10;&amp;ldquo;돌아오니까 괜찮아.&amp;rdquo;&lt;br&gt;&#10;&amp;ldquo;차가운 것을 잡을 때 빠져나가는 온기는?&amp;rdquo;&lt;br&gt;&#10;&amp;ldquo;온정이라고 해.&amp;rdquo;&lt;br&gt;&#10;&amp;ldquo;우주의 팽창은?&amp;rdquo;&lt;br&gt;&#10;&amp;ldquo;영원하진 않겠지.&amp;rdquo;&lt;br&gt;&#10;&amp;ldquo;지금 하는 말들은?&amp;rdquo;&lt;br&gt;&#10;선듯 대답하려던 연의 입이 주저한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lt;br&gt;&#10;나는 말을 이었다.&lt;br&gt;&#10;&amp;ldquo;대화는? 정말 뜻 없는 영혼의 분절 아니야? 뱉었다 덧 없이 사라지는 것 아니야?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입술 꾹 닫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amp;rdquo;&lt;br&gt;&#10;&amp;ldquo;아니야. 말은, 영혼이겠지.&amp;rdquo;&lt;br&gt;&#10;&amp;ldquo;뭐?&amp;rdquo;&lt;br&gt;&#10;&amp;ldquo;말은 영혼이니까, 말한다는 건 영혼을 건네는 것이잖아. 그러니 대화한다는 건 영혼을 나누는 일 아니겠니. 입으로 따르고 귀로 받아서 서로의 균형을 맞추는 거 아닐까. 그 증거로 우리 영혼은 닮아가고 있잖아.&amp;rdquo;&lt;br&gt;&#10;나는 연과 눈을 마주하다.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시덥잖은 이야기네.&lt;br&gt;&#10;연은 뭐가 좋은지 저 혼자 킥킥 웃었다. 나는 귤을 하나 더 집어들었다. 달콤한 귤. 그리고 연의 손가락을 떠올리며 천천히 귤을 까기 시작한다. 이제 귤알과 귤 껍질은 완연히 나누어진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까마귀</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9%8C%EB%A7%88%EA%B7%80/</link><pubDate>Fri, 24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A%B9%8C%EB%A7%88%EA%B7%80/</guid><description>&lt;p&gt;몇 년 전 부터 우리 동네에선 까마귀가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불길하다고 성을 내셨지만, 나는 까마귀의 짙고 검은 깃을 상상하며 즐거워 했다. 나는 까만색을 좋아했다. 까마귀가 똑똑한 조류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얼마안가 까마귀 소리는 다른 새들의 지저귐 처럼 익숙해졌다. 어머니도 성을 내지 않았고, 나도 즐거워하지 않았다. 까마귀와 만나게 된 것은 그렇게 되고도 좀더 시간이 흐른 뒤였다.&lt;br&gt;&#10;까마귀의 깃털은 더 없을 정도로 어두운 암흑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 짙은 그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는 하늘 가운데 떠 있었지만 거리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곧 겨울이었다. 나는 까마귀 앞에서 멈춰섰다.&lt;br&gt;&#10;까마귀 울음소리는 종종 들어왔지만 눈으로 집적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역시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까마귀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까마귀가 놀라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까마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충분히 주의하며 쓰레기를 밟아 나갔다. 까마귀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좀더 가까이서 살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까마귀는 내가 코 앞으로 다가갈 때 까지 도망가지 않았다.&lt;br&gt;&#10;혹시 다친 것인가 살펴보았지만 겉보기는 멀쩡하고, 건강해보였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까마귀에게 줄만한 것이 없는지 찾았다. 까마귀는 내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다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눈 앞의 인간이 무슨 짓을 할지 궁금해하는 것 처럼 보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먹다 남은 초콜렛을 꺼내 포장을 벗긴 뒤 손바닥에 얹어 까마귀에게 내밀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내 손이 까마귀의 부리 바로 아래 갈 정도로. 그냥 잡아챌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까마귀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lt;br&gt;&#10;까마귀는 천천히 부리를 움직이더니 어느 순간 휙 하고 낚아챘다. 딱딱한 부리의 감촉은 순간적이었다. 나는 욕심을 부리기로 했다. 초콜렛 포장을 하나 더 벗긴 뒤, 이번에는 내 무릎 바로 아래(난 쪼그려 앉아 있었다)에 손을 펼쳤다. 까마귀는 통통 튀어와 초콜렛을 가져갔다. 거리는 좁혀진 그대로였고, 까마귀는 도망가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초콜렛을 벗긴 뒤 내 무릎 위에 두었다. 그리고 까마귀가 올라올 수 있도록 팔을 가로로 들었다. 까마귀가 초콜렛을 먹기 위해선 내 팔 위로 올라와야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까마귀는 그렇게 했다. 날개를 펄럭였을 때 도망갈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까마귀는 내 왼팔에 올라서서 초콜렛을 집어 먹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분명 더 달라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초콜렛은 그게 전부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다가, 도망가버려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오른손을 들어 까마귀의 깃에 만졌다. 까마귀는 도망가지 않았고, 내 손길에 대해 무관심했다. 등을 쓸어내리고, 머리를 토닥이고, 부리를 매만질 때 까지도.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lt;br&gt;&#10;쪼그린 다리가 아파왔다. 도망가버려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많이 저렸기 때문에 그대로 서 있었다. 까마귀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천천히, 건물 사이의 틈새에서 밝은 거리로 걸어나왔다. 까마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생각보다 무거웠던 까마귀 때문에 팔도 뻐근해져갔다. 까마귀는 귀여웠다. 나는 까만색을 좋아했다. 까마귀가 똑똑한 조류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까마귀를 놀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lt;br&gt;&#10;무심코 말했다.&lt;br&gt;&#10;&amp;ldquo;초콜렛은 이제 없어.&amp;rdquo;&lt;br&gt;&#10;&amp;ldquo;그렇구나.&amp;rdquo; 까마귀의 말이었다. &amp;ldquo;맛있었어. 다음에 봐.&amp;rdquo;&lt;br&gt;&#10;까마귀는 그 자리에서 날개를 퍼덕여 날아올랐고, 건물 너머로 사라졌다. 내 왼쪽 팔목엔 까마귀가 내려 앉았던 검은 먼지 자국이 발자국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리모컨을 찾아줘</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A6%AC%EB%AA%A8%EC%BB%A8%EC%9D%84-%EC%B0%BE%EC%95%84%EC%A4%98/</link><pubDate>Fri, 24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A6%AC%EB%AA%A8%EC%BB%A8%EC%9D%84-%EC%B0%BE%EC%95%84%EC%A4%98/</guid><description>&lt;p&gt;케이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젠장. 제이!&amp;rdquo;&lt;br&gt;&#10;분노와 허탈함이 반절씩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나는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lt;br&gt;&#10;내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왜? 무슨 일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리모컨이 또 없어졌어.&amp;rdquo;&lt;br&gt;&#10;&amp;ldquo;잘 찾아봐. 쇼파 바닥에 없어?&amp;rdquo;&lt;br&gt;&#10;&amp;ldquo;없어.&amp;rdquo;&lt;br&gt;&#10;&amp;ldquo;탁자 위에는?&amp;rdquo;&lt;br&gt;&#10;&amp;ldquo;없어.&amp;rdquo;&lt;br&gt;&#10;&amp;ldquo;또 니가 깔고 앉은거 아냐?&amp;rdquo;&lt;br&gt;&#10;&amp;ldquo;아냐. 제이제이제이제에이이! 와서 같이 찾아줘.&amp;rdquo;&lt;br&gt;&#10;잠시 한숨을 쉬고 말했다.&lt;br&gt;&#10;&amp;ldquo;나 요리하고 있는거 안보여?&amp;rdquo;&lt;br&gt;&#10;&amp;ldquo;거실에선 안보여.&amp;rdquo;&lt;br&gt;&#10;&amp;ldquo;어쨌든 나 요리하고 있으니까. 텔레비젼이 보고 싶으면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전원 버튼을 눌러.&amp;rdquo;&lt;br&gt;&#10;&amp;ldquo;멀어. 이미터는 넘을거 같아.&amp;rdquo;&lt;br&gt;&#10;나는 가스렌지를 약불로 낮추고, 슬리퍼를 끌면서 거실로 들어가, 텔레비전을 켜고, &amp;ldquo;됐지?&amp;rdquo; 하곤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lt;br&gt;&#10;가스렌지 앞에서 뒤집개를 잡으려는데 다시 케이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잠깐. 제이!&amp;rdquo;&lt;br&gt;&#10;&amp;ldquo;또 무슨 일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리모컨이 없잖아.&amp;rdquo;&lt;br&gt;&#10;&amp;ldquo;텔레비전은 켜졌잖아?&amp;rdquo;&lt;br&gt;&#10;&amp;ldquo;채널을 돌려야지.&amp;rdquo;&lt;br&gt;&#10;나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lt;br&gt;&#10;&amp;ldquo;좋아. 내가 돌려줄께. 뭐가 보고 싶어?&amp;rdquo;&lt;br&gt;&#10;&amp;ldquo;뉴스.&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amp;rdquo;&lt;br&gt;&#10;나는 채널 버튼 몇 번 눌렀고 아나운서가 나오는걸 확인하곤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lt;br&gt;&#10;가스렌지의 화력을 다시 올리는데 또 케이가 말했다.&lt;br&gt;&#10;&amp;ldquo;제이!&amp;rdquo;&lt;br&gt;&#10;&amp;ldquo;케이! 나는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니가 이렇게 자꾸 부르면 오늘 아침은 엉망진창이……&amp;rdquo; 하고 말하다가, 그냥 가스렌지 불을 끄고 거실로 나왔다.&lt;br&gt;&#10;&amp;ldquo;좋아. 그래. 또 무슨 일이야? 다른 채널이 보고 싶어? 다큐? 영화? 쇼?&amp;rdquo;&lt;br&gt;&#10;케이가 심드렁한 눈길로 나를 올려다봤다.&lt;br&gt;&#10;&amp;ldquo;모두 아니야. 리모컨을 찾아줘.&amp;rdquo;&lt;br&gt;&#10;나는 주위를 빙 둘러봤다. 리모컨은 보이지 않는다.&lt;br&gt;&#10;&amp;ldquo;그냥 보고 싶은 채널을 말해. 그럼 돌려줄께. 어디 박혀있는지도 모를 리모컨을 찾는 것 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어?&amp;rdquo;&lt;br&gt;&#10;&amp;ldquo;아니. 아냐.&amp;rdquo;&lt;br&gt;&#10;&amp;ldquo;왜?&amp;rdquo;&lt;br&gt;&#10;&amp;ldquo;왜냐고? 니가 리모컨에 대해서 뭔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리모컨은 단순히 텔레비전을 끄고 켜거나 채널을 돌리거나 음량의 고저를 조절하는 도구가 아니야. 잘 생각해보라고. 텔레비전에는 모든게 들어있어. 당장의 도로 교통 상황부터, 사자가 사냥하는 모습과, 키마 마타르 만드는 법, 얼마전 개봉된 영화의 줄거리와, 그 영화에 나온 연기자의 연애사까지! 알겠어? 텔레비전은 모든 것이라고. 그리고 리모컨은 수 십개로 갈려진 그런 채널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만능도구야. 신의 지팡이지.&amp;rdquo;&lt;br&gt;&#10;긴 말이 나왔기 때문에, 잠시 뜸을 들였다.&lt;br&gt;&#10;내가 말했다.&lt;br&gt;&#10;&amp;ldquo;그럼 내가 리모컨이 되면 되잖아.&amp;rdquo;&lt;br&gt;&#10;&amp;ldquo;뭐?&amp;rdquo;&lt;br&gt;&#10;&amp;ldquo;내가 니 리모컨이 된다고. 내가 대신 채널을 돌리고 소리를 올리고 줄이고 텔레비전을 켜고 끄고. 그럼 되는거잖아?&amp;rdquo;&lt;br&gt;&#10;&amp;ldquo;안 돼.&amp;rdquo;&lt;br&gt;&#10;&amp;ldquo;왜?&amp;rdquo;&lt;br&gt;&#10;&amp;ldquo;느려. 느리잖아. 너 빛보다 빨라? 리모컨은 레이저를 쏜다고.&amp;rdquo;&lt;br&gt;&#10;&amp;ldquo;그건 이해해주라. 사람이 빛 보다 빠를 수는 없잖아. 그만큼 빨라지도록 노력은 해볼게.&amp;rdquo;&lt;br&gt;&#10;&amp;ldquo;아냐. 난 인정못해. 그리고 노력해서 빨라져봤자 얼마나 빨라질까. 그냥 리모컨을 찾아줘. 이 근처에 있을거야. 리모컨이 발달려서 도망갔을리도 없을테니까 어딘가에 있을꺼야. 텔레비전 위에는 없어?&amp;rdquo;&lt;br&gt;&#10;나는 힐끗 봤다. 아무 것도 없다.&lt;br&gt;&#10;&amp;ldquo;없어. 아침을 먹고나면 니가 질릴때까지 채널 돌려줄께. 그때까지라도 참아.&amp;rdquo;&lt;br&gt;&#10;&amp;ldquo;내가 필요한건 니가 아니라 리모컨이라니까.&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 알았어. 그럼 아침 먹고나서 리모컨 찾아줄게. 일단 뭐라도 먹고하자고. 그정돈 기다려줘. 알겠지?&amp;rdquo;&lt;br&gt;&#10;케이는 묵묵부답. 내 얼굴만 빤히 바라봤다. 나는 그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걸음을 옮겼다.&lt;br&gt;&#10;&amp;ldquo;잠깐.&amp;rdquo;&lt;br&gt;&#10;돌아봤다.&lt;br&gt;&#10;&amp;ldquo;왜?&amp;rdquo;&lt;br&gt;&#10;&amp;ldquo;가젤이 보고 싶은데.&amp;rdquo;&lt;br&gt;&#10;&amp;ldquo;좋아. 다큐 채널이지?&amp;rdquo;&lt;br&gt;&#10;&amp;ldquo;응.&amp;rdquo;&lt;br&gt;&#10;나는 채널을 돌리고나서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을 준비했다.&lt;br&gt;&#10;요리를 그릇에 모두 담아내었을때,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lt;br&gt;&#10;&amp;ldquo;케이. 아침 다 됐어. 목발 줄까?&amp;rdquo;&lt;br&gt;&#10;&amp;ldquo;아냐. 그보다는, 안아줄 수 있지?&amp;rdquo;&lt;br&gt;&#10;&amp;ldquo;어렵지않지.&amp;rdquo;&lt;br&gt;&#10;실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케이는 다른 사람 보다 가볍다. 나는 케이를 번쩍들어 식탁으로 데려가 앉혔다. 나는 케이의 맞은편에 앉았다.&lt;br&gt;&#10;케이가 음식을 맛보더니 말했다.&lt;br&gt;&#10;&amp;ldquo;와, 엉망진창이 될지도 모른다고 한 것 치곤 훌륭한 아침 아냐?&amp;rdquo;&lt;br&gt;&#10;&amp;ldquo;그거야 내 능력이 좋아서 그런거지.&amp;rdquo;&lt;br&gt;&#10;케이가 살짝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으면서 주머니 속에 있는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분실물</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B6%84%EC%8B%A4%EB%AC%BC/</link><pubDate>Fri, 24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B6%84%EC%8B%A4%EB%AC%BC/</guid><description>&lt;p&gt;&amp;ldquo;무엇을 잃어버리셨나요?&amp;rdquo;&lt;br&gt;&#10;접수원이 말했다.&lt;br&gt;&#10;너는 어리둥절해서 말했다.&lt;br&gt;&#10;&amp;ldquo;아뇨. 저는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는데요.&amp;rdquo;&lt;br&gt;&#10;&amp;ldquo;그게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죠. 자기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는 거요.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거죠.&amp;rdquo;&lt;br&gt;&#10;&amp;ldquo;하지만 저는 부족한 게 없어요. 잃어버린 게 없을 거에요.&amp;rdquo;&lt;br&gt;&#10;&amp;ldquo;상실이란 건 금방 익숙해지기 마련이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분실물 센터는 다릅니다. 저희는 이미 고객님이 잃어버린 물건을 모두 회수 했습니다. 고객님이 물건에 대한 기억만 되살리시면 고객님은 고객님의 물건을 되찾게 되는 겁니다.&amp;rdquo;&lt;br&gt;&#10;너는 분실물 센터 접수원의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물건을 주겠다니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lt;br&gt;&#10;접수원이 접수대에 처음으로 올린 물건은 낡고 구겨진 오천원권 지폐였다.&lt;br&gt;&#10;너는 접수원 재촉을 할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다가 지폐를 집어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형광등에 비추어보기도 했지만 그냥 평범한 돈이었다.&lt;br&gt;&#10;너는 말했다.&lt;br&gt;&#10;&amp;ldquo;이게 정말 제건가요?&amp;rdquo;&lt;br&gt;&#10;&amp;ldquo;네.&amp;rdquo;&lt;br&gt;&#10;&amp;ldquo;저는 잃어버린 기억이 없는 데도요?&amp;rdquo;&lt;br&gt;&#10;&amp;ldquo;2012년 11월 21일 저녁 11시에, 친구 A와 오꾸닭에서 술을 마신 건 기억나시나요? 2차였는데.&amp;rdquo; 너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기억난다고 대충 둘러댔다. &amp;ldquo;네. 그때 계산하고 남은 거스름돈이었습니다. 대강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그 다음 술자리인 막창 집에서 일어날 때 지갑을 꺼내다 바닥에 흘리셨죠.&amp;rdquo;&lt;br&gt;&#10;&amp;ldquo;아, 그럼 제 것 맞네요.&amp;rdquo;&lt;br&gt;&#10;너는 부들부들한 지폐를 비볐다.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lt;br&gt;&#10;&amp;ldquo;혹시 또 다른 물건은 없나요?&amp;rdquo;&lt;br&gt;&#10;&amp;ldquo;왜 없겠어요?&amp;rdquo;&lt;br&gt;&#10;접수원은 다음 물건으로 작은 종이가방을 건넸다. 그 안에는 포장된 상자가 들어있었다.&lt;br&gt;&#10;그것만으로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lt;br&gt;&#10;&amp;ldquo;뜯어봐도 되나요?&amp;rdquo;&lt;br&gt;&#10;&amp;ldquo;물론요.&amp;rdquo;&lt;br&gt;&#10;포장을 뜯자 꽤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상자가 나왔고, 그 상자를 열자 매끄러운 모양의 만년필을 볼 수 있었다. 만년필에 대한 식견이 있었던 너는, 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나름 가치가 있는 종류라는 것을 알았다.&lt;br&gt;&#10;네가 그 만년필을 골똘히 바라보자 접수원이 말했다.&lt;br&gt;&#10;&amp;ldquo;고객님의 중학교 3학년 생일파티 때였죠. 2학기 종업식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고객님의 생일은 자연스럽게 반 친구 모두가 모이는 파티가 되었죠. 하지만 생일파티라는 명목으로 모이는 자리이다 보니 고객님은 유래 없이 많은 축하선물을 받았고요.&amp;rdquo; 너는 이번만큼은 거짓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amp;ldquo;이 만년필은 그때 고객님을 짝사랑했던 B의 것입니다. 워낙 선물을 많이 받았던 고객님은 이리저리 쌓인 물건을 모두 확인 할 수 없었던 거죠.&amp;rdquo;&lt;br&gt;&#10;너는 포장 안쪽에서 작은 쪽지를 발견했다. 쪽지에는 B의 이름과 휴대폰 번호가 적혀져 있었다. 너는 구겨져버린 포장지는 가방에 넣고, 만년필과 쪽지는 종이가방에 돌려놓았다.&lt;br&gt;&#10;&amp;ldquo;좋네요. 더 없나요?&amp;rdquo;&lt;br&gt;&#10;접수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화기를 들어 어딘가에 연락을 했다. 얼마되지 않아 작업복을 입은 직원이 큰 상자 하나를 들고 와 네 앞에 내려다놓았다. 너는 기대감을 가지고 상자를 열었다.&lt;br&gt;&#10;안에는 상자 가득 양말이 들어있었다. 그것도 서로 짝이 다른 양말들이었다. 굳이 뒤적거리지 않아도 너는 알 수 있었다.&lt;br&gt;&#10;&amp;ldquo;…양말이군요.&amp;rdquo;&lt;br&gt;&#10;&amp;ldquo;네. 고객님이 처음 잃어버리신 양말은 4살 때였는데요. 그때 고객님의 어머니분이…&amp;rdquo;&lt;br&gt;&#10;&amp;ldquo;음. 됐고요. 혹시 분실물 센터는 세탁도 해주나요?&amp;rdquo;&lt;br&gt;&#10;&amp;ldquo;저희는 분실물의 분실 당시의 상태를 존중합니다. &amp;quot;&lt;br&gt;&#10;너는 양말 상자를 닫았다.&lt;br&gt;&#10;&amp;ldquo;그럼 이건 포기할게요.&amp;rdquo;&lt;br&gt;&#10;&amp;ldquo;그건 안 됩니다, 고객님.&amp;rdquo;&lt;br&gt;&#10;&amp;ldquo;네?&amp;rdquo;&lt;br&gt;&#10;&amp;ldquo;모든 분실물을 가져가시거나, 모든 분실물을 포기하셔야합니다.&amp;rdquo;&lt;br&gt;&#10;너는 무언가 항의를 해야할까, 생각하다가 오천원과 만년필을 냄새나는 양말 한 상자와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나있었다.&lt;br&gt;&#10;&amp;ldquo;다른 물건도 있나요?&amp;rdquo;&lt;br&gt;&#10;그래도 너는 네가 잃어버린 것 중에는 좋은 것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너는 어떤점에서 낙관적이었다. 너는 네 삶이 좋은 쪽 보다는 나쁜 쪽으로 더 기울어져있다고 믿고 있었고,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좋은 것이리라 믿었다. 네 삶의 총합을 더한다면 0이 될 거라고 생각 한 것이다.&lt;br&gt;&#10;분실물 센터의 직원들은 네가 일곱 살 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장난감을 찾아주거나,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어진 옛 친구와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을 건네주었다. 그것들은 값지진 않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lt;br&gt;&#10;하지만 나쁜 것이 더 많았다.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 성적표, 처음으로 쓴 소설의 프린트, 한 번도 풀지 않아 깨끗한 문제지, 살대가 부러진 우산, 반쯤 닳은 지우개, 추레하고 낡은 아동복, 거북 등껍질.&lt;br&gt;&#10;너는 짙은 녹색에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거북 등껍질을 받았을 때 계단을 한단 더 내려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길렀던 거북이었다. 너는 처음 며칠은 거북에게 애정을 쏟았지만 이내 시들해졌고, 친구들과 함께 놀기 위해 거북을 들고 놀러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등껍질이나마 남은 것을 보면 분실물 센터는 나름 분발한 듯 보였다.&lt;br&gt;&#10;너는 겁이 났다. 삶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었다. 지금의 너는 우연히 일어난 행운과 불행의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쁜 것을 잊고 좋은 것을 얻으려고 했던 의지의 증거였다. 상황은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lt;br&gt;&#10;너는 지갑에서 5천원을 다시 빼내고 종이가방을 접수원에게 내밀었다.&lt;br&gt;&#10;&amp;ldquo;관둘게요.&amp;rdquo;&lt;br&gt;&#10;&amp;ldquo;분실물을 찾지 않을 건가요?&amp;rdquo;&lt;br&gt;&#10;&amp;ldquo;네.&amp;rdquo;&lt;br&gt;&#10;&amp;ldquo;원래는 버리려고 했던 게 아니잖아요?&amp;rdquo;&lt;br&gt;&#10;&amp;ldquo;너무 늦어버린 거죠. 늦었다는 걸 아는데도 미련이 남아서. 사실 여기에 분실물을 찾으려고 온 게 아닌데.&amp;rdquo;&lt;br&gt;&#10;&amp;ldquo;그런가요? 분실물 센터에 분실물을 찾으러 온 게 아니라면, 왜 오셨나요?&amp;rdquo;&lt;br&gt;&#10;너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집중을 했고, 땅을 바라보면서 인상을 썼다. 너는 답을 떠올렸을 때 고개를 들며 말했다.&lt;br&gt;&#10;&amp;ldquo;제가 분실물이었군요.&amp;rdquo;&lt;br&gt;&#10;&amp;ldquo;예.&amp;rdquo;&lt;br&gt;&#10;접수원은 직원을 불러 처음의 양말 박스처럼 큰 박스를 가져왔다. 너는 조심스럽게 박스를 열었고, 박스의 어두운 안쪽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lt;br&gt;&#10;나였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비늘 없는 물고기</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B9%84%EB%8A%98-%EC%97%86%EB%8A%94-%EB%AC%BC%EA%B3%A0%EA%B8%B0/</link><pubDate>Fri, 24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B%B9%84%EB%8A%98-%EC%97%86%EB%8A%94-%EB%AC%BC%EA%B3%A0%EA%B8%B0/</guid><description>&lt;p&gt;비늘 없는 물고기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서쪽 사람들이 해안가에서 죽어 있는 그 비늘 없는 물고기의 사체를 주웠다고 했다. 사실 비늘이 있고 없고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 물고기의 거대함이었다. 그 물고기는 그 어떤 짐승보다도 크고 살이 많아서, 서쪽 사람들은 한 달째 사냥도 하지 않고 먹고 마시며 바다신에 대한 감사 제사를 드리고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 &amp;lsquo;작은발&amp;rsquo;이나 &amp;lsquo;뾰족코&amp;rsquo; 같은 젊은이들은 우리도 태양신이 아니라 바다신에게 제사를 지내야한다고 했다.&lt;br&gt;&#10;늙은이들도 처음에는 젊은이들에게 헛소문을 퍼트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들은 서쪽 사람들이 안개가 자주 끼고 광활한 바다만 마주하느라 헛것을 자주보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작은발이 기어코 한 줌의 붉은 열매를 비늘 없는 물고기의 갈빗대와 바꾸어오자, 늙은이들도 태도를 바꿨다. 세워두면 작은발의 어깨에 다다를 정도였다. 그러면서 작은발은 이 마저도 중간 크기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흰머리만은 그 생선 가시로는 가죽도 못꿰어낸다며 핀잔을 주었지만, 다른 늙은이들은 서쪽 사람들이 보기와는 다르게 신의 축복을 받을 정도로 열성이었으리라 태도를 바꾸었다.&lt;br&gt;&#10;나는 족장과 이야기를 했다.&lt;br&gt;&#10;&amp;ldquo;뭔가 수를 써야하지 않습니까.&amp;rdquo;&lt;br&gt;&#10;족장은 벽을 보고 거울을 닦다가 거울만 들어 비추어지는 나를 보았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lt;br&gt;&#10;족장이 말했다.&lt;br&gt;&#10;&amp;ldquo;겁을 내지 않는군.&amp;rdquo;&lt;br&gt;&#10;&amp;ldquo;거기 있는 건 제가 아니니까요.&amp;rdquo;&lt;br&gt;&#10;&amp;ldquo;영혼이 담긴다고 비명을 지르던 게 아직도 기억나는데.&amp;rdquo;&lt;br&gt;&#10;나는 얼굴이 더워지는걸 느꼈다.&lt;br&gt;&#10;&amp;ldquo;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온게 아닙니다.&amp;rdquo;&lt;br&gt;&#10;족장이 작게 웃었다.&lt;br&gt;&#10;&amp;ldquo;올 거라고 생각했었어. 네가 할 일이 있다.&amp;rdquo;&lt;br&gt;&#10;&amp;ldquo;어떤?&amp;rdquo;&lt;br&gt;&#10;&amp;ldquo;별 건 아냐. 비늘 없는 물고기에 대해서 &amp;lsquo;네 생각&amp;rsquo;을 이야기하는거야. 작은 물고기들은 비늘이 있다. 하지만 그건 몸을 묶어둔 것 처럼 괴로운 일이다. 비늘이 깎여나가는 물고기들은 원래 제몸보다 더 커지는 법이다.&amp;rdquo;&lt;br&gt;&#10;&amp;ldquo;그걸론 해결이 안됩니다. 그래서 바다신이 커다란 물고기를 선물로 보냈다고 생각하겠죠.&amp;rdquo;&lt;br&gt;&#10;&amp;ldquo;그거면 충분해. 빨간 눈한테는 그건 조화를 어긴 물고기라고 가르쳤거든. 두 이야기가 합쳐지면 결국 그건 바다신의 선물이 아니라 경고였다고 받아들이게 될거야.&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도 불충합니다. 결국 서쪽 사람들은 배를 불렸고 낙엽이 떨어지는 때가 왔는데도 편하게 쉬고 있어요. 사람들은 이야기를 신뢰하지만 눈에 보이는 &amp;lsquo;진짜&amp;rsquo;만큼 믿지는 않아요. 서쪽 사람들에게 정말로 저주가 내려지지 않는 이상.&amp;rdquo;&lt;br&gt;&#10;&amp;ldquo;걱정마. 시킨대로만 해.&amp;rdquo;&lt;br&gt;&#10;작은 청동 거울에는 족장의 입꼬리가 보였다. 나는 족장을 믿기로 했다. 족장의 말이 틀린적은 없었다.&lt;br&gt;&#10;&amp;ldquo;그런데 비늘 없는 물고기는 정말로 그 이야기처럼 비늘이 없어서 거대한 것인가요?&amp;rdquo;&lt;br&gt;&#10;&amp;ldquo;눈이 내리는 때가 오면 가르쳐줄게. 그땐 시간이 많으니.&amp;rdquo;&lt;br&gt;&#10;족장은 다시 몸을 숙이고 거울을 닦기 시작했다.&lt;br&gt;&#10;나는 족장의 말대로 사냥을 나가는 길이나 배가 부르고 열매 삭힌 물을 마실 때, 잠을 자기 전 불티들을 별과 번갈아 보면서 비늘 없는 물고기에 대해서 말하곤 했다. 그 이야기는 빨간눈의 부조화에 대한 이야기와 엮이며 바다신의 저주가 되었고, 서쪽 사람들은 자신에게 찾아올 재앙도 모른채 쾌락에 취한 불손한 존재들이 되어갔다. 사람들은 남이 잘되면 축하하거나 부러워하는 것 보다 욕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lt;br&gt;&#10;급기야 작은발이 비늘 없는 물고기의 갈빗대로 만든 창을 쓰다 상처를 입게 되자 바다신에 대한 이야기도 잦아들었다. 그것이야 우연이겠지만, 그로써 바다신에 대한 지향심 각자의 속내로 숨어들었다. 언젠간 다시 떠오르겠지만 지금처럼만 할 수 있다면야.&lt;br&gt;&#10;우리는 산지기를 쫓아낸 큰 동굴에서 겨울을 났다. 나는 족장에게 비늘 없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lt;br&gt;&#10;비늘 없는 물고기는 고래라고 한다. 서쪽 사람들이 고래에 대해 이야기한 것 중 틀린 것은 없다. 거대하고, 살이 많다. 고래는 종류가 많지만 작은발이 가져온 갈빗대로 봐서는 그건 흰수염고래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 고래보다 거대한 것은 이전에도, 이후로도 없는 거대한 생명이다. 고래에게 비늘이 없는 까닭은 본래 산짐승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을 좋아해서 바다에서 살아가다 결국 물고기가 되어버렸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퍼스트 콘택트</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D%8D%BC%EC%8A%A4%ED%8A%B8-%EC%BD%98%ED%83%9D%ED%8A%B8/</link><pubDate>Fri, 24 Feb 2017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D%8D%BC%EC%8A%A4%ED%8A%B8-%EC%BD%98%ED%83%9D%ED%8A%B8/</guid><description>&lt;p&gt;앞으로 2cm였다. 소년의 손이 소녀의 손에 닿기까지 2c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손가락 한 마디의 길이. 소녀는 생과일주스를 마시고 멀리 구름에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소녀의 관심은 소년의 손끝에 있었다. 소녀는 마음속으로 응원했다.&lt;br&gt;&#10;소년과 소녀가 사귀기 시작한 지는 한 달이 지났고 서로 알고 지낸 지는 2년이 넘었다. 데이트는 네 번째였다.&lt;br&gt;&#10;소년은 늘 노력했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늘 그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소녀가 짓궂게 군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둘의 마음이 맞아떨어졌고 이제 2cm를 앞두고 있었다. 아니, 지금은 1cm. 9mm. 8mm. 7mm…… 점점 가까워진다. 소년이 소녀의 &amp;lsquo;손을 잡는 것&amp;rsquo;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소녀도, 소년도, 그렇게 생각했다.&lt;br&gt;&#10;그러나 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소년은 소녀와 2mm를 앞두고 그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소녀는 그제야 자신의 문제를 떠올릴 수 있었다.&lt;br&gt;&#10;소년이 아무것도 모르고 끙끙거리고 있을 때 소녀가 급히 손을 빼며 말했다.&lt;br&gt;&#10;&amp;ldquo;아차.&amp;rdquo;&lt;br&gt;&#10;&amp;ldquo;어?&amp;rdquo;&lt;br&gt;&#10;&amp;ldquo;깜빡했다.&amp;rdquo;&lt;br&gt;&#10;&amp;ldquo;으, 응?&amp;rdquo;&lt;br&gt;&#10;소년은 어벙한 얼굴로 꿈뻑였다.&lt;br&gt;&#10;소녀는 으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손을 뻗어 소년의 손목을 잡았다. &amp;ldquo;어어?&amp;rdquo; 소년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소녀는 잡은 손을 흔들며 펴보라 했고, 소년은 그렇게 했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소년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붙여 보였다.&lt;br&gt;&#10;닿지 않았다.&lt;br&gt;&#10;소년의 눈은 동그래졌고, 소녀는 한숨을 쉬었다. 소년과 소녀의 손바닥은 2mm. 딱 그만큼 떨어져 있었다.&lt;br&gt;&#10;&amp;ldquo;말하는 걸 깜빡했었는데…… 사실 나 좀 이상 체질이라서. 다른 사람들이랑 닿질 못해. 일부러 말 안 한 건 아니구…… 그래도 이 정도면 거의 잡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안 그래?&amp;rdquo;&lt;br&gt;&#10;&amp;ldquo;아냐.&amp;rdquo;&lt;br&gt;&#10;&amp;ldquo;아, 아냐?&amp;rdquo;&lt;br&gt;&#10;소년의 표정은 벤치에 등을 기대며 고갤 숙였다. &amp;ldquo;아니지이. 절때로오.&amp;rdquo; 말하며 고개를 넘겨 하늘을 바라봤다. 이게 뭐람. 기껏 용기 냈는데.&lt;br&gt;&#10;소녀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마시던 생과일주스만 쪽쪽 빨았다. 아니 그럼 나보고 어쩌란 거야. 날 때부터 그런걸.&lt;br&gt;&#10;&amp;ldquo;야아.&amp;rdquo;&lt;br&gt;&#10;소년이 불렀다. 소녀가 돌아봤다.&lt;br&gt;&#10;&amp;ldquo;어? 왜?&amp;rdquo;&lt;br&gt;&#10;소년은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lt;br&gt;&#10;&amp;ldquo;그럼 너 밥은 어떻게 먹어?&amp;rdquo;&lt;br&gt;&#10;&amp;ldquo;밥은 잘 넘어가는데.&amp;rdquo;&lt;br&gt;&#10;&amp;ldquo;옷은 어떻게 입어?&amp;ldquo;아빠도?&amp;rdquo;&lt;br&gt;&#10;&amp;ldquo;동생도 그래.&amp;rdquo;&lt;br&gt;&#10;&amp;ldquo;친구는?&amp;rdquo;&lt;br&gt;&#10;&amp;ldquo;친구? 몰라. 안 닿을 걸. 들킬까 봐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안 닿을 거야.&amp;rdquo;&lt;br&gt;&#10;&amp;ldquo;그래?&amp;rdquo;&lt;br&gt;&#10;소년은 생각했다. 여자애들은 친한 애들끼리는 팔짱도 자주 끼고, 손도 자주 잡고 그러던데. 확인해 본 적이 없다고? 소녀는 친구가 많이 없었다. 소년은 그에 대해 소녀의 성격 때문이겠거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나보다.&lt;br&gt;&#10;빨대 공기 빠는 소리가 났다. 소녀가 막 생과일주스를 다 마신 참이었다. 소년은 뭔가 떠올랐다.&lt;br&gt;&#10;소년이 말했다.&lt;br&gt;&#10;&amp;ldquo;밥은 잘 먹는다 그랬지?&amp;rdquo;&lt;br&gt;&#10;&amp;ldquo;응.&amp;rdquo;&lt;br&gt;&#10;&amp;ldquo;옷도 문제없고.&amp;rdquo;&lt;br&gt;&#10;&amp;ldquo;응.&amp;rdquo;&lt;br&gt;&#10;&amp;ldquo;그럼 이렇게 생각해봐.&amp;rdquo;&lt;br&gt;&#10;&amp;ldquo;뭘?&amp;rdquo;&lt;br&gt;&#10;소년은 팔을 뻗어 소녀의 손목을 느슨하게 잡았다.&lt;br&gt;&#10;&amp;ldquo;내 손은 이제 네 장갑이야.&amp;rdquo;&lt;br&gt;&#10;&amp;ldquo;자, 장갑이 왜 거기 붙어?&amp;rdquo;&lt;br&gt;&#10;&amp;ldquo;아, 정말. 일단 상상해보라니까 그러네. 봐봐. 이건 장갑이야.&amp;rdquo; 소년의 손이 소녀의 손 위에 겹치었다. 온기는 전해져오지만 살결은 느껴지지 않는다. &amp;ldquo;상상해보라니까.&amp;rdquo; 소녀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잘되지 않았다. 그 사이 소년이 소녀에게 다가갔다. &amp;ldquo;그리고,&amp;rdquo; 소년이 마른침 살짝 삼킨다. &amp;ldquo;날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거야.&amp;rdquo;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얘가 왜 이래? 미쳤나 봐. 소년이 다가온다. 하지만 소녀는 피하지 않았다. 단지 눈을 감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래. 음식이야. 음식. 뭐가 좋을까? 젤리? 푸딩? 아이, 정말. 뭐가 좋을까?&lt;br&gt;&#10;그 사이 소년의 입술이 소녀의 입술에 가닿고……&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꿈일기161202</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61202/</link><pubDate>Fri, 02 Dec 2016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9D%BC%EA%B8%B0/%EA%BF%88%EC%9D%BC%EA%B8%B0161202/</guid><description>&lt;p&gt;라티노2중대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수만명의 사람 사이에서 한줌의 진실을 찾기 위해 끊없는&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정형행동과 피크닉</title><link>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0%95%ED%98%95%ED%96%89%EB%8F%99%EA%B3%BC-%ED%94%BC%ED%81%AC%EB%8B%89/</link><pubDate>Mon, 15 Apr 2013 00:00:00 +0000</pubDate><guid>https://wirae.me/%EA%B8%B0%EB%A1%9D/%EC%86%8C%EC%84%A4/%EC%A0%95%ED%98%95%ED%96%89%EB%8F%99%EA%B3%BC-%ED%94%BC%ED%81%AC%EB%8B%89/</guid><description>&lt;p&gt;책상에서 책을 읽는 중에 방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하니 박사님이 보였다. 박사님은 문간에 그대로 서서 말했다. 서두 없이 바로 본론에 진입했다.&lt;br&gt;&#10;“양. 동물원의 동물들은 좁은 공간에 갇혀 살기 때문에 정신이 이상하다던데. 알고 있나?”&lt;br&gt;&#10;“어, 기운 없이 축 늘어지거나 한 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거요? 정형행동이라고 부르던 것 같던데.”&lt;br&gt;&#10;“그럼 그런 정형행동을 사람들도 하는 건 알고 있나?”&lt;br&gt;&#10;“그런 짓 하면 그냥 정신병원 가는 거죠. 굳이 정형행동이라고 하나요?”&lt;br&gt;&#10;“아냐. 사람들은 그게 병이라고 생각을 안 하니까. 정신이 이상하다고도 생각을 안 하고.”&lt;br&gt;&#10;“예를 들면 어떤 것요?”&lt;br&gt;&#10;“신호등이 파란 불이면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거나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 버리는 것. 서로 만나면 인사하는 것. 윗사람에게 예절을 지키는 것. 모르는 사람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는 것. 밥을 먹을 때 수저를 사용하는 것. 옷을 입고 다니는 것.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는 것……”&lt;br&gt;&#10;“잠깐.”&lt;br&gt;&#10;“왜?”&lt;br&gt;&#10;“그건 정형행동이 아니라 법과 질서, 윤리와 기본적인 인간된 도리라고 하지 않나요?”&lt;br&gt;&#10;“그리고 정형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양. 잘 생각해보라고. 법과 질서와 윤리가 자연스러운 일이야? 인간도 동물이라고. 원숭이에서 뻗어 나왔으면 원숭이답게 나무 위를 활보하고 다녀야 하는데 좁은 방구석에 박혀 있잖나.”&lt;br&gt;&#10;그건 당신이잖아. 이 인간아.&lt;br&gt;&#10;본심을 삼키면서 말했다.&lt;br&gt;&#10;“그래요. 인간도 동물이죠. 그렇지만 다른 동물이랑은 다르잖아요. 인간은 지성이 있는 동물이잖아요.”&lt;br&gt;&#10;“그래도 자연스럽지 못한 행동이란 건 인정해야할걸.”&lt;br&gt;&#10;“인간된 입장에선 충분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데요.”&lt;br&gt;&#10;“아냐. 그건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되었을 뿐이야. 인간들은 자신들을 틀에 집어넣고 그걸 지키며 살기위해 아득바득 노력하고 있는 거야. 양. 시선을 넓게 가지도록하게. 이 우주엔 인간만 살고 있는게 아냐! 아, 잠깐. 생각해보니 양의 그런 사고도 정형행동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이 경우에는 정형사고인가?”&lt;br&gt;&#10;나는 으쓱하곤 말했다.&lt;br&gt;&#10;“네, 뭐. 그건 아무래도 좋아요. 정형행동 이야기는 왜 꺼내신 거에요?”&lt;br&gt;&#10;박사님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lt;br&gt;&#10;“양, 정형행동을 치료하려면 행동 풍부화를 해야 해. 정형행동을 하는 동물로 하여금 대자연의 향취와 내재된 본능을 일깨울 수 있게 해야하지. 나는 지금부터 나 자신에게 행동 풍부화를 적용해 나의 정형행동을 치료해보도록 할 생각이야. 양도 관심있으면 나오도록 해.”&lt;br&gt;&#10;나는 책을 덮으며 챙겨서 나갈게요, 하고 말했다. 박사님은 고개를 끄덕이곤 문을 닫고 돌아갔다.&lt;br&gt;&#10;“피크닉 가잔 소리를 왜 저렇게 길게 하실까.”&lt;br&gt;&#10;의문일 따름이다.&lt;/p&gt;</description></item></channel></rss>